OECD 30개국 중에서 노동조합의 설립을 금지하는 입법을 가진 국가는 우리나라를 제외하고는 없고, ILO 회원국 180개국 전체를 시야에 넣어도 이와 유사한 제도를 가진 국가를 찾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복수노조금지조항과 함께 악명이 높았던 3자개입 금지제도는 작년 노동관계법의 개정으로 우리 제도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이제 권위주의정권이 남긴 대표적인 노동악법으로 거의 유일하게 남아 있는 유산은 복수노조금지제도뿐이다.
악명 높은 복수노조 금지, 왜 못 없애나?
그 이유는 무엇인가. 복수노조금지제도의 역사적 변천을 보면 이 제도가 오로지 정치적 목적에 이용되거나 정치적 흥정의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복수노조금지제도는 5.16 군사쿠데타 세력이 주도했던 1963년 노동조합법의 개정에 의해 도입됐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하나의 사업 또는 사업장내의 복수노조 병존을 금지하기 시작한 것은 시기를 훨씬 소급해 1947년 미군정 노동부가 공표한 통첩인 "노동조합운동의 지도에 관한 건"에서 비롯된다. 이는 당시 수적으로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산업별로 조직되어 있던 좌익계의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의 활동을 억제하고 반대로 기업별로 조직된 우익계인 대한노총을 지원하기 위한 방안으로 도입됐다. 이 정책은 상당한 효과를 거둬, 군정기 이후의 이승만 정권 하에서도 대한노총이나 그 후신인 한국노총에 도전하는 노동운동세력은 전무하다시피 하였다.
이승만 정권 당시 한국노총은 자유당정권의 전위대로서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복수노조 설립에 대한 특별한 법적 제약이 없이도 완전한 독점권을 정권차원에서 부여받고 있었다. 4.19 이후 정권의 보호막이 없어지자 새로운 노동운동의 움직임이 활발하게 전개됐다. 그러나 1961년 5.16 쿠데타는 이러한 움직임을 일거에 일소했다.
5.16 쿠데타 직후 발표한 포고령에서는 모든 노동조합을 해산하였으나, 실제로 해산된 것은 4.19 이후 한국노총에 반기를 들었던 한국노련세력 뿐이었다. 그리고 군사정권은 1963년 노동조합법 개정을 통하여 이러한 상태를 제도화했다. "조직이 기존 노동조합의 정상적인 운영을 방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에 노동조합으로서의 지위를 부정하는 노동조합법 개정을 한 것이다. 그 결과 한국노총은 경쟁조직의 도전 없이 조직의 독점권을 제도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게 됐다.
이런 상태는 1987년 7-8월의 노동자대투쟁이 있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87년 7월 이후의 '노동자대투쟁'은 6월의 '시민' 항쟁으로 인한 국가통제력의 일시적 진공상태 내지 이완에 의해 열려진 공간을 노동자가 놓치지 않고 주체적으로 활용함으로써 가능했다. 87년 노동자대투쟁의 특징은 자발성에 있다. 바꿔 말하면 조직적으로 투쟁을 주도한 세력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국적인 차원에서 폭발적으로 발생한 노동분쟁은 63년 이후 제도적 독점상태에 있던 기존 노동조합과는 다른 새로운 노동운동세력이 본격적으로 태동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에 대한 반응은 그해 가을에 이루어진 노동조합법의 개정으로 나타났다.
87년 가을의 법개정에서는 복수노조 금지 사유를 오히려 확대하여, 종전의 복수노조금지사유, 즉 "조직이 기존노동조합의 정상적인 운영을 방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 이외에 "조직이 기존 노동조합과 조직대상을 같이" 하는 경우까지 복수노조를 금지하였다. 당시 법개정은 정부입법이 아니라 의원입법에 의해 이뤄졌고, 여당인 민정당과 야당인 통일민주당의 개정안에는 이런 내용이 담겨 있지 않았다. 그러나 국회 통과과정에서 이 내용이 전격적으로 삽입되었다.
노동조합의 단결권을 본질적으로 제약하는 중차대한 조항이 어떤 세력에 의해 어떤 경위를 거쳐서 삽입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명확하게 밝혀진 바는 없다. 그러나 87년 노동자대투쟁에서 부각된 새로운 이질적인 노동운동세력을 견제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실제로 복수노조금지제도로 인해 80-90년대를 통하여 다수의 '민주노조' 설립이 좌절되거나 방해를 받았다.
'유보' '유보' '유보'를 거듭해온 복수노조 허용
1996년 김영삼 정권에 의한 노사관계개혁위원회와 그해 겨울의 총파업을 통해 1997년에 개정된 노동법개정에서 복수노조금지제도는 법의 본문에서는 복수노조를 허용하면서도 그 부칙에서 5년 뒤인 2001년 12월 31일까지 그 적용을 유예하는 기형적인 형태로 개정됐다. 앞에서는 복수노조를 허용하면서 뒤에서 금지한 것이다. 그러나 2001년 사업장단위의 복수노조 전면실시를 앞두고 2001년 2월 9일 민주노총이 불참한 가운데 한국노총, 경총, 정부는 노사정위원회에서 다시 5년을 유예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국회는 2001년 3월 28일 노조법을 개정하여 2006년 12월 31일까지 사업장단위에서의 복수노조 허용을 유예했다.
2006년에도 역사는 반복됐다. 2006년 9월 11일 경총 등 사용자단체와 한국노총, 노동부의 합의에 따른 법개정으로 복수노조허용은 2009년 12월 31일까지 다시 3년간 유예됐다. 요컨대 1997년 이후 법의 본문에서는 명목상으로 복수노조를 전면적으로 허용하면서도 부칙에 의해 무려 13년이나 복수노조의 설립이 금지되고 있는 것이다. 2010년 이후 복수노조의 허용이 또다시 유예되지 않는다는 보장은 현재로서는 전혀 없다.
96년 이후의 복수노조 허용 여부를 둘러싼 논란은 과거와는 달리 노조전임자에 대한 급여지급의 금지와 맞물려 있는 것이 특징이다. 사용자측은 복수노조가 허용되면 현재와 같이 노조전임자에 대한 급여지급을 할 수 없다는 입장에서 복수노조허용과 노조전임자에 대한 급여지급 금지를 패키지화하여 협상에 임해여 왔다. 노동조합 역시 이러한 패키지 협상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 왔다.
논리적으로는 전혀 관련성이 없는 두 제도가 연계되어 협상대상이 되어 온 것이다. 그 결과는 두 제도 모두의 유예이다. 결국 96년 이후 복수노조의 허용이 계속적으로 유예되고 있는 이유는 노동조합측과 사용자측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라고 하여도 과언은 아니다.
복수노조 금지제도, 이제는 정치적 이해관계 뛰어넘자
이러한 복수노조금지제도의 역사는 우리나라 노동관계법이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개정되어 왔음을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엄연히 헌법에 노동3권이 보장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3권의 핵심적인 기본권인 단결권을 노골적으로 제약하는 제도가 1963년 이후 40년 이상 아무런 도전도 받지 않고 노사의 암묵적인 승인 하에서 유지되고 있다. 1987년 헌법재판소가 설립된 이후 단 한 번도 복수노조금지제도에 대하여 위헌소송이 제기되지 않은 것은 복수노조금지제도에 관한 한 기존의 노동조합도 반사적인 이익을 누려 온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을 정당화하기에 충분하다.
복수노조를 설립할 수 있는 노동자의 권리는 헌법에서 보장하는 가장 기본적인 노동권이다. 노동자가 자신이 원하는 노동조합을 설립하고 가입할 수 있는 상태가 보장되지 않고서는 민주적인 노동운동이 가능할 수 없다. 작년 노동관계법개정에 대하여 노사 양측의 불만이 적지 않다. 그러나 자유로운 단결선택권을 노동자에게 돌려주는 것, 여기에서부터 노동관계법의 개정 요구가 시작되어야 한다. 가장 기본을 망각하고 도대체 무엇을 요구할 수 있을까. 또 얻어낸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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