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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을 제대로 '보호'하려면...

[일과 희망⑬] 비정규직보호법 운용을 위한 5가지 제안

'외주화·사내용역 문제' 비정규직 노사갈등으로 드러나다

지난 7월 1일부터 비정규직법이 시행되면서 터져 나온 비정규직의 고용과 관련된 노사갈등, 특히 이랜드 계열의 홈에버와 뉴코아의 노사갈등이 지난 일주일 동안 연일 신문의 주요기사를 장식해 왔다. 노사는 각각 정반대의 이유로 "정부가 비정규직법을 도입해 평지풍파를 일으켰다"고 비난하고 있다. (☞ 더 많은 기사를 보시려면…)

이번 홈에버와 뉴코아의 노사갈등은 회사가 직접 고용한 비정규직의 계약해지와 비정규직 수행업무의 외주화 때문에 불거졌다. 사업의 일부 혹은 전부를 외주화한 뒤 용역·도급업체로 하여금 그 사업을 수행하도록 하는 외주화와 용역업체의 노사관계 문제는 이미 다른 기업들에서도 오랫동안 잠재돼 왔으나 대대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었다.

이번 사태를 통해 겉으로 드러난 이 문제는 이미 많은 기업들에서 시행해 왔거나 혹은 비정규직법 시행에 따라 검토하고 있는 방식이다. 하지만 전국적인 노사관계의 관심사가 된 이번 노사분규가 어떤 식으로 해결되느냐에 따라 비정규직법 시행에 다른 기업들의 대응도 크게 달라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비정규직법 대응, 긍정적인 사례도 많다

이번 이랜드 노사분규와 달리 비정규직법 시행을 전후해 기존 비정규직을 이미 다양한 방식으로 정규직화한 기업 사례들도 많이 있다. 언론에는 노사갈등의 사례들만이 많이 보도되고 있지만 현재 정규직화를 준비 중인 곳도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노사가 머리를 맞대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방식에 대해 고민을 해 온 여러 기업들에서는 타협을 통해 한편으로는 기존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고용안정을 보장하고 정규직화에 따른 부담을 줄이는 방식이 나타나고 있다.
▲ ⓒ프레시안

위의 사례 외에도 다른 기업들에서 비록 규모는 작지만 비정규직을 다양한 방식으로 정규직화한 사례들이 많다.

최근 병원업종의 노사는 산별교섭을 통해 올해 임금인상률을 사립대 병원은 5.3%, 국립대는 4.0%, 민간중소병원은 4.3%를 기준으로 하되 임금인상액의 1/3에 해당되는 재원 약 300억 원을 5500여명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나 처우개선을 위해 쓰기로 합의했다. 이런 사례는 같은 대형유통업에서도 비정규직의 외주화 사례와는 뚜렷이 구분되는 정규직화의 해결책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외주화와 간접고용, 비정규직법 도입 취지에 위배된다

이번 비정규직법 도입은 비정규직의 남용방지와 차별금지를 통해 매우 불공평한 노동시장을 보다 공평하게 만들자는 데 있다. 아래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우리의 비정규직 비율은 매우 높은 편이다. 특히 기간제 근로의 경우 OECD국가 가운데에서 스페인을 제외하면 한국이 가장 비율이 높다. 그만큼 비정규직을 남용해 왔다고 할 수 있다.
▲ 시간제 근로는 각 나라별로 노동시간에 비례하여 정규직에 준하는 대우를 받는 근로자들이 많으므로 엄격한 의미에서 모두를 우리가 말하는 비정규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자료: OECD 노동시장통계 Online database에서)ⓒ프레시안

그런데 비정규직의 남용과 차별을 막기 위해 도입된 비정규직법의 시행을 계기로 기업들이 상시업무를 수행해 온 비정규직을 외주화해 용역업체를 통해 간접고용하는 것은 입법취지에 위배된다. 이제까지 비정규직이 수행하던 업무를 용역업체에 외주화할 때 용역업체의 고용과 임금수준 및 근로조건은 더욱 악화되기 쉽기 때문이다.

원청업체는 새로운 계약을 맺을 때 당연히 낮은 가격을 제시하는 용역업체와 계약을 하려 할 것이다. 이럴 경우 앞선 용역업체에 고용됐던 근로자들은 경영상 해고를 당하거나 사표를 낼 수밖에 없게 된다. 입찰에서 선정된 용역업체 근로자의 임금이나 노동조건도 업체가 최저비용으로 입찰에 응해 선정된 만큼 최저임금 수준으로 저하될 가능성이 높다.

사내용역화를 통한 고용, 임금의 후퇴, 차별금지의 회피
▲ 비정규직법의 해법으로 일부 기업이 사용하고 있는 '외주화'는 기존의 직접 고용 비정규직들의 고용, 임금 등 근로조건의 악화를 가져오고 차별금지를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어 노동계가 반발하고 있다. ⓒ프레시안

또 외주화를 추진하는 상당수 기업들은 전문화된 서비스나 업무를 담당하는 대형 용역업체들보다는 비용절감, 손쉬운 고용조정(해고), 거래비용 증가방지를 위해 원청회사와 특수이해를 가진 소규모 용역업체에게 사내 외주화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도 문제다. 이 경우 사내 용역업체들은 원청업체에 대해 처음부터 종속적인 위치에 서게 된다. 원청업체가 주문하는 대로 용역업체의 운영, 임금과 근로조건의 수준을 결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경우 사내 용역업체 사장들의 상당수는 원청 대기업의 관계자(퇴직간부)들이다. 특수관계인이 아닌 사내 용역업체의 경우에도 원청업체와 관계가 긴밀해 원청업체의 요구를 잘 수용할 수 있는 경우에만 용역업체로 뽑힐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들 사내 용역업체들은 원청업체의 이름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업무를 수행하면서 원청업체의 건물과 시설을 이용한다. 마치 직접 고용 근로자들을 고용한 것과 같은 효과를 내면서도 낮은 인건비로 유지될 수 있는 구조다. 사내 용역업체는 형식상으로는 독립적인 형태를 띠고 있으나 실제로는 원청업체가 용역업체의 노동을 지휘하고 감독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 불법파견 논란까지 불러오고 있다.

게다가 원청업체에 종속된 사내용역업체에 고용돼 있는 용역근로자들은 노동조합의 보호로부터도 배제된다. 노조가 결성된 다수의 사내 용역업체들이 원청회사로부터 계약을 해지당하거나 재계약을 못해서 회사가 문을 닫으면서 근로자들로 일자리를 잃고 노조도 해산되곤 하는 현실이 그것을 보여준다. 용역업체 근로자들은 노조의 보호도 받기 어려운 것이다.

외주화의 확산과 '바닥을 향한 경쟁' 악순환 불러올 '이랜드 해법'
▲ 특히 외주화는 용역업체에서 노사갈등이 일어나더라도 형식적인 책임이 용역업체 사용자에게 있어 원청은 편리하다. 하지만 이에 대한 규제 강화와 정규직화 기업에 대한 인센티브 제공을 통한 억제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프레시안

더 큰 문제는 어떤 산업의 유수한 기업들이 이런 식의 외주화를 통해 인건비 감소 전략을 택할 때 같은 산업의 다른 기업들도 가격경쟁을 위해 유사한 길을 택하기 쉽다는 데 있다. 이때 외주화를 통한 용역 근로의 사용은 소위 '바닥을 향한 경쟁'이 되어 용역업체에 근무하는 근로자들에게 거의 모든 부담이 전가될 것이다.

용역업체에서 노사갈등이 생기거나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 형식적인 책임은 용역업체 사용자에게 있으므로 실질적인 의사결정권자인 원청회사 사용자는 그 책임을 전가할 수 있다는 점에서 편리하다. 원청업체가 고용관리, 고용에 따른 각종 부담을 용역업체와 그 근로자들에게 떠넘김으로써 결국은 원청업체는 이익만 취하고 그 부담은 근로자와 사회에 전가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대부분의 외주화에 따른 용역근로는 직접 고용 비정규직 보다 오히려 더욱 열악한 고용형태가 되기 쉽다. 용역업체의 고용은 때로는 형식상 '정규직' 형태를 띨 수 있으나 용역업체의 불안정하고 종속적 계약으로 인해 고용불안, 임금과 근로조건의 하향화라는 점에서 간접 고용 '비정규직'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비정규직법의 시행에 따라 무언가 개선을 기대하던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입장에서는 회사가 고용, 임금과 노동조건의 후퇴를 가져올 용역근로로 바꾸는 데 저항을 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원청업체가 업무의 대부분을 용역업체로 외주화하고 일부를 직접 수행하는 경우 원청업체의 정규직 근로자가 용역업체 근로자와 사실상 같은 일을 나란히 할 수 있다. 이때 원청업체 정규직 근로자는 용역업체 근로자 보다 훨씬 높은 임금과 좋은 근로조건에서 일하더라도 같은 사업체가 아니기 때문에 비교 대상에서 제외되어 법형식상 차별 논란에서 제외된다. 사실상 차별이 존재하면서도 용역업체라는 외형을 끌어들임으로써 차별논란을 피할 수 있게 된다. 물론 모든 외주화가 문제라는 것은 아니다. 기업의 업무내용과 사정에 따라 전문인력활용, 자본비용절감, 고용유연성 확보, 임금격차 활용 등을 위해 외주화를 하는 것이 합리적인 경우도 존재할 수 있다.

사내용역 남용에 대한 규제 강화와 인센티브의 제공을 통한 억제가 필요하다

기업들은 사업상 필요에 따라 용역을 매우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기업들이 비정규직법 시행에 대해 간접 고용을 통해 비정규직의 남용방지와 차별시정을 회피하는 전략을 남용한다면, 정부는 기존 법을 이용하여 간접 고용에 대한 규제를 다음과 같은 네 가지 방식으로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할 것이다. 또한 내년 이후 비정규직법의 적용을 받게 되는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상시업무를 수행해온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유도를 위해 인센티브제의 도입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우선, 사외용역이 아닌 사내용역을 대상으로 해 "형식은 사내용역, 실제는 불법파견"이 아닌지 여부를 꼼꼼하게 조사하고 따져서 '사내용역 형식을 빈 불법파견행위'에 대한 단속과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 정부가 사내하청의 불법성 기준에 혼선을 빚었던 경험을 살려 일관되고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야 할 것이다. 또한 용역업체에서 흔히 경시되기 쉬운 근로기준법, 노동관계조정법 등 노동법의 준수여부도 살펴봐야 한다.

다음으로 사내용역의 경우 원청회사의 사용자 책임성을 강화하는 것이다. 이미 건설업에서는 산재사고나 체불임금이 발생할 때 원청회사나 차상위업체의 책임성을 부과한 제도가 있다. 이처럼 사내용역의 특수성을 반영해 사내용역업체의 고용, 근로자 사용과 관련된 원청회사의 책임성을 강화하는 방안을 마련할 수 있다.

셋째로 원청업체와 사내용역 회사 사이의 거래관계의 주요한 특징인 원청회사의 일방적 결정이나 사내용역 회사의 종속성에 의해 원천적으로 은밀하게 이뤄지는 불공정거래 행위를 보다 철저하게 조사해 처벌을 강화하는 방법도 있다. 미국에서는 기업들의 차별행위에 대해 거액의 징벌적 배상을 하도록 하고 있다. 차별을 없애는 문제에 관한 한 엄격하게 대응하는 미국의 태도를 배워야 할 것이다.

넷째, 간접 고용을 이용해 사실상의 차별금지를 회피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비정규직법의 미비점을 보완해 차별의 비교 대상을 좀 더 확대하는 방안을 마련함으로써 차별금지를 회피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다섯째, 내년부터 비정규직법의 적용을 받게 된 중소기업들에게는 상시업무의 외주화 유혹을 뿌리치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무기계약직화 포함)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인센티브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규제 강화나 처벌을 통해서만 비정규직법의 효과를 달성하기는 어렵다.

대기업들은 비정규직을 여러 형태로 정규직화하는 데 따른 비용을 부담할 여력이 있다고 보기 때문에 인센티브는 중소기업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가령 2-3년간 기존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하는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해당 정규직화된 근로자 수만큼 4대 보험료 가운데서 사용자측 부담액을 경감해 주면서 그 경감액 만큼을 국가가 부담하는 방안이 있을 수 있다. 이런 정규직화 방안은 스페인에서 1997년 4월 협약에서 도입돼 정규직을 100만 이상 늘리는 효과를 본 적이 있다.

비정규법의 결과, 노사 주체의 수용 방식과 정부의 의지에 달렸다

비정규직법은 비록 미흡한 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시장의 양극화와 불공평성을 낳은 비정규직의 남용과 차별 문제를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는 인식 위에서 출발했다. 비정규직법은 노사 주체가 어떻게 수용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노사의 전략과 타협 여부에 따라 노사갈등, 아웃소싱, 일자리 감소의 원인이 될 수도 있고 비정규직의 처우개선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가령 노조가 비정규직법을 계기로 해 기존 비정규직을 모두 기존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식의 요구를 한다면, 사용자들의 비용부담과 반발로 오히려 외주화가 늘어날 수 있다. 그러나 노조가 무기계약직화, 직군분리나 하위직급 신설을 통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대한 타협의사를 밝히면, 비정규직 문제의 노사타협 방식의 해결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앞에서 예로 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사례가 바로 이런 해결가능성을 말해주고 있다.

또한 사용자들도 비정규직의 무기계약직화, 직군분리, 하위직급 신설 등을 통한 정규직화 그리고 차별금지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기존 정규직 노동시장의 문제였고 획일적 인사관리의 토대였던 연공적 임금과 직제의 개혁을 촉진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도 있다. 획일적, 연공적 임금체계와 직제를 직무, 직능, 숙련, 실적 등에 기초한 새로운 직제와 임금체계로 개편함으로써 좀 더 공정하고 효율적인 제도를 구축하는데 박차를 가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는 앞에서 제시한 법의 엄격한 적용, 규제 및 인센티브의 제공을 통해 비정규직법이 원래의 의도대로 비정규직의 남용을 줄이고 차별을 시정함으로써 노동시장에서의 양극화와 불공평성을 개선할 수 있도록 노사 주체들의 행동을 일정한 방향으로 인도할 수 있다.

비정규직의 법을 탓하며 비정규직의 모든 문제를 정부에 떠넘겨서는 현재 불거진 비정규직의 노사갈등이나 향후 비정규직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노사가 비정규직법을 계기로 차별시정과 남용 방지에 합당하도록 사용자에게 돌아올 비용증가를 억제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타협하는 가운데 정부가 다양한 정책을 통해 노사의 타협을 통해 비정규직 문제 개선 움직임을 지원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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