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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가 정말 '과거사 족쇄'를 풀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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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가 정말 '과거사 족쇄'를 풀고 싶다면…

[기자의 눈]어설픈 화해 '쇼'보단 진정성 갖고 검증에 임해야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부동산 의혹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허우적거리고 있는 틈을 노려 한나라당의 또 다른 대권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는 자신의 최대 아킬레스건인 '과거사' 청산 작업에 나섰다.

국민들이 이 전 시장의 재산 형성 과정을 둘러싼 의혹에 신물나 하고 있는 바로 그 때, 박 전 대표는 고(故) 장준하 선생의 부인 김숙희 여사를 만나 머리를 숙이는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혹자는 박 전 대표에 대해 "권력이 옷처럼 몸에 잘 맞는 사람"이라면서 그의 뛰어난 정치적 감각에 대해 평했다던데, 이번에도 정말 절묘한 시점에 성사된 방문이었다.

박 전 대표, 장준하 선생 유족 찾아 손 맞잡았지만...

박 전 대표는 이날 오전 서울 일원동의 김숙희 여사 자택을 찾아 "장준하 선생이 갑자기 돌아가신 후 얼마나 고통스러운 세월을 보내셨느냐. 진작에 찾아 뵙고 인사를 드렸어야 했는데 오지 못했다"고 위로의 말을 전했다.

또 "장준하 선생은 누구보다 애국심이 뜨거웠고, 민주주의의 열정으로 가득한 분이라고 생각한다"며 "돌아가신 아버지와 반대 입장에 있었고, 또 방법도 달랐지만 두 분 모두 개인보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살았던 분이라고 생각한다"고 고인에 대한 예를 표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김 여사는 "다시금 이 나라에 똑같은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 달라. 과거는 과거지만 다시는 우는 사람이 없게 해 달라"고 당부했다. 또 "딸처럼 여길테니 정치를 하다가 하소연할 데가 없으면 언제든 찾아오라"는 말도 덧붙였다.

박 전 대표는 사과의 의미가 담긴 흰색과 빨간색 장미다발을 선물했고, 김 여사는 장 선생의 자서전인 <돌베게>를 선물했다.

따뜻하고 화사한 느낌을 주는 노란색 윗옷을 입은 박 전 대표가 팔순이 넘은 김 여사의 손을 꼭 잡은 보는 이에게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박 전 대표가 과거사와 관련해 사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는 지난달 11일 출마선언 당시 "아버지 시대의 불행한 일로 희생과 고초를 겪으신 분들과 그 가족들에게 송구스럽고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또 박 전 대표 캠프에선 장준하 선생 유족에 이어 유신에 반대하다 의문사를 당한 고 최종길 서울대 법학과 교수 유족, 전태일 열사 유족, 인혁당 희생자 유족 등을 찾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보름전에도 계속되던 '과격발언'은 어찌하고...

하지만 박 전 대표의 이같은 행보를 바라보는 눈길이 마냥 곱지만은 않다. 그의 '진정성'이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박 전 대표는 불과 보름 전인 지난달 28일 한나라당 대선후보 합동토론회에서 "그동안 정권이 '과거사위원회'를 만들어 사회 혼란을 부추겼다고 생각한다"며 "진실을 밝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권이 나서서 이런 작업을 하면 정략이 개입되지 않을 수 없다"고 현 정부의 과거사 청산 작업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또 자신이 이사장을 지냈던 정수장학회(옛 부일장학회) 문제에 대해서도 "나를 흠집내기 위한 정치공세"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박 전 대표는 지난 5월 29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부일장학회 헌납사건은 당시 중앙정보부가 강제 헌납토록 한 것"이라면서 "정수장학회는 (부일장학회의) 헌납주식을 국가에 원상회복해야 한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한 것에 대해 다음날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과거사위 조사결과가) 어거지가 많다"면서 이같은 입장을 밝혔다. 그는 정수장학회의 국가 환원 문제에 대해서도 "정수장학회는 공익법인이기 때문에 이미 사회에 환원된 것이다. 증거나 증인도 다 있다. 이를 또 환원하라고 하는 것에는 어폐가 있다"고 반대했다.

좀더 거슬러 올라가 지난 2월 인혁당 재심 판결에 대해선 훨씬 더 강경한 태도를 보였었다. 박근혜 전 대표는 지난 2월 미국 워싱턴을 방문한 자리에서 인혁당 재심 판결에 대해 "내가 사과하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니라 역사가 평가할 것"이라며 사과 요구를 일축했다. 이어 그는 "친북좌파의 탈을 쓴 사람들에게 잘못이 있다"고 공세를 펼치기 시작했다. 그는 "나도 어머니가 북한의 흉탄에 돌아가신 아픔이 있다"면서 "1.21 사태 때 (북한에서) 내려온 분들이 아버지 이름을 대면서 '대통령 목을 따러 왔다'고 했다"며 좌파세력의 사과가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문제가 되는 것은 과거 발언만이 아니다. 박 전 대표는 정수장학회 관련 의혹을 둘러싼 한나라당의 검증 작업에도 적극 협조하지 않고 있다. 강재섭 대표는 지난 9일 당의 대선후보 검증 작업과 관련해 "검증위가 자료제출을 요구해도 제대로 내지 않고 상대에 대해 자료유출 공방이나 벌이고 있다"며 "검증위가 부동산 거래내역, 소유현황, 계좌문제, (정수)장학회 관련자료 등을 모두 내라고 요구했는데 일부 낸 것도 있고, 대충 낸 것도 있다. 또 빨리 제출하지 않고 실컷 있다가 목록만 갖다주기도 한다"고 불만을 제기했었다.

따라서 어색한 화해의 장면을 연출하는 행보만으로는 박 전 대표의 '과거사 털어내기'가 성공할 수 없다. 어쩌면 유족들에게 두번 죄를 짓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지금 박 전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정략적인 거짓 화해가 아니라 진심어린 사죄와 그에 걸맞는 행동이다. 김숙희 여사도 그에게 정치적 목적에 따른 거짓 사과가 아님을 보여달라고 요구했었다. 이를 위해서는 적어도 본인이 직접 연관된 정수장학회 문제에 대해 박 전 대표는 다른 이전과 다른 태도를 보여야 한다.

이런 변화를 보여주지 않는다면 그가 장준하 선생 유족을 찾아 다짐했던 '민주주의'의 미래상은 박 전 대통령이 구현했던 '한국적 민주주의'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의심해도 박 전 대표는 할말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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