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교섭이 최종 결렬되면서 보건의료노조(위원장 홍명옥)는 간부 파업에 들어가는 등 올해 산별협상이 진통을 겪었지만, 지난 5일 열린 10차 중앙교섭에서 사용자단체가 비정규직 문제 등 핵심 쟁점에 대해 해결의 의지를 내보이면서 7일 오전 협상이 극적 타결을 이뤘다.
비록 올해도 보건의료노조가 간부파업 및 부분파업을 벌여 산별협상 4년차까지 해마다 '파업 후 협상 타결'이라는 공식을 밟기는 했으나, 예년과 달리 노조가 전면파업에 들어가지 않은 상황에서 노사가 자율 교섭을 통해 산별협상을 타결시킴으로써 병원 노사의 산별협상이 안정화 단계로 진입했다는 분석이다.
더욱이 올해 교섭의 막판 진통을 낳았던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해 노사가 합의를 이뤄냄으로써 보건의료노조가 산별노조가 가질 수 있는 긍정적 효과를 선두에서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산별교섭 통한 비정규직 문제 해결 최초의 사례"
보건의료 노사는 6일 오후 2시부터 한양대 의료원에서 열린 11차 산별중앙교섭에서 12시간 동안 이어진 마라톤 협상을 통해 임금과 비정규직 문제라는 막판 쟁점에서의 합의를 이뤘다.
노사는 국립대병원 4%, 민간 중소병원 4.3%, 사립대병원 5.3%의 임금인상을 합의했고, 이 가운데 3분의 1 가량(1.3%~ 1.8%)을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사용하는 데 잠정 합의했다. 정규직의 임금인상분을 비정규직을 위해 사용하기로 한 것.
보건의료노조에 따르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차별시정, 처우개선에 쓰이게 될 정규직 임금인상분 총액은 300억 원 가량이 될 것으로 보인다. 보건의료노조는 "이번 산별합의를 통해 재원을 확보한만큼 이후 현장교섭을 통해 전체 1만1800명의 비정규직 가운데 직접고용 비정규직 5500명 이상의 정규직화 및 간접고용 비정규직에 대한 고용보장과 복지혜택의 확대가 기대된다"고 밝혔다.
노사는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해 또 산별차원에서 '비정규직대책 노사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처우개선 및 고용안정, 단계적 정규직화의 방안 등에 대해 공동 연구를 벌이기로 했다.
이같은 합의가 가능했던 것은 일단 노조의 적극적인 문제 해결의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노조는 정규직의 임금을 내놓아 사용자단체가 빠져나갈 수 없도록 했다. 사용자단체 역시 홈에버 점거농성에 대해 '일단 파업부터 풀면 그 다음에 얘기하겠다'는 태도의 이랜드 그룹과는 달리 자율 교섭을 통한 타결을 위해 애썼다는 점에서 다른 사용자들에 비해 칭찬받을 만하다는 평이다.
특히 이번 합의는 지난 1일부터 시행되고 있는 비정규직법을 둘러싸고 각종 계약해지 및 외주화와 이로 인한 유통 비정규직의 홈에버 월드컵점 장기 점거 등의 갈등이 빚어지고 있는 가운데 이뤄진 것이어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산별노조가 비정규직 문제 해결의 좋은 모범이 됐다는 평가다.
노동부 관계자는 "이번 합의는 산별교섭을 통해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 문제해결을 위해 적극 나서 합의를 이끌어 낸 최초의 사례"라고 칭찬했다. 보건의료노조도 "이 모든 것은 산별노조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평가하며 "또 이번 합의는 곧바로 환자들에게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순기능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온갖 '산별교섭 회의론' 속에 의미있는 합의"
특히 이번 협상 타결은 총파업 없는 협상 타결이라는 점에서도 보건의료 노사에게는 역사적인 합의다. 보건의료노조는 지난 1998년 산별노조로 전환하고 2004년 처음으로 산별교섭을 시작한 이래 해마다 파업 후 협상타결이라는 단계를 밟곤 했었다. (☞ 관련기사 보기 : 보건의료노조가 해마다 파업을 하는 이유는…)
하지만 올해는 중노위의 '조건부 직권중재' 결정 이후 노조는 자율 타결을 위해 총파업보다는 간부 파업 및 부분 파업으로 수위를 낮추었고, 사용자단체도 교섭에 적극적으로 임했다.
지난해 처음으로 산별 5대 협약을 타결시키고 사용자단체 구성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면서 올해는 보건 사용자단체가 산별협상 4년 만에 구성되기도 했다. 노사는 올해 산별협상에서 지난해까지의 성과를 이어 산별중앙노사운영협의회, 의료 노사정위원회의 실질적인 가동도 합의했다.
노조는 "최근 금속노조의 한미 FTA 저지 총파업을 둘러싸고 확산되고 있는 보수언론과 자본의 '산별교섭 회의론'의 공세를 뛰어넘는 의미있는 진전"이라고 자평했다.
전문가들도 "올해 합의는 보건의료 노사의 산별교섭이 안정화 단계에 들어갔음을 보여준다"며 "앞으로 비정규직과 관련된 올해의 합의와 같은, 산별시대에 가능한 실질적인 성과를 쌓아갈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것"이라며 앞으로 산별노조의 역할에 기대를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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