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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법 '역효과' 산별노조로 막았다"

고려대병원 비정규직, 노조 도움으로 한달만에 복직

지난해 11월 통과된 비정규직 관련법으로 곳곳에서 비정규직의 계약해지 등 부작용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지난 1월 계약해지된 고려대병원의 비정규직 노동자 4명이 1개월간 투쟁 끝에 복직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들이 복직되기까지 보건의료노조의 도움이 컸다는 점에서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있어 '산별노조의 힘'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고려대 안암병원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지난 2001년 고려대 안암병원에 입사한 조현아 씨(29)는 임상병리사다. 그는 입사 이후 사실상 자동 계약 갱신을 통해 이 병원 진단검사의학과에서 일을 해 왔다. 하지만 조 씨를 포함해 4명의 임상병리사들은 지난 1월 5일 갑작스럽게 병원으로부터 계약해지 통보를 받았다.

병원이 내세운 이유는 "검사실에 도입되는 자동화 시스템(TLA)으로 인해 유휴인력이 발생했고 공교롭게도 4명의 계약기간이 지난해 12월 31일로 만료됐다"는 것. 고대 안암병원의 진단검사의학과에는 이들을 포함해 총 6명의 비정규직과 1명의 인턴, 1명의 한시적 계약직이 일을 하고 있었다.

병원 측의 설명에 대해 당사자들과 보건의료노조 고려대병원지부는 "유휴인력이 발생했다기보다는 비정규직 관련법 때문으로 보인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김미선 고려대병원지부 지부장은 "정말 유휴인력이었다면 4명의 계약해지 후에도 남은 사람들의 노동강도가 변함이 없어야 한다"며 "하지만 현재 임상병리사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4명이 빠져나간 자리를 채우느라 휴가도 못 쓰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조현아 씨는 "이번에 계약이 해지된 4명은 모두 6~7년 동안 고려대 안암병원에서 일을 해 왔다"며 "갑자기 나가라는 통보를 받았을 때는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이들 4명은 병원 측의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노동조합을 찾아갔다. 조 씨는 "답답하긴 한데 물어볼 곳이 없어 노조를 찾아가게 됐다"고 말했다.

이들은 보건의료노조와 고려대병원지부의 도움으로 고려대병원 앞에서 매일 1인 시위를 벌이고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넣은 끝에 지난 14일 병원 측으로부터 복직 통보를 받을 수 있었다. 보건의료노조로부터 위임을 받은 고려대병원지부가 병원장 면담을 거친 뒤 다음날 바로 복직 약속을 받아낸 것이다. 이는 계약해지 통보 이후 한 달을 갓 넘긴 시점이었다.

병원장 면담에서 노조 측은 "상시적으로 필요한 인력을 갑자기 계약해지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복직을 요구했다. 병원장은 "(비정규법안 시행을 앞두고) 의도적으로 한 건 아니지만 유휴인력이라 어쩔 수 없었다"면서도 "(복직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병원 측은 계약해지의 이유로 내세웠던 '유휴인력 발생' 주장을 접지는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노조의 요구를 수용했다. 이는 이 사건이 계약해지 당사자의 문제제기를 넘어 단위 노조와 조합원 4만 명의 산별노조인 보건의료노조의 본격적인 대응으로 확산된 데에 따른 부담이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

또 일부 언론을 통해 이번 사건이 '비정규직법의 역효과 사례'로 꼽히면서 병원 이미지 손상의 우려 등도 고려된 것으로 풀이됐다. 고려대병원 인사팀의 한 관계자는 <프레시안>과의 전화통화에서 "병원의 이미지 등을 생각해 노조 쪽 요구를 수용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비정규직 생계비 지원하자…모금 한 달도 못 돼 400여 명 참여"
▲ 지난달 갑작스런 계약해지 통보를 받았다가 한 달 여 만에 다시 복직된 고려병원 비정규직 사례가 주목받고 있다. ⓒ보건의료노조

조 씨는 "복직될 수 있었던 데는 정규직 노조인 고려대지부와 산별노조인 보건의료노조의 도움이 컸다"고 말했다.

보건의료노조와 고려대병원지부는 당사자들로부터 상담을 의뢰받은 이후 부당해고 구제신청과 관련된 법적 절차뿐 아니라 정규직 조합원을 대상으로 생계비 지원 모금활동까지 벌였다. 한 달도 채 못 되는 기간 동안 안암·구로·안산에 있는 고려대병원의 1900여 명의 조합원 가운데 400여 명이 매달 총 400여 만 원의 돈을 모아 4명에게 생계비로 지원하겠다고 약정했다.

김미선 지부장은 "이는 비정규직의 투쟁에 대해 일반 정규직 조합원들이 적극 지원할 의지를 보여준 의미 있는 일"이라고 평가했다.

비정규직, 산별노조로 직접 가입…노조 대응 가능

이처럼 이번 일은 산별노조 차원의 대응으로 개별적인 비정규직의 계약해지를 다시 뒤집었다는 점에서 주목 받고 있다.

보건의료노조의 유지현 서울본부장은 "비정규직 관련법 통과 이후 계약이 해지된 사례는 보건의료노조 차원에서는 고려대병원이 처음이었다"면서 "따라서 고려대병원 사례가 비록 인원수는 적었지만 보건의료노조 차원에서 성명도 내고 실질적인 지원을 하는 등 강력하게 대응했다"고 말했다.

이미 병원업계에서는 서울대병원에서 지난해 12월 31일부로 10여 명의 비정규직이 계약해지 통보를 받은 바 있지만, 서울대병원은 보건의료노조의 산하 조직이 아니다.

유 본부장은 "산별노조 차원에서 고려대병원 사태가 원만하게 해결되지 못하면 다른 병원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에 대한 우려가 심각했다"고 덧붙였다.

또 산별노조가 없었다면 이들의 노조 가입 자체가 어려웠다는 점에서도 산별노조의 힘이 컸다는 평가다. 고려대병원지부는 단체협약 상의 문제로 인해 비정규직의 조합원 가입이 불가능하게 돼 있다. 하지만 이들은 산별노조인 보건의료노조에 직접 가입해 노조 조합원이 됐고 덕분에 노조가 이 사건에 대응할 수 있었다.

계약이 해지됐다가 복직된 4명은 오는 3월 2일부터 다시 같은 병원에서 임상병리사로 일하게 된다. 조현아 씨는 "혼자였다면 이렇게 못 했을 것"이라며 "4명이 서로 의지할 수도 있었고 노조에서도 적극적으로 도와준 덕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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