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한강 르네상스의 일환인 한강 주변 초고층 건물 개발 계획은 이명박 서울시정에서부터 시작된 초고층 건물 건설계획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높이는 곧 돈이다?
현재 서울시는 용산역, 잠실, 마포 상암 DMC, 성동 뚝섬 등에 초고층 빌딩을 세우는 계획을 세웠다. 서울시는 이들 건물이 서울의 랜드마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이 같은 계획을 추진하는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이미 서울을 상징하는 랜드마크인 63빌딩이나 남산타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초고층 스카이라인을 더 세우자는 주장은 랜드마크의 실효성이 있을지도 의문일 뿐더러 결국에는 개발주의자들의 잇속을 챙기는 명분 밖에 안 될 것으로 보인다.
장소마케팅 차원에서 접근하는 초고층 건물 건설 합리화 주장이 논리적으로 모순이라고 보는 것은 서울 중구청의 세운상가 재개발 계획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이 계획에 따르면 세운상가가 무너진 자리에는 220층(960m)짜리 한 채와 100층 이상이 5개, 50층 이상까지 포함하면 총 10여 개에 이르는 초고층 빌딩숲이 만들어질 예정이다.
세운상가 재개발만큼은 서울시청보다도 오히려 중구청이 나서서 강북권의 랜드마크를 실현하려는 강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중구청은 시청을 상대로 초고층 빌딩숲 조성에 방해가 되는 규제(90m 이상 건축제한), 심의, 허가절차마저 바꿀 것을 요구하고 있다.
평소 강력한 문화재 보호정책을 지향하는 프랑스를 비롯한 선진국 대다수의 도시시정을 배우자는 시당국의 그간 홍보와는 달리 막상 개발이란 떡고물이 떨어지자 초고층 빌딩들이 병풍마냥 종묘를 둘러싼 섬뜩한 경관이 이들 공무원에게는 대수롭지 않는 듯하다.
세계문화유산(종묘) 경관조차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고 그간 ICOMOS(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로부터 초고층 건물 계획에 대한 주의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관철시키려는 것은 장소마케팅의 효용성보다는 개발이익으로 배불리기 위한 개발욕망의 덩어리가 본질임을 드러낸다.
세운상가 재개발과 함께 대표적인 신개발주의 사업으로 꼽을 수 있는 청계천 복원사업에서도 주변지구의 층고제한을 풀어줄 것을 조건으로 서울시 고위관료와 개발업자 간의 뇌물사건이 일어났었다. 이는 청계천 복원사업에서 유포된 서울시민들에게 '생태', '수변공간', '쾌적성'을 안겨준다는 수사(修辭) 뒤에 숨겨진 개발주의의 욕망 일부를 보여줬다. 곧 높이는 돈이다!
한강 주변 초고층 건물 건설은 스카이라인 때문인가
세계문화유산인 종묘 앞에 초고층 건물이 건설되는 것을 두고서 최막중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한 토론회에서 "서울의 사대문 안 지역은 땅값이 비싸고 대중 교통이 발달해 있어 초고층 빌딩이 지어질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전제하면서도 "그러나 역사문화 자원이 많이 남아있고 남산 등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초고층 건물이 주변 경관과 조화를 이루지 못할 수 있다"면서 사대문 안에서의 초고층 건물 건축은 안 된다는 주장을 했다.(한국경제신문 2007.5.4.)
최 교수의 서울도심내 초고층 건물을 억제하자는 주장은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그 대신에 "스카이라인 계획이 선행되는 것을 조건으로 한강 주변에 초고층 건물 건설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서울시와 기묘한 알리바이가 성립되는 것 같아 반대한다. 한강 르네상스 계획은 스카리라인 구축이라는 명목 하에 기존의 한강에 접한 아파트를 허물고, 초고층 건물을 세우는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런 최 교수의 주장이 서울시 계획을 뒷받침해주고 있는 것이다.
한강 르네상스의 수변도시 위치로 지목된 상암~난지, 용산, 행당동, 잠실 등은 서울시가 애초 내놓았던 초고층 건물을 세울 부지와 포개어진다. 난지에 진행 중인 디지털 미디어 시티(DMC) 계획은 이름도 모순적인 '생태' 대중 골프장을 조성하고서 주변의 농지를 매입해 아파트를 세우려는 계획으로 환경단체로부터 맹비난을 받은 바 있다.
이들 지역에 초고층 건물 개발에다 수변공간까지 더한다면 지가가 더욱 치솟을 것이 자명하다. 과연 이곳에 지가를 감당할 만한 일반시민들이 몇이나 있을까. 뉴타운 사업에서조차도 기존 거주자가 뉴타운에 입주하는 비율은 10%가 채 못 된다. 근자에 건설업자들의 광고를 통해서 유포된 '웰빙', '생태' 등의 단어들은 사회경제적 차별을 가리기 위한 왜곡된 의미의 수사일 뿐이다.
'더 높이, 더 많이'라는 근대화 사고에서 벗어나야
최막중 교수는 <건축>(제50권 4호)에 기고한 논문 '도시계획 차원의 초고층 건축물의 의미'에서 "서울의 중심지역을 비롯하여 우리나라의 지가는 경제활동규모(GDP)와 비교하여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수준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현재 가장 높은 63층 높이의 건물은 우리나라보다 지가 수준이 낮은 동남아나 중국, 대만의 최고높이 건물보다 낮다"면서 초고층 건물이 필요함을 강변했다. 그러나 이러한 GDP의 수치를 높이자거나, 다른 나라보다 건물을 더 높게 지으려는 박정희 정권 시절의 압축적 근대화 사고는 이젠 버려도 되지 않을까.
물론 그 글에서 GDP수치만을 들어 초고층 건물을 세우자고 주장한 것은 아니었다. 최 교수는 토지이용의 효율성, 교통비용, 환경비용, 토지이용의 친환경성 등 환경적으로 건전하고 지속가능한 개발(ESSD)의 입장에서 초고층 건물이 세워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 교수의 "우리나라의 토지이용은 상대적으로 지가가 높은 도시 중심지역에는 저층의 노후 건물들이 산재하여 있는 등 과소이용(underuse)되고 있는 반면, 상대적으로 지가가 낮은 도시 주변의 교외지역은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는 등 과다이용(overuse)되는 비효율적 토지이용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은 필자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도심의 노후화에 대해 현재의 신개발주의적 양상은 그간의 '과소이용'을 '과다이용'으로 바꿈으로써 지가의 과열된 상승과 그로 인해 거주민이 또 다른 낙후지역으로 주변화되는 사회경제적 차별을 포착하지 못한다. 그래서 사태에 대한 외눈박이 진단에 그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들 지역에 세워질 초고층 건물이 대부분 주상복합건물이라는 점 또한 우려된다. 한국에서 주상복합건물은 1980년대 이후 도심의 공동화현상과 직주분리에 따른 교통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정책적으로 장려되었다. 그러나 초고층 주상복합건물은 주민의 사회경제적 특성으로 인하여 주변지역과 '분화된 주거지역'적 성향이 강하게 나타나는 문제점이 드러났다.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초고층 주상복합건물에 사는 거주민들은 자신이 사는 거주공간에 대한 자부심과 소속감, 동질감을 갖고 자신들보다 높은 수준의 이웃과 함께 거주하는 것을 선호하고 있다. 또 경비시스템과 외부인에 대한 출입관리를 위해 돈을 지불할 의사가 높았다. 이는 주상복합건물 내에서의 공동체의식은 형성이 용이한 반면에 지역사회와는 단절의 괴리가 심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토건세력에 대한 비판적 접근이 결여된 언론
서울의 중심인 한강변을 끼고서 초고층 아파트(혹은 주상복합건물)가 줄줄이 세워져 한강을 바라보며 사는 일부 상류층의 모습과 도심도 아닌 부심에서조차 뉴타운 사업으로 인해 더욱 주변화 되는 시민일반의 충돌적인 상황은 남미에서 전형적으로 드러나는 이중도시(dual city) 경관의 징후로 예측하는 것은 필자의 과잉망상일까.
최소한 한강 르네상스에 대한 예찬 일변 보도의 홍수 속에서 과연 그 곳에 왜 초고층 건물이 들어서게 되고, 개발을 통해 누가 실질적인 이익을 얻는지에 대해 차후에 사회학적, 건축학적, 도시계획상의 진단과 대안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에 앞서 건설업자라는 막강한 광고주로 인해 이들 토건세력에 대한 비판을 알면서도 침묵하고 오히려 건설분양광고를 통해서 개발열기를 부추겨 개발연대의 일부분이 돼버린 주류언론의 각성부터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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