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세 사람은 저마다의 '대통합'을 주장했다. 손 전 지사는 '국민 대통합'을, 정 전 의장은 '분열과 배제 없는' 대통합을, 이 전 총리는 '친노를 아우르는 대통합'을 외쳤다. 각자의 위치에서 '대통합'의 깃발이 되겠다는 속내다. 대권 경쟁과 범여권 정계개편 주도권 경쟁이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드러낸 대목이다.
'인공위성' 손학규
손 전 지사는 이날 SBS 라디오 <백지연의 SBS 전망대>에 출연해 "지금 흩어져서 세가 약화된 범여권을 적당히 얼기설기 엮어서 다시 복원해보자는 식으로 보이면 새로운 통합이 되기가 어렵다"며 "나는 범여권 통합이라기보다 국민대통합이라고 얘기한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 대통합'의 내용에 대해 "열린우리당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고 선진화와 한반도의 평화를 준비하는 정치세력을 시민세력이 바탕이 돼서 만들어가자는 뜻"이라고 말했다. 손 전 지사 본인과 자신의 전진기지인 선진평화연대 등 범여권 색깔이 옅은 세력이 대통합의 중심이 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본격적으로 범여권 현역의원들에 대한 견인작업도 시작했다. 열린우리당을 탈당한 김부겸, 조정식, 정봉주, 신학용, 한광원 의원 등이 조만간 그의 특보단에 합류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손 전 지사와 '제3지대 신당'을 공식적으로 매개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민주당과 중도통합신당 쪽에도 손 전 지사에 우호적인 의원들이 적지 않다.
또한 정대철 전 의원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현재 지지율대로 흘러갈 것이다. 현재로선 지지율이 가장 높은 이가 중심이 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손학규 중심의 대통합에 손을 들어줬다. 이해찬 전 총리에 대해선 "큰 선거에서 이겨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며 깎아내린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에 따라 그는 특보단에 합류할 의원들을 파견한 형식으로 통합신당 추진 및 국민경선 룰 문제 등에 개입하면서도 자신은 당분간 독자행보 방침을 지속할 계획이다. 친노, 반노가 뒤엉킨 범여권의 복잡한 정치논리에 빠져들기보다는 현재의 독자 행보가 지지율 관리에 그다지 나쁘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여기에 최근 하락세인 이명박 전 시장의 지지율을 흡수해 자연스럽게 '비노 대통합'의 구심으로 떠오르기를 기대하는 눈치다. 그러나 그의 인공위성 행보를 비판적으로 보는 눈이 적지 않다. 또한 여전히 범여권엔 한나라당에 몸 담았던 그의 전력에 대한 비우호적 정서도 강하다. 이에 따라 범여권 합류시점부터 그의 과거사는 도마에 오를 수밖에 없다.
또한 노 대통령의 비난에 대해 그는 "재밌잖아요"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노 대통령과 친노 진영의 '손학규 비토론'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어 그의 대권가도에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있다.
'盧의 남자' 이해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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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 전 총리는 손 전 지사와 상극의 위치에 있다. 적극적으로 친노 진영과 노무현 대통령을 끌어안아야 한다는 게 그의 대통합론이다. 그가 이날 "기회주의자에게 결코 이 나라를 맡길 수 없다"고 한 대목은 한나라당을 탈당한 손 전 지사를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이 중론이다.
그는 다만 "배제론을 주장하는 분들까지 다 포용해서 통합해야 한다"고 강조해 '친노 배제론' 방침이 완강한 민주당에 대한 압박과 '당 사수' 가능성을 버리지 않은 일부 강경한 친노 진영에 대한 설득 메시지를 동시에 던졌다.
제3지대 신당의 오픈프라이머리 참여 의지도 강하게 밝혔다. 그는 "(범여권) 후보들이 경선을 통해 (단일) 후보를 만들어 내면 능히 이길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문희상 의원은 "누구보다 시대정신을 잘 읽는 사람이기 때문에 절대로 당을 사수해서 열린우리당 후보가 되려는 생각은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전 총리는 그러나 "지역주의에 의지하는 정치구조의 혁파"를 강조함으로써 대통합의 방법론에 관한 한 노 대통령과 인식의 일치를 확인했다. 열린우리당 정세균 지도부가 추진하는 제3지대 신당과의 당대당 통합이 실패하거나, 민주당 등이 열린우리당 탈당파에게 제안한 '중통합'이 성과를 낼 경우 이해찬식 대통합은 설자리를 잃게 된다.
게다가 민주당 등이 '친노 배제론'을 고수할 경우 이 전 총리는 열린우리당에 잔류해 친노진영만의 오픈프라이머리에 참여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노 대통령의 행보도 이 전 총리에게 득이 된다고만 볼 수는 없다. 선관위의 선거법 위반 판정에 대한 청와대의 강경대응 등으로 최근 노 대통령의 지지율은 다시 20% 초반으로 떨어졌다. '노(盧)의 남자'라는 꼬리표를 달고 노 대통령의 행동반경에 귀속되기 쉬운 이 전 총리로선 달갑지 않은 징후다.
특히 친노색을 벗지 못하는 한 DJ와 노 대통령 모두에게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대선주자라는 이 전 총리의 장점도 퇴색될 가능성도 있다.
'샌드위치 압박' 정동영
반면 정 전 의장은 친노 진영에 대해선 여전히 냉담하다. 그는 이날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우리당 사수를 주장하는 분들을 억지로 대통합에 끌어들일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친노 진영은 물론이고 반노 진영에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정 전 의장의 딜레마다. 그가 이날 김근태, 문희상 전 의장과 함께 대통합 촉구 성명을 내고 민주당과 중도통합 신당의 소통합에 대한 방패막이를 자처한 것은 현 국면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한 고육지책의 성격이 짙어 보인다.
이에 따라 그의 이같은 입장 표명에 대한 정동영계 현역 의원들의 선택이 주목된다. 특히 정 전 의장의 지지세력은 중도통합신당, 열린우리당에 남은 비례대표, 우리당 탈당파, 이강래 의원 등 소위 '백의종군파' 등 범여권 제정파에 고루 포진해 있어 이들 간의 네트워크가 긴밀히 가동될 경우 대통합론의 진로가 달라질 수 있다.
또한 대선 불출마 선언으로 '도덕적 권위'를 얻은 김근태 전 의장, 대통합 전도사 역할을 자처하고 활동을 본격화한 문희상 전 의장과 대통합에 의기투합한 점도 정 전 의장에겐 나쁠 게 없다. 민주당 박상천 대표도 최근 '특정인사 배제론'의 수위를 낮춰가고 있어 소위 '문·근·영' 중심의 대통합이 실현될 경우 수혜자는 정 전 의장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러나 김 전 의장의 불출마 선언은 정 전 의장에겐 양날의 칼. 김 전 의장과 함께 지난 3년여 간 열린우리당을 양분해 온 정 전 의장에게는 백의종군에 대한 무언의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정 전 의장이 대통합 흐름의 전면에 서기 어려운 조건이라는 얘기다.
그는 그러나 "(대통합을 위해) 주도적 역할이라기보다는 좀 더 적극적이고 공개적인 역할을 하겠다"며 이번 주 중 박상천 민주당 대표, 손학규 전 지사를 접촉하는 등 정면돌파할 예정이다. 그는 통합신당의 가닥이 잡히는 내달 초께 대선출마 선언을 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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