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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있으니, 마을이 있고, 미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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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있으니, 마을이 있고, 미래가 있다"

<박원순의 희망탐사·20>전북 임실군 치즈마을

작가 김훈이 "고단한 사람들의 마음을 이불처럼 덮어 준다"고 말했던 옥정호를 지나 임실역 방면으로 가다보면 '임실 치즈마을'을 만날 수 있다. 임실역 뒤편에 있는 솟대 모양의 나무문을 지나 100여m 들어서면 느티나무 200여 그루가 길 양 옆에 일렬로 줄을 서서 사람을 반기는 곳이다. 마을을 지켜주는 장승처럼 느티나무가 서 있기에 마을이름도 '느티마을'이었다. 올해 초부터 '치즈마을'로 마을이름이 바뀌었지만 이곳 사람들은 아직도 '느티마을'이 입에 익다.

작위적으로 들릴 수도 있는 이름이지만 사실 치즈마을은 이 마을을 설명하는 가장 좋은 이름이기도 하다. 이 마을은 1967년 국내 최초로 치즈를 만든 '한국치즈의 원조' 고장이기 때문이다. 벨기에 출신인 지정환 신부가 임실성당에 부임한 그 때부터 느티마을은 이미 치즈마을로서 준비를 시작한 것인지도 모른다.
▲ 아직 느티마을의 이름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치즈마을. ⓒ희망제작소

이름이 바뀐 치즈마을의 마을운영위원장이 된 이진하 예가원영농법인 대표, 치즈공장 설립을 준비하고 있는 송기봉 이풀영농조합 대표, 화성마을과 중금마을, 금당마을 주민들로 구성된 치즈마을의 화성마을 이장 이병환씨, 전국 최초 목장형 유가공 공장인 (주)숲골유가공의 김상철 대표이사를 함께 만났다.

치즈마을이 만들어지다

"1963년 임실치즈를 창립한 지정환 신부님(본명 디디에 세스테벤스)과 1970년 임실제일교회 심상봉 목사님, 두 분의 힘이 오늘날의 치즈마을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물론 그 이후 많은 농민들의 땀방울이 결실을 끄집어내기는 했지만, 처음 치즈를 만들어낸다는 착상과 그에 따른 노력이 취해지지 않았다면 이뤄질 수 없었던 일이죠. 처음 신협을 만들었는데 10원을 출자받기도 하고 계란을 돈 대신 받기도 하면서 만들었는데 30년이 지나니 이제 완전히 정착했죠."

치즈를 따로 떼어 설명하기 힘들 만큼 치즈의 대표 고장이 된 임실에서의 첫 이야기 역시 치즈로 시작됐다. 이진하 치즈마을운영위원장은 이 고장 사람들이라면 귀에 못이 박힐 만큼 자주 접할 수 있다는 지정환 신부에 대한 설명에서부터 운을 떼었다.

"공부도 많이 했죠. '바른 먹거리 생산을 위한 바른농사실천농민회'를 조직하기도 했었고, '소비자와 함께 하는 전북살림'이라는 생산·소비자생협을 만들기도 했는데 성공하지는 못했어요. 의정부 풀무원 공동체에 함께 하는 사람들이 모두 지정환 신부와 함께 양을 키웠던 사람들입니다. 이런 정신들이 모여 마을을 만들 수 있었어요."

그들의 이야기는 과거에서부터 시작했지만, 생태 지향의 농업방식으로 주민소득을 톡톡히 올리고 있는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습까지 아우른다.
▲ 임실치즈농협에서 생산하는 임실치즈는 한국치즈의 원조다. ⓒ희망제작소

치즈마을은 화성마을과 중금마을, 금당마을 세 개의 마을을 넘나 드는 여러 조직들로 구성되어 있다. 치즈마을운영위원회에 18농가 35명이 참여하고 있으며 새댁모임에는 30세가 주축이 되어 8명이 참여하고 있다. 여기에 느티마을이라는 옛 지명을 딴 느티쌀 작목반에서 19농가, 예가원영농조합법인에서 6농가가 힘을 보태면서 치즈마을이 완성됐다.

쉰을 넘겨도 '젊은이'라 불리는 시골이지만, 30~40대의 젊은 농가들이 대다수 참여했다. 젊은이들이 많은 데는 심상봉 목사의 노력이 작용했다.

"속된 말로 목사님이 잘 꼬셨어요. 하지만 그게 쉬웠겠습니까. 직접 몸으로 뛰며 사람들을 만나고 설득하는 노력이 작용했어요. 평균학력도 다른 시골마을에 비해서 꽤 높은 편이에요. 특히 여성들은 대학 이상의 수준입니다."

자신의 젊음이나 능력을 제대로 잘 써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그들은 모든 일에 허투루 접근하는 법이 없다.

"우리에게 두 가지 비전이 있습니다. 아이들 교육과 노인복지, 이 두 가지죠. 도시에 비해 고령화가 더욱 가속화되고 있는 우리 지역에서 노인복지는 우리가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 가려고 해요. 실버타운에 몰아넣지 않고 노인들이 고향인 여기에서 우리가 좀더 좋게 해드리겠다는 겁니다. 작은 시작이긴 하지만 우선 점심, 저녁을 마을회관에서 제공하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노인복지는 시작이다. 마을에 있는 21명의 어린아이들을 위해서는 원어민 영어교육을 추진할 계획이란다. 치즈마을은 한국이 아닌 더 나아가 해외시장을 겨냥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 모두 아이들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농민에 대한 가공업체 진입허가 수준 완화돼야

목장형 유가공 공장 (주)숲골유가공은 김상철 대표의 노고와 치즈마을 사람들의 염원으로 탄생했다. 지난 1994년 한국 스위스간 농가교환 방문프로그램을 통해 김상철 씨가 스위스로 1년 연수를 다녀왔다. 스위스에서도 방문자가 임실을 다녀갔는데 임실치즈공장이 생긴 지 30년 동안 그 공장 하나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스위스에서 김상철 씨를 재초청했다. 그는 3개월동안 유가공학교에서 교육을 받게 되었다. 돌아와 만든 것이 '주식회사 숲골 유가공'이다.

"목장형 유가공 공장은 농가가 생산해서 직접 가공하는 형태를 말합니다. 이제는 많이 늘어나 전국에 목장형 유가공 공장이 13곳이나 되요. 하지만 진입장벽은 여전히 높아요. 술도 마찬가지지만 지나치게 대규모 공장형을 요구하고 있거든요. 소자본으로 시작해야 하는 농민들로서는 진입 자체가 어려워요."
▲ 숲골요구르트치즈 운반 냉동차와 '숲골유가공' 공장 ⓒ희망제작소

숲골 유가공 김상철 대표는 농민들이 농산물을 중심으로 한 가공업체를 운영할 수 있도록 규정완화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김천에 김성순 씨라는 분이 있는데 한국 포도의 대가죠. 포도농사가 살려면 농민이 가공을 해야 합니다. 유럽처럼 포도농장에서 바로 포도주로 가공할 수 있어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허가 자체가 안 됐어요. 김성순 씨가 그것 때문에 투쟁을 많이 했고 그 덕에 지금은 그나마 완화된 거죠."

조금이나마 완화된 규정 덕에 치즈마을은 '숲골유가공'에 이어 '이플 유가공'이 또 만들어지고 있다. 숲골유가공은 농가형을 벗어나 규모가 커지면서 지난해 연간매출액이 50억이 되었다. 40여 명이 일을 하고 있으니 일자리 창출에도 일정 역할을 하는 셈이다.

정부지원을 적극 활용해 녹색농촌체험마을을 만들다

2003년 농림부 지정 - 녹색농촌체험마을
2003년 농협중앙회 지정 - 팜스테이 마을
2005년 전라북도 지정 - 팸 투어 마을
2005년 임실군 지정 -치즈 체험마을

치즈마을은 2002년도에 마을의 활성화를 새롭게 꾀하기 위해 농림부에서 주관하는 녹색농촌체험마을 공모에 신청을 했다. 여기서 당당히 2위로 선정된 후 연거푸 팜스테이 마을, 팸투어 마을, 치즈 체험마을에도 지정됐다. 치즈마을이라는 독특함이 작용했지만, 무엇보다 더욱 중요했던 건 그들에겐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여기에 기림초등학교가 있는데 53명 중에 21명이 우리 동네 아이들이에요. 51세 이하의 사람들이 당시 32명이었어요. 32명이 대수냐 하겠지만 솔직히 시골마을에서 젊은이가 많다는 뜻이기도 해요. 환경이 저절로 해주는 게 아니라 사람이 일을 하는 거잖아요. 결국 2위로 지정되었어요. 2억 원을 받아 60평짜리 방문자센터를 짓고 컨설팅은 주식회사 이장으로부터 받았어요. 우리가 못 보던 것을 보게 해주었지만 당시 우리가 좀 더 적극적으로 관여하지 못했던 것은 아쉬운 부분이에요. 2004년에는 친환경농업과 팜스테이에 대해 농협중앙회가 지원해 전북대 김세천 교수로부터 컨설팅을 받았습니다. 지금도 2년째 전북대 소순열 교수로부터 컨설팅을 받고 있는데 이 경비는 농촌공사(구 농업기반공사)가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 컨설팅을 통해 숲골유가공을 기반으로 해서 치즈체험마을을 추진해보자는 결과가 나왔다. 치즈체험 프로그램은 특별한 경험이니까 사람들은 오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낙농업 그 근본에 있는 것이다. 근본부터 다시 접근하니 상황이 호전되기 시작했다. 2006년 들어와 9월까지 1000여 명이 마을을 찾았다. 여름에는 더욱 사람들로 붐벼 펜션 개념으로 5채의 숙소도 만들 계획이다. 소비자 욕구를 채워주려는 시도다.

"방문자가 오면 마을소개를 먼저 한 후 경운기를 타고 숲골 유가공으로 갑니다. 거기서 2시간 동안 치즈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구경하고 실제 만드는 체험을 하게 되요. 다시 내려와 방문자안내소에서 식사를 하는데 치즈돈가스를 제공합니다. 앞으로는 쌀과 연결시켜 라이스치즈를 독자적으로 만들어보려 해요. 다시 낙농체험이라고 해서 초지에서 썰매타기, 송아지에 우유주기, 꼴 뜯어다가 먹이기 등의 체험을 하게 됩니다. 아이들은 특히 송아지와 함께 놀고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해요. 방문비용은 1인당 2만2000원, 1박했을 때 4만2000원입니다. 숙박이 이뤄지면 농가소득이 높아지니까 더욱 많은 체험프로그램을 확충해볼 생각이에요"

하지만 이러한 프로그램은 정부의 지원으로 시작된 것이었다. 스스로 먼저 시작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스스로 기획하고, 스스로 투자해 마을음악회를 열었다. 사람들이 모여 기획하고, 공연을 여니 마을에 대한 주민들의 결합도도 더욱 높아졌다.

"그동안 정부에 매번 달라고만 하는 셈이었어요. 그러다가 2005년에 우리 스스로 마을음악회를 열었습니다. 마을 아이들이 너무 좋아했어요. 농촌 하면 풍물을 떠올리기 쉽지만 기림초등학교에서 예원대학의 도움을 받아 아이들이 스스로 오케스트라를 연주하고 젊은 새댁들이나 나이든 이들도 직접 참여해 함께 음악회를 꾸몄어요."
▲ 임실치즈를 통한 새로운 소득창출에 기여한 공로로 임실군 1호 신지식 농업경영인이 된 이진하 씨의 지정패. ⓒ희망제작소

설명하는 이진하 씨의 입에 웃음이 걸린다. 스스로 기획했던 일이라 그만큼 만족도, 기쁨도 컸다. 2006년 8월에는 작은음악회와 더불어 치즈체험축제를 열었다. 작은 음악회였지만 축제를 만나면서 전국에서 300여 명이 와 전국적 축제가 되었다.

밤에는 느티카페가 어른들을 위해 열리고, 어린이들을 위해서는 영화제가 준비됐다. 낮에는 물총싸움 등 도시에서 경험하지 못하는 다양한 놀이 프로그램을 운영했는데 모두 자체기획이었다. 군청도 일체 간섭을 하지 않았다.

"원래 100명을 모집했는데 300여 명이 대구, 인천, 서울, 경기, 강원에서 몰려들어 1박2일 동안 즐기다 갔어요. 많은 이들이 찾아준 건 좋지만, 결국 우리 스스로 한해를 결산하고 즐기고 싶었던 건데 너무 방문객 위주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그래서 좀 줄여보려고 해요."

전국이 체험프로그램이나 축제를 통해 외부 방문객을 유치하지 못해 안달이 되다시피 한 실정이다. 하지만 치즈마을은 체험프로그램과는 별도의 작은 음악회와 축제를 마을주민이 먼저 즐거울 수 있도록 운영하려 한다. 그들 스스로의 삶을 먼저 즐겁고 재미있게 즐겨야 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 당연하다. 체험 프로그램 등으로 외부방문객을 받는 것 또한 그를 위함이다.

주민복지를 먼저 생각하는 마을,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외부인 방문 프로그램 또한 더욱 즐겁지 않을까 싶다. 스스로 기획하고 주체적으로 만들어가는 치즈마을의 주민운동이 정부재정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모방을 벗어나지 못하는 정부 주도의 살기좋은 마을만들기사업에 좋은 교훈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왼쪽부터 이병환 이장, 송기봉 대표, 이진하 대표. ⓒ희망제작소

면담인사 - 이진하(느티마을 사업담당이사. 예가원영농법인 대표. 농업경영연구소장)
송기봉(좋은샘목장. 이풀영농조합 대표)
이병환(화성마을 이장)
김상철((주)숲골유가공 대표이사)

면담일시 - 2006년 9월 11일

면담장소 - 임실군 임실읍 금성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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