룸메이드의 부당해고 문제와 관련해 노조와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는 S호텔 측이 법원에 제출한 자료의 일부다. 이처럼 "심장부와 같은 기능"을 수행하는 룸메이드들이 모두 외주화(아웃소싱)된다면 어떻게 될까?
외환위기 이전까지 대개 호텔에 직접고용돼 있던 룸메이드들이 지난 1999년부터 대거 외주화되고 있다. 르네상스, 롯데호텔, 그랜드힐튼 호텔, 소피텔 엠버서더 호텔 등 대부분의 호텔들이 룸메이드 업무 자체를 용역 도급 계약으로 전환하고 이에 따라 대개 중년의 여성 노동자인 룸메이드의 직접고용 투쟁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호텔 스스로 "그 책임과 범위의 한계가 거의 무한대"라고 밝히고 있는 룸메이드의 외주화는 해당 노동자들의 임금수준 하락을 가져올 뿐 아니라, 도급·파견의 기준에 관한 논란과 더불어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노동3권 보장 문제까지 현재 가장 첨예한 노동법적 분쟁 및 다툼의 압축판을 보여주고 있다.
논란 1: "외주화 = 임금수준의 최저임금화"
가장 기초적인 논란은 '룸메이드의 업무가 외주화가 가능한 업무인가' 하는 점이다. 노조는 "룸메이드는 '투숙객에게 가장 청결한 숙소를 제공한다'는 호텔 서비스의 가장 핵심에 있는 업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호텔 측은 "룸메이드는 단순업무"라고 맞서고 있다.
호텔 측은 룸메이드의 업무를 주변업무로 구분해 외주화시키고 있고, 이같은 외주화는 곧 저임금과 연결된다.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임금수준은 어느 사업장이건 대개 최저임금을 크게 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용역·도급 계약'이라는 한 단계의 고리가 더 생기면서 기존의 직접고용 노동자가 받던 임금의 일부를 중간의 용역·도급 업체가 이윤으로 가져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호텔 룸메이드도 마찬가지다. 전국여성노조가 지난해 6월 500명의 룸메이드를 대상으로 실시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평균연봉은 1180만 원으로 월 98만 원 수준에 불과했다. 더욱이 지난 3년 간 월평균 임금은 2003년 93만 원, 2004년 95만 원, 2005년 98만 원 수준이었다. 2003년 이후 3년 간 고작 5만 원이 올랐다.
박남희 전국여성노조 위원장은 29일 오후 서울 무교동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열린 '호텔룸메이드 투쟁사례로 본 여성노동의 실태와 대안' 토론회에서 "거의 모든 룸메이드는 용역으로 전환된 지 2년이 되는 시점에서 임금 및 근로조건의 하락을 경험하게 된다"며 "호텔의 논리는 언제나 '룸메이드는 단순 청소업무이니 용역화의 대상이 됐고 임금도 최저임금에 맞춰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만, 연간 1% 수준의 명목임금 인상은 경제성장과 물가상승 등을 감안하면 실질소득의 삭감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B호텔의 한 룸메이드도 "우리 호텔은 다른 곳에 비해 제일 많다고 하는데도 113만 원"이라며 "애들 학원비 정도 보태는 수준이지 이 돈을 주수입원으로 하는 사람들은 도저히 살 수가 없다"고 말했다.
논란 2: "호텔 룸메이드의 외주화는 도급을 가장한 불법파견"
임금 등 노동조건의 하락을 가져 온 룸메이드의 외주화를 둘러싼 논란의 또 다른 한 축은 불법파견 논란이다. 완성차 공장의 사내하청 노동자와 KTX 여승무원들이 자신들의 문제가 "도급을 가장한 파견"이라는 주장을 펴면서 이슈가 된 '불법파견' 논란이 호텔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들은 일단 룸메이드 업무의 용역·도급 계약이 형식적인 것일 뿐 실질적으로는 호텔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위장도급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법률사무소 이안의 김진 변호사도 "최근 분쟁이 있었던 호텔들의 사례를 모두 검토해 본 결과 외주화를 시작하면서 비로소 원청의 관리자 직원이 용역업체를 급조하거나 최소한의 인프라도 갖추지 않은 업체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설사 용역업체의 실체를 인정한다 할지라도 룸메이드에 대한 업무지휘 전달 체계, 출퇴근 및 휴일의 결정권, 교육과 훈련의 담당자 등과 관련해 원청인 호텔에 있어 도급업체가 실질적인 노무 지휘를 행사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김진 변호사는 "그야말로 '이름과 법인격'만 빌린 전형적인 위장근로관계 또는 도급을 가장한 근로자 파견계약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호텔 객실정비 업무의 경우 현행 파견법이 정하고 있는 파견허용 업무에 해당되지 않아, 이 관계가 근로자 파견이 될 경우에는 노동자들의 주장대로 '불법파견'이 된다. 불법파견의 경우, 원청에 직접 고용 의무가 있는지에 대한 법적 논란은 있다. 하지만 2년 넘도록 사용할 경우 파견법에 의해 고용의제가 성립하는 만큼 원청인 호텔에 룸메이드의 직접고용 의무가 있다는 것이 노조의 주장이다.
논란 3: "간접고용 노동자는 법적으로 노동자가 아니다?"
이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해 임금 및 근로조건의 향상 등을 요구하기 시작할 경우 어떤 호텔이든 공통적으로 용역업체 변경 과정에서 노조 조합원 혹은 간부들을 해고한다는 것 또한 문제다. 그랜드힐튼, 르네상스, 롯데호텔, 소피텔 호텔은 모두 용역회사 변경의 방식으로 조합원들을 해고했다.
노동자들은 이를 노조활동을 행위로 한 해고로 부당노동행위에 해당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역시 현행 법으로는 이같은 행위에 대한 규제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더욱이 대개의 경우 회사 측의 강요에 의해 사직서를 본인이 제출하고 새로운 업체에 다시 취업하는 형태로 고용승계가 이뤄지기 때문에 법적 보호도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경우 노동자라면 누구나 보장받아야 하는 노동3권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해법은 어디에?…"법적 보호장치뿐 아니라 정규직의 역할 막대하다"
이같은 실태 개선을 위한 대안은 어디에 있을까? 우선 법적 해법을 찾아볼 수 있다.
은수미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불법파견의 소지가 있더라도 최근 계약관계를 합법적인 도급으로 보이도록 하는 절차들이 굉장히 세련되게 이뤄지고 있는 현실에서 현행 노동법을 통해 규율할 수 있는 여지는 매우 적다"며 "하지만 '하도급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을 활용한 규제를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간접고용 노동자들에 대한 법적 특별보호 방안을 마련하는 방법도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은 연구위원은 "파견의 범위를 확대해 파견법을 통해 규율하자는 의견도 있지만 우리나라 기업의 인사노무관리 특성상 파견법이 확대되면 기존 도급을 파견으로 바꾸기보다는 정규직을 파견으로 바꿀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위험하다"고 덧붙였다.
민주노동당 단병호 의원실의 서종식 보좌관도 "국회에 계류 중인 간접고용 노동자 관련 법률개정안 3개가 하루 빨리 통과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국회에는 민주노동당의 단병호 의원과 열린우리당의 조성래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한 법률 개정안 3개가 계류 중이다. 이들 법안은 사용자 범위의 확대나 부당노동행위 개념의 확대를 통한 간접고용 노동자의 보호방안을 내놓고 있다.
한편 정규직 노조의 역할이 이같은 사태의 해결에 매우 중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박남희 여성노조 위원장은 "여성노조 분회가 결정된 6개 호텔 가운데 한 곳을 제외하고는 다 정규직 노조가 있는 사업장이지만 노조가 호텔과 용역을 합의 혹은 인정했거나 사업주가 다르기 때문에 (정규직 노조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답변만 했다"고 털어놨다.
은 연구위원도 "단체협약 적용 범위의 확대와 임단협 시 간접고용을 규율하는 장치를 마련하는 등 정규직 노조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이같은 문제의 해결은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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