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용역도급노동자 노동실태와 노동기본권 확보를 위한 제도개선 과제' 토론회에서 울산과학대 청소 용역 노동자 김순자 씨는 광주시청 청소 용역 노동자 최경구 씨의 얘기를 듣고 이렇게 말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사례 발표자로 나선 울산과학대, 광주시청 청소용역 노동자들과 롯데호텔 룸메이드, 지하철 청소용역 노동자의 얘기는 놀랍게도 날짜와 장소만 바꿔 들으면 거의 똑같은 상황들이었다. 울산과학대와 광주시청의 사례는 중년 여성 노동자의 알몸시위로 주목받았다.
근로계약상 '사장'과 실질적인 '사장'이 다른 용역 노동자들
"용역제도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광주시청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들어가보니 참 문제가 많더라구요. 잔업특근을 해도 초과수당은 커녕 점심조차 주지 않았어요. 담당공무원의 자가용을 세차해야 하기도 했고, 수시로 날아오는 반말과 욕설을 참으면서 변기를 닦았습니다." (광주시청 청소용역 노동자 최경구 씨)
"너무 힘들어서 불평이라도 하려고 하면 '하기 싫으면 나가라'는 말만 합니다. '더럽다' 싶어 그만두려는 생각을 한두 번 해본 게 아니예요. 그러다가 우리도 노조 하면 좀 나아질까 싶어서 노조에 가입했습니다. 그런데 '노조 탈퇴 안하면 자르겠다'고 협박을 하더니 결국 해고됐습니다." (울산과학대 청소용역 노동자 김순자 씨)
"우리는 10년을 일한 직장에서 하루 아침에 쫓겨났는데 아무도 책임이 없다고 하더라구요. 원래 우리랑 계약했던 회사는 폐업하고 사라졌지, 새 용역회사는 '그 회사의 노동자를 내가 왜 책임져야 하냐'고 하지, 원청인 롯데호텔은 '법적 책임이 없다'는 말만 하지…. 노동부에 찾아가봐도 '여러분을 보호해 줄 법이 없다'는 말만 하더군요." (롯데호텔 룸메이드 윤금옥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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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모두 근로계약상 '사장'과 자신들의 노동력을 제공받는 '사장'이 다른 용역도급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원청과 용역업체 사이의 용역·도급 계약을 통해 사용되는 '간접고용 노동자'라고도 불린다. 위의 세 사람은 모두 노동조합에 가입한 지 짧게는 6개월, 길게는 2년 만에 용역업체와 원청 사이의 계약이 해지되면서 일하던 직장에서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됐다.
'열악한 노동자'의 대명사가 된 용역 노동자
노동계에서 한 동안 '열악한 노동자'들의 대명사는 사내하청 노동자였다. 현대차 공장 내에서 일하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불법파견 시비가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최근 가장 심각한 노동조건에서 일하는 노동자 문제가 간접고용, 특히 용역 노동자로 옮겨가고 있다. 울산과학대, 광주시청 청소 용역 노동자들의 알몸시위는 이런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다.
한국노동연구원 은수미 연구위원은 "최근 노동계의 뜨거운 쟁점이 '용역 노동자' 문제로 바뀌고 있다"면서 "용역 노동자들은 파견 노동자들보다 임금 및 근로조건이 더 열악하다"고 말했다. 은 연구위원은 "대부분 법적으로는 전혀 하자가 없는 적법한 고용 형태라는 점에서 더 큰 문제"라고 말했다.
그 수 역시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날 토론회에서 발제자로 나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남우근 사무국장은 "지난해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 자료를 보면 155만 명을 1차적인 간접고용으로 분류할 수 있다"며 "하지만 도급 회사의 정규직, 계약직의 경우 이 집계에 잡힐 수가 없기 때문에 실제 간접고용의 규모는 이보다 더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남우근 국장은 "임금노동자 열 명 중 한 명, 비정규직 노동자 다섯 명 중 한 명 이상이 간접고용 노동자로 볼 수 있다"고 추정했다.
용역 노동자의 평균임금은 정규직 평균임금 대비 41.2%, 비정규직 평균임금 대비 80.7%에 불과한 93만3000원이다. 남 국장은 "사용사업주가 지급하는 도급비(용역단가, 파견비 등)가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임금을 결정하게 되고 노무공급사업주가 이윤을 남기기 위해 중간착취가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된다"고 이같은 저임금의 배경을 설명했다.
법적으로는 전혀 문제 없는 노조활동 탄압
더 큰 문제는 저임금과 노동조건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노동조합에 가입할 경우 용역업체 변경을 통한 사실상의 '해고'가 수시로 일어나고 있어 노동3권이 전혀 보장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 이들의 노조활동에 대한 이같은 '탄압'은 법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다.
남우근 국장은 "사용사업주가 임금을 실질적으로 결정하고 있지만 근로계약의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단체교섭 요구에 응하는 경우가 없고 사용사업주는 직접 지휘명령권을 행사하고 노조탄압에 앞장서고 있지만 노동법상 사용자 책임은 전혀 부담하지 않고 있다"며 "결국 간접고용 노동자에게 노동3권을 비롯한 법적 보호는 현실적으로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대법원 역시 형식적인 근로계약 관계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실질적인 사용사업주에게 노동관계법상 사용자 책임을 부과하지 않고 있는 것. 남 국장은 "법원이 위법한 근로자공급사업에 대한 판단을 매우 인색하게 하고 있다"며 "회사는 법의 울타리를 피해 노무관리기법을 만들어내고 있는데 법원은 이를 오히려 못따라 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원청의 사용자성 여부는 학계뿐 아니라 노동계와 사용자 사이에 팽팽한 줄다리기 싸움이 되고 있다.
해법은?…법적인 사용자 개념 확대? 산별교섭을 통한 자율적 해결책 모색?
보험설계사, 골프장 경기보조원과 같은 특수고용노동자들과 달리 용역 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고 있지만, 이들이 사실상 전혀 노동법적 보호를 못 받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해법과 관련한 다양한 의견들이 나왔다. 남우근 국장은 "사용자 개념을 확대하는 법개정을 통해 사용사업주의 법적 책임을 강제하는 방법이 간접고용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궁극적인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남 국장은 또 △단체협약의 적용범위를 공간적으로 확대해 사용사업주의 사업장에서 일하는 간접고용 노동자들에게까지 적용하는 방안 △용역 업체 변경시에도 근로기준법상 해고 사유가 없으면 고용승계를 보장하도록 하는 법 개정 등을 제시했다.
반면 은수미 연구위원은 "법개정을 통한 원청의 사용자성 인정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본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은 연구위원은 산별시대로의 전환을 활용하는 것이 해법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산별교섭을 통해 해고자가 같은 업종의 다른 기업으로 재취업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방안과 같이 노사관계를 통한 자율적인 조율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정부 차원에서 건강한 중소기업을 키우는 것도 한 가지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매우 영세한 형태의 용역, 파견 업체가 일정 수준까지 성장할 경우 특정 회사와 도급 계약이 해지되면 회사가 폐업하고 노동자가 거리로 내몰리는 악순환은 막을 수 있다는 것.
법개정으로 간접고용의 문제를 모두 풀기는 어렵다는 데는 우원식 열린우리당 의원실의 김형민 보좌관도 같은 생각이었다. 김 보좌관은 "현대차 불법파견 논란에서도 드러났던 것처럼 법이 있다고 다 풀리는 것은 아니다"며 "오히려 원하청 관계 문제에 대해 노동부와 공정거래위원회가 상시적인 공동조사를 통해 감시·감독하는 것이 당장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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