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천, DJ에 대선전략 '강의'

"조금만 도와달라" 요청에 DJ "…"

민주당 박상천 대표가 29일 오후 김대중 전 대통령을 예방했다. '훈수정치' 비판에도 불구하고 대통합에 대한 메시지를 연일 쏟아내고 있는 DJ와 열린우리당 등으로부터 '통합의 걸림돌'로 지목된 박 대표의 만남인 까닭에 관심을 모았다.
  
  50분가량 진행된 두 사람의 회동에서 발언 양은 '45(박상천) 대 5(DJ)'였다고 배석했던 유종필 대변인이 전했다. 그만큼 다급한 쪽은 박 전 대표임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DJ "단일화 노력만은 포기하지 말라"
  
  유 대변인의 전언에 따르면 회동에서 박 전 대표는 "독일 갔다 온 것 축하한다"는 첫 마디가 끝나기가 무섭게 "열린우리당과의 대통합은 성사도 어렵고 부작용도 많다"며 장시간 민주당의 대선 전략을 쏟아냈다.
  
  박 대표는 "만일 대통합으로 우리당과 민주당이 무분별하게 통합되면 이질 세력이 모였기 때문에 대선공약 채택도 어렵다"면서 "엄밀하게 보면 정상적인 정당으로 보기도 어렵고 대선에서 패배하면 바로 해체되고 말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 대표는 또한 "국정실패 책임자로서 국민들이 열린우리당의 얼굴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오면 열린우리당과 같은 이미지를 준다"며 "국정실패의 책임자 극소수를 제외한 열린우리당 다수는 중도개혁통합에 포함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표는 다만 "중도개혁통합정당을 만들고 우리당 잔류세력이 대선후보를 낼 경우 표가 갈라질 우려가 있다. 그래서 후보 단일화를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지지도가 낮은 후보가 선거 막판에 자진사퇴하거나 후보간 지지도가 비슷하다면 단일화 협상을 추진하겠다는 게 박 대표의 주장의 요지.
  
  장시간에 걸친 박 대표의 설명에도 김 전 대통령은 "박 대표께서 연구를 많이 했군요"라는 말로 넘긴 채 "국민은 중도개혁세력의 대단합을 바라고 있다. 단일정당을 만들거나 그것이 어려우면 연합해서 단일화를 하라는 것"이라고 기존의 메시지를 되풀이 했다.
  
  이에 박 대표가 "김 전 대통령이 조금만 도와주면 극소수의 국정실패 책임자만 제외하고 사실상 대부분을 포용해 한나라당과 맞서겠다"며 직접적인 도움을 호소했음에도 김 전 대통령은 "무슨 일이 있어도 단일후보는 이룬다는 각오로 하길 바란다"고 비껴갔다.
  
  김 전 대통령은 특히 "끝까지 (후보단일화 노력을) 포기하지 말고 가라. 서로 감정이 악화되지 않도록 신경 쓰는 것이 좋겠다"며 통합파와 박 대표 사이의 날선 공방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박 대표가 "김 전 대통령의 뜻은 궁극적으로 후보단일화를 통해 한나라당과 일대일 대결을 하라는 것 아니냐"고 캐묻기까지 했으나, 김 전 대통령은 "후보단일화든 대통합이든 나는 어느 쪽을 지지하거나 반대하지 않는다"고 거리를 뒀다.
  
  또한 박 전 대표가 "대통합에 친노파도 포함되는 것이냐"고 묻자 김 전 대통령은 "민주개혁세력이 다 포함되는 것을 대통합이라고 한다. 누가 들어오고 안 들어오는 것은 알아서 할 일"이라고 말했다.
  
  브리핑 뒤 유종필 대변인은 "후보단일화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DJ의 말에 방점을 두며 "열린우리당 대선주자들이 동교동을 다녀와서 대통합을 주장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 일각에선 김 전 대통령의 잇따른 발언을 계기로 정권재창출을 위한 DJ와 노무현 대통령 사이의 '전략적 제휴론'이 제기되는 등 민주당과 상반된 방향으로 국면을 몰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