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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건희 회장 일가와의 공모' 밝히는 게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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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이제 '이건희 회장 일가와의 공모' 밝히는 게 숙제"

11년 묵은 에버랜드 사건, 클라이막스 향해 간다

"'전환사채 발행에 대한 피고인들과 이건희 회장 등 기존 주주들의 공모 여부가 입증이 안 됐다'는 주장이 있으나, 검찰 측 공소사실에는 이 공모 부분이 담겨져 있지 않아, 피고인들에게는 공모 여부와 관계없이 배임 혐의가 성립된다."

이른바 '에버랜드 편법증여' 의혹 사건에 대해 1심에 이어 29일 열린 2심 선고에서도 허태학, 박노빈 전·현직 경영진들에게 유죄 판결이 내려졌다. 2심에서는 오히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가법)상 배임' 혐의가 적용돼 형량이 강화됐다.(☞에버랜드 사건 항소심 "특경가법 적용 마땅" )

하지만 2심 재판부도 이건희 회장과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 등 기존 주주들과 허태학, 박노빈 경영진들 사이의 '전환사채 발행 공모' 여부에 대해서는 "검찰이 공소사실에 포함시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명확한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 따라서 '공모' 여부를 밝혀내야 할 공은 다시 검찰로 넘어간 셈이다.

특히 당시 에버랜드의 전문경영인에 불과했던 허태학, 박노빈 두 피고인이 삼성그룹 전체의 지배구조를 결정지을 전환사채 발행 과정을 독자적으로 판단해 결정지었다고 보기 힘들어 검찰이 이 숙제를 어떻게 풀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물론 상고가 이뤄진다면 대법원에서 다시 판단이 내려지겠지만 1,2심 결과만 두고 봤을 때, 전환사채의 적정 가격 등에 대한 기술적 판단의 문제는 있겠지만 '위법'이라는 '대세'가 대법원에서 뒤집어질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따라서 이제 쟁점은 전환사채 발행의 위법 여부보다 위법 행위의 배경이 된 '공모' 여부로 넘어가게 된 것이다.

이사회 정족수 미달, 저가 배정, 몰아주기….

2심의 판결로 인해 두 전문경영인이 "위법한 방법으로, 현저히 낮은 가격에 전환사채를 발행해, 재용 씨 등에게 주식을 몰아줘, 지배권을 넘겼다"는 정황이 더욱 분명해졌다.

1996년 에버랜드 이사진은 70여만 주였던 에버랜드 발행주식을 200만 주로, 자본금은 100억 원으로 늘리기로 하고 전환사채(CB)를 발행했다. 이 과정에서 이건회 회장과 그룹 후계 문제로 갈등을 빚던 제일제당을 제외한 나머지 주주들이 전환사채 인수를 포기하는 대신 이 회장의 자녀인 재용 씨 남매가 전환사채를 사들여 최대주주가 됐다. 당시 전환사채 가격은 7700원. 재용 씨 등은 96억 원에 에버랜드의 최대주주가 돼 삼성그룹의 지배권을 획득하게 됐다.

2심 재판부는 그러나 "당시 전환사채 발행을 의결하는 이사회의 정족수가 미달됐기 때문에 이사회의 결정은 모두 무효"라고 못 박았다. 이밖에 "시설자금이 필요했다", "경영상의 판단이었다"는 등의 주장은 모두 일축했다.

논란이 되던 전환사채의 가격에 대해서도 고발인 측의 주장(8만5000원)과는 큰 차이가 있지만, 1996년 삼성물산과 삼성건설이 합병되던 당시 이들 기업이 보유하고 있던 에버랜드 주식의 가치 산정 기준을 적용해 "최소 1만4825원"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최소 금액으로 계산해도 전환사채 가격은 재용 씨 측에 배정된 가격의 2배"라며 "재용 씨 측이 90여억 원의 이득을 봤고, 회사에 같은 금액만큼의 손해를 끼쳤다"고 판결했다.

검찰은 '공모' 의혹 숙제 풀 수 있을까

이제 남은 문제는 기존 주주들의 실권 과정을 밝혀내는 일이다. 이렇게 '싸고 좋은 가격'에 에버랜드의 주식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친다는 것은 합리적인 경제적 판단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1996년 이건희 회장이 중앙일보 전환사채 배정을 포기해 중앙일보 대주주가 됐던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갖고 있던 에버랜드 전환사채를 포기했다. 검찰은 이를 '공모' 정황으로 꼽고 있다.

검찰도 '공모 여부'에 대해 수사를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홍 회장, 이학수 삼성그룹 부회장 등을 불러 조사했고, 삼성그룹 관련 회계법인을 압수수색하기도 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수사는 별로 진전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에버랜드 사건에 대해 법원이 일관되게 '배임' 혐의를 인정하고 있는 마당에 검찰이 계속 '공모' 혐의를 묻어두고 수사를 미루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법원도 검찰에게 "공모 혐의를 공소장에 명확히 해달라"고 수차례 요구했었다. 하지만 검찰은 이 부분에 대해 적극적으로 공소제기를 하지 못한 채 시간만 보냈다.

이로 인해 검찰은 진보진영으로부터 "이건희 회장을 소환하지도 않는 등 수사에 적극적이지 않은 것은 검찰이 재벌, 특히 삼성에 약해서 아니냐"는 비난을 받아야만 했다. 지난 2000년 허태학, 박노빈 씨에 대해 곽노현 방송통신대 교수 등 법학자들이 고발을 한 뒤에도 공소시효를 하루 앞둔 2003년 12월에서야 기소를 했던 검찰이다.

따라서 '항소심 결과를 보자'며 다소 관망적 자세였던 검찰로서도 '공모 여부'에 대한 수사를 무작정 미루고 있을 수만은 없는 상황이 됐다. 다만 문제는 '증거확보'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11년 전에 일어난 사안이기 때문에 검찰이 증거를 확보하기 매우 어려울 것"이라며 "배임 혐의는 어느 정도 정황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있었지만, 증거 자체가 거의 없는 공모 혐의를 밝혀내는 것은 검찰로서는 매우 어려운 숙제"라고 말했다.

삼성그룹에 미치는 영향은

이번 항소심 판결로 인해 또 다시 떠오르는 큰 관심사는 삼성그룹의 지배구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이다. 삼성그룹은 그동안 꾸준히 전환사채 및 신주인수권부사채(BW) 발행 방식으로 재용 씨 등에게 그룹 경영권을 이양해 왔고, 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에버랜드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를 완성했다.

여기서도 관건은 '공모' 여부다. 전문가들은 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 당시 위법한 방법에 의해 '공모'가 이뤄졌음이 밝혀지면, 불공정거래행위로 규정해 시정명령을 내리는 등의 방식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 '배임' 행위로 인해 피해를 입은 에버랜드 주주들이 손해배상 소송 등을 낼 수도 있다. 전환사채 배정을 포기한 기업의 주주들이 소송을 거는 방법도 있다.

현재 소송은 허태학, 박노빈 피고인의 배임 혐의에 대한 형사사건으로 소송의 쟁점은 피고인들의 행위가 회사에 손해를 끼쳤는지를 판단할 뿐, 재용 씨 등이 취득한 전환사채의 정당성에 대해서는 따지지는 않는다.

따라서 대법원에서도 이들의 배임혐의가 유죄로 확정돼 이들이 이사회에서 내린 전환사채 발행 결정 자체가 무효화 되더라도, 재용 씨의 전환사채 취득 자체를 무효화 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소송이 필요하다. 그리고 소송의 주체는 전환사채 발행 과정에서 피해를 입은 주주들이다.

다만 당시 에버랜드는 비상장 회사로 기업 소유구조가 대부분 '친(親) 이건희 체제'로 돼 있었음을 감안할 때 실제 이와 같은 소송이 일어날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허 씨 등의 유죄가 확정되도 재용 씨 측은 '도덕적 비난'을 받을 수는 있어도 실제 그룹 지배구조에는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11년 된 '에버랜드' 사건. 클라이막스 향해 '성큼'

그리고 이미 '도덕적 비난'은 오랜 기간 동안 받아왔다. 이건희 회장 측은 지난해 2월 "에버랜드 전환사채 문제, X-파일 문제, 불법정치자금 문제 등으로 국민들에게 걱정을 끼쳐드린 것에 대해 사과한다"며 8000억 원의 사회기부를 약속했었다.(☞ "에버랜드CB 증여로 얻은 부당이익 환원하겠다") 그만큼 이 문제가 이 회장 측으로서는 민감한 문제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1996년 발생해 2000년 고발이 이뤄지고, 2003년 기소된 뒤, 2005년 1심 판결, 2007년 2심 판결이 내려지기까지 무려 11년이 걸린 이른바 '에버랜드 편법증여 사건.' 아직 얼마가 더 걸릴지 모르지만 이날 항소심 판결로 이 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와 대법원의 판결이라는 클라이막스를 향해 한 걸음 성큼 다가가게 된 것만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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