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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일수록, 작은 곳일수록 필요한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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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일수록, 작은 곳일수록 필요한 도서관

<박원순의 희망탐사·15>광양 '농부네 텃밭도서관'

도서관명 : '농부네 텃밭도서관'
설립 : 1981년
위치 : 전남 광양시 진상면 청암리
보유 장서 : 1만7000여 권
주요 독자 : 마을 어르신들과 아이들
도서관장 : 농사꾼이자 <오지게 사는 촌놈>이라는 책 한 권을 낸 글쟁이이며 "책 몇 권 모타 놓고 아그들 꼬시 갖고 골목대장 험서 버틴" 서재환 씨.


이상이 '농부네 텃밭도서관'의 단출한 이력이다. 자신의 집에 도서관을 차린 서재환 씨의 '농부네 텃밭도서관'은 규모나 보유 장서 수, 그리고 지명도에서 순천의 기적의 도서관에 견줄 바가 못 된다. 하지만 한 개인이 27년 동안 발품 팔아가며 이만한 도서관을 시골마을에 꾸렸다는 사실을 접하고 나면 도서관을 단지 규모나 보유 장서 수로 논할 수는 없다는 걸 깨닫는다. '농부네 텃밭도서관'은 척박한 농촌 마을에 작은 도서관을 꾸린 한 농부의 진득한 삶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래서 더 소중한 지도 모르겠다.
▲ 도서관으로 가는 길에 걸려있는 간판. ⓒ희망제작소

작은 기적의 도서관을 일구다
-읽어줄 학생이라도 있으면 기쁘다


농사꾼 맹그는 순천 농림고등전문학교 원예과를 5년 동안 대충 댕기고, 국방부서 운영하는 1005일간의 무전여행 코스를 폴꿈치 깨끼 감서도 큰 일 안내고 끝내고는 집이 와 갖고 어먼 디 안 채리 보고 뽀딱지게 한자리에 붙어서 땅 파고 엎지 있음.

한문 갤춘다고 서당 맹글아 놓고 10년 버투고, 촌에서 신문 쪼가리도 맹글아 보고, 책 몇 권 모타 놓고 아그들 꼬시 갖고 골목대장 험서 23년이나 버탔그마!

촌놈도 배지 내밀고 사는 꼬라지를 도시사람들헌티 배기주고 싶어서 된 일 험서도 죽겄다 소리 안 허고 '좋다! 좋다!' 험서 상께 넘들 보기에는 사이비로 배기는 농사꾼!

-서재환 저, <오지게 사는 촌놈> 지은이 소개말에서

서재환 씨의 저서 <오지게 사는 촌놈>에 실려 있는 단출하지만 개미지는(맛나는) 서재환 씨의 이력이다. 그 자신의 말처럼 서재환 씨는 당시로서는 이 지역의 명문인 순천농업전문학교를 나와 군대에 다녀온 뒤부터 계속 한 마을에 뿌리 내리고 살고 있다. 다들 농촌을 떠나 도시로 나가는 상황에서 그는 진득하게 농촌에 터를 잡았다.

다른 사람들처럼 농촌을 떠나거나 공무원이 되거나 직장생활을 하지 않고 농촌에 남은 이유를 물었더니 "못나 가지고 그냥 시골에 남았다"고만 담담하게 말한다. 그가 농촌에 남은 이유가 못내 궁금했는데 그 이유를 마침 그의 책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래도 배운 공부가 농사 짓는 공부였고 군대가기 전에 따불빽 메고 테끼 갖고 가서 쬐끔 살아 본 서울이 말로만 듣고 기리던 무지개색이 아니라 완전히 똥색이고 깨굴창인디 돈 없고 실력도 없는 촌놈이 버투고 사는 거는 그만 두고라도 숨도 못 쉴 정도로 까깝증이 생기고 촌놈 껍떼기를 벳길 자신이 없는디 어찌 그 속에서 전딜 수가 있어야제? 기냥 하루 세 끼니 피죽도 못 묵고 뱃까죽이 등까죽에 붙을라고 허고, 건석들하고 밤낮없이 부대끼고 살더라도 숨이나 맘 놓고 쉬고 허고자푼 일이나 신간 편허게 험서 건석들허고 살 비비고 살고 잡은, 참말로 타고난 촌놈 체질인디…."

타고난 촌놈 체질이라고 말하지만 그는 타고난 촌놈이면서 '오지게 사는 촌놈'이었던 모양이다. 군 제대 후 그는 광양 진상면 진상중고교 앞에서 작은 마을문고를 시작했다가 어느덧 자신이 태어나 대대로 살아 온 집에 도서관을 차렸다. 당시에는 새마을문고가 유행했는데 집에 있던 책을 모아보니 몇 백 권 정도가 되었다. 그것으로 작은 도서관을 차렸지만 찾아드는 이들이 없었다. 결국 경운기에 책을 싣고 다니면서 동네 사람들에게 책을 빌려주었다. 이동도서관이 생기면서 이 동네, 저 동네 다니면서 마을 아이들에게 책을 빌려줄 수 있게 되었고 도서관에 직접 찾아드는 아이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 농부네 텃밭도서관 내부. ⓒ희망제작소

몇 백 권 되던 책은 세월이 흘러가면서 1만7000여 권으로 늘어났다. 서재환 씨는 "세월이 물어다 주었다"고만 말하지만 그 책이 모이기까지는 서재환 씨의 정성어린 발품과 열정이 있었다.

서울만 가면 선배들, 출판사 아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책 보따리를 짊어지고 내려왔고 '농어촌 책보내기 운동' 등을 통해 들어오는 책은 고맙게 받았다. 또 바구리봉(공식지명으로는 억불봉이라고 한다)이라는 이름의 마을소식지를 내서 여기저기 돌려보도록 했다. 그것이 알려지면서 주변에서 조금씩 지원하는 사람도 생겼다. 이런 서재환 씨의 열정을 바탕으로, 작은 기적의 도서관은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도서관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지만 서재환 씨는 걱정거리가 하나 생겼다고 한다. 200여 명 하던 진상초등학교 아이들이 줄어들면서 책을 볼 사람들이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읽어줄 사람이 있으면 기쁘다고 말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외지에서 찾아드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것이다. 평생에 걸쳐 모아놓은 책을, 평생에 걸쳐 꾸미고 다지고 만들어 온 도서관에 발길이 끊이지 않고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다는 것. 어쩌면 그것이 그의 즐거움인지 모르겠다.

▲ 서재환 관장이 사투리로 쓴 <오지게 사는 촌놈> 안내판
ⓒ희망제작소

사투리로도 먹고 산다
-아주 새로운 고향의 자산

2003년 그는 책 한 권을 냈다. 전라도닷컴에 연재하던 글을 모아놓은 <오지게 사는 촌놈>이란 책이다. 농사꾼으로서의 생활 주변의 이야기와 사진 등을 묶은 이 책의 특색은 책 전체가 사투리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표준말에 밀려 천시당했던 우리말의 중요한 자산인 '사투리'의 재발견'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 책은 광주에서 출간해 3쇄까지 간 보기 드문 책이기도 하다.

서재환 씨는 책 서문에 이 책을 쓰게 된 동기와 함께 책을 내게 된 목적을 에둘러서 이렇게 얘기한다.

"이참에 이런 거라도 맹글아 노먼 요새는 촌말도 누가 잘 안 쓴께 다 잊히져 뿔고 있는디, '아! 이 동네 사람들이 이런 말을 씨고 살았구마!'허고 혹간에 개득이라도 해 주먼 다행이겄그마!" (※개득하다 : 깨닫다, 문득 생각하다)

사투리에 대한 그의 애정은 남다르다. 그는 말에서 지역성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을 안타까워한다. 언론 매체가 모두 표준말을 쓰고, 방송에 나오는 사투리도 그것이 전라도 사투리인지, 경상도 사투리인지 모를 때가 많다. 사투리가 점점 사라지는 현실을 안타까워만 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그는 '기록'에 눈을 돌렸다.

그의 말에 따르면 광양 사투리는 전라도와 경상도 사투리가 섞여 아주 특별한 사투리가 되었다고 한다. 그는 그 특이한 사투리를 정리해두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고, 마을 노인들을 찾아다니며 그 사투리를 채록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5000여 단어를 모았다. 국어학자도 아닌 이가 이만한 단어를 모았다는 것은 사투리에 대한 남다른 애착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사투리 채록 작업은 아직 미완성이다. 책 한 권 정도 낼 분량은 모였지만 그는 "촌놈이 계속 책을 낼 수는 없다"고 말한다. 자료집으로 만들어 두었다가 언제가 다시 책을 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사투리에 대한 애착은 사투리가 사라지고 있다는 데 기인한다. 서울말 중심으로만 모든 게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사투리는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농촌의 현실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그는 농촌 젊은이들이 모두 대도시로 빠져나가고 있는 현실이, 또 그로 인해 농촌에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던 정부 정책이 안타깝다. 드는 사람은 없고, 나는 사람만 있는 농촌의 현실이 그는 못내 아쉽다.

그는 농사꾼이자 글쟁이이기도 하지만 방송인이기도 하다. 여수MBC '전라일품'이란 코너에 패널로 나가 특유의 구성진 사투리로 시청자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또 그는 인터넷 다음에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하며 마을을 넘어 전 국민과 자신의 삶과 경험, 그리고 '농부네 텃밭도서관'에서 생긴 소소한 일상을 공유한다.

남의 머슴 되기 위해 안달하는 사람들
-이렇게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


블로그나 카페에 사투리로 글을 쓰고, 영상자료를 첨부하니까 많은 이들이 즐겨 찾게 되었다. 그렇게 알려져서인지 '농부네 텃밭도서관'에는 대도시에서, 심지어는 미국에서도 사람들이 찾아온다. 그런데 서재환 씨는 '농부네 텃밭도서관'에 찾아오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이 추억을 먹기 위해서 온다는 사실을 깨닫는다고 한다. 지금은 도시에 살지만 어렸을 적 시골에서 하던 놀이를 하며, 고즈넉한 풍경을 바라보며 그들은 추억에 잠긴다. 아이들은 아이들 나름대로 전통놀이를 즐기기도 하고 동물들과 즐거운 한때를 보내기도 한다.

그는 "촌놈이 도시 놈하고 경쟁하려면 촌놈 식으로 붙어야 하고 미국 놈들하고 이기려면 한국식으로 해야 유리하지 않는가. 기왕 사회생활 하는 거고 100% 촌놈 식으로 접근한다. 돈이나 사회 환경은 도시사람이 유리한데 전통적인 것은 내가 유리하다"고 말한다.
▲ 행복한 모습의 서재환 관장 부부. ⓒ희망제작소

이러한 생각으로 꾸린 '농부네 텃밭도서관'은 서재환 씨 말대로 '사랑채'다. 굴렁쇠도 하고, 널뛰기도 하고, 닭 한 마리 잡아 정겨운 밥상 차려놓고 둘러앉아 함께 이야기꽃을 피우는 사랑채다.

그곳에서 누군가는 추억에 잠길 것이고, 누군가는 삶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보게 될 것이다. 일상에 지쳐가는 사람들에게 추억과 삶에 대한 새로운 시각은 무언지 모를 생각거리를 안겨주게 마련이다. 서재환 씨의 다음과 같은 말은 또 다른 생각거리를 안겨준다.

서재환 씨는 자신의 아이들에게 "제발 커서 남의 머슴노릇은 하지 말라"고 얘기한다고 한다. 그는 사람들이 사는 모양을 "기껏 공부하여 남의 머슴이 되기 위하여 사람들은 그렇게 안달을 부린다"고 말한다. "사실 공무원 되고 회사원 되면 주인 위해 죽어라고 일하는 머슴이 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창조적인 리더가 되라는 의미에서 강조하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

추억과 삶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함께 나는 서재환 씨와 그가 꾸린 '농부네 텃밭도서관'을 보면서 지역에 자생하는 문화의 생명성과 올곧게 지역 문화를 꾸려나가는 사람들도 보게 된다. 그리고 침체된 농촌지역 문화의 새로운 방향과 함께 또 다른 희망까지도 말이다.
덧붙이는 글
'농부네 텃밭 도서관'을 다녀온 지 1년이 된 요즈음, 서재환 씨의 도서관에 일이 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도서관 바로 옆 지근거리에 폐타이어 소각로를 만드는 공장이 생긴다는 소식이었다. 이를 두고 서재환 씨와 마을 주민들은 광양시에 탄원서를 내고 공장 건립을 막고자 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 광양시 입장은 법적인 문제가 전혀 없다며 공장 건립을 계속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라고 한다. 그 경과가 어찌될지는 조금 더 지켜보아야겠지만 한 농촌마을과 지역에 단단히 뿌리박고 자생해 온, 오랜 세월을 버텨 온 문화공간이 소각로로 위기를 맞고 있다는 현실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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