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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계 불황, 하나의 과정으로 생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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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계 불황, 하나의 과정으로 생각하라

[오동진의 영화갤러리]

계속해서 속으로 하품을 참고 있던 터였다. 아, 이제는 정말 늙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런 기자회견은 정말 지겨워. 맨날 같은 얘기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등등 판에 박힌 인사들. 이제 며칠 후면 모두들 똑같은 내용, 똑같은 사진을 대문짝만하게 실을 것이다. 홍콩영화 <상성> 인터뷰. 양조위를 만나다, 등등의 제목으로. 물론 양조위는 매력적이다. 그것도 너무너무. 어떤 누가 저 살인미소를 짓는 남자를 거부할 수 있겠는가. 양조위와 함께 만난 유위강과 맥조휘도 특별한 인물들이다. 모두들 홍콩영화를 이끌고 있는 파워맨들이다. 이들이 <무간도> 시리즈에 이어 다시 한번 힘을 합쳐 만든 영화 <상성>도 아주 매력적인 영화다,라고 말하면 그건 약간 오버하는 것이 되겠지만 어쨌든 선악의 두 얼굴을 가진 남자의 이야기라는 설정 만큼은 구미가 당기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 좋은 놈, 나쁜 놈 두 얼굴 연기를 양조위가 한다는 데야 어찌 관심을 갖지 않겠는가.
상성 ⓒ프레시안무비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상성>은 영화의 첫 장면이 가장 인상적인 작품이다. 홍콩을 가 본 사람들, 혹은 아직 가보지 않은 사람들조차 홍콩의 밤을 유영하듯 훑는 유위강의 카메라는 이 영화를 약간은 몽환적으로 느끼게 만든다. 맞다. 홍콩영화는 기본적으로 대개가 다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그 비현실성의 현실성이 사람을 늘 기묘하게 취하도록 만든다. 저 밤하늘 밑에는 무엇이 숨어 있을까. 허덕거리는 욕망, 신음하는 관계, 다가서지 못하는 외로움 등등 저 밤하늘 밑에는 온갖 불행이, 그러나 적당히 퇴폐적이고, 그래서 더욱더 마력적인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상성>은 아마도 그런 얘기를 담고 있는 작품일 것이고 그래서 이 엄혹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시절에 웬만한 자기값을 가지고 시장에서 살아남을 것이다. 뭐 그것도 괜찮은 일이다. 어쨌든 영화적 다양성이 좋아지는 거니까. 극장가에 할리우드 영화만이 있는 것이 아닐테니까. 그렇게 이런 생각 저런 생각 하고 있는 터에 갑자기 양조위가 정신이 번쩍 드는 얘기를 했다. 양조위란 사람, 워낙 얘기를 조용조용, 때로는 알 수 없는 웅얼거림으로(그래봐야 중국어라서 나에겐 마찬가지지만), 때로는 의도적으로 질문의 핵심을 피할 요량으로 아주 엉뚱한 얘기를 태연자약하게 하는 사람이지만 (그럴 때도 그는 슬쩍 그 살인미소를 짓는데, 이번에도 그는 별도의 인터뷰를 하는 자리에서 통역이 열심히 말을 옮기는 동안 나를 바라보며 그 웃음을 슬쩍 보냈다. 그런 미소를 받으면 모든 것, 모든 일이 용서가 된다.) 이때만큼은 무슨 생각때문이었는지 결연한 목소리로 이런 얘기를 했다. "(한국영화가 지금 그런 것처럼) 홍콩영화가 한때 위기였던 것은 하나의 과정이었다. 우리는 한동안 누아르만 만들었다. 그러다가 경쟁력이 무너졌다. 그래서 아시아나 유럽, 미국에 맞는 내용들이 개발돼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사람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먹고살기 위해 스탭들, 감독들, 배우들이 다른 시장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모든 것이 일종의 시너지로 작용한다. 영화산업이 흥하고 내려 앉는 것, 그 모든 것은 하나의 과정이다." 기자회견이 끝나고 몇몇 후배들이 기자회견이 제목을 뽑을 만한 내용이 없다며(정확한 내용은 기자용어로, 일본어 잔재이긴 한데, 야마가 없다는 표현을 했다), 양조위는 늘 저런 식이냐며 툴툴거렸다. 내용이 없다니 무슨 소리를. 아주 훌륭한 얘기를 했구만. 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먹지 않으면 약이 되지 않는 법이다. 양조위와 <상성>은 우리에게 좋은 약이 될 수 있을 터이다. (*이 글은 영화주간지 무비위크 278호에 실린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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