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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집에 못 들어간' 국가보안법, 되살아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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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집에 못 들어간' 국가보안법, 되살아나나

국보법폐지연대 "盧, 국보법 박물관에 보낸다더니…"

칼집에 들어갈 뻔하다 다시 나온 '국가보안법'의 칼날이 되살아나고 있다. '민통선' 풍경과 미군문제를 주로 취재하던 사진작가가 최근 국보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는가 하면, 10년 만에 '사회과학 서점'이 경찰에 압수수색을 당했다.

2003년말 1000여 명이 '국보법 철폐' 단식을 하면서도 보수세력 저항의 벽을 넘지 못한 진보 진영에서는 최근 이와 같은 추세를 주시하며 전열을 재정비하고 있다. 17일 오전 서울 종로5가 기독교회관에서는 '국가보안법 폐지 국민연대'의 주최로 '표현의 자유 가로막는 국가보안법 남용 실태 보고회'가 열렸다.

'김승연'에 외면당한 평화 사진 저널리스트
▲ 국가보안법 남용 실태 보고회 옆에 전시된 이시우 씨의 사진들. 경찰이 압수해간 필름의 절반 가량이 훼손된 것으로 알려져 이 씨 측에서는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준비 중이다. ⓒ프레시안

지난 4월 19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검거돼 구속된 사진작가 이시우 씨. 그가 펴낸 사진집 <민통선 평화기행>, <비무장지대에서의 사색>, <끝나지 않은 전쟁, 대인지뢰> 등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분단현실과 대인지뢰, 미군문제에 천착해 온 저널리스트였다. 그런 그에게 씌워진 혐의는 '미군기지 등을 사진 촬영해 외부에 유출했다'는 것이다.(☞관련 기고문 보기: "꿈꾸는 자 잡혀간다. 이 땅에서는", <민통선 평화기행> 서평보기: '귀순자 대환영'에서 '우리는 한 형제'로)

이 씨는 서울 옥인동 대공분실에서 조사를 받은 뒤 구속영장이 발부돼 남대문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됐다. 공교롭게도 남대문경찰서는 지난 달 말부터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보복 폭행' 사건으로 수십 명의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던 곳.

이 씨의 아내 김은옥 씨는 "중학생 아들에게 철창 안에 갖힌 아버지를 보게 할 수 없어 제3의 장소에서 면회하게 해달라고 남대문경찰서장에게 애원도 하고 항의도 하며 난리를 쳤는데, 그 앞에 대기하고 있던 수십 명의 기자들이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며 "<연합뉴스>가 유일하게 취재를 해갔지만 결국 한 줄도 보도되지 않았다"고 언론에 강한 불신을 나타냈다. 이 씨의 구속사실을 전한 중앙일간지는 <한겨레>와 <조선일보> 뿐이다.

이 씨는 지난 8일 검찰에 송치돼 서울 구치소로 이감된 상태로, "국가보안법을 끌어안고 함께 죽겠다"며 현재 29일 째 단식을 진행 중이다.

이 씨가 활동하는 인터넷매체 <통일뉴스>의 김치관 기자는 "유엔사, 한미연합사, 국방부 등으로부터 공식 취재기자로 초청돼 현장 취재를 수행했으며, 여러 차례 특종기사를 보도한 바 있으나 공안 당국은 이를 문제 삼지 않았었다"며 "이제 와서 이 씨가 구속된 것은 언론의 자유에 재갈을 물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이시우 씨 <전태일 통신> 보기: 26회- 기억의 흔적 속에 우뚝 선 강철 32회- "북방한계선은 없다")

10년 만에 몰아친 '사회과학서점 털기'
▲ 경찰이 '미르북'을 압수수색하며 172권의 책을 '이적 표현물'로 분류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책은 이제 유명해져 대형서점에서도 판매되고 있는 책들이다. ⓒ프레시안

주로 인문사회과학 서적을 판매하는 인터넷 헌책방 '미르북'이 압수수색당한 것도 진보진영에서는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인문사회과학 서점이 압수수색을 당한 것은 1997년 YS정권 말기 이후 10년 만이다.

지난 3일 경찰은 미르북 대표 김명수 씨를 국가보안법 제7조 제1항과 제5항(이적 표현물 취득·소지·판매) 위반 혐의로 체포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김 씨는 그러나 지난 15일 법원의 구속적부심에서 증거인멸 및 도주의 위험이 없다는 이유로 석방됐다.

김 씨는 일단 석방됐지만, 진보진영에서는 "경찰이 이번 사건에서 보여준 태도는 80년대로 회귀한 듯 하다"는 반응이다.

김 씨가 구속된 가장 표면적인 이유는 <꽃 파는 처녀>, <민중의 바다>(원제 <피바다>) 등 북한 체제를 찬양·고무하고 사회주의 혁명 사상을 선전하는 북한 책을 판매했다는 혐의다.

하지만 더 큰 충격은 미르북에서 판매하는 헌 책 중 경찰이 <공산당 선언>, <국가와 혁명>, <자본론>,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 <해방전후사의 인식>, <철학에세이>, <러시아 혁명사> 등 172권의 인문사회과학 서적을 이적표현물로 분류했다는 것이다. 특히 경찰은 지난 2003년 10월~2007년 4월 사이에 미르북에서 이와 같은 책을 구입한 사람 60명의 인적사항을 확보해 처벌하는 것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인문사회과학출판인협의회 김태훈 씨는 "경찰이 이번 사건에서 '이적 표현물'이라고 문제 삼은 책들은 대부분 과거 군사정권 때 이른바 '이적 표현물'로 판결된 책들"이라며 "이 책들은 민주화 이후 교보문고 등 대형 서점에서 흔히 판매될 뿐 아니라 국회에도 소장돼 있는데, 이를 처벌하겠다는 것은 명백한 수구 퇴행적 발악이며 언론 출판의 자유, 사상과 양심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라고 주장했다.

<꽃 파는 처녀> 등 북한 서적에 대해서도 인문사회과학출판인협의회는 15일 성명을 통해 "이 작품들은 북한의 대표적 가극으로 방북하는 여야 정치인들이 다 감상했고, 국회도서관, 국립중앙도서관에도 소장돼 있어 누구나 열람 대출이 가능하다"며 "국가보안법을 칼집에 넣어 박물관에 보내야 한다던 노무현 정부 하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에 특히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수구의 국보법 전술, '방어'에서 '공격'으로

'강정구 교수 탄압 반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의 손우정 씨는 최근 이와 같은 국보법 사건의 성격에 대해 '공세적 성격'이 강화됐다고 분석했다.

손 씨는 "강 교수의 2001년 만경대 방명록 사건은 6.15 공동선언 이후 '냉전 성역'이 허물어질 것을 우려한 보수·우익 세력의 방어적 성격의 대응이었다면, 2005년 강 교수의 칼럼을 고발한 사건은 보수적 이데올로기 확산을 위한 공격적 성격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즉 2000년 이후 남북화해 모드가 조성되고 2003년 국보법 폐지운동이 정점에 이를 때까지 보수 진영은 국보법을 유지하는 데 급급했지만, 2004년 이후 국보법 폐지 운동이 잠잠해져 있는 동안 보수 진영은 다시 국보법을 진보 진영 탄압수단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진보 진영이 이를 수수방관해 온 것 아니냐는 자성도 제기됐다. 손 씨는 "시민사회는 이 사건의 파장을 온전히 인식하지 못하고 강 교수 개인의 문제나 학문의 자유 영역에 국한된 일로 인식하면서 초기대응에 미흡했다"고 진단했다.

진보진영 '국보법 폐지' 전열 재정비
▲ '남편을 살리기 위해' 직장까지 그만두고 구명운동에 나선 이시우 씨의 아내 김은옥 씨. ⓒ프레시안

'국가보안법 폐지 국민연대'의 박래군 정책기획팀장은 "강 교수와 이시우, 김명수 씨 사건 외에도 지난 1월 전교조 교사들이 <조선일보>에서도 볼 수 있는 북한의 선군정치 자료를 홈페이지에 올렸다는 이유로 구속됐다"며 "'국보법의 신중 적용'이라는 노무현 정부 공안당국이 스스로 세운 기준조차 무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팀장은 또 "표현의 자유 탄압 사례는 올해 대통령선거에서 냉전 수구세력들의 부추김과 공안기관들의 실적 쌓기가 더해져서 더욱 늘어날 것"이라며 "우리 사회 전반의 보수화와 맞물려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지점"이라고 말했다.

박 팀장은 "이시우 씨 사진전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이적 표현물' 전시회를 하며, 긴급 토론회를 여는 등 다시 국보법 폐지를 위한 활동을 조직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국보법 폐지 운동을 전개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시우 씨의 아내 김은옥 씨는 "박물관에 아이들을 데려가 칼집에 들어간 국보법을 보여주며 '국보법이 저런 거였어'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이제 구속된 아버지를 설명하기 위해 국보법을 가르쳐주고 있다"며 "'단식을 중단할 수 없다'고 편지를 보내온 남편을 보면 내게는 하루하루가 '디 데이(D-day)다. 한시가 급하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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