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 강연 장소에 도착하자, 연락도 없이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던 휴게소 노동조합 위원장이 편지를 한 장 건네고는 황급히 돌아갔다. 감정이 격한 상태에서 급하게 쓴 편지라 내용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어느 날 의문의 사고를 당해 죽게 되면 어떠어떠한 사람들에 대해 수사해달라는 것과 휴게소 납품을 둘러싸고 업자와 회사와 휴게소를 관리하는 공기업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온갖 비리들을 밝혀달라는 비장한 내용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휴게소 노동조합이 설립된 뒤 10년 세월 동안 겪어야 했던 일들을 지금 다 설명할 수는 없다. 널리 알려지지도 않았고 노동운동권 안에서조차 큰 관심을 받지 못했지만 주로 여성들로 구성된 그 노동조합원들이 일상적으로 당하고 극복해 온 일들은 여러 편의 소설과 영화를 만들고도 남을 만큼 구구절절하다.
회사 경영진의 가까운 인척이 담당하는 호두과자 코너에서 부정한 방법으로 매달 수백만 원씩 빼 돌려지는 것을 알게 된 노동조합이 그 증거를 주도면밀하게 확보한 뒤에 경영진과 일종의 '딜'을 해서 "몇 개월만 더 해 먹고 다른 경영자에게 넘긴다"는 식의 합의를 한 적이 있었다. 그 합의를 하기까지 노동조합이 겪어야 했던 어려움의 강도는 다른 노동조합이 장기 파업 투쟁을 하면서 겪는 것에 못지않았다.
다른 노동조합들처럼 대자보 붙이고 파업을 조직하고 검찰에 고소고발하면서 공개적으로 싸우지 못한 이유는, 그렇게 할 만큼 조직 역량에도 자신이 없었지만, 그렇게 되면 그 싸움이 곧 휴게소 경영을 둘러싸고 얽혀 있는 거대한 그물망 - 휴게소 경영에 막강한 지분을 갖고 있는 지역 폭력 조직, 전국의 휴게소들을 관장하는 공기업 관련 부처의 실세, 비리를 안다는 것을 무기로 이권에 개입하는 언론, 그들과 밀착된 공권력 등과의 전면전이 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휴게소마다 보통 한 군데에서만 파는 '국밥'을 그 휴게소에서는 여러 코너에서 판매한 적이 있었다. 그 이유를 물어 보니, 조합원들이 일하고 있는 직영 식당의 매출을 떨어뜨려 그 핑계로 사업장을 폐쇄하고 조합원들을 정리해고하기 위해 회사가 생각해 낸 술수라는 것이다. 입점 업체 사장들이 휴게소 경영진의 지시를 받고 어느 날부터 갑자기 만들어 팔기 시작한 국밥이 제대로 맛있을 리가 없다. 직원들의 권리가 침해당하는 것은 물론이요, 고객에 대한 서비스 역시 뒷전이다.
'Made in China'가 선명히 새겨진 김치 박스를 직원들이 목격한 적도 있다. 중국산 김치의 기생충 알 파동이 아직도 고객들의 기억에 생생할 무렵인데, 중국산 김치 수입업을 하고 있는 경영진의 측근에게 특혜를 베풀었다는 것이다. 이런 시시콜콜한 작은 일들은 미처 헤아릴 수도 없다. 그런 일들을 10년 동안 일상적으로 겪었다.
투명 경영이 핵심이다
지금은 회사가 이행하지 않아 거의 무용지물이 됐지만, 이 휴게소 노사 간에 맺은 협약에는 구매나 매출과 관련된 내용을 상세하게 공개하는 규정이 있다. 다른 사업장에서 보기 힘든 그런 조항이 체결된 이유는 노동조합이 자신들의 노동조건 개선 못지않게 투명한 경영을 애타게 원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경영 사항이 낱낱이 공개 되면 경영진은 불가피하게 투명 경영을 할 수밖에 없다. 현재의 사장이 새로 취임하면서부터 그 협약 내용은 일방적으로 지켜지지 않았고, 그에 대한 적절한 규제 수단이 없는 게 현실이다.
휴게소 노동조합이 경영진으로부터 극심한 혐오의 대상이 되는 것은 바로 그 '투명 경영' 때문이다. 직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이 다른 휴게소보다 상대적으로 약간 높아서 노동비용이 증가하는 것은 회사에 큰 부담이 아니다. 노동조합 때문에 투명한 경영을 강제 받게 됨으로써 휴게소 경영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온갖 부정한 이권들이 위협 받는다고 생각하는 '먹이사슬'의 실력자들은 휴게소 경영진에게 "노동조합 좀 어떻게 처리해 보라"고 집요하게 요구할 수밖에 없다.
이 휴게소가 영업평가 꼴지를 한 적이 있다. 당시 직원들은 "전국 휴게소 영업평가에서 꼴찌를 했으니 당연히 경영진이 바뀔 것이다"라고 예상했는데 이상하게도 계약 연장이 이뤄졌다. 그리고 얼마 뒤, 휴게소를 관리하는 공기업의 고위간부가 퇴직하면서 휴게소 사장으로 취임했다. 이 노동조합원들이 몇 년 전에는 전국 휴게소들 중에서 경영평가 1위를 해내고 "엉망진창인 회사를 우리가 이렇게 좋은 평생직장으로 만들었다"는 감격으로 펑펑 울었던 적도 있었다.
법률적으로 경영권을 가질 수 없는 사람이 자신의 인척에게 명의신탁을 했다가 그 인척이 죽자, 단지 명의신탁 받았을 뿐인 경영권을 그 인척의 가족이 실제로 차지하기 위해 경영권 분쟁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 와중에 노동조합원들이 겪은 고통은 또 이루 말할 수 없다. 오죽했으면 휴게소에 입점해 있는 여러 점포의 사장들도 모두 노동조합의 파업에 동참했을까. 경영권 분쟁과 관련된 싸움이어서 노동단체 상급 조직의 지원도 받지 못한 채 그런 일들을 눈물겹게 치렀다.
휴게소 건물이 상당히 낡았는데도 개축 공사가 이뤄지지 않는 이유를 물어 보니, 휴게소를 관리하는 공기업의 관리자들이 공공연하게 "노동조합 없애면 건물을 새로 지을 수 있도록 해 주겠다"고 말해 왔고, 노동조합이 몇 년 동안 잘 버티고 있자 나중에는 "노동조합 위원장 한 사람만 처리하면 신축공사할 수 있도록 해 주겠다"는 말로 바뀌었다는 것이 조합원들의 주장이다.
휴게소들은 보통 증개축 공사를 하면서도 가건물을 세워 영업을 계속한다. 그런데 이 휴게소는 건물 증개축을 이유로 일정 기간 동안 영업을 중단할 계획을 세웠다는 소문이 돌았다. 기존 회사를 폐쇄하고 새 회사를 만들어 노동조합이 없는 휴게소로 새 출발하려는 계획을 세웠다는 것이다. 조합원들이 총회를 열어 일인당 200만 원씩의 투쟁기금을 걷기로 하는 결의를 거의 100%의 찬성으로 통과시키면서 싸움을 준비하자, 회사 쪽이 그 계획을 바꿔 증개축 공사를 하면서 영업을 유지하기로 한 것이 현재의 상황인데, 회사가 새로 지은 건물에서는 단 한 명의 노동조합원도 없이 경영을 시작한다는 계획을 세웠다는 것이 노동조합의 판단이다.
청부살인의 위협을 느낄 만큼…
최근까지도 노동조합 위원장은 "○억 원 줄 테니 회사를 떠나달라"는 제안을 받았다고 한다. 보통 사람이 상상하기 힘든 엄청난 액수를 회사가 제안하는 이유는 휴게소들을 둘러싼 이권의 규모가 그만큼 막대하다는 뜻이다. 투명한 경영으로 인해 그들이 취하지 못하는 부정한 이익의 규모는 '청부살인'의 유혹을 거부하지 못할 만큼 크고, 따라서 노동조합 위원장을 비롯한 핵심 간부들은 현재 생명의 위협까지 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언론매체에 노동문제에 관한 칼럼을 쓰면서 노동정책을 다루지 않고, 일개 노동조합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관한 글을 쓰게 된 이유다.
한 번은 노동조합 위원장 집에 몰래 침입한 괴한이 그 집에 있는 인형들의 목과 다리를 잘라 모두 처참하게 3등분으로 절단해 놓고 사라진 적이 있었다. 오른쪽의 사진은 당시 그 위원장의 어머니가 "섬찟하다"며 갖다 버린 것들 중에서 하나를 주워다가 찍은 것이다. 이런 일이 한번으로 그친 것도 아니다. 경영진들이 회의하면서 "위원장을 죽여 버린다", "차로 밀어버린다"고 말하는 것을 녹음한 파일도 있다고 한다.
신변의 위협을 느낀 위원장이 경호회사에 신변 보호를 요청하고 상당한 비용을 지불하겠다고 했지만 경호회사들이 선뜻 일을 맡지 못했다고 한다. 경호회사들 역시 지역 경찰이나 폭력조직들과 긴밀한 유대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위원장을 없애지 못하는 대신 조합원들의 씨를 말리기로 했다"는 것이 노동조합의 판단이다. 조합원들은 현재 '일상적인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집 앞에는 이상야릇한 미소를 띤 건장한 사내가 며칠째 서 있고, 엘리베이터를 타면 마스크를 쓰고 음울한 분위기를 한껏 연출한 사내가 옆에 붙어 있다 내리고, 아침에 나가보면 주차해 놓은 자가용차의 전조등이 훤히 밝혀 있고, 휴게소 신축공사장에 50여 명이나 되는 건장한 사내들이 갑자기 인부로 취업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경찰도 믿을 수 없다
노동조합원들은 이러한 일들이 모두 지역 경찰의 비호 아래 이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노동조합 위원장을 일상적으로 감시하고 있는 사람을 찾아내 그 사람의 인상착의를 경찰에게 알리면 그 사람이 즉시 모습을 바꾸거나 사라지고 다음날부터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부러 그 의심되는 사람을 지켜보며 경찰에 연락하면서 확인했다고 한다.
조합원들은 극도로 자제하면서 회사 측에 털끝만큼도 빌미를 제공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루 종일 단 한 마디의 대화도 하지 않는다"는 등의 원칙을 세우면서 대응하고 있다. 며칠 전, 지방에 내려가다 잠시 들렸을 때도 조합원들은 "회사가 '근무지 이탈'로 문제 삼을 수 있다"면서 주차장까지 배웅 나오지도 못했다. 회사가 위법 부당하게 조합원들을 해고하고 나서 법률적으로 효력을 다투는 몇 년 세월 동안, 회사는 새 건물에서 노동조합 없는 휴게소의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휴게소에서도…
이처럼 '복마전'과 같은 휴게소가 이곳 하나뿐도 아니다. 다른 휴게소 노동조합 위원장이 보냈던 편지 내용의 일부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사장의 아들이 식자재를 회사에 납품하고 있고, 딸은 수익성이 가장 높은 우동코너를 타 입점 업체보다 좋은 조건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또 다른 딸은 감사로, 사위는 관리부장으로, 또 다른 사위는 이사로, 처는 홍보이사로, 처조카는 전무로 친인척이 전횡하며 회사를 운영해 왔습니다. 가족들 사이의 경영권 다툼으로 서로 고소 고발을 하는 바람에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위반 등으로 사장은 징역 3년, 처는 징역 2년, 처조카는 징역 1년 6월에 처해져 현재 교도소에 수감 중입니다. 횡령금액 21억 원을 회사에 반납하고 회사는 조세포탈로 10억 원을 납부했습니다.
전국 최대의 매장과 최고의 매출에 비해 노동자들의 처우는 전국 최하 수준입니다. 하루 12시간의 근무에 휴식시간도 없으며 식사시간 30분도 교대를 하면서 실제로는 휴식이 전무한 상태입니다. 기숙사는 화장실 지하층에 위치해 오물이 스며들고 실내 벽에는 곰팡이가 피어나며 악취가 풍겨나고 방 한 칸에 3-4명씩 거주하고 있으나 에어컨도 없어 여름철에는 그야말로 찜통 속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회사는 매출액이 줄어 회사 운영이 어렵다면서 강도 높은 노동만을 강요했습니다.
경영진들은 몰래카메라를 비밀리에 설치해 노동자들을 감시하고 "걸리면 해고해버린다"고 위압감을 주면서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습니다. 미성년자를 취업시켜 12시간 근무하게 하고, 주당 연장시간 22시간, 하계휴가철 휴무 금지, 공민권 행사 보장도 않고 퇴직금 지급 기일도 위반하고, 취업규칙을 공시하지도 않았으며 취업규칙 무단 변경과 신고 미필 등 근로기준법을 일상적으로 위반했습니다. 우리들은 사회의 상식과 법규를 위반하는 회사에 시정을 요구했지만 회사는 시정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을 불평불만자로 몰아 살생부를 만들어 유포하면서 협박했습니다. 노동조합을 결성하여 적법하고 투명하게 회사를 운영할 것을 여러 차례 요구하였으나 현재까지 아무런 시정 조치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휴게소 노동자들을 만나 보면 "정말 마음 편하게 열심히 일만 하고 살았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한다. 조금만 양심적으로 경영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조건을 휴게소들은 갖추고 있는데, 그 상식적인 일이 우리 사회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의 진솔한 표정에서 느껴지는 아픔은 겪어 본 사람만이 안다. 휴게소들을 예전처럼 공기업이 직접 경영하면 이러한 문제들은 대부분 해소될 수 있다. 그러나 한번 '아웃소싱'된 사업이 다시 직영으로 바뀐다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깝다. 외주 경영을 둘러싸고 이익을 누리는 사람들이 형성한 그물망을 분쇄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노동조합 위원장으로부터 "회사가 만든 시나리오를 다 알고 있지만 내일부터 파업에 돌입하기로 했어요. 조합원들이 지쳐서 더 이상 참고 견딜 수가 없어요"라는 연락을 받고, 겨우겨우 설득해서 그 결행을 잠시 미루도록 했는데, 그 조합의 조합원들로부터 "위원장님이 '새로 지은 건물에서 내가 목매고 죽으면 다 해결될 거야'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요, 며칠 전부터 신변을 하나씩 정리하고 계세요. 이러다가 무슨 일 생기는 거 아닌지, 정말 무서워 죽겠어요"라고 울먹이면서 말하는 전화를 받아야 하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조합원들은 "언론도, 경찰도, 노동부도, 민주노총도, 민주노동당도 믿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한 생각이 반드시 옳다고 할 수는 없지만 노동자들만 탓할 수도 없다. 언론도, 경찰도, 노동부도, 민주노총도. 민주노동당도 관심을 갖고 이들을 도와야 한다. 노동조합 위원장을 만났던 한 언론사의 기자는 "오랜 세월 동안 어려움을 이겨 온 사람이라는 것을 한 순간에 알 수 있었다. 마치 월남전에 참전했던 군인을 인터뷰할 때처럼, 그런 경험이 온 몸에 밴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이런 휴게소 노동조합 하나쯤 없어지고 이런 노동조합 위원장 한 사람쯤 죽는 것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옳은 사회가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겨우 이런 글을 써서 세상에 알리는 것뿐이다. 그래서 이 긴 글을 썼다.
지금까지의 내용들은 당사자들이 민감한 상태에서 다소 과장되게 느꼈거나, 이야기를 전해 듣는 과정에서 잘못 전달됐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아주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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