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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다시' 노래를 찾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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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다시' 노래를 찾는 이유"

6월항쟁 20주년 기념공연 갖는 '노찾사'

16일 오후 서울 양재동 골목의 한 작은 연습실. 경쾌한 건반 연주와 함께 낭랑한 목소리가 작은 공간을 가득 메웠다. 여섯 명의 목소리가 만드는 화음은 부드럽고 세련되게 어우러졌다.

오는 25일부터 27일까지 서울 동숭동 동덕여대 공연예술센터에서 6월항쟁 20주년 기념 콘서트를 갖는 노래문화집단 '노래를 찾는 사람들'(노찾사)이 연습을 하고 있었다. '1987, 그 20년 후에'라는 제목을 단 이번 공연에는 1984년 결성된 뒤부터 지금까지 활발한 활동을 해 온 '정예 멤버'들이 무대에 선다.

"노래에 환장한 사람들이죠."

'노찾사'의 한 관계자가 웃으며 말했다. 지난 20여 년 간 때때로 공연을 하기도 했지만 누군가는 가수로서, 또 누군가는 다른 일을 하며 각자 나름의 삶을 살아 온 이들이었다. 이번 공연을 위해 오랫만에 다시 뭉쳤다는 이들은 주말마다, 그리고 틈틈히 짬을 내 연습을 했다고 밝혔다. 그저 "노래가 좋아서"라고도 했다. 그러나 그들에게 이번 공연은 좀 더 각별하다.

"1987년, 무대에 오르며 '우리가 무사할까' 걱정했다"
▲ 오는 25일부터 열리는 공연 연습 중인 노찾사 멤버들. 왼쪽부터 최문정, 유연이, 송은경, 신지아, 조성태, 문진오. ⓒ프레시안

"노찾사에게 1987년은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그해 10월 우리는 첫 공연을 가졌고 그 뒤 소위 '합법적인 공간' 안에서 활발한 활동을 했다. 87년 민주항쟁이 만들어준 공간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민주화의 산물이자 혜택을 입은 존재로서 다시 그때의 시대정신을 되짚어보고, 앞으로 우리의 삶에 대해 의미있는 질문을 던져보고 싶었다."


노찾사 한동헌 대표의 말처럼 이들은 스스로를 "민주화라는 사회적 변혁의 산물"이라고 평한다. 노찾사는 1984년 문승현, 김제섭, 조경옥 등 대학노래패에서 활동하던 이들을 중심으로 가수 김민기 씨의 도움을 받아 1집 앨범을 발매하며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발매 당시에는 별다른 반향이 없었다.

1987년 6월항쟁으로 형성된 사회적 분위기가 비로소 '노찾사'의 노래가 새롭게 힘을 얻는 동력이 됐다. 그해 10월 서울 연지동 한국교회 100주년 기념관에서 열린 첫번째 정기공연은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첫 공연이 열리던 때, 우리는 노래를 부른 뒤 무사할까 걱정까지 했었다. 민주화가 됐다고 하지만 당시는 여전히 전두환 대통령이 정권을 잡고 있었고 사회적인 분위기도 무거웠으니까. 그러나 다양한 환경에서 온, 정말 많은 관객들이 함께 공감했고 열띤 공연이 이뤄질 수 있었다."

그 뒤 해마다 두 차례의 정기공연을 비롯해 대학, 사회단체, 노동단체 등 민주화의 현장에서 수많은 공연을 가진 이들은 노래운동을 이끄는 대표적인 집단으로 자리잡았다. <광야에서>, <솔아 푸르른 솔아>, <사계>, <그날이 오면>, <임을 위한 행진곡> 등 노찾사의 노래들은 무거운 주제를 풀어내면서도 대중적 인기를 함께 누렸다.

한 대표는 "노찾사는 그전까지 진행되던 노래운동을 좀 더 대중 속으로 파고들게 하는 역할을 했다"며 "사실 이전부터 그 같은 노래들이 있었지만 제도권 내에서 음반과 공연 등의 형태로 선보이자 많은 이들이 더 큰 감격을 느꼈을 것"이라고 밝혔다.

"80년대의 경험과 음악, 계승할 가치 있다"
▲ 1988년 4월 연우소극장에서 열린 제2회 정기공연 당시 모습 ⓒ노찾사

"'시대정신'이다. 같은 시대를 산 사람들에게는 정서적인 끈이 존재한다고 본다. 김민기가 70년대를, 들국화가 80년대 초중반을, 그리고 서태지가 90년대를 대표하는 가수라면 노찾사 역시 80년대 후반의 정서를 대변하는 그룹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그런 상징만으로 지금의 노찾사가 의미를 지니는 건 물론 아니다."


노찾사가 '6월 항쟁의 산물'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노찾사의 음악이 당시 세대들이 공감하는 정서를 담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80년대 민주화의 열기는 급속히 식었다. 노찾사, 그리고 이들이 일으켰던 노래운동에 대한 관심 역시 그 같은 사회적 변화와 함께 조금씩 퇴색해 갔다.

"저항가요와 운동가요가 주변화되고, 주류 음악은 노골적인 상업논리에 지배당하면서 노찾사가 대변했던 '지적인 노래'의 맥 역시 끊긴 것 같다. 그걸 살리는 역할을 노찾사가 했으면 한다."

지난 2004년 노찾사는 '2+3집 음반'을 재발매하고 2005년에는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창립 21주년 기념 콘서트를 열며 본격적으로 활동을 재개했다. 한 대표는 "다시 노찾사를 활성화하자는 깃발을 들었을 때, 우리의 지향점이 어디일까를 생각했다"며 "그건 80년대 후반을 산 우리 세대의 소중한 경험과 맞물린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는 개인과 사회의 관계, 사회적 현안에 대해 공감하는 이들이 많았다는 특징이 있다"며 "음악 역시 개인의 삶을 규정짓는 구조적 요소에 대한 문제의식과 관점을 담았었고, 나는 그걸 계승할 가치가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공연에 온다면 그 첫번째 이유는 '노래' 그 자체"

한 대표는 "우리가 예전처럼 100만 장 이상 음반을 판매하지는 못할 것이다"며 "그러나 단순히 '밴드'가 아닌 문화운동집단 또는 노래문화집단으로서 노찾사는 음악이라는 매체를 재발견하고, 재해석하고, 꾸준히 새로운 레퍼토리를 개발하는 과제를 스스로 안고 갈 것"이라고 말했다.

스스로를 "공적 존재와도 같다"고 평하는 노찾사는 앞으로 한국 노래운동에 대한 평론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또 꾸준히 음반과 공연의 형태로 그런 고민을 보다 많은 이들과 공유하고 싶다고도 밝혔다. 이번 공연은 그런 활동의 가능성을 점쳐볼 수 중요한 계기가 될 듯하다.

한 대표는 마지막으로 이번 공연에 대해 이렇게 덧붙였다.

"왜 이번 공연에 와야 하는지 묻는다면 사실 가장 첫번째 이유는 '음악이 훌륭해서'라고 답하겠다. 다른 감성, 다른 매체들을 통해 접하는 음악과는 분명히 다른 음악을 접할 수 있을 거다. 노찾사의 음악은 80년대 세대들의 정서적 고리이기도 하지만 세월과 함께 우리들도 익었고, 과거와 비교해 좀 더 성숙하고 깊은 느낌을 보여드리고자 한다. 그간 새롭게 발견하고 해석한, 흥미롭고 섬세한 느낌을 전하는 노래들을 부르고자 한다."

이번 공연은 라이브플러스, 풍류가 주관하며 프레시안, 문화예술위원회, MVP창투가 후원한다. 공연 문의는 전화(02-522-9933)로 가능하며 인터넷(인터파크·티켓링크)으로 예매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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