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과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차이는?
기사를 쓸 때 몇 가지 원칙이 있다. 이번 김 회장의 '보복 폭행' 사건에서 지키고자 했던 원칙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라고 표기하는 것이었다. 사건의 본질이 김 회장의 부자관계에 의한 사적(私的)인 일이었고, 전적으로 김 회장 스스로 풀어야 할 문제이며, 김 회장의 '못남'으로 인해 한화그룹 전체가 피해를 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김승연'을 '한화' 앞에 뒀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사건과 관련해 김 회장의 실명과 함께 피해자들의 주장이 대대적으로 보도된 4월 27일 다음 날인 28일자 <조선일보>의 스포츠면 프로야구 기사 제목은 기발하지만 나쁜 제목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기사 제목은 'KIA, 한화에 맞은 만큼 때렸다'였다. 한화 이글스에 만루홈런을 맞아 끌려가던 KIA 타이거즈가 3점 홈런으로 역전했다는 내용인데, 제목으로 '보복 폭행' 사건을 빗댄 것이다.
'한화 이글스'를 '조폭 치킨스'로 만든 김승연 회장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보복 폭행' 사건에 '김승연'이라는 이름이 빠진 '한화'라는 이름을 사용해야만 했다. '한화그룹 협력업체'가 수사에 등장했고, '한화그룹 부속실 비서실장'이 경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최근에는 '한화그룹 계열사의 김모 감사'가 또 수사선상에 이름을 올렸다. 경찰에 따르면 김 감사는 사건 당일 청계산 등의 사건 현장에 있었고, '맘보파' 오모 씨와 비서실장을 연결시켜줬다고 한다. 이들은 '개인'이 아니라 한화에 종사하기 때문에 이번 사건에 연루된 것이다.
이들의 이름이 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치더라도, 사건 발생 이후 법무팀과 홍보팀이 김 회장 사건에 동원된 것도 이번 사건에서 '한화그룹'이 자유롭지 않게 만드는 원인이 됐다.
본격 수사가 시작된 이후 김 회장 측은 개인 변호사 3명을 선임했다고는 하지만 사건 초기 그룹 법무팀이 이번 사건에 개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경제개혁연대는 "그룹 법무팀이 회사 업무와 무관하게 발생한 이번 사건에 동원됐다면 명백한 배임"이라고 주장했다.
홍보팀은 어떠한가. 사건 초기 '김 회장의 인간적 면모, 탁월한 경영능력, 부모에 대한 효심, 유별난 부정(父情)' 등 4장으로 구성된 보도참고자료를 내놓았다.
부정적 묘사 일색인 언론보도에 맞서 알려지지 않은 김 회장의 긍정적 면모를 알리기 위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보도자료의 내용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김 회장이 인간미 넘치고 의리로 뭉쳐져 있으며 부모를 섬기고 자식을 사랑할 줄 아는 데다 탁월한 경영능력까지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한 야구계 관계자는 "한화그룹이 김 회장의 '의리' 보도자료를 내며 한화 이글스 김인식 감독과의 '의리'를 예로 드는 바람에, 원래 신망 두텁기로 유명한 김 감독의 '의리'까지 우스꽝스럽게 됐다"며 "일부 야구팬들이 한화 이글스를 '조폭 치킨스'라고 부르더라"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홍보팀의 '안간힘'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얼마 전 배포한 '사건발단 전모'라는 보도참고자료에서는 피해자들이 힘없는 웨이터들이 아니라 '호화 유흥업소 영업전무, 상무 등으로 유흥업소를 관리하는 건달'로 묘사했다. 물론 피해자들을 이렇게 보는 시선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과연 대중의 여론이 어떤 것인지 알기나 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이뿐인가. 수사 초기 그룹 직원들에게 '탄원서'를 돌린 것이 알려지며 여론의 질타를 받기도 했다.
그룹 이미지 타격 부추긴 한화
김 회장 방어에 나서는 그룹 차원의 노력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스물아홉에 그룹 회장 자리에 올라 지금까지 이만큼 한화그룹을 성장시켜 왔다는 사실만으로 김 회장의 경영능력은 인정할 만하다. 그룹 회장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그룹 전체에 미치는 악영향을 고려할 때 이번 사건이 김 회장 개인의 일만은 아니라는 견해도 있다.
그런데 역으로 생각하면 김 회장이 사적인 일로 그룹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냈다는 것도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일이다. 한화그룹은 올해 초 새 CI(기업통합 이미지)를 개발해 홍보하며 수백억 원을 들였다. 아마도 김 회장이 날린 기업 이미지를 금전적 가치로 환산하면 수백억 원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을 것이다.
민주화 이후 우리 사회의 주도적 권력이 정치권력에서 경제권력으로 이동하는 동안 우리는 '재벌'에 대해 새롭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재벌들이 '범죄'를 저질러 사법처리될 때마다 온갖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봐 왔다. 검찰에 출두할 때 직원들이 마중 나와 "회장님 힘내세요"라고 외치거나, 수십 명의 덩치 좋은 직원들이 동원돼 기자들을 통제하는가 하면, 사법부가 '경제발전 공헌' 운운하며 '솜방망이 처벌'을 하는 모습을 보며 분개하기도 했다.
그나마 그동안 봐 왔던 사건은 분식회계나 배임, 횡령 등 이른바 '화이트칼라' 범죄였다. 그렇지만 김 회장의 이번 사건은 그것도 아니다. 더구나 대중들이 이번 사건에 대해 가장 분노하고 있는 대목은 사적 보복의 바탕이 그의 재력(財力)이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사 이후에도 여전히 그룹이 동원되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대중들에게 '선처'의 정이 생기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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