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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 갸웃거리는 당신에게 선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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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 갸웃거리는 당신에게 선물합니다"

[화제의 책] 장애인 학부모 이야기 <담장 허무는 엄마들>

지난달 24일, 국회 기자실 앞 복도에서 갑자기 "내 새끼도 사람이다"라는 처절한 외침이 울려퍼졌다. 장애인 자녀를 둔 학부모들이었다. 국회 경비와 몸싸움도 마다하지 않으며 이들이 이같은 행동에 나섰던 건 지난해 5월 발의됐던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 제정안'이 사학법 갈등에 부딪혀 1년 가까이 국회에 잠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관련기사: "내 새끼도 사람이다. 사람답게 살게해 달라!" )

학부모들이 눈물을 흘리며 '장애인 교육법 통과'를 외친 1주일 후, 마침내 이 법은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간 국가인권위원회 등지에서 단식 농성을 벌여가며 싸워 왔던 이들의 노력이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

주위에서 '장애'를 경험하지 않은 이들은 이런 행동들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도대체 왜 저렇게 어렵고 힘들게 싸우냐." "이제 저런 운동은 식상하다"는 말도 나온다.

장애인, 그리고 장애아를 둔 학부모들의 '고된 투쟁'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이들을 위한 선물과도 같은 책이 등장했다. <담장 허무는 엄마들>(봄날 펴냄)이란 제목을 단 샛노란 표지의 이 책이 주는 느낌은 복합적이다. 예쁜 아이들의 모습, 그리고 그에 어울리지 않는 안타까운 사연들이 어우러져 있기 때문이다.

중증 장애아를 둔 학부모들이 아이를 키우고 가르치면서 부딪히는 나날의 모습들을 담은 육아일기와 아이에게 쓴 편지, 그리고 장애인 교육의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 온 엄마들과 선생님들의 이야기 등이 책 속에 담겨있다.

교육청 담장 올라갔던 엄마들, 또 다른 담장 허물기에 나서다

이 책은 중증 장애아를 키우는 엄마들의 작은 실험에서 출발했다. 대구 성서지역에서 출력 1W로 방송되는 성서공동체FM 방송에서 전파를 탄 프로그램 <담장 허무는 엄마들>이 그것. 이 책은 지난 2005년 9월부터 방송됐던 내용을 묶은 것이다.

엄마들이 처음 프로그램을 만들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현실에서 뼈저리게 느끼는 사회적 차별 때문이었다.

▲ <담장 허무는 엄마들>,담장 허무는 엄마들 지음, 블로그북 봄날 펴냄ⓒ프레시안

"대구시 교육청에 수없이 찾아갔어요. 급기야 교육청이 전경을 불러서 엄마들 못 오게 완전히 봉쇄를 했을 정도였죠. 입구가 봉쇄되니까 엄마들이 교육청 담장을 올라갔어요. 다른 방법이 없었어요. 그때 비가 왔는데 내리는 비를 다 맞으며 울면서 꽹과리를 쳤어요. 펑펑 울었지. (…)
교육청 관계자들은 '당신네들 잘못으로 장애아를 키우는데 우리가 그걸 들어줄 이유가 없다'며 만나주지 않았거든요. 우리도 (교육청의 단계를) 하나하나 다 밟았어요. 그런데 장애가 있는 부족한 애들 엄마라는 이유로 무시를 당하는 거야. 무시당할 이유가 전혀 없는데…."

교육청 담장 위에 올라갔던 엄마들의 싸움은 마침내 "1억도 없다"던 교육청의 예산을 56억 원이나 받아내 열악했던 특수학교를 다시 지을 수 있게 했다. 이들은 사회 곳곳에서 장애인과 그 가족들 앞에 쌓인 담장들을 허물기 위해 또 한번 의기투합했다. "일단 세 명만 마음이 모아지면 나머지는 또 옆에 엄마들 모으면 되니까 한번 시작해 보자"며 직접 방송 프로그램을 시작한 것이다.

'담장 허무는 엄마들'이란 이름을 짓게 된 것도 엄마들이 모인 첫 기획회의 자리였다. 장애아를 둔 엄마들에게 이 세상은 너무나 많은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고, 그 담장을 허물어야 하는 주체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엄마들이라는 생각이었다.

엄마들이 직접 기획, 구성, 진행까지 도맡아 하는 이 프로그램은 현재 매주 넷째 주 금요일 오후 3~4시에 방송되고 있다. '가슴으로 전하는 엄마의 편지', '파워칼럼', '교단일기', '담장 초대석, 진단과 대책', '엄마의 육아일기'란 제목의 프로그램 꼭지들은 엄마와 교사들의 생생한 마음을 담아 알차고도 따뜻하다. 애초 15분짜리로 기획됐던 프로그램은 인기에 힘입어 이제 1시간짜리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았다.



"이런 방송 아니면 어찌 당신을 만났을까요"

"너무나 당당한 목소리, 준비된 어머니, 정말 감동 받았답니다. 어쩜 하고픈 이야길 그리도 똑부러지게 잘할 수 있나요? 다음부터 더더욱 열심히 목소리 키우실 거죠? 참 좋은 방송이에요. 내가 이런 방송 아니면 어찌 당신을 만났을까요?" - 아이디 jds640325

'담장 허무는 엄마들'이 엮은 또 하나의 결실은 장애아 학부모, 그리고 비장애아 학부모 간의 네트워크였다. 홈페이지(http://blog.naver.com/damjangmom)를 통해 각자의 사연을 주고받고 방송 후기를 올리는 엄마들의 활발한 의사소통은 '담장 허무는 엄마들'이 방송 프로그램을 넘어 '공동체 모임'으로 자리잡게 했다. 대구에 살지 않는 이들도 이곳에서 방송을 듣고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책에는 엄마들의 사연 밑에 달렸던 주옥같은 댓글들도 함께 실려 엄마들의 공동체 생활을 잠시 엿볼 수 있게 한다.

"옷이 조금이라도 젖으면 어디서건 옷을 벗어제끼는 승현이 때문에 내 가방 속에는 항시 우산이 준비돼 있어야 한다"는 '승현이 엄마' 이미숙 씨의 사연에는 "나의 가방엔 언제나 반짇고리가 준비돼 있는데요. 모르는 이들은 나보고 참 여성스럽다고 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5분대기조로서 비상시 언제나 책임 완수를 다할 수밖에 없는, 잘 훈련된 엄마로 평생 살아가야 할까요"라는 댓글이 달려 있다.

"조금이라도 더 걷게 하려고 짧은 거리는 부축해서 이동시켰는데 요즘 들어서는 1미터도 잡아주기 힘들다. 아이가 힘에 부칠 만큼 늙어버린 듯하다"고 하는 '민정이 엄마' 마성희 씨의 글에는 "민정 씨 엄마의 담담한 목소리가 가슴을 더 아리게 한다. 방송이 작으나마 도움이 됐으면 한다"며 공감과 격려의 댓글이 줄줄이 달려 있다.

아이로 인해 같이 모여 밥 한 번 먹는 시간조차 내기 힘들었던 엄마들. 그러나 '십시일반'의 정신으로 모여 소통을 통한 즐거움을 알게 된 엄마들은 이제 이 즐거움을 좀 더 많은 이들과 함께 공유하기를 꿈꾸고 있다. 양금자 씨는 "성서지역 공동체의 목소리가 퍼져 나가서 전국에 있는 장애아를 키우는 엄마들이 <담장 허무는 엄마들>처럼 뭉쳐서 좀 더 큰 공동체가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89.1 Mhz SCN 성서공동체FM은 대구 달서구 성서지역에서만 들을 수 있는 공동체 라디오 방송국이다. '듣기만 하던 라디오 이젠 우리가 말한다', '이주노동자와 지역주민의 자치방송'이라는 두 개의 모토 아래 운영되는 비영리 방송국이며 90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이끌어가고 있다. (홈페이지: www.scnfm.or.kr)

지역 사회에서 작은 바람을 일으켰던 이 방송국은 2005년 이후 지원되던 국비지원이 끊길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불안해하고 있다. <담장 허무는 엄마들> 판매 수익금의 60%는 프로그램 제작 지원과 장애인 돕기 사업 등에 쓰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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