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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조선업도 중국에 내주려고 하나"

대우조선노조 "쌍용차ㆍ외환은행 교훈 벌써 잊었나"

거제도를 둘러싸고 있는 바닷물은 투명했다. 초여름의 햇살 사이로 바다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우뚝 솟은 크레인과 곳곳에 쌓인 철근들. 그 곳에 연간 매출 7조 원을 자랑하는 세계적인 '배공장' 대우조선해양이 자리 잡고 있었다.

전체 거제시 인구 20만6000명 가운데 9만여 명. 거제시 세수의 40%. 대우조선이 이 지역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대우조선, 현대조선, 삼성조선 등 우리나라의 조선산업은 세계에서 1,2,3위를 다투며 손꼽히는 기술력을 자랑하고 있다. 그를 증명하듯 바다를 마주하고 자리 잡은 대우조선의 규모는 웅장했다.

그런데 대우조선이 요즘 뒤숭숭하다. 대우조선의 주식 31.26%를 가진 산업은행측이 올해 초 기자간담회를 통해 지난해까지 적자였던 대우조선이 흑자로 돌아서는 시점에 보유 주식을 일괄매각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기 때문이다. 대우조선의 올해 선박 수주액 등을 보면 올해 하반기 흑자전환이 예상되고 있어 매각 시기도 대략 그 즈음이 되리라고 관계자들은 예상하고 있다.

'대우조선 일괄매각' 방침에 노조와 거제시·경남도 의회까지 '안돼'
▲ 경상남도 거제시에 자리잡은 대우조선해양의 전경.ⓒ연합뉴스

산업은행이 가진 지분에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의 보유지분 19.11%를 더하면 50.73%가 된다. 현재 시세로 3조5000억 원 가량이다. 노조는 산업은행과 정부의 계획대로 이 지분을 묶어서 팔 경우 경영권에 해당되는 프리미엄이 붙어 최소 5조~7조 원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산업은행이 고수하고 있는 '일괄매각' 방침이 실현될 경우 인수기업이 기존의 부채를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인수 후 대규모의 구조조정 및 정리해고가 잇따를 것이라는 데 있다. 이세종 대우조선노조 위원장은 "일괄매각을 하게 되면 산 사람 입장에서는 시세보다 더 주고 산 만큼 노동자 수를 줄이는 등의 방식으로 이윤을 내려고 할 것이 분명하다"며 "더욱이 부채를 끼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액수이기 때문에 생산적인 기업운영보다는 이자 갚기에 주력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래서 노조는 산업은행의 일괄매각에 반대하고 있다. 노조는 9일 오전 기자회견을 갖고 "대우조선의 일괄매각은 일방적 구조조정을 불러올 것이며 거제지역의 특성상 지역경제의 불안현상으로 이어져 심각한 상황을 초래하게 될 것"이라며 일괄매각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대우조선의 매각에 반대하는 것은 노조뿐만이 아니다. 거제시 의회를 비롯해 경남도 의회까지 개별 기업인 대우조선의 문제와 관련해 "일괄매각은 안 된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만장일치로 통과시키기도 했다.

"쌍용차와 외환은행의 경험에서 무엇을 배웠나?"

노조는 일괄매각 방식으로는 해외 투기자본을 막을 길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투기자본이 대우조선의 주식 50.1%를 사들일 경우 "대우조선과 한국의 조선산업이 중장기적으로 도태될 위험도 있다"는 것이 노조의 우려다.

대우조선의 매각 방침이 알려지면서 중국 정부가 강력한 인수 의지를 밝히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소 안팎에는 "중국 정부가 우리 정부에게 백지수표를 내 놓았다"는 소문까지 돌고 있다.

"결국 우리 조선산업이 가진 기술력을 모두 중국에 넘겨주는 꼴이 될 것"이라고 조선소 노동자들은 입을 모아 걱정했다.

대우조선을 방문한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도 "정부는 외환은행과 쌍용차의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온갖 반대를 무시하고 정부가 외환은행을 론스타에 판 결과가 지금 어떠냐"며 "쌍용차의 경우에도 결국 기술만 다 중국으로 넘겨준 꼴이 됐다"고 강조했다.
▲ 최근 산업은행이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대우조선 지분을 올해 하반기에 일괄매각 방식으로 처분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가운데 노조가 일괄매각은 안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프레시안

"우리사주조합으로 일괄매각 막겠다"

노조는 일단 "매각 과정에 이해당사자의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이세종 위원장은 "대우조선 노동자들은 외환위기 이후 단협 상의 복리후생까지 회사에 반납해가면서 뼈를 깎는 자구의 노력과 희생으로 회사 정상화를 위해 힘써 왔다"며 "산업은행은 매각 방침 결정에 앞서 기업 구성원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기회와 통로를 충분히 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노조는 캠코의 보유 지분 19.1%를 우리사주조합을 통해 인수하겠다는 계획이다. 노조는 이와 관련해 "산업은행이 캠코 지분을 묶어 경쟁입찰 방식으로 일괄매각하는 것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설명했다. 이 위원장은 "오는 6월 내로 캠코에 인수제안서를 내기 위한 준비 작업이 마무리 중"이라며 "1만 명 정도가 우리사주조합에 가입돼 있고 자금출연 계획도 마련돼 있다"고 강조했다.

노조는 이같은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총파업에 들어갈 계획이다. 이미 지난 2월 6일 조합원 총회에서 90%가 넘는 찬성으로 일괄매각 발표 시점에 맞춰 총파업에 들어간다는 내용을 결정한 바 있다.

민주노총도 대우조선 매각과정에 적극 개입하겠다고 밝혔다. 이석행 위원장은 "대정부 교섭이 필요하면 교섭을, 투쟁이 필요하면 투쟁을 할 것"이라며 "대우조선이 외환은행, 쌍용차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총연맹 차원에서 모든 수단을 강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열악한 공정 전담반' 조선소 비정규직

▲ 대우조선에는 정규직보다 협력업체 소속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더 많다. 배를 만드는 일 가운데서도 고되고 위험한 일은 비정규직들이 담당하고 있다.ⓒ연합뉴스

조선소의 작업 가운데는 '목숨을 담보로 한' 위험한 일이 많다. 끝이 안 보이는 크레인과 아직 채 배의 모습을 갖추지 못한 거대한 철근들이 그 위용을 자랑하는 만큼 그곳의 위험도 또한 크다. 그런데 이처럼 위험한 일은 대부분 사내하청 노동자, 즉 비정규직이 담당하고 있다.

대우조선의 경우에도 전체 직원 2만6000여 명 가운데 정규직이 1만1000명, 비정규직이 1만5000명으로 비정규직이 1.5배나 많다. 더욱이 정규직 가운데 사무직을 제외하면 실제로 배를 만드는 공정에서 노동을 하는 사람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비율이 4:6 정도다.

대우조선노조의 김경수 고용안정1부장은 "조선소의 노동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 가운데서도 더 고된 일은 비정규직이 많이 한다"고 말했다.

임금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김경수 부장은 "정규직이 10년차가 연봉 4500만 원 수준이라면 비정규직은 이 금액의 60% 정도"라고 설명했다.

임금 수준은 아주 낮은 편이 아니지만 비정규직은 산재 등 사망 위험이 높은 곳에서 주로 일하는데다가 고난이도의 기술을 요하지 않는 작업의 경우 회사에서 5년 이상 비정규직의 근속을 막는 경향이 있어 고용보장이 안 되는 문제가 있다.

현대차 등 대표적인 제조업 대공장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그나마 최근 몇 년 사이 노조라도 조직돼 독자적인 단협 체결 등을 요구하는 등 움직임을 벌이고 있지만 조선소에는 아직 비정규직 노조가 없다. 노조 관계자는 "최근 몇 차례 노조 설립 노력이 있었지만 번번이 무산되곤 했다"고 말했다.

여러 어려움이 있지만 무엇보다 완성차 공장처럼 한 생산라인에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넓은 곳에 개별적으로 떨어져 일하기 때문에 조직화도 어렵다. 대우조선이 산업은행의 계획대로 특정 기업에 일괄매각되면 당장 일자리가 끊기는 것 아니냐는 걱정 속에 이들은 오늘도 묵묵히 드넓은 바다를 가를 선박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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