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이 새로운 규율이 적용될 때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구체적으로 예상하기 어렵다. 그래서인지 법 시행을 앞두고 기업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비정규직 조치를 주목하면서 이러한 행태를 통해 앞으로 일어날 전조 혹은 징후를 읽어내려고 하는 것 같다.
불운한 팔자의 비정규법 덕분에 더욱 주목받은 '우리은행 모델'
그렇기 때문인지 비정규법 시행을 넉 달 앞둔 올해 3월 단행된 우리은행의 대규모 정규직 전환조치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뜨겁다. 단행된 시기도 시기이지만 비정규직 3076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기 위해 필요한 연 200억 원의 추가비용을 노사합의를 통해 1만 여명 정규직의 임금 동결로 충당했다는 점에서도 주목받기에 충분하다.
물론 내용도 주목할 만하다. 비정규직은 원래 처음 3년 계약기간이 끝나면 1년 단위로 재계약을 했지만 정규직으로 전환되면서 58세까지 정년이 보장받게 됐다. 그뿐 아니라 건강검진·임차사택 대여·임직원 주택구입이나 전세자금 5000만 원까지 연 5.5% 이자대출·취학 전 유치원 자녀에 대한 3년간 월 13만 원 지원과 중고교 및 대학교 자녀 학비 전액 지원·중식비와 교통비 매달 5만 원씩 지급·결혼과 출산, 생일, 부모 및 배우자 부모의 회갑과 칠순 등의 경조사비 지원·영업일 기준 105일 출산휴직일을 2년 이내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다양한 복지를 보장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은행의 이런 조치는 시기, 진행방식, 내용 측면에서 비정규의 미래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우리은행 모델'로 회자되고 있다.
하지만 부정적인 시선도 만만치 않다. 비정규직의 직군을 분리해 별도의 임금체계를 적용한다는 점, 과장 이상의 승진이 불가능한 승진체계를 적용해 임금 및 승진에서의 격차를 고착화시킨다는 점, 직군분리를 통한 차별이 있더라도 차별시정위원회의 법적 개입이 불가능해 제도적인 차별해소의 사각지대에 놓인다는 점, 적용 대상 다수가 여성이기에 사라진 여행원제의 변형된 부활이라는 등의 부정적 시선도 피하기 어렵다.
상시적 구조조정으로 정규직도 40세를 넘기기 쉽지 않다는 은행에서 50세를 넘긴 여직원이 과장 이하의 직급으로 수납이나 송금과 같은 기계적 업무를 하면 아무리 58세의 정년이 보장되어 있다고 할지라도 그 때까지 버틸 수 있을지 현재의 경험과 상식으로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기 때문이다.
기대와 우려, 대안 모색까지…우리은행이 만들어낸 풍성한 담론
각자의 위치나 시선에 따라 기대, 우려 중 어느 한쪽에 더 무게를 둘 수 있겠지만 그보다 먼저 다른 기업에서 우리은행의 이러한 조치를 따라할 이유가 있는지, 따를 조건이 되는지 따져봐야 한다.
우리은행 방식으로 정규직으로 전환하려면 먼저 정규직의 양보에 대한 합의가 도출되어야 한다. 그리고 정규직이 양보에 합의했다고 해도 비정규의 정규직화가 가능한 인적, 물적 기반이 갖춰져 있어야 한다. 또한 노사합의가 이루어지고 양보 가능한 기반이 있다고 해도 주주들이 반발하지 않아야 한다. 다른 은행이나 기업에서 우리은행 모델을 선뜻 뒤따르지 못하는 것은 이러한 필요충분조건이 뒷받침되기 힘들기 때문이다.
도입된 지 겨우 두 달을 조금 넘긴 사례를 두고 지나친 기대나 우려를 가지기 보다는 생산적이고 건설적인 태도로 앞으로 풀어내야 할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자는 제안도 있다. 우리은행의 분리직군제를 향후 직무급 도입 및 직무급 임금체계로의 전환에 대비하는 계기로 삼자는 것이다.
우리은행 정규직 전환이 기대, 우려, 대안 모색 등의 담론을 촉발시킨 것은, 비정규법 시행을 앞두고 흉흉한 괴담이 떠도는 가운데 이 사례가 논의할만한 미담적 요소를 많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우리은행의 정규직 전환 조치는 따라할만한 합리적 모델 차원에서, 차별 고착화의 나쁜 전형의 제시 차원에서, 미처 준비되지 않은 직무급에 대한 준비를 지금부터 시작하자는 차원에서 다른 어떤 사례보다 풍성한 담론이 형성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주인공은 '초대받지 못한 손님'이었다
하지만 다양한 담론에도 불구하고 우리은행 정규직 전환이 발표된 지난해 12월 20일부터 지금까지 비정규직의 목소리는 은행 홈페이지에서도, 온라인 혹은 오프라인 언론에서도, 각종 토론회에서도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우리은행 비정규직 전환과 관련된 담론생산의 주축은 기업주, 노조대표, 인력관리자, 노동운동가, 교수, 연구자들이었다.
담론생산자들 중 일부는 정규직으로 전환된 사람들을 두고 고용안정과 복지혜택의 수혜자라는 점을 클로즈업 하였고, 또 다른 일부는 직군분리제와 무기계약으로 차별받는 여전한 약자라는 점에 초점을 두고 조명했다.
그 결과 우리은행 정규직 전환 조치를 통해 부각된 이슈가 무엇인지는 알겠으나 정작 정규직으로 전환된 사람들이 그 전후로 더 많이 웃고, 더 행복해지고, 소망하는 바를 이루었는지 알 길이 없다. 그냥 상상하고 짐작할 뿐이다.
우리은행의 정규직 전환 문제에 있어서 비정규직은 자신의 문제가 논의되기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초대받지 못한 손님'이었을 뿐이다. 지켜보는 사람들도 이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당사자가 협상테이블 근처에 가지 못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시선은 협상테이블에 앉으려면 얻을 것과 양보할 것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은행 비정규직은 아무 것도 양보할 것이 없고 얻을 것만 있다고 봤기 때문일까?
어쨌든 그 결과 누구보다 비정규의 처지와 요구를 잘 알고 있는 당사자는 논의의 주체가 아니라 어떠한 결과이든 수용해야 하는 객체에 불과했다. '초대 받지 못한 손님'은 그 자리가 잔치였는지 초상이었는지 알려주는 대로 들어야 하고, 모르니 할 말도 없고 하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은행에서 해 본 엉뚱한 상상
얼마 전 마감 시간 이후에 은행에 갔을 때 연장근무를 하는 직원들이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유니폼 대신 편안한 복장으로 서로 친밀하게 일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전혀 다른 두 가지 상상이 오버랩 되었다.
하나는 IMF 외환위기 때 구조조정으로 나갔던 과거 동료가 비정규직으로 다시 일하러 나왔고, 정규직으로 살아남은 사람들은 자신의 양보로 마음의 짐을 덜어내려고 이런 조치를 말없이 지지하는 상상이었다. 다른 하나는 누구보다 이재에 밝은 정규직 은행원 1만 명의 양보를 이끌어 낸 것은 더 큰 정치적 이해관계를 가진 배후 집단의 용의주도한 결정이라는 상상이었다.
혼자서 잠깐 해 본 상상이지만 이런 상상을 한 것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에 대한 막연한 고정관념과 비정규직 문제를 둘러싼 정치적 지형 탓도 있었다. 근거도 없이 이런 정도의 상상을 한 것은 어디에서도 우리은행 비정규직의 경험과 선택을 정부, 기업, 노조가 어떻게 존중하고 귀 기울였는지 알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사랑은 주고자 하는 사람이 주고 싶은 대로 주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원하는 대로 해주는 것이라고 한다. 진정 무엇을 어떻게 받기를 원하는지 제대로 살펴보지도, 묻지도 않고 주는 사람 형편대로, 주고 싶은 대로 주면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독단적이고 이기적인 사랑법일 것이다.
감추고 싶거나 무관심하거나…
우리가 비정규직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에서 가장 간과하고 있는 것이 바로 비정규의 목소리를 구체적으로 듣지 않는 것이다. 뭉뚱그려진 비정규직의 목소리는 절규하는 여성의 소리처럼 느껴지지만 구체적으로 그 소리를 누가 왜 내고 있는지 현장에서도, 바깥에서도 들어야 하고 들려야 한다.
지난 8일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주최한 '공공부문 비정규 대책, 과연 여성에게 평등한가'라는 제목의 토론회가 열렸다. 이 토론회에서 조순경 이화여대 교수는 문제의 핵심을 '감추고 싶거나 무관심하거나'로 압축해서 표현했다. 비정규직 가운데서도 사각지대라고 할 수 있는 여성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드러내고 싶지 않았거나, 아니면 아예 여성 비정규직 문제에 무관심하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비정규 문제와 관련하여 가장 인정하기 싫고 불편한 현실은 비정규 여성의 구체적인 목소리를 듣고 싶지 않거나, 안 들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 동안 노조에서조차 자기 목소리를 내기 힘들다고 하는 비정규 여성의 구체적인 경험과 요구의 소리를 좀 더 의식해서 들으려고 해야 할 것이다.
비정규 여성들은 누구 못지 않게 할 말을 많이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 글 중에 혼자서 해본 엉뚱한 상상을 적었는데 그 상상이 잘못된 짐작에 기초한 것이라고 느껴진다면 듣고 싶은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은 탓에 그랬겠거니 하고 양해해주기 바란다.
고인이 된 김현 선생이 <예술기행>이라는 책에 '나는 할 말을 많이 가지고 있다. 그러나 내가 쓰는 글은 이 따위 가을수필 같은 것이다'는 구절이 있다. 나 역시 비정규 여성들에 대해 할 말이 많다고 외치고 싶다. 그러나 내가 쓰는 글은 들리지 않는 목소리에 대한 엉성한 변호와 상상에 대한 양해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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