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전은 외견상 미국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난 듯 보이나, 3백여명의 사상자를 낸 지난달 29일의 나자프 폭탄테러에서 알 수 있듯 이라크전은 아직 '진행형'이다. 이렇듯 이라크 정황이 갈수록 불안정한 가운데 현지의 상황과 정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책이 한권 나왔다.
관심을 끌고 있는 <이라크에서 온 편지(한국이라크반전평화팀 공저, 박종철출판사)>는 이라크전이 발발하기 전부터 직접 이라크에 들어가서 반전평화활동을 벌였고 종전 후에도 지난 7월말까지 현지에서 전쟁난민에 대한 구제사업을 펼친 국내 평화운동가들의 일기와 기록을 모은 책이다.
***"멈춰라, 물러서라, 네가 얼마나 급하든 내 알 바 아니다"**
<사진1-미군대치>
이 책은 미국의 일방적인 선전포고로 시작된 전쟁이 결국 이라크 민중의 무고한 희생 속에서 끝이 났지만, 아직까지 미군에 의한 폭력적인 통치는 계속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또 전쟁 속에서 생명과 일상을 빼앗긴 수많은 이라크 사람들이 전쟁 후에도 기아와 질병 그리고 미군과 여러 정치세력들의 폭력 속에 시달리고 있는 모습을 사진과 일지를 통해 생생하게 알려주고 있다.
이 책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전쟁이 끝난 후 '패전국' 이라크 국민들과 '승전국' 미국 군인들의 상반된 모습을 묘사한 대목이다.
"바그다드는 서서히, 그러나 힘겹게 살아나고 있습니다. 이 전쟁의 승자가 누구인지 다시 한번 묻고 싶습니다. 사담 후세인 패거리는 이라크 국민들을 계란 한 알조차 아쉬운 피폐와 참화 속에 남기고 도망쳤고, 미국 역시 삼주가 넘도록 마비된 사회 제반 시설을 복구하기는커녕 탱크로 시내를 종횡하고 있을 뿐입니다. 탱크가 방향을 틀 때마다 무쇠 바퀴에 보도블록들이 와자작 깨져 나갑니다. 공습으로 인한 파괴에 비교할 수야 없겠습니다만, 그들이 오래 머물수록 역사 싶은 이 도시는 더 긁히고 금이 갈 것입니다.
'멈춰라, 물러서라, 네가 얼마나 급하든 내가 알 바 아니다.' 이것이 미군들이 이라크 민중들에게 외치는 유일한 세 마디입니다. 그것도 영어로 말입니다. 이라크 민중해방을 위해 여기 왔다면, 미군은 전쟁 직후 이라크인들의 일상이 돌아가게끔 대책까지 갖고 와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관심이 없습니다." (2백16쪽)
***참담한 경제현실**
<사진2-책>
이 책은 또 전쟁이 끝난 후 서방언론이나 TV가 전후에 대부분 정상을 회복한 것으로 묘사한 바그다드의 시장과 상가들의 '사실'이면에 숨어 있는 끔찍한 경제상황의 '진실'을 담담하게 들려준다.
"기름바다 위에 있다는 이 나라 백성들이 차에 기름을 넣기 위해 주유소 앞에 장사진을 치고, 전기가 귀해 밤에 호롱불을 밝히고, 가스가 없어 나무와 조잡한 석유 버너로 음식을 끓이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버너가 터져 화상을 입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시장에는 야채와 과일이 등장하고 케밥을 굽는 연기도 다시 솟아나지만, 모든 것이 두 배는 가격이 올랐습니다.
거의 모든 남자들이 직장을 잃었으므로, 피부 물가는 네 배, 다섯 배 이상이고 계속 올라갈 것입니다. 사람들은 혹시라도 일거리를 찾을까 해서 온통 거리로 쏟아져 나와 헤매다가, 이것이 그토록 바라던 자유냐고 울분을 터뜨립니다." (한 평화운동가의 5월5일 일기)
또한 서구 언론의 시각에 이미 동화돼 전쟁 중에 어렵게 연결된 국제전화로 "이라크 사람들이 얼마나 다쳤는지, 그들이 어떻게 느꼈는지"를 묻기보다는 "거기 마지막 공습이 몇 시지요?"라고 물었다는 국내 'ㅈ일간지'의 태도 등을 통해 전쟁을 대하는 언론의 선정성인 속성을 비판하기도 한다.
***"누가 승자입니까"**
미국이 전쟁 직전과 개전초기에 '대량살상무기'를 전쟁의 구실로 삼았다가 '독재가 몰아내기'로 목표를 바꾼 것이 얼마나 허약하고 명분이 없는 논리인지를 이라크 주민들의 정서를 소개하며 알려주기도 한다.
"사담 후세인이 밀려난 거 분명히 잘 됐습니다. 전투에 지기 전에 그는 이미 부패한 권력의 냄새나는 강시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담 이후 미국을 등에 업은 정권이 들어선다면, 그건 이라크 민중의 해방과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전쟁이 끝난 지금도 미군은 지나간 전쟁을 합리화할 수 없습니다. 전투에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승자가 아니며, 사담을 증오했으나 미국을 원치 않았던 이라크 민중은 더군다나 아닙니다. 누가 승자입니까?" (한국 이라크반전 평화팀 오수연)
이렇듯 이 책은 그동안 서구 특파원들이나 국내언론이 왜곡한 시각이 아닌 현지에서 직접 경험하고 느낀 이라크 전쟁과 전후의 상황을 잘 전해주고 있다.
<사진3-이라크어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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