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간 중동에서 발생한 테러 가운데 최악의 차량폭탄테러가 이라크에서 발생, 시아파 최고 지도자를 비롯해 최소 1백25명이 사망했다. 최근 연이어 폭탄테러가 발생하면서 미국과 영국이 책임지고 있는 이라크는 통제 불능 상태라는 비난이 제기되는 등 이라크 사태는 더욱 혼란 속으로 깊숙이 빠져들고 있다.
***이라크 시아파 성지에서 시아파 성직자 테러로 사망**
29일(현지시간) 이라크 중부 도시 나자프에서 사담 후세인 정권이 무너진 이후 최악의 차량 폭탄테러가 발생해 이라크 시아파 최고 지도자 모하메드 바키르 알-하킴을 비롯 최소 1백25명이 숨지고 1백42명이 부상당했다고 CNN 등 주요 외신들이 보도했다.
이날 발생한 폭탄테러는 지난 10년간 중동에서 발생한 최악의 폭탄테러이며 8월 들어 발생한 세 번째 폭탄테러다. 또 지난 4월 9일 바그다드 함락 후 이라크에서 하룻만에 발생한 인명피해 규모면에서 최대를 기록했다.
이번 차량폭탄테러는 바그다드 남쪽 180km 떨어진 나자프에서 발생했는데 이 곳은 세계1억2천만 시아파 이슬람교도들의 3대 성지 중 한 곳이다. 이날 정오 나자프의 이맘 알리 사원에서 ‘이라크 단결과 아랍국가의 전후 복구 지원을 촉구’하는 내용의 주례 설교를 마친 알-하킴이 추종자들과 함께 자신의 차량을 향해 가던 중 발생했다.
폭발 후 3대의 차량이 파괴된 채 사원 주변에 널려 있었고 예배를 마치고 몰려나오던 신도와 주민들이 많아 사망자가 늘어났으며 폭발로 사원 정면 도로에 직경 1.5m 크기의 구멍이 파졌다고 AP 통신이 전했다. 한편 폭발이 발생한 후 미군 대변인은 폭발이 폭탄에 의한 것이라고 확인했다.
이날 테러로 숨진 알-하킴은 그동안 ‘이라크의 호메이니’로 불리던 인물로 대표적 반체제 단체인 이라크이슬람혁명최고위원회(SCIRI) 의장을 맡아 왔다. 그는 후세인 정권에 반대하다 지난 80년 이란으로 망명, 20여 년간 이란 생활 동안 서방의 개입없는 후세인 정권의 붕괴를 지원한면서 사담 후세인 정권에 맞서 반정부 투쟁을 벌이다 지난 5월 귀국했다.
***“하킴은 반역자”**
아직 테러를 저질렀다고 주장하는 단체는 나오지 않은 가운데 미 군정이 세운 이라크과도통치위원회(IGC) 위원인 아흐마드 찰라비 이라크국민회의(INC) 의장은 “지난 19일 유엔본부에 폭탄테러를 공격한 자들이 이번 테러를 저질렀다고 주장”하며 테러로 숨진 알-하킴을 “전후 이라크 평화를 위해 숨진 순교자”라고 애도했다. 테러 직후 시아파측도 수니파를 중심으로 한 사담 후세인 전대통령의 추종 세력 소행이라고 비난했다.
또 레바논 유력 일간지 안-나하르의 발행인 지브란 튀에니는 하킴 암살과 관련해 시아파 내부의 헤게모니 투쟁이나 후세인 구정권 잔당의 소행일 것이라고 추정하고 그의 죽음으로 "이라크 국내 상황이 더욱 취약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두바이의 저명한 수니파 성직자 셰이크 아흐메드 알-쿠베이시는 후세인의 추종자들이 이번 테러를 자행했다고 보지 않는다며 "외부 세력들"의 소행일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AP통신은 “이맘 알리 사원과 종파내 주도권을 장악하려는 시아파 단체들간 권력투쟁이 하킴의 희생을 초래했다”고 본다는 현지시각을 전했다.
하킴이 이끌어온 SCIRI는 이라크 국민가운데 60%를 차지하고 있는 시아파 단체 가운데 세 번째 유력한 단체로 미군정에는 반대하면서도 SCIRI는 다른 시아파 단체들과는 달리 폴 브리머 최고행정관이 주도하는 이라크 과도통치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다.
하킴은 이라크 과도통치위 순번의장 9명중 한명으로 선출된 압델 아지즈 알-하킴 SCIRI 부의장의 형이며 그 자신도 과도통치위에 참여하고 있다. 하킴은 이 때문에 경쟁 시아파 단체들로부터 미군에 부역하는 ‘반역자’라는 비난을 받아왔고, 이날 발생한 폭탄테러의 배경이 됐을 것이라는 추정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후세인 정권 붕괴 후 이라크 시아파는 주도권과 향후 노선을 놓고 각축을 벌여왔는데 1주일 전에도 하킴의 삼촌이며 역시 시아파 성직자인 사이드 알-하킴을 노린 폭탄테러로 경호원과 운전사가 목숨을 읽었다. 이 당시 SCIRI 지지세력들은 미군의 이라크 주둔에 반대하는 라이벌 시아파가 저지른 공격이라고 비난한 바 있다. 하지만 아직 다른 시아파 단체가 이날 테러에 책임이 있다는 분명한 증거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라크 치안을 책임지고 있는 미군에 대한 비난 고조**
한편 이번 폭탄테러는 “점차 폭력이 난무하고 있는 이라크를 진정시키려는 미국의 노력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고 AP통신은 전망했다.
찰라비 의장도 알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미군이 알-하킴 암살에 책임이 있다고는 하지 못하지만 연합군은 이라크 안보를 책임지고 있다”면서 미군에 일단의 책임을 물었다.
이란 정치 분석가인 모라드 베사이도 “이 사건은 이라크 단결에 타격이 될 것이며 이라크가 선거를 준비하는 시점에서 시아파가 이라크의 미래에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하면서 ”미국은 적절한 안보를 제공하지 못한 데 대한 비난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지난 열흘 전 세르지오 비에이라 데 멜루 유엔특사 등 23명의 목숨을 앗아간 바그다드 유엔본부 폭탄테러에 이어 발생한 이번 테러 당시에도 미국에 제대로 이라크 치안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난이 제기된 바 있었으나 이번 테러로 그 의문은 보다 심각하게 제기될 것으로 전망된다.
***유엔도 철수 방안 고려. 美 이라크 늪에 더욱 빠져드는 형국 **
유엔도 잇따른 폭탄테러로 이라크에서 직원들을 철수시키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미국에 대한 불만은 더욱 높아갈 것 것으로 보인다.
익명의 한 유엔 관리는 “유엔 내부에서 우리가 (이라크)상황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고 생각할수록 우리는 그곳에서의 임무를 지속하는 것이 안전하지 여부에 대해 의문이 늘어간다"고 말했다고 AP 통신은 전했다. 또 유엔본부의 또 다른 고위 외교관도 "유엔이 이라크에 체류할 지 확실치 않다"고 전했다.
최근에는 국제적십자사도 이라크에서의 활동을 보류하고 철수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이라크에서 구호활동을 벌이고 있는 스페인 평화군축자유단체는 이미 철수한 것으로 알려져 이라크의 앞날에 대해서 많은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미국 국민들도 점차 이라크에서의 미군 활동에 대해 우려를 표시함에 따라 압박을 받고 있는 미국 정부로서는 이번 테러로 더욱 이라크 수렁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은 듯한 형국이다. 부시의 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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