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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 두 개의 심장 달고 다시 뛰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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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 두 개의 심장 달고 다시 뛰어라!"

[별을 쏘다⑧] 월드스타, 모기, 그리고 돌쇠

지난 4월 28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의 박지성이 4월 1일 블랙번 전에서 당한 무릎 부상으로 미국 콜로라도에서 연골 이식 수술을 받았다는 소식이 국내에 긴급 속보로 전해졌다.

거의 한 달여 동안 그의 부상을 둘러싸고 부상 정도와 복귀 시기, 팀내 정황 등과 관련된 각종 루머들이 난무했지만, 결국 시즌 아웃과 수술 후 재활이라는 최악의 상황이 초래되고 말았다. 그와 절친한 정경호 선수와의 전화통화에 따르면, 박지성은 이미 일 주일 전쯤 무릎 부상이 심각하다는 것을 구단으로부터 통보받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언질도 받았다고 한다. 올 시즌 왼쪽 발목 부상으로 3달 간 결장을 하고 피치 위에 복귀해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었던 터이고, 소속팀 맨유가 1999년 이래 다시 도전하는 꿈의 '트레블' 위업을 달성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시점에서 청천벽력과도 같은 수술 통보이니 그 스스로도 이 상황을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차범근 이래 최고의 '월드스타', 그를 분석한다

피치 위에서 가공할만한 활동량 때문이었을까, 그는 그동안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렸지만, 매번 재활과정을 거쳐 더 좋은 상황을 만들어 왔다. 2003년 'PSV 아인트호벤'(이하 PSV) 시절 부상을 딛고 재활에 성공해 다음 해 팀의 리그 우승과 FA 우승, 챔피언스 리그 4강의 주역이 됐고, 작년 연말에는 왼쪽 발목 부상으로 3개월 재활 후 리그 10경기에서 5골과 2어시스트라는 발군의 기량을 보였다.

다시 지루하고 기나긴 부상 재활 치료에 나서는 그의 미래는 과연 어떻게 변할까? 그의 부상이 소속팀뿐 아니라 국내 축구팬과 미디어, 그리고 아시아 축구계에서 초미의 관심사가 될 정도인 점으로 미루어 볼 때 그가 쌓아 온 명성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1970년대 독일 분데스리가를 주름 잡았던 차범근 이래 한국 축구의 월드스타로 대를 잇는 박지성의 축구 스타일은 어떤 특이점을 갖고 있을까?

"박지성이 누구야?"…2002 월드컵 평가전
▲ 2002년 포르투갈 전 당시 박지성 ⓒ연합뉴스

작은 키와 연약한 체격으로 수원공고 시절까지 별다른 각광을 받지 못하던 박지성은 고3 때인 1998년 전국체전에서 우승의 주역으로 떠오르면서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 뒤 그는 명지대에 입학했고, 수원공고 시절 감독이었던 이학종 감독이 허정무 감독에게 박지성을 강력 추천해 2000년 올림픽 대표팀에 발탁됐다. 그는 올림픽 대표팀 데뷔전에서 득점을 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명지대 2학년 때, 그는 일본 J2 리그의 '교토 퍼플상가'로 이적한다. 그의 이적 후 교토 퍼플상가는 그해 2부 리그에서 1부 리그로 승격하는 감격을 누린다. 올림픽 대표팀에서 활약하면서 2000년 6월 마케도니아와의 친선 전에서 A매치 데뷔 골을 터뜨린 후 그는 지금까지 A매치 57경기에서 5골을 기록했다.

박지성의 진가가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2002년 한일월드컵'이 개최되기 직전 유럽 최고 팀과의 평가전에서다. 그는 월드컵 한 달 여를 남겨두고 가진 잉글랜드와의 경기에서 동점골을 터뜨리고, 프랑스 평가전에서도 30m 중거리 선제골을 터뜨렸다. 한국의 축구팬들이 "박지성이 누구야?"라고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도 이 두 경기에서의 맹활약 덕분이었다.

"박지성은 귀찮은 '모기'다"

박지성은 김남일, 송종국과 함께 히딩크의 애제자 3인방으로 알려지면서 한국 축구의 차세대 영웅으로 인지됐다. 한일월드컵 마지막 예선경기였던 포르투갈 전에서 터뜨린 결승골은 새로운 영웅탄생의 대관식이었다.

월드컵이 끝난 뒤 그는 스승 히딩크와 함께 PSV로 자리를 옮겼다. 이적 직전 2003년 1월 1일 교토 퍼플상가는 일왕배 결승전에서 가시마 앤틀러스와 결승전에서 맞붙게 됐다. 당시 계약 시점이 종료된 상태였기 때문에 뛰지 않아도 될 그였지만, 구단의 간곡한 부탁에 결승전에 출전해 동점골을 넣고 종료 직전 역전골을 어시스트해 교토 퍼플상가가 창단 후 첫 우승을 하는 데 일등 공신이 됐다. 2002-2003년 시즌 겨울 이적 시장에서 PSV로 옮긴 박지성은 시즌 내 8경기를 뛰었지만, 득점을 기록하지 못하고 그해 3월 부상만 당한 채 유럽 데뷔의 대가를 혹독하게 치러야 했다.

그러나 회복한 박지성은 2003-2004시즌에서 6골, 2004-2005 시즌 7골로 팀의 리그 2연패의 주역이 됐다. 2004-2005 시즌 챔피언스 리그에서 맹활약한 그는 'AS 모나코'와의 16강전, '올림피크 리옹'과의 8강전, 'AC밀란'과의 4강전에서 눈부신 활약으로 빅 리그 스카우터들로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특히 AC밀란과의 4강 2차전에서 터뜨린 선제골은 맨유로 이적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당시 4강전 상대팀 미드필더였던 젠나로 가투소는 박지성을 정말 귀찮은 '모기'로 비유했을 정도다.

"맨유에서 그를 원한다"…새벽의 주인공으로
▲ 퍼거슨 감독과 박지성 선수 ⓒ연합뉴스

2005-2006 유럽 리그 시즌이 열리기 전 박지성이 맨유로 이적한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사실 '한국 최초의 프리미어리거'로는 모든 이들이 이영표를 지목했다. 이미 유럽리그에서 왼쪽 욍백으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 이영표가 유럽 빅 리그로 이적한다는 것은 거의 기정사실이었지만, 박지성이 빅 리그로, 더군다나 세계 최고 구단 중 하나인 '맨유'로 이적한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필자 역시 처음엔 헛소문을 만드는 국내 언론의 낚시감으로 생각했지만, 마침내 박지성은 맨유의 올드 트래포드로 이적했다. 히딩크 역시 '맨유에서 박을 원한다'는 스카우터의 이야기를 듣고 처음에는 무척 놀랐다고 했다. 그러나 퍼거슨 감독은 이미 그의 경기를 비디오를 통해 수십 차례 보았고, 그를 맨유의 미래에 필요한 능력을 가진 선수로 낙점했다.

이적 당시 박지성이 과연 주전급으로 뛸 수 있을까에 대한 우려가 많았다. 맨유는 2002-2003 시즌 우승을 끝으로 '팀 리빌딩 작업'의 일환으로 팀의 간판이던 베컴을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시키고 노쇠한 로이 킨을 대체할 선수들을 찾았지만 실패를 거듭했다. 맨유는 퀸틴 포춘, 디에고 포를란, 베론, 클루이베르손, 에릭 젬마 젬마를 영입했지만 1년을 버티지 못하고 타 팀으로 이적하고 말았다.

많은 국내 네티즌들은 '박지성도 이들의 전철을 밟을 것'이란 회의감을 보였지만, 그는 맨유 이적 첫 해에 리그에서 28경기를 뛰면서 1골 7 어시스트로 제몫을 다했다. 퍼거슨 역시 박지성의 영입을 "팀의 장기 리빌딩을 위한 투자, 미래의 주역"이라고 언급하며 만족감을 나타냈다. 그리고 2006-2007 시즌 그는 부상 공백에도 불구하고 꾸준한 활약과 향상된 득점 능력으로 점점 맨유의 주축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2000년 이후 빅 리그 빅 팀에서 어느 정도 활약하는 아시아 선수들('AS 로마'의 나카타, '바이에른 뮌헨'의 알리 다에이, 알리 카리미 등)은 간혹 있었지만 박지성처럼 두 시즌 연속으로 주전급으로 활약한 이는 없었다. 그는 이제 한국을 넘어 아시아를 대표하는 월드 스타가 됐고, 매주 한국 축구팬들이 잠 못 이루는 새벽의 주인공이 됐다.

"그는 이곳, 저곳, 그리고 모든 곳에 있었다"

박지성이 맨유와 같은 정상급 팀에서 뛸 수 있는 요인은 무엇일까? 그의 플레이 스타일은 어떤 창의성을 갖고 있을까? 최근 프리미어 리그에서 활약하는 내용만 놓고 보면 다음 세 가지 특성을 언급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는 그의 왕성한 활동력. 지난 1월 14일 아스톤 빌라와의 리그 23차전에서 박지성은 시즌 첫 골을 기록하고 이어 마이클 캐릭에게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시즌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후반 20분 루이 사아와 교체될 때 올드 트래포드를 찾은 맨유 서포터들은 박지성의 교체 때 모두 기립 박수로 환영했다. 게임 리뷰에서 <맨체스터 이브닝>은 그의 활약을 "이곳, 저곳 그리고 모든 곳에 있었다(here, there, and everywhere)"라고 일갈했다.

중요한 점은 지역 매체가 그의 득점과 어시스트를 칭찬하지 않고 피치의 '좌우' '상하'를 넘나들며 끊임없이 볼을 향해 전진하는 활동력을 높이 샀다는 점이다. 박지성은 상대방에게는 귀찮은 '모기' 같은 존재지만 자기 팀에게서는 상대 선수에게 공간을 열어주고 빈곳을 적절하게 커버하는 성실한 '돌쇠' 같은 존재다. 퍼거슨이 박지성을 팀 리빌딩의 주역 중 하나로 지목한 것은 바로 그의 지칠 줄 모르는 '공간 커버', '공간 창출' 능력 때문이었다. 박지성의 수술과 시즌 아웃이라는 소식을 접했을 때 맨유의 팬들이 그의 지칠 줄 모르는 피치 활주력과 공간커버 능력을 아쉬워했던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중앙돌파와 공간창출…그만의 생존력

두 번째. 측면 공격수로서 박지성은 돌파와 크로스라는 윙어의 기본 능력 이외에 중앙돌파와 공간창출 능력을 추가로 겸비했다는 점이다. 보통 윙어의 교과서로 불리우는 긱스는 드리블 능력과 정확한 크로스, 베컴의 경우에는 크로스와 프리킥 능력을 높이 평가받았다. 호날두는 마무리 슈팅 능력까지 겸비해 현존 최고의 윙어 선수로 인정받고 있다.

그럼 박지성은? 사실 그의 드리블과 크로스 능력이 리그 최고 수준이라고 하기엔 부족한 면이 많다. 그는 긱스와 베컴처럼 전문 드리블러나 크로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가 윙어로서 나름의 생존력을 갖는 것은 중앙돌파와 공간창출 능력 때문이다.

박지성이 맨유 입단 이래 최고의 경기를 보여줬던 2005년 10월 2일 플럼과의 리그 7차전. 그는 1대 0으로 지고 있던 전반 16분에 상대 진영 오른쪽에서 볼을 잡고, 중앙으로 40m를 드리블해 상대 수비수 4명을 돌파한 끝에 PK를 얻어냈다. 이 장면은 중앙 돌파형 윙어의 전형을 보여준다. 박지성의 플레이를 아스널의 패트릭 융 베리와 비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측면 미드필더들은 측면만 돌파하는 것이 아니라 중앙에 틈이 생기면 사정없이 돌파해 공간을 열어줘야 한다. 박지성은 스스로 드리블 하는 것뿐 아니라 간결한 볼 터치에 따른 신체 전환 능력으로 리그 최고의 수준에 이르고, 스스로 공간을 찾아서 뛰는 능력들도 다른 윙어들이 겸비하지 못한 것이다. 그가 마지막 골 결정력만 좋았다면 리그에서도 상당한 득점을 올렸을 것이다.

피치 위의 '돌쇠'…그의 겸손함이 그를 지탱할 것
▲ 박지성 선수 ⓒ연합뉴스

마지막으로 스타답지 않은 박지성의 겸손함과 성실함이 리그의 오랜 생존을 가능케 할 것이다. 간혹 탁월한 실력을 가졌지만 자기관리 능력 문제로 일찍 피치 위 명성을 잃는 선수들도 많다. 최고의 스타였던 베컴과 반 니스텔루이가 퍼거슨의 눈 밖에 난 것도 팀을 먼저 생각하지 않는 이기적인 행동 때문이다. 리버플의 크래익 벨라미, FC 바르셀로나의 클루이베르트, 뉴캐슬 유나이티드의 엘런 시어러, 키어런 다이어 등 시대를 풍미한 선수들이 말년에 좋지 않은 것은 모두 팀보다 개인을 먼저 생각한 이기심 때문이었다.

'악동 계열'에 속하는 선수나 개인플레이에 의존하는 선수들은 결국 성적으로 모든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팀을 위해 헌신적으로 희생하는 선수들은 언제나 팬들로부터 오랜 사랑을 받는다. 1980년대 레딩의 감독이었던 스티브 코펠이 비록 조기 부상으로 선수 생활을 접어야 했지만, 박지성과 같은 성실한 플레이로 맨유팬들로부터 지금까지 사랑을 받고 있다.

최근 부상당한 박지성의 대안으로 블랙번 로버스의 왼쪽 윙어 페데르센이 적절한가에 대한 <맨유팬포럼> 내 논쟁이 있었다. 대부분의 맨유팬들은 페데르센이 크로스 능력은 좋지만 피치 위를 엄청나게 뛰어다니며 궂은 일을 하는 박지성의 성실함에 비하진 못할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가 만일 맨유에서 뼈를 묻는 선수가 된다면 아마도 맨유 팬들에게는 맨유 역사상 가장 성실한 선수 중의 하나로 기억될 것이다.

기나긴 재활 훈련…돌아올 그를 기다린다

박지성은 이제 기나긴 재활 훈련을 감당해야 한다. 올 7월에 있는 아시안컵에도 결장하게 됐다. 다음 시즌과 그 이후를 생각해보면 아시아 대전을 피하는 것이 차라리 나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박지성의 부상은 원거리 시차를 감내하며 무리하게 국가대표 경기에 출전한 데 따른 피로 누적이 한 원인으로 지적될 수 있다. 친선 경기에 굳이 리그에서 살벌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선수를 호출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어쨌든 박지성의 복귀는 8월 초 수술 경과 재검사를 통해 결정될 것이다. 수술 상태가 좋으면 3개월 간 재활기간을 거쳐 빠르면 10월 초에 복귀하고, 만일 상태가 좋지 않으면 6개월 정도의 재활이 필요할 것이다.

박지성은 뛰어난 활동량 때문에 '두 개의 심장'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이 별명은 유벤투스의 중앙 미들필더인 파벨 네드베드의 별명과도 같다. 중원을 휘저으며 강력한 중거리 슛과 킬링 패스로 명성을 날린 네드베드 역시 부상으로 고생한 적이 많아 박지성과 비교될 만하다. 지칠 줄 모르는 체력과 공을 포기하지 않는 집념, 그리고 공간을 찾아 뛰어다니는 "두 개의 심장을 가진" 박지성의 플레이를 다시 피치 위에서 볼 수 있을 날을 손꼽아 기다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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