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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노조는 모두 공갈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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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노조는 모두 공갈범?

[일과 희망③]'건설업 노사관계 정책' 전면 재검토할 때

지난 4월 5일 대구고등법원에서 상당히 주목되는 판결이 나왔다.

대구·경북지역건설산업노동조합의 간부들이 집단·흉기 등 상해·폭행·감금·재물손괴·주거침입 등을 범해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특수공무집행방해·업무방해·공용물건손상·일반교통방해·공갈죄 등 형법 위반,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등으로 기소된 형사사건에 관한 판결이었다.

이게 노동 사건인지, 조폭 사건인지…

이 사건에 적용된 죄명을 보면 이것이 과연 노동사건인지 조직폭력배의 범죄사건인지를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현란한 죄명이 붙어져 있었다. 일반적으로 이른바 불법파업을 했을 때 적용되는 대표적인 형벌조항으로서 악명높은 것은 업무방해죄인데, 여기에서는 특이하게 공갈죄가 적시돼 있었다.

검찰의 주장은 이렇다. "건설노조 노조간부들이 2003년부터 2005년까지 대구, 경북 지역의 아파트 등 건설공사 현장에서 매월 수십만 원씩 노조 전임자 활동비 지급을 해달라는 내용이 담긴 단체협약을 요구했다. 또는 단체협약 체결 없이 돈을 보내줄 것을 요구하고, 그것에 불응하면 사법기관에 고발하거나 공사를 방해한다고 협박했다. 이에 겁을 먹은 현장소장 등이 단체협약을 체결했고 노조 전임비 명목으로 또는 단체협약을 체결하지 못했을 경우 행사지원비 명목으로 총 2억1840만 원을 지급했다. 이는 '금품갈취'로 '공갈죄'에 해당한다."

사실, 유사한 사건은 과거에도 여러 번 발생했었다. 2003년에도 대전·충청지역 건설산업노동조합의 간부들이 유사한 내용으로 구속된 적이 있다. 또 지난해만 하더라도 수원지검이 경기도 건설노조에 대해 "원청을 협박해 단협을 체결했다"며 노조간부를 구속하기도 했다. 이에 경기도 건설노조의 조합원들은 지난해 8월 올림픽대교 위의 75m 상공 주탑에서 44일간 고공시위를 벌였다. (☞ 관련기사 보기 : '억울해' 시작한 올림픽대교 농성, 44일만에 마무리, "아빠, 십자수 해놓을테니 빨리 오세요", "딸 생각에 가슴아프지만 이대로는 못 내려가")
▲ 경기도 건설노조 관계자들은 지난해 올림픽대교 위에서 40여 일 동안 고공시위를 벌였다. 사진은 고공시위 해제 직후 '땅 위'로 내려온 시위관계자들과 노조 인사들. ⓒ프레시안

건설노조에 '공갈죄' 적용하는 검찰의 논리는?

유독 건설산업 노동조합 간부들이 다른 죄명도 아닌 공갈죄라는 파렴치범으로서 구속·처벌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검찰의 논리는 "건설산업의 원청회사와 일용직 건설근로자 사이에는 근로계약관계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원청회사는 이들 건설근로자로 조직된 노동조합에 대해서 단체교섭의 의무를 부담하지 않는다"며 "따라서 노조가 단협 체결을 강요하는 것은 공갈죄에 해당한다"는 방식으로 이뤄져 있다. 여기서 핵심적인 쟁점은 '단체교섭의무를 부담하는 자가 누구인가'가 된다.

지금까지 법원은 단체교섭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자는 조합원과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있는 자에 한정된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유지해 왔다. 이런 판례 입장으로 인해 원청사용자, 파견근로에서의 사용사업주 등이 근로자의 임금, 근로시간 등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인 결정권을 가진다고 해도 형식적인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단체교섭의 의무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이다. 즉 이른바 간접고용을 하고 있는 사용자는 노조법상의 모든 책임을 면하게 된다.

사정이 이러하면 사용자가 노조법상 책임을 피하기 위해 엉성한 법리를 이용할 유혹을 느끼는 것은 오히려 인지상정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실질적으로는 작업통제, 지시 등 사용자로서의 역할을 완전하게 수행하면서도 형식적으로 근로계약만 체결하지 않고 다른 법형식을 이용하면 사용자 책임을 완벽하게 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라를 이롭게 하는 방법을 묻는 왕 앞에서 "왜 왕은 하필이면 이롭게 하는 방법을 묻느냐, 인의가 있을 뿐"이라고 설파한 맹자(孟子)가 아닌 이상, 사용자가 이런 눈앞의 이익을 무시하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노동법학계의 대체적 입장 뒤늦게 인정한 법원의 판례
▲ 건설산업의 노사관계는 파업이 벌어지면 항상 극단적으로 치닫는 경우가 많다. 사진은 지난해 여름 포항건설노조가 포스코 본사를 점거했을 때의 모습. ⓒ프레시안

당연하지만 이같은 판례 법리를 찬성하는 입장은 최소한 노동법학계에서는 찾을 수 없다. 노동법학계에서는 '근로기준법상의 사용자'와는 달리 '노조법상의 사용자', 특히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자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당사자만이 아니라 근로조건에 관련된 사항에 대해 결정적인 영향력 내지 지배력을 행사하는 자로 이해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이번 대구고등법원 판결은 학계의 입장을 법원이 사실상 처음으로 명시적으로 수용한 것이다(지난 4월 11일 서울고등법원의 사내하청노조에 관한 판결도 유사한 결론을 취하기는 했지만 엄밀하게 보면 법적인 쟁점에서 차이가 있고, 기본적으로 현재의 대법원 판례 입장을 전제로 하고 있는 서울고등법원 보다는 대구고등법원의 입장이 더 전향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관련기사 보기 : 법원 "원청도 사용자"…간접고용 노동자, 시름 덜까)

이런 대구고등법원의 입장을 앞으로 대법원이 수용할 것인지가 매우 주목된다. 수용한다면 사용자가 굳이 맹자가 돼야 할 필요는 없어질 것이다.

격렬한 대립으로 치닫는 건설노사관계, 건설업의 특수성에서 비롯된다

건설산업의 노사관계는 항상 여론의 주목을 받아 왔다. 파업이 벌어지면 타협지점이 없이 항상 극단으로 치닫는 경우가 많고 사태가 장기화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2002년 여수 지역의 건설일용직노조의 파업, 2003년 포항 건설일용직노조의 파업, 2005년 울산건설플랜트노조 파업, 2006년 포항건설노조파업(☞ 관련기사 보기 : 건설노동자 포스코 점거농성, 9일만에 사실상 종료, 농성은 풀었지만 마음은 안 풀려…, 건설 노동자들이 포스코 본사를 점거한 이유) 등은 언론에서 항상 '사태'라는 명칭을 붙일 정도로 격렬한 대립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건설노조의 간부들은 공갈죄로 처벌된다. 이런 현상은 건설산업의 특수성에서 기인하는 측면이 크다.
▲ 건설산업의 노사관계가 장기간 극단적으로 치닫는 근본적인 이유는 건설업의 이동성, 정확하게 말하면 파동성(fluctuation)으로 인한 고용불안 때문이다.ⓒ프레시안

제조업 등 일반적인 산업에서는 사업장은 그대로 있고 근로자들이 사업장을 찾아 이동한다. 그런데 건설업에서는 사업장 자체가 끊임없이 이동하는 특수성이 있다. 건설근로자들은 특정 지역에 거주하면서 팀장을 중심으로 수시로 해당 지역의 건설현장을 옮겨다닌다. 또 그 근로는 일용 형태로 이루어진다.

이런 건설업의 특수성은 노사관계에서는 두 가지 현상으로 나타난다. 첫째, 건설회사의 입장에서는 상용직으로 건설근로자를 보유할 필요가 없다. 항상 공사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공사가 있을 때마다 공사현장별로 인부를 채용해 사용하면 되기 때문이다. 둘째, 인부는 건설회사가 직접 채용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지역의 전문건설업체 등 하수급업체가 채용하도록 해 사용자 책임을 면하려고 한다.

이번 대구고등법원 판결은 두번째 점에 관한 건설산업의 일반적인 관행을 제도적으로 시정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따라서 이번 판결이 대법원에서도 관철된다면 향후에는 건설노조 간부들이 공갈죄로 처벌받는 일은 없어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경우에도 첫 번째 문제점, 즉 공사가 있을 때마다 공사현장별로 인원을 수시로 채용하는 관행은 시정될 수 없다는 점이다.

건설산업의 노사관계가 장기간 극단적으로 치닫는 근본적인 이유는 건설업의 이동성, 정확하게 말하면 파동성(fluctuation)으로 인한 고용불안 때문이다. 건설경기는 극히 유동적이기 때문에 건설업에서는 항상 노동력의 수급이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건설회사는 불경기에 대비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건설회사가 노동력을 계속적으로 보유할 것을 기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건설업 노동운동은 지역별 노조를 결성해 지역차원의 노동력의 공급을 통제함으로써 적정한 수준의 근로조건을 향상시키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활동해 왔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지역별 노조를 조직해 원청건설회사에 단체교섭을 요구하는 방법으로는 향후 판례가 변경이 된다면(대법원에서 대구고등법원의 판결을 수용한다면) 건설근로자의 근로조건은 일정하게 향상될 수 있겠지만, 일용직인 건설근로자의 고용불안정성까지 해결할 수는 없다.

그렇게되면 결국 건설노조는 '고용불안정성'까지 고려하면서 임금수준을 결정할 것이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건설회사의 지불능력을 넘어서는 임금수준을 요구할 수도 있다. 건설산업에서 분쟁이 장기간 지속될 수밖에 없는 구조로 돼 있는 것이다.

이제는 '건설업의 특수성' 허심탄회하게 인정할 때

건설산업의 특수성은 어느 나라나 동일하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서도 건설일용직근로자의 고용안정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그 중 우리나라 건설업 노사관계에 상당한 시사점을 주는 것이 미국과 캐나다의 사례다.

미국에서는 건설노조와 사용자의 합의로, 즉 단체협약을 통해 노동력공급센터(hiring-hall)를 설치하고 있다. 일용직 건설근로자는 이 노동력공급센터에 등록하고 건설회사가 인력이 필요할 때 건설회사의 요청에 따라 등록된 건설근로자를 노동력공급센터가 공급하는 시스템이다. 이같은 형태로 고용안정성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것이다.

캐나다에서는 특정 지역에서 건설산업 사용자단체의 결성을 법적으로 강제하고, 노동조합이 개별 건설회사 대신 그 지역의 건설회사들과 통일적으로 단체교섭을 한다. 이를 통해 지역 내의 건설근로자의 근로조건을 통일시킴과 동시에 건설노조가 건설근로자를 직접 공급하는 시스템을 채택함으로써 고용안정성과 근로조건 향상을 동시에 도모하고 있다. 이와 같은 단체협약에 의한 방법(미국), 법률에 의한 방법(캐나다)을 통한 특례를 건설업에 인정하는 이유는 건설업의 특수성을 고려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반복적으로 격렬한 갈등이 발생하고 있는 건설산업 노사관계를 근본적으로 개혁하기 위해서는 임시방편적인 접근이 아니라 건설산업의 특수성을 고려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건설근로자의 근로조건 향상만이 아니라 그 배경에 있는 근본적인 문제, 즉 고용안정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방법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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