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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노동유연성 높이는 건 망국의 지름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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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노동유연성 높이는 건 망국의 지름길"

[일과 희망①]"FTA가 가져올 국익에는 조건이 있다"

오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사람은 누구나 일을 하고 있거나 혹은 일하기를 원합니다. 삶과 노동이 떼어 놓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매일 '노동'을 통해 삶을 이어가는 우리는 또 '노동'에 대해 무관심하기도 합니다.

전국 각지의 크고 작은 회사 내에서 벌어지는 노사분규는 세상의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한 채 단지 '그들'만의 일로 묻혀 버리기 일쑤이고, 각종 노동관련 법의 개정 논의도 교육과정을 통해 근로기준법의 내용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는 우리에게는 너무 멀기만 한 말들입니다. "노동자라고 하면 공사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인 줄 알았다"는 한 고등학생의 얘기는 이런 현실을 잘 보여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사회의 대다수가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입니다. '특수고용노동자'라는 어려운 말로 분류되는 보험 설계사는 우리 어머니들의 직업이고, KTX 여승무원들로 잘 알려진 '외주화 용역 노동자'는 매일 아침 마주치는, 회사 건물을 청소해주는 아주머니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렇게 가까이 있는 노동의 문제가 왜 우리에게는 '멀기만 한 얘기'로 느껴질까요? 주간 시리즈 <일과 희망>은 이같은 질문에 답하기 위한 것입니다. 매주 목요일 6명의 전문가가 돌아가면서 집필하는 <일과 희망>은 우리에게 아주 가까이 있으면서도 멀게 느껴지는 노동 문제들을 차분하게 들여다 보고자 합니다. 그들이 풀어놓는 얘기가 2007년 대한민국에서 일하며 살아가는 우리네 일상이 어떤 씨줄과 날줄로 엮였는지를 규명해주고, 나아가 우리 일의 희망을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지를 열어보여주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6명의 필자는 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 소장,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노사관계본부장, 이승욱 이화여대 교수, 정이환 서울산업대학교 교수, 안주엽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주경미 부산발전연구원 여성정책연구센터장(글 싣는 순서)입니다.

하종강 소장이 그 첫 번째 글을 보내왔습니다. 이 연재가 독자 여러분의 일과 희망에 작은 울림이 되기를 바랍니다. <편집자>

DJT에 관한 기억
▲ 노동자들이 정리해고·구조조정·노동유연화에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사진은 지난 2002년 흥국생명 이범준 노조 위원장이 회사의 정리해고를 규탄하며 회사 외벽에 매달려 시위를 벌이는 모습.ⓒ연합뉴스

가물가물한 기억을 떠올려 보자. DJT라는 단어를 기억하는가? 우리 정치사에 일찍이 그런 코미디 같은 시기가 있었다. 김대중, 김종필, 박태준 씨가 한 배를 탔다.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와 자민련 김종필 명예총재, 박태준 총재는 31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오찬회동, 정리해고의 조기 전면도입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정리했다. 3인 회동에서는 부도기업과 부실기업이 속출하는 상황에서 기업을 살리려면 외국기업의 국내기업 인수 외에 방법이 없으며 이에 따라 정리해고도 불가피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한 일간지가 1998년 1월 1일자로 "DJT, 정리해고 불가피"라는 제목 아래 보도한 기사 내용이다. 김대중 당선자는 대통령으로 취임하기도 전에 TV의 <국민과의 대화> 프로그램에 출연해 "전체 근로자 30%를 구조조정해야 나머지 70%의 근로자가 우리 경제를 열심히 살려서 100%가 살아날 수 있다"는 취지의 말을 했고, '국민의 정부' 내내 상시적 기업 구조조정이 진행됐다.

오랜 세월 동안 '빨갱이'라고 지탄 받으며 '색깔논쟁'에 시달렸고 군사독재정권에 의해 사형선고까지 받아야 했을 만큼 진보적이었던 재야인사가 대통령이 된 나라에서 본격적인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시작된 것이다. 그의 저서 <대중경제론>에서 주장했던 '중소기업 입국론' 따위는 집권 기간 내내 'IMF 외환위기'라는 면죄부 아래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그 무렵, 우리 연구소의 연구실장 일을 하고 있는 후배에게 넌지시 이렇게 물어본 적이 있다.

"노동자들이 정리해고 제도에 대해 반대해야 하는 이유를 한번 설명해봐."

평소에도 성질이 팔팔하기로 소문난 '서울노동운동연합(서노련)' 활동가 출신의 열혈 여성인 연구실장은 어이없다는 듯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가 내뱉었다.

"정리해고는 노동자들의 목에 칼이 들어오는 것인데, 그걸 어떻게 받아들여요? 원칙적으로, 운명적으로, 본능적으로 반대해야지. 무슨 말이 더 필요해요?"

나는 그 답을 듣고 또 이렇게 물었다.

"그렇게 말하면 국민들이 노동자 편이 될까? 노동자들이 그렇게 주장하면 국민들이 설득 당할까? 사람들은 지금 '노동자들이 목에 칼을 맞는 희생을 감수해 줘야 우리 경제가 살아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노동자들이 정리해고를 반대하는 이유가 그것뿐이라면, 자신들의 이기적 유익 - 생존권을 위해 결사항전으로 저항한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없다. 사람들은 '국익'과 '국가경쟁력'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 한, 노동자들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노동자들이 정리해고·구조조정·노동유연화에 반대하는 이유가 단지 그것뿐일까?

노동유연성이 국가경쟁력을 높인다?

갈수록 짧아지는 산업주기 속에서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노동시장의 고용 계약 형태가 다양해져야 한다는 주장에는 일리가 있다. 변화에 대처하지 못하면 경쟁에서 낙오될 수밖에 없고 기업뿐만 아니라 노동자 역시 경쟁을 통해 노동력 품질을 향상시켜야 한다는 말도 전혀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런 면에서 '노동시장 유연화' 주장 역시 솔깃하다. 업무에 적합한 지식이나 기능을 가진 사람을 쉽게 구할 수 있는 '기능 유연성'과 인원을 필요한 만큼만 적당하게 투입할 수 있어야 하는 '수량 유연성', 다양한 임금체계에 맞춰 사람을 차등적으로 고용할 수 있어야 하는 '임금 유연성'은 마치 기업을 살릴 수 있는 금과옥조처럼 들린다.

백보 양보해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할 것이 아니라 현재의 정규직들을 모두 비정규직화해야 한다. 선진국들은 대부분의 지식 노동자들이 연봉계약 직이 된 지 오래다. 노동자들도 치열한 경쟁을 통해 업무 수행 능력을 높여야 한다. 그것이 '글로벌 스탠더드'다"라는 주장에 일리가 있다고 일단 가정하자. 경쟁을 통해 노동력 품질이 향상되는 '휴먼 캐피털'은 노동유연성의 중요한 화두다.

유감스럽게도 그런 노동유연화 정책이 그 나라의 경제를 구원한다는 것이 실례로 증명됐다는 게 시장경제주의자들의 주장이다. 사회복지 지출을 대폭 축소하고, 공기업을 민영화하고, 노동조합 단체행동권을 제약한 영국의 '대처리즘'과 사회복지 예산을 대폭 삭감하고, 기업 규제를 완화하고, 공격적으로 노동조합을 파괴한 미국의 '레이거노믹스'가 바로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거론된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선진국 노동시장 유연화는 다르다

효율을 높이거나 품질을 향상시키는 방법으로 '경쟁'만한 것이 없다는 것이 신자유주의자들의 신념이다. "경쟁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한미 FTA를 반대한다"거나 "더 많이 개방하지 못해 아쉽다"는 고위층의 발언은 그런 뜻이다. '대처리즘'이나 '레이거노믹스'를 통해 "기업이 노동자를 자유롭게 해고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가 그 나라의 경제 성장에 기여하고 국가경쟁력을 높인다"는 교훈을 배운 것이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이런 의문을 제기해 보자. 선진국의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이 지금 우리가 추진하고 있는 그것과 같은 것일까? 두 정리해고 제도 사이에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닐까? 다시 말해서, 선진국에서 정리해고 당한 노동자와 우리나라에서 정리해고 당한 노동자는 그 처한 상황이 달랐던 것은 아닐까?

미국의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을 국내의 어느 중앙 일간지가 전면 특집으로 보도했을 때, 커다란 특호 활자로 뽑은 그 기사의 제목은 이랬다. "해고 쉽지만, 재취업 더 쉽다."
▲ 기업이 노동자를 해고하는 유연성이 높아지려면 동시에 해고된 노동자가 기업을 선택하는 유연성이 같이 높아져야 한다. 그래야 노동유연성이 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지 않는다. ⓒ프레시안

미국 정보통신산업의 중심지인 실리콘밸리에서 유행했던 말이 있다. 네 단어로 구성된 '같은 주차장, 다른 사무실'이다. 노동자는 늘 같은 주차장에 주차를 하는데 어제까지 주차장 앞에 있는 회사로 출근하던 사람이 오늘부터는 주차장 뒤에 있는 회사로 출근하더라, 이 사람이 언제 주차장 왼쪽에 있는 회사로 옮길지 아무도 모른다는 뜻이다.

그렇다. 최소한 이렇게 돼야 한다. 기업이 노동자를 해고하는 유연성이 높아지려면 동시에 해고된 노동자가 기업을 선택하는 유연성이 같이 높아져야 한다. 여러 가지 조치도 필요하고 시간도 많이 걸리는 일이며, 노동자의 정서와 문화의 변화도 필요한 일이지만, 고위직에서 해고된 노동자가 다른 기업의 하위직으로 서슴없이 갈 수도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야 노동유연화 정책이 오히려 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지 않고 그 나라 경제에 실제로 기여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노동유연화 정책은 오직 기업이 노동자를 해고하는 유연성만 높아지고 있다. 이런 경우의 노동유연화 정책은 '국익'에 해롭고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린다.

정리해고 당한 노동자가 경쟁력을 갖춰 쉽게 재취업할 수 있도록 해야만 노동자의 구매력도 유지되고 건전한 내수도 창출된다. 그렇게 해야 불황이나 강력한 경쟁 상대를 만나도 견뎌낼 수 있다. 특별히 진보적인 경제학이 아니라 시장경제주의의 시각으로 볼 때 그렇다는 얘기다.

최소한 영화 <대단한 유혹>만큼은 돼야 한다
▲ 최소한 영화 <대단한 유혹>만큼은 돼야 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기업과 노동자를 치열한 경쟁에 내모는 것으로 우리 사회를 선진화하겠다는 야무진 꿈은 그 다음의 일이다. ⓒ연합뉴스

<대단한 유혹>이라는 제목의 영화가 있다. 캐나다 외딴 작은 섬에서 120명쯤 되는 주민이 모두 실직자가 된 뒤, 2주에 한번 나오는 복지수표를 받으면서 근근이 살아간다. 마을 사람들은 이 외딴 작은 섬에 공장을 유치해, 떳떳한 노동자로 살아가고 싶어 한다. 공장을 유치하려면 그 마을에 반드시 의사가 상주해야만 한다는 것이 그 나라의 법이다. 그래야 노동자들의 건강관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그 섬에서 한 달 동안 봉사활동을 한 뒤, 섬을 떠나려고 하는 의사에게 그 마을의 '이장'쯤 되는 사람이 다음과 같이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우리는 8년 동안 복지수표나 바라며 줄을 서 왔어. 자네는 한번이라도 복지수표를 받기 위해 줄 서 본 적이 있나? 자네는 돈도 벌어야겠지만 부끄러움도 벌어봐야 돼. '의사가 없으면 마을도 아니다.' 그게 진실이야. 우리가 의사 한 사람 구해보자고 이러는 게 아니네. 마을 사람 120명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이러는 거라구."

더 이상 줄거리를 이야기하는 것은 욕 먹을 일이겠고,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캐나다 작은 섬의 주민 120명이 어떻게 8년 동안이나 아무 직업도 없이, 아무도 죽지 않고 살아갈 수 있었겠느냐는 거다. 우리나라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 동네 가까운 곳에서 한 엄마가 아이들 셋을 아파트 창밖으로 던져버리고 자신도 함께 목숨을 끊은 사건이 있었다. 나이가 다섯 살쯤이나 됐던 큰 딸아이는 소란을 듣고 아파트 계단으로 나온 동네 아주머니에게 "엄마가 우리를 죽이려고 해요. 제발 살려주세요"라고 호소했다고 한다. 열이 펄펄 끓는 아이를 병원에 데리고 갈 돈 3000원을 더 이상 이웃으로부터 빌릴 수가 없어서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그 엄마가 세 아이를 데리고 남의 동네 고층 아파트까지 찾아가는 동안 마음이 오죽했을까?

영화 <대단한 유혹>에 나오는 사회에서는, 돈을 내지 못해 전기가 끊긴 집에서 촛불을 켠 채 잠들었던 할머니가 불에 타 죽지도 않았고, 돌봐줄 어른이 없는 가난한 어린 아이가 개한테 물려 죽지도 않았고, '긴급생계급여 대상 빈곤층'에 해당하는 가정의 장롱 안에서 네 살배기 아이가 굶주려 숨지고 두 살짜리 동생은 영양실조로 목숨이 위험한 상태로 발견되지도 않았고, 맞벌이 부부가 직장을 구하러 나가면서 밖에서 문을 잠그고 나갔다가 불이 나는 바람에 아이들 셋이 타 죽는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실직한 사람들이 다시 당당하게 노동자가 될 때까지 기업 금고와 부자들 주머니에서 나온 돈으로 8년 동안 먹고 살 수 있었다.

최소한 이렇게 돼야 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기업과 노동자를 치열한 경쟁에 내모는 것으로 우리 사회를 선진화하겠다는 야무진 꿈은 그 다음의 일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당신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국익'에 부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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