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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우회상장 머니게임의 숙주노릇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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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우회상장 머니게임의 숙주노릇했다

[뉴스메이커] 제작가협회 차승재 이사장 한국영화 위기 진단

세상이 하수상하면 만나게 되는 사람이 있다. 차승재 한국영화제작가협회 이사장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평시일 때보다는 전시일 때, 평화로울 때보다는 난세일 때, 단순한 덕담 수준의 대화보다는 뼈있는 비판의 논쟁이 필요할 때, 차승재 이사장은 더할 나위없이 적격인 사람이다. 지금 한국 영화계야말로 딱 그런 때이다. 마침 인터뷰가 진행된 4월 2일 오전 11시에는 한미FTA의 타결소식이 방송뉴스를 타고 있었다. 영화제작가협회는 말 그대로 영화 제작자들, 곧 프로듀서의 연합체다. 영화관련 직능단체들 가운데 영향력이 가장 큰 집단의 하나로 꼽힌다. 차승재 이사장이 취임한지는 3개월째. 차 이사장은 중견 영화제작사 싸이더스FNH의 공동대표로 동국대학교 영화학과 대학원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 사업과 강의, 제협 일을 병행하기가 만만치 않겠다. 어떤 과목을 가르치나? "<재정예산스타일>, <장르간 원작기획> 등이다."
차승재 한국영화제작가협회 이사장 (사진제공: 머니투데이)
- 요즘 영화계가 이상하다. 단순한 하강세가 아니라 판형의 변화가 느껴진다. 전부들 TV외화시리즈나 드라마로 옮겨가는 것 같다. 영화산업의 몰락이 시작되는 전초가 아닐까? "외형적인 측면에서 한국영화의 위기는 극명한 사실처럼 보인다. 해외시장이 급격하게 몰락했고 이로 인해 해외시장을 염두에 두고 과다하게들 올린 제작비 상승을 감당하기 어렵게 됐다. 여기다 산별노조까지 등장했다. 지난 해가 피크였는데 영화가 120편 가까이 제작될 만큼 공급이 과잉됐고 부가판권 시장은 거의 죽어있는 상태다. 예전에는 위기의 징후가 한가지씩 터져 나왔다. 하지만 지금은 한꺼번에 터지고 있다. 한마디로 총체적인 위기라는 의미다." 영화계 들어온 후 요즘이 최대위기로 느껴져 - 한국영화 위기론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영화판 들어오고 나서 느낀 위기의식 가운데 요즘 느끼는 게 가장 큰 것 같다. 한국영화는 앞으로 2~3년은 바짝 힘들 것이다." - 한국영화가 갑자기, 어쩌다가 이렇게 됐나? "어떻게 보면 갑자기가 아니다. 자만했다. 진작에 해외시장을 다변화하도록 노력했어야 했다. 몇 년간 일본에만 치중한데다 나가는 영화 대부분이 흥행에 실패했다. 르네상스, 르네상스할 때 그 성장의 구조 안에서 지나치게 안이한 태도들이었다. 그게 가장 큰 문제였다. 곰곰히 생각해 보면 한국영화산업이 급속하게 발전하는 과정은 우리나라의 자본주의 발달사, 그 기형적인 구조와 닮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계도 정상적인 자본축적의 과정을 밟지 않고 흔히들 말하는 백 도어, 곧 우회상장에만 매달렸다. 모두들 머니 게임의 희생자였다. 영화가 어디 일정한 수익을 계속 낼 수 있는 사업인가. 영화만큼 업 앤 다운이 심한 사업이 어디있는가. 그런 영화사들이 우회로를 택해 전부들 상장을 했으니 증시로 보면 주가 진폭이 엄청난 회사가운데 이런 회사가 또 어디 있었겠는가. 이건 투기에 가까운 투자라고밖에 볼 수 없는 것이다. 영화계가 그런 머니게임의 숙주노릇을 해왔다. 그런 상황이 벌어지게 된 것에 대해 요즘 나부터가 철저하게 반성중이다." - 한국영화산업이 꼭지점을 넘어섰다는 얘기도 있다. "어느 정도는 맞는 얘기다. 플러스 이펙트가 없는 상황이니까. 한국영화가 커질 만큼 커졌으니까. 한해 1,300만짜리 영화가 두편씩이나 나올 정도다. 그런 면에서 보면 변곡점을 지났다고 볼 수 있다." - 위기에 따른 가장 직접적인 결과는 뭐로 나타나고 있나? "당연히 투자자본의 위축, 아니 경색이다. 전세계적으로 흥행의 황금비율, 그러니까 성공:실패의 확률은 7:3이다. 이건 할리우드만이 아니라 인도 같은 곳에서도 적용되는 비율이다. 그러니까 흥행타율이 최소한 3할은 돼야 한다는 얘기다. 한국은 현재 1할5푼이 되지 않는다. 투자율로만 봐도 그렇다. 어느 분야나 투자율이라는 것이 연 10%는 돼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야 투자자들이 투자를 할 마음이 들지 않겠는가. 근데 국내 영화계의 투자율은 10%가 되지 않는다. 투자자들이 지갑을 여는데 인색해진 건 당연한 일이다." - 이걸 어떻게 회복해야 하나? "투자자들이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럴려면 BEP를 맞출 수 있는 구조가 돼야 한다. 또 그럴려면 제작비 사이드를 합리적으로 조정해야 한다." - 제작비를 줄인다면 흔히들 말하는 것처럼 스타들의 몸값, 캐스팅 비용을 줄인다는 것을 말하는가? "꼭 그것만은 아니다. 다운사이징을 해야 할 비용가운데는 캐스팅에 들어가는 것 말고도 인건비 전체가 포함된다. 여기에 제 관계비용, 그러니까 마케팅 비용 등도 포함된다. 그런데 제작비를 합리적으로 조정한다는 의미는 단순히 돈을 줄이고 허리띠를 졸라맨다는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한국영화를 제작하는데 있어서 비용의 정량화, 수치화를 이뤄내겠다는 의미가 더 강하다. 시급으로 얼마하고 하는, 보다 정확한 표준비용 산출법이 있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제작비의 과다한 누수도 줄어들게 될 것이고 비용대비 예상수익에 대한 시뮬레이션도 가능해질 것이다. 한마디로 제작비에 대한 선진화된 개념을 구축하겠다는 것이고 이 일이야말로 제작가협회가 해야 할 일이라고 본다." 지력 회복하기까지는 2~3년의 시간이 걸릴 듯 - 좀 아까 한국영화계가 2~3년은 바짝 힘들 거라고 했는데, 그러면 그 이후는 어떻게 보나? "이 숲이라고 하는 것도 종종 간벌(間伐)이라고 하는 것을 해야 한다. 나무를 솎아서 베어내는 것인데, 이걸 하지 않으면 그 나무는 고목나무처럼 돼버린다. 지금의 일본영화가 그런 형국이다. 고목나무처럼 몇 개의 메이저영화사만이 수십년동안 버티고 있는 모양새. 한국영화계가 그렇게 가면 안된다. 간벌을 하면, 제작비를 줄이고 영역을 넓혀 나가면 2~3년 후 새로운 시대가 올 것이다. 땅에는 지력(地力)이라는 게 있다고 한다. 화학비료를 뿌리면 그 지력을 회복하기까지 50년이 걸린다고 한다. 한국영화산업에는 그동안 화학비료를 너무 많이 뿌렸다. 그런 면에서 당분간 상당히 힘이 들 것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지금이 보다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모멘텀이기도 하다. 위기는 곧 기회인 법이기 때문이다." - 맞다. 많은 사람들이 문제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거기서부터 진짜의 해법이 나온다. "맞다. 한국영화의 진정한 힘은 문제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분석하고, 올바른 해결방안을 찾아낼 수 있는 인력들, 고급의 인적자원이 많다는데 있다. 난 그점을 믿고, 그점에서 한국영화의 진정한 희망을 본다." - 그런데 영역을 넓혀 나간다는 건 무슨 의미인가?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극장판으로만 생각한다. 하지만 요즘에 나오는 영상의 모든 것이 다 영화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럴려면 디스플레이(표현도구) 자체를 잘 이해해야 한다. 이제는 디스플레이 자체가 컨텐츠의 미학을 결정하는 시대다. 디스플레이에는 극장 스크린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TV도 있고, 컴퓨터 스크린도 있고, MP3의 손바닥만한 화면도 있다. 때문에 거기에 맞는 맞춤형 컨텐츠를 다양하게 개발하고 또 그에 대한 마인드 업이 잘돼있어야 한다." - 정작 영화 안쪽의 상황은 어떤가. 좋은 작품들, 좋은 작가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가. "미학적인 측면에서 지난 10년 가까이 새로운 서사 스타일의 작품이 나온 게 몇이나 됐는지 좀 따져봐야 할 정도이긴 하다. 하지만 영화라고 하는게 서태지가 나오듯 한꺼번에 턴 어라운드하는 게 아니라서 매번 사람과 세상을 놀라게 하는 새로운 작가나 작품이 나올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 모두가 어쩌면, 지금의 영화'판'을 지금의 영화'산업'이란 말로 규정하기 시작하면서, 하고자 하는 일의 본질을 잊어버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모두들 돈을 어떻게 하면 쉽게 벌 수 있을까를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영화를 만드는 일의 본질이 무엇인지로 돌아가야 할 때고 다행스럽게 그런 마음들은 회복되고 있다고 본다." - 올 한해가 특히 추울 것 같다. 메이저급 영화사들조차 라인업을 정리하지 못할 정도로 올 한해 작품 트렌드도 잡아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웃음) 1년동안의 작품 트렌드, 그것도 옛날 말이다. 올해는 액션이 유행할 것이냐, 로맨틱 코미디가 유행할 것이냐 등등을 얘기하는 것일텐데, 주식시장에도 순환매라는 것이 없어진지 오래다. 이걸 자장면과 짬뽕, 볶음밥으로 비유시켜서 설명하면 이해가 쉽다. 보통 중국집에 가서 자장면만 계속 먹으면 질리게 되서 다음엔 짬뽕을 먹게 되고, 또 그 다음엔 볶음밥을 먹게 되는데, 그것마저 질리면 다시 자장면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게 바로 순환매다. 그리고 그 순환매에 해당하는 게 영화판에서는 액션영화와 멜로영화, 코미디영화들이다. 주식도 시장이 커지다 보면 순환매가 없어지듯이 한국영화계도 커지다 보니 액션이니 코미디니 하는 한해의 트렌드를 잡는 게 별 의미가 없어졌다. 올해는 그것보다는 아주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이 나올 것이다." - 한국영화계는 향후 2~3년이 힘들 거라고 했고 그 이후는 다시 좋아질 것이라고 했다. 제협 이사장은 2년이 임기다. 그 모든 문제가 어쩌면 당신의 임기동안에 해결돼야 하고 또 그럴 의지라는 이야기로 들린다. "음…맞다. 그럴려고 이번에 이사장직을 수락했다. 그동안 늑대가 왔다고 거짓말을 한 셈이다. 그런데 이제 진짜 늑대가 왔다. 소년의 말을 믿지 않는 마을사람들이 나올 생각들을 안하는데, 이번에 내가 좀 떠들겠다. 시끄럽게 굴어서 사람들을 나오게 하고 그래서 늑대를 내쫓겠다. 이제는 정말 그 일을 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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