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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아…역시 백문이 불여일견"

[현장]이석행 민노총 위원장 '현장대장정' 인천서 시작

"아따, 복잡하네. 웬 사람이 이렇게 많다냐."
"그러게, 뭔 일이래. 오늘 이상하게 됐구먼."

26일 새벽 4시 30분 인천광역시 송내역 앞. 건설현장으로 가기 위해 삼삼오오 모여든 건설 일용직 노동자들은 평소와 다른 이날 인력시장 분위기를 보고 이런 말을 주고받았다.

이날부터 6개월 간의 '현장대장정'을 시작하는 민주노총 이석행 위원장의 첫 출발지가 바로 인천 송내역 인력시장이었기 때문이다. 대장정의 첫날인 이날 새벽 이석행 위원장을 비롯해 민주노총 간부들 40여 명이 '총출동'한 탓에 인력시장은 난데없이 북적거렸다.

인력시장에서 시작한 현장대장정…"과외공부도 했는데 그건 몰랐네요"
▲ 26일 새벽 4시 30분 인천광역시 송내역 앞.ⓒ프레시안

이 위원장은 대장정의 첫 출발지를 인력시장과 건설현장으로 잡은 이유에 대해 "시작인만큼 동 트기 전에 하고 싶었다"며 "또 정규직 노동자들보다는 일터를 늘 갈망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부터 만나는 것이 의미가 있겠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 위원장은 이날 송내역 앞 인력시장과 연이어 인천 남동구의 서해 그랑블 아파트 건설현상을 찾아 건설 노동자들에게 일일이 악수를 청하며 어려운 점은 없는지 물었다. "현장의 목소리를 충실히 듣겠다"는 것이 현장대장정의 첫 번째 목적이기 때문.

"'민주노총'에 대해 들어는 봤지만 저 사람은 처음 보고 이름도 처음 들어 봤다"며 낯설어 하던 사람들은 하나둘씩 어려움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탈의실도 없어요. 옷도 길가에서 갈아입고 점심시간에 쉴 곳이 없어서 바닥에 박스를 깔고 자다가 다치기도 합니다. 임금이 6년째 동결된 상태예요. 임금도 '스메끼리(유보임금)'라고 해서 지금 일한 건 5월이 되야 받습니다. 보통 60일이 지나야 돈을 주니 먹고 살 수가 있나요."

"그래요? 그건 임금 체불인데…. 기가 막히네. 제가 건설교통부 장관 만날 때 건설연맹 간부들에게 4시간 과외를 받고 갔는데 그런 얘기는 몰랐습니다. 고맙습니다."
▲ 이석행 위원장은 이날 송내역 앞 인력시장과 연이어 인천 남동구의 서해 그랑블 아파트 건설현상을 찾아 건설 노동자들에게 일일이 악수를 청하며 어려운 점은 없는지 물었다.ⓒ프레시안

서해 그랑블 건설현장에서 만난 이종대 씨가 털어놓은 유보임금 얘기를 비롯해 건설현장의 외국인력 과다 유입에 대한 호소, 수년 째 동결된 임금에 대한 불만 등을 듣고 뒤돌아 나서며, 이 위원장은 "역시 백문이 불여일견이다"고 소회를 얘기했다.

"첫날부터 머리가 띵하다. 휴게실이나 탈의실 등의 문제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유보임금 얘기는 처음 듣는다. 서류나 책으로는 몰랐던 상황을 알게 됐다. 이분들께 들은 생생한 목소리, 놓치지 않겠다."

어느덧 시간은 아침 7시. 회사의 43명 정리해고에 맞서 싸우고 있는 금속노조 인천지부 콜트악기지회를 찾아가는 길에 이 위원장은 전화를 걸어 이용식 사무총장에게 유보임금 문제의 해결책을 찾기 위해 건설교통부와 대화채널을 가동해보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 위원장은 "현장의 어려움을 그저 듣는 데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노동부를 비롯해 각 부처 장관들과의 면담을 통해 구축해 놓은 상시적인 대화채널이 "바로 이럴 때 쓰려고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정표 관계없이 즉석에서 "전체 조합원들 좀 모아주세요"

민주노총 위원장이 장기간의 현장대장정에 나서는 것은 그 자체로도 '파격'이었지만 이 위원장은 이날 하루 일정을 맞춰가는 과정에서 형식에 구애받지 않겠다는 소신을 곳곳에서 실천에 옮겼다.

예정된 아침 식사 장소를 바꿔 건설 현장의 간이식당인 소위 '함바집'에서 아침을 먹자고 제안하는가 하면 콜트악기 노조와 '출근선전전'을 함께 했다. 이 위원장은 "정리해고에 대해 전체 조합원들이 같은 문제의식을 느끼는 것 같지 않다"며 일정표에 없던 전체 조합원과의 만남을 주선해달라고 즉석에서 요청하기도 했다.
▲ 전자기타를 전문적으로 만드는 생산업체인 콜트악기 공장 내부의 모습. ⓒ프레시안

작년 한해 적자라고 "70여 명 정리해고하겠다"는 콜트악기

콜트악기(사장 박영호)는 전자기타를 전문적으로 만들어내는 악기 생산 업체다.

200여 명의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는 이 회사는 "지난해 8억의 적자를 본 만큼 70여 명 수준의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며 희망퇴직자 18명을 제외하고 43명에게 지난 10일 정리해고를 통보했다.

하지만 노조는 "지난 1991년부터 2005년까지 회사는 계속 흑자를 기록해 왔다"며 "더욱이 노사간 협의도 거치지 않은 정리해고는 부당하다"며 지난 2월 1일부터 공장 앞 마당에서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 위원장은 기타의 재료인 나무의 분진과 페인트 분진이 가득한 콜트악기 생산현장을 직접 돌며 일일이 전체 직원들과 인사를 나눴다. 그 모습은 마치 기업 총수나 CEO들의 '현장시찰'과 닮아있었지만 악수를 하고 나누는 대화가 달랐다.

그는 공장 식당에서 즉석 간담회를 갖고 "이번에 정리해고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남의 일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며 "한 마음으로 함께 싸워 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세 차례의 정리해고 끝에 결국 공장이 중국으로 옮겨가 폐쇄된 안산의 한 공장과 6년 여 복직 투쟁 끝에 '승리'한 시그네틱스의 사례를 대조해 설명하며 "이처럼 서로 다른 마음으로 나눠지면 지고 끝까지 해보겠다고 하면 이긴다"고 강조했다.

지난 1992년 첫 번째 정리해고 때에 이어 또 다시 정리해고 통보를 받았다는 콜트악기의 노동자 유화분 씨(51)는 "서른 살에 이 공장에 들어와 21년을 일했는데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며 "총연맹 위원장이 직접 찾아와 명단에 안 들어간 사람들에게도 '함께 싸워야 한다'고 얘기해주니 마음에 위로가 된다"고 말했다.

이어 이 위원장은 오전 11시 뇌출혈로 지난해 9월 사망해 6개 월 째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있는 대우차판매 노동자인 고 최동규 씨의 빈소를 방문한 뒤 대우차판매 노조 조합원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6개월 째 싸우고 있는 대우차판매노조
▲ 고 최동규 씨(사망 당시 38세)는 대우차 대구 남산지점에서 판매일을 해 오던 노동자로 출근 준비 중 지난해 9월 6일 '뇌지주막하출혈(의사소견)'으로 숨졌다.ⓒ프레시안

고 최동규 씨(사망 당시 38세)는 대우차 대구 남산지점에서 판매일을 해 오던 노동자로 출근 준비 중 지난해 9월 6일 '뇌지주막하출혈(의사소견)'으로 숨졌다.

노조는 최 씨의 사인과 관련해 "회사가 지난해 8월 경영 효율성을 이유로 승영직영부문을 소규모 법인으로 분리하는 과정에서 정규직 직원들은 강제로 '특수고용노동자'로 전환하려 시도했고 그 과정에서 고인이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아 사망했다"고 주장하며 장례를 치르지 않고 있다. 반면 회사는 "직접적인 사인은 뇌출혈로 노조 측 주장을 논리적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편 법인 분리를 통한 정규직 직원의 강제 전적과 관련 지난 1월 인천지법은 부당하다며 무효판결을 내렸지만 회사는 전체 조합원에게 대기발령을 내리고 판매활동을 못하도록 막고 있다. 대우차판매노조의 한 조합원은 "회사가 영업활동을 강제로 못하게 해 이달 월급으로 20만 원밖에 못 받았다"고 털어놨다.

"이전과 달라지려는 열의가 느껴집니다"

이석행 위원장의 현장대장정을 놓고 각 지역본부 내부에서는 "암행어사 행차 같다"는 농담 섞인 말도 나온다. 이 위원장이 직접 각 사업장의 실정을 살펴보는 것이 해당 지역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로서는 부담스러운 일일 수밖에 없는 탓이다.

하지만 현장 조합원들은 일단 이 위원장의 이같은 행보에 대해 애정 어린 시선을 보냈다.

대우차판매노조의 이창훈 씨는 "처음이라 더 그렇겠지만 현장과 구체적으로 생각을 나누려는 열의가 상당한 것으로 느껴진다"고 말했다. 이 씨는 "과거에는 '총연맹'이라고 하면 윗사람들끼리 거대한 정책적인 문제만 고민하는 것으로 보였는데 달라진 것 같다"고 덧붙였다.

금속노조 GM대우차지부의 강두순 씨도 "일반 조합원들은 기대반 우려반"이라며 "한 번의 이벤트로 끝나지 않을지에 대한 우려도 있지만 위원장과 직접 얘기해보니 현장대장정이 도화선이 돼 전체 조합원들을 바닥부터 하나로 모아내는 힘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 오는 30일까지 인천 지역을 순회한 데 이어 제주, 경북, 부산, 울산 등을 거치며 8월까지 이어지는 현장대장정이 마무리되는 순간, 그가 다짐한 목표 가운데 얼마만큼 이뤄졌다고 평가받을 수 있을까? ⓒ프레시안

이 씨는 "비정규직 문제 해결과 같은 큰 사안도 물론 중요하지만 우리처럼 작은 사업장들의 문제들이 하나씩 해결돼야 내부의 힘도 커지는 것 아니냐"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 위원장도 현장대장정을 통해 단순히 '듣는 데'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해법을 함께 찾아가겠다는 입장이다. 실제 그는 콜트악기지부에서는 노조 집행부에게 "정리해고 통보자와 제외자들 사이의 단결이 어려운 상황이라면 전체 조합원 수도 얼마 되지 않는 만큼 MT라도 함께 가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하기도 했다.

이석행 위원장은 6개월에 걸친 전국순회의 목표를 한 가지만 꼽아달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비정규직과 정규직, 소외받는 민중들이 모두 '우리가 다 같은 입장이구나'라는 것을 깨닫고 함께 돌파구를 찾기 위한 고민을 던져주고 싶다. 또 그 사람들의 힘으로 하반기에 민주노총이 각종 문제들을 돌파할 수 있는 힘을 만들겠다는 것이 소박한 바람이다."

이 위원장은 "정치인들처럼 이벤트성으로 다니려는 것 아니다"고 재차 강조했다. 오는 30일까지 인천 지역을 순회한 데 이어 제주, 경북, 부산, 울산 등을 거치며 8월까지 이어지는 현장대장정이 마무리되는 순간, 그가 다짐한 목표 가운데 얼마만큼 이뤄졌다고 평가받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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