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은 이날 오전 하얏트호텔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추악한 밀실야합, 매국협상, 한미 장관급협상을 즉각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또 오후에는 지난 12일부터 범국본 대표 및 시민들이 무기한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는 서울 광화문 열린시민공원에서 15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협상 저지 결의대회'를 열었다.
'문화침략 저지 및 스크린쿼터 사수 영화인대책위원회'도 이날 국회 본청 기자회견장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정부는 스크린쿼터 축소가 한미FTA와 관계없다고 하더니 이제는 빅딜을 위한 협상카드로 사용하려 하는가"라며 "더 이상 스크린쿼터를 한미FTA 협상도구로 이용하지 말라"고 주장했다.
"오늘의 스포트라이트는 내일의 조롱이 될 것"
범국본은 기자회견문에서 "모름지기 나라 사이의 통상협정이라면 상호 주고받는 바가 있고 이익의 균형이 실현돼야 한다"며 "그러나 한미FTA 협상에서 한국 측이 얻을 기대 이익은 이미 오래 전에 사라졌고 미국의 요구와 압박은 날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고 밝혔다.
범국본은 "더욱 놀라운 것은 협상 시한이 임박함에 따라 미국 측의 요구가 오히려 강경해지고 있는 점"이라며 "자동차 분야에서 미국은 자동차 세제 개편 등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미국 자동차 관세의 '즉시 철폐'마저 거부하고 있고 또 쇠고기 분야에서는 광우병 위험이 있는 뼈있는 살코기의 수입까지 강요하고 있다"고 밝혔다.
범국본은 "이번 장관급 협상은 협상 시한이 임박함에 따라 그나마 남아 있던 최소한의 체면이나 명분도 벗어던지고 무작정 협상을 '묻지마 타결'하려는 시도"라며 "오늘 당신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중무장한 전투경찰의 호위 속에 나라와 주권, 민중생존권을 농락하는 협상을 진행할 수 있을지 몰라도, 내일 이 시간에는 역사와 민중의 심판대에 올라 처절한 조롱과 경멸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비난했다.
"한미 FTA 필요없다, 민주주의 보장하라" 이날 오후 광화문 열린시민공원에서 개최된 결의대회에서는 경찰이 "미리 신고되지 않는 집회이기 때문에 불법"이라는 이유로 참석하려는 이들을 막아 충돌이 있었다. 공원 일대를 봉쇄한 경찰은 일반 시민들의 출입은 물론 카메라를 들고 취재하는 기자들까지 막는 등 과잉 대응을 해 곳곳에서 몸싸움이 벌어졌다. 몸싸움 끝에 몇명은 공원 내로 '입장'이 가능했으나 경찰은 집회 시작 이후 더 많은 병력을 투입해 출입을 막았다. 이로 인해 본집회에 참가하지 못한 참여연대 활동가 및 민주노총 회원 등 50여 명은 공원 밖에서 "한미 FTA 필요없다, 민주주의 보장하라"고 외치며 별도의 집회를 가졌다. 이를 지켜보던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은 "소위 참여정부라고 하는 노무현 정권은 이렇게 오만불손한 태도로 협상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며 "국가의 권위는 국민을 주인으로 대접할 때 세워지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찰은 집회가 끝난 뒤에도 "아직 공원 내에 사람이 많다"며 시민들의 공원 출입을 막았다. |
"몇 명의 통상관료에 주도되는 협상, '쿠데타'라고 부르자"
결의대회에서 발언에 나선 강기갑 의원은 "우리들의 생존권이 벼랑 끝에 놓여있다"며 "많은 경제학자들이 우리 민중의 미래를 앗아가는 협상이라고 주장하는데도 정부는 몰아붙이고 있다"고 밝혔다.
참여연대 이태호 협동사무처장은 "이번 협상은 어디를 살펴봐도 국민들이 동의한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며 "몇 명의 통상관료들이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있는 현장은 '헌정 쿠데타'로 불러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처장은 "경찰은 불법집회에 사람들이 들어간다고 저 난리를 치고 있지만, 협상장에서는 실제로 쿠데타가 일어나고 있다"며 "우리가 나서서 쿠데타를 막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한신대 이해영 교수는 "지난해 3월 협상을 시작한다고 할 때 19개 분과 중 18.5(미국):0.5(한국) 정도로 질 것이라고 예상했다"며 "그러나 이제와 보니 19:0으로 갈 듯하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고위급 협상까지 진행된 지금 농업 분야의 피해는 예상 외로 심각해졌으며 정부가 '건졌다'고 말하는 분야들도 속속들이 따져보면 실익은 없는거나 마찬가지"라며 "한국 측은 마치 10대 맞고 죽을 것을 8대 맞고 죽기 전에 살아 돌아온 격"이라고 비난했다.
"1년 전과 완전히 뒤바뀐 영화 점유율…이래도 괜찮다고?"
한편 이날 오전 기자회견을 가진 스크린쿼터 영화인대책위는 "정부는 스크린쿼터 축소로 한국영화를 죽여놓고 이제는 부활하지 못하도록 관에 넣고 못을 박겠다고 하고 있다"며 "한국영화를 두 번 죽이지 마라"고 밝혔다.
이들은 "지난 19일부터 진행된 한미FTA 수석대표간 고위급회의에서 협상단 관계자는 한국 정부가 스크린쿼터를 '미래유보'에서 '현행유보'로 양보한다면, 미국이 요구사항에서 무엇을 포기할 수 있는지를 물어보고 있다고 한다고 <한겨레> 신문이 보도했다"며 "그렇게 되면 스크린쿼터는 다시 살아날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
'현행유보'는 FTA 협정이 발효된 뒤 정부가 현행 규제 이상으로 개방의 범위와 내용 등에 관한 추가 규제를 할 수 없다는 뜻이며 반면 '미래 유보'인 경우엔 협정 발효 뒤에도 국내 산업을 보호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게 될 경우 추가 규제를 할 수 있다.
영화인 대책위는 "이는 스크린쿼터 축소로 한국영화를 죽여 놓고 이제는 부활하지 못하도록 관에 넣고 못을 박겠다는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스크린쿼터는 73일에서 더 줄어들기만 할 뿐, 그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다시 늘어날 수 없게 된다"고 밝혔다.
국회 문광위 소속 민노당 천영세 의원은 "3월 25일 현재 3월 중 한국영화 점유율이 27.6%인 반면 미국영화의 점유율이 65.9%"라며 "1998년 이후 최악의 상황을 달리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3월 같은 기간에 각각 71.8%와 23.8%의 수치를 보였던 한국영화와 미국영화의 점유율과 현격한 대조를 이룬다.
천 의원은 "아직 FTA 최종 타결이 안된 이 시점에도 완전히 수치가 뒤바뀌어 있다"며 "정부 일각에서는 이를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항변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오래 전부터 예측했던 심각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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