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예산처가 공공기관의 지배구조나 경영평가에 직접 관여할 수 있게 하는 공공기관법을 둘러싼 정부와 KBS의 대립이 본격화됐다.
노무현 대통령이 20일 국무회의 석상에서 KBS에 대해 "자사 이기주의와 전파 남용을 벌이고 있다"며 맹공한 것에 대해 전국언론노동조합과 KBS 노동조합은 각각 성명을 내며 정면 대응했다.
"언론의 권력 비판·감시 기능이 마뜩치 않나"
KBS 노조는 "조·중·동을 향해 독설을 퍼붓던 대통령의 입이 이번에는 KBS를 정면으로 겨냥했다"며 "공영방송의 프로그램을 두고 횡포를 부린다며 스스로를 마치 약자인 양 취급하는 대통령의 말에 누가 힘을 가진 집단인지 그리고 누가 횡포를 부리는지 혼란스럽다"고 밝혔다.
이들은 "대통령은 자신을 비판하면 불량한 언론이자 횡포라고 입버릇처럼 공언했다"며 "특히 KBS에 대한 대통령의 불신은 지난해 한미 FTA 관련 프로그램과 보도 이후 노골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지난 1월 신년 연설문에선 국정홍보처에서 운영하는 정권홍보 방송 K-TV(평균시청률 0.4%)가 KBS, MBC보다 FTA 보도에서 공정한 것처럼 언급한 바 있다"며 "권력을 비판·감시하는 것이 언론 본연의 임무인데도 대통령만은 이를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예산 통제가 프로그램에 미치는 영향은 누구나 안다"
KBS 노조는 "대통령의 말과 달리 매우 유감스럽게도 KBS는 지금 방송위원회 각종 심의와 방송법에 따른 국회 국정감사와 결산 심사 그리고 감사원 감사까지 이중 삼중으로 경영의 투명성, 효율성을 검증받고 있다"며 "또, 민주화 투쟁의 결과로 언론의 독립성을 해치지 않기 위해 1987년 KBS는 다른 공기업과 달리 정부투자기관 관리기본법 적용대상에서 제외된 바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대통령 스스로 인정했듯이 입법부와 사법부가 독립 운영되기 위해 필수적인 것이 바로 독립적인 예산편성권한"이라며 "언론도 마찬가지여서 예산의 통제가 프로그램에 미치는 영향을 이웃나라 공영방송인 NHK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해당 부처 장관과 관련 상임위원회 국회의원 모두가 잘못됐다며 법 개정을 하겠다 하는데 대통령만 이 법이 옳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인가"라고 물은 뒤 "법개정을 통해 잘못된 부분을 바로 잡으려는 입법권자들에 대해 나라꼴 운운한 것은 입법권에 대한 심대한 침해이며 나라꼴을 우습게 만드는 발언"이라고 주장했다.
"관료 얘기만 듣지 말고 법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라"
언론노조는 역시 이날 성명을 통해 "우리는 대통령의 이런 발언을 '저열하다'고 규정할 수밖에 없다"며 "방송 독립성에 대한 대통령의 순진한 인식이 안타깝다"고 비난했다.
언론노조는 "우리는 지금까지 공공기관운영법이 갖고 있는 긍정적인 측면을 결코 부인한 적이 없다"며 "하지만 제대로 된 논의와 토론회 한번 거치지 않고 제정된 공공기관법이 향후 '공공기관의 민영화 총괄법'으로 돌변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떨칠 수 없는 것도 솔직한 심정"이라고 밝혔다.
공공기관운영법 제5조는 공공기관을 공기업ㆍ준정부기관ㆍ기타공공기관으로 분류하고 있고 공기업은 또 시장형 공기업과 준시장형 공기업으로 나뉜다.
언론노조는 "자체수입액이 85%에 미치지 않는 KBS와 EBS는 당연히 공공기관법에 따르면 '준시장형 공기업'에 속한다"며 "기획예산처의 경영간섭은 물론 민영화 등의 기능 조정 대상에서 결코 예외가 아니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시행령 제17조에 따르면 "정부로부터 독립성, 중립성 보장이 필요하다고 관계 법률에 규정된 기관에 대해서는 기능 조정 등의 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다"고만 돼 있지 그 기준에 대해서는 명시하지 않아 언제든 '민영화' 대상에 속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언론노조는 "공영방송과 공공기관운영법의 관계에 대해 대통령에게 충고하고 싶다"며 "경제관료들의 얘기만 듣지 말고 공공기관운영법의 실제 내용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파악하라"고 요구했다.
노대통령 "정부가 언론 독립성 침해하려 한 적 있나"
노 대통령은 이날 오는 4월 시행을 앞둔 공공기관법에서 KBS 및 EBS가 "공영방송은 적용 대상에서 제외돼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과 관련해 "그것이 언론자유 독립과 무슨 관련이 있나"라며 "정부가 언론의 독립성을 침해하려 한 적이 있나"라고 밝혔다.
또 노 대통령은 "최근 방송 80주년과 관련해 KBS가 특집 프로그램등을 방영하면서 이 법의 적용대상에서 제외되야 한다는 프로그램등을 방영했는데 이는 자사 이기주의와 전파 남용의 예"라며 "국회의원 60여 명을 통해 법 개정안(KBS를 배제한다는)까지 하는데 이래선 나라 꼴이 문제"라고 밝혔다.
기획예산처가 공공기관의 지배구조나 경영평가에 직접 관여할 수 있게 하고 있는 공공기관법에 대해서는 'KBS, EBS, 한국은행 등 중립성이 중요한 기관은 제외해야 한다'는 방송계 및 언론단체 측 의견과 '예외는 없다'는 정부의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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