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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이 무능공무원 벌 서는 곳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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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현장'이 무능공무원 벌 서는 곳인가?"

[기자의 눈] 서울시가 '철밥통' 개혁에 앞서 할 일은?

저녁 손님이 몰려오기 전, 늦은 오후의 식당은 한산했다. 서울시청 공무원들이 자주 들르는 곳이다. 서울시가 '퇴출 후보 3%'를 확정한 지난 16일 이곳을 찾았다.

'철밥통'에 대한 반감, 제대로 읽은 오세훈. 그런데….

"요즘 '퇴출 후보 3%' 정책으로 시끄러운데, 손님들 분위기가 어때요?" 음식을 주문하며 물어봤다. 대답은 '역시나'였다. "제가 뭘 아나요. 잘 모르겠어요." 이리저리 질문을 바꿔서 던졌지만, 딱히 건질만한 대답은 듣지 못 했다. 그래서 이렇게 질문했다. "만약 자제 분이 시청 공무원이라면 어떨 것 같아요?" 역시 뻔한 대답이 돌아왔다. "공무원은 사실 '안정성'을 보고 하는 건데, 저렇게 흔들면 속상하겠죠." 다시 물었다. "그렇죠. 안정성이 흔들리면 아무래도 소신 있게 일하기 힘들겠죠?" 그제서야 말문이 열렸다.
▲ 시장 취임 직후, "'오세훈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말했던 오세훈 서울시장. 그가 '공무원 3% 퇴출'제도를 들고 나왔다. ⓒ프레시안

"아휴. 그래도 '철밥통'은 깨야 해요. 요즘 같은 때, 석사·박사들까지 말단 공무원하려고 하는 게 어디 '소신' 때문인가요. (민간 영역은)워낙 불안하니까, 그나마 공무원이 안정적이고 편해서잖아요."

한 번 터진 말은 계속 쏟아졌다. "솔직히 요즘 정년 보장되는 직장이 어디 있어요. 공무원만한 게 없죠. 요즘 애들, 장래 희망이 공무원이래요. 걔들이 왜 그러겠어요. 아빠들이 IMF 때 잘려나가는 것 보고 그러는 거죠. 공무원들은 좀 깨져야 해요"

식당 주인의 메마른 표정 위로 열기가 번졌다. 그때 깨달았다. '오세훈 시장이 사회 분위기를 정확히 읽었구나.' 사실 IMF 구제금융 사태 이후,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은 대부분의 시민에게 일상이 됐다.

그리고 이런 불안에서 자유로운 집단에 대한 선망과 질시도 덩달아 깊어졌다. 대표적인 게 공무원이다. 전부터 '철밥통'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던 그들이다. 크게 사고만 치지 않으면 무능하고 게을러도 안정적인 생계가 보장된다는 뜻이다. 불안에 찌든 시민들이 공무원에게 느끼는 반감은 어쩌면 당연하다.

"'철밥통'이어도 좋다. 현장을 아는 공무원을 원한다"

이런 사정이 '퇴출 후보 3%' 정책에 대한 높은 지지를 낳았다. 하지만 오 시장이 제대로 읽어낸 것은 딱 여기까지다.

'철밥통'에 대한 반감은 시민들이 공무원에게 느끼는 불만의 일부일 뿐이다. 나머지 불만이 해소되지 않는 한, '퇴출 후보 3%' 정책에 대한 호응은 금세 스러질 거품일 수밖에 없다. 그럼 나머지 불만은 뭘까. 다음날 저녁 한 전자업체 직원을 만났다. 과거 업무 관계로 서울시를 자주 찾았던 사람이다.

'퇴출 후보 3%' 정책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더니 대뜸 "'철밥통'이어도 좋으니 좀 똑똑했으면 좋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요즘 공무원 시험 경쟁률이 엄청나다던데…."라는 말을 흘리기가 무섭게 "그럼 뭐 하냐. 현장을 하나도 모르는데…."라는 말이 튀어 나왔다.

한 번 터진 말문은 쉽게 닫히지 않았다. 설계도면도 제대로 못 읽는 건설 공무원, '기계치'에 가까운 전산 공무원, 정비기술자의 은어를 전혀 못 알아듣는 교통 공무원…. 그의 불만은 대부분의 공무원들이 서류 작성에만 능할 뿐, 실무를 너무 모른다는 것이다. 사실 익숙한 지적이다.

"교수보다 더 지독한 '책상물림'이 공무원이더라"

그리고 다음날, 복지에 관한 일을 하는 시민단체 활동가와 이야기를 나눴다. 1980년대 말부터 서울시 곳곳의 철거촌을 누볐던 그다. 닥치는 대로 때려 부수는 '철거용역'들을 방치하는 구청 직원들과 멱살잡이도 지겹게 했었다. 그는 "공무원이 확실히 바뀌긴 했다. 옛날 잣대를 들이대면 안 된다"라며 말문을 열었다.

활동가들과 공무원이 아예 말조차 통하지 않던 시절은 지났다는 것이다. "옛날에는 복지, 인권 이런 쪽으로는 (공무원들이) 아예 개념이 없었지. 하지만 지금은 안 그렇다" 이어지는 그의 말이다. 하지만 딱 여기까지다. 이어서 그는 "교수보다 더 지독한 책상물림이 공무원이더라"며 언성을 높였다. 이론적인 작업을 주로 하는 학자보다 더 현실 감각이 없다는 지적이다.

공무원을 향한 불만은 이처럼 다양하다. 그런데 서울시는 그 중 한 가지, '철밥통'에만 주목했다. 그래서 내놓은 게 전체 공무원의 3%를 일괄적으로 퇴출한다는 제도다. 그리고 '퇴출 후보자 3%'를 해당 부서장이 정한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철밥통'에 대한 사회적 질시는 잠시 무마할 수 있다. 하지만 그뿐이다. 시민들이 공무원에게 정말 원하는 것을 줄 수는 없다.

신분이 불안해진 공무원들이 칼자루를 쥔 상사만을 쳐다보게 되리라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안 그래도 현장을 외면하던 그들이 '실수 없는 서류 작성'에만 더욱 매달리게 되리라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시민의 삶이 이뤄지는 현장은 더욱 눈밖에 날 수밖에 없다.

"현장을 모욕해도 유분수지"…"오히려 승진 대상자를 현장에 보내야"

게다가 하필이면 퇴출후보 공무원들이 향하게 될 곳의 명칭이 '현장시정추진단'이다. 앞서 '책상물림' 공무원을 성토했던 활동가는 "현장을 모욕해도 유분수지"라며 혀를 찼다. 공무원에게 '대민 행정의 현장'은 벌 서는 곳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영광의 자리'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퇴출될 공무원을 현장에 보낸다?

전자업체 직원도 같은 말을 했다. "퇴출후보자가 아니라 승진 대상자를 현장에 보내야 한다. 교통정책을 담당하는 공무원이라면 승진에 앞서 일 년 정도는 지하철 정비기술자들과 함께 지내봐야 한다. 그래야 '안전 운행'에 대한 감각이 생기지 않겠는가. 또 도시환경 담당이라면 직접 빗자루를 쥐고 거리를 쓸어 봐야 한다. 그래야 행정에 진정성이 실린다. 그렇게 현장 감각을 보충한 뒤, 정책을 만들게 해야 한다. '철밥통' 개혁은 그 다음 문제다"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 '철밥통' 개혁에 앞서 '현장 행정'의 강화가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 반발과 줄서기만 심화될 뿐이라는 것이다. ⓒ연합뉴스

사실 서울시가 '퇴출 후보 3%' 정책을 내놓은 직후부터 "공무원들의 '줄서기 문화'가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는 지적은 종종 나왔다. 무능한 공무원이 아니라 줄을 제대로 못 선 공무원, 그래서 상사에게 밉보인 공무원이 피해를 입으리라는 것이다.

'하얀거탑' 속의 과잉정치 문화, 현장 무시 풍토의 산물

실제로 퇴출 후보자의 면면이 조금씩 드러나면서 '책상에서 도장을 찍던 공무원'보다 '현장 실무를 담당하던 공무원'들이 퇴출 후보에 더 많이 포함됐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당연한 일이다. 현장을 경시하는 문화, 서류 작성 능력만을 높이 치는 풍토에서는 사무실 안에 있는 이들, 그래서 상사와 자주 얼굴을 마주치는 이들이 높은 평가를 받기 마련이다.

최근 막을 내린 드라마 '하얀거탑'에 잘 묘사된 '정치 과잉'의 조직 문화는 이런 사회에서 당연하다. 주인공 장준혁은 자신의 현장, 즉 수술실에서의 능력보다 정치력을 통해서 인정받아야 했다. 드라마에서만 그런 것은 아니다. 현장을 경시하는 문화가 깊이 뿌린 내린 상태에서 상사가 부하 직원을 퇴출하게 하는 제도는 '정치 과잉'의 문화만 확산시킬 뿐이다.

최근 고도성장을 거듭하는 중국을 경계하자는 목소리가 높다. 중국에 뒤지지 않기 위해 그들을 연구해야한다는 말도 나온다. 그런데 중국 경제 성장을 이끈 이들의 면면에는 별 관심이 없는 모양이다.

"100개의 관을 준비하라. 99개는 부패 공무원의 것이다. 나머지 하나에 내가 들어가겠다"는 말로 유명한 주룽지 전 중국 총리는 지방의 작은 공장에서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문화혁명 시기에는 농촌에서 돼지를 키우기도 했다. 북경대와 더불어 중국 최고 엘리트 집단으로 꼽히는 청화대를 나온 그였다. 주룽지 전 총리만이 아니다. 현재의 중국을 이끌어 낸 행정가들은 대부분 공장과 농촌의 현장을 경험했다.

왜 행정 개혁을 외치는 목소리는 높은데, 이런 모습을 닮으려는 시도는 없는지 궁금하다. 현장의 기름때가 묻은 손을 무시하는 사회에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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