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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잠긴 '세계유산', 해결책은 아무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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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잠긴 '세계유산', 해결책은 아무도 몰라?

울산 반구대 암각화 둘러싼 정부-학계 논쟁 가열

울산시 울주군에 있는 선사시대 유적인 반구대 암각화(국보 285호)의 보존문제를 둘러싸고 미술사학자들과 울산시, 문화재청 간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지난 10일 반구대 암각화에서 직선거리 650m 떨어진 선사문화전시관 건립공사 현장과 울산시청 앞에서는 50여명의 미술사학자와 문화운동가들이 지난달 중순부터 진행되고 있는 전시관 공사를 중단하라며 항의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1년에 수개월씩 물에 잠기는 암각화를 건지지 않고 전시관부터 짓겠다는 것은 공공기관의 안이한 자세"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울산시와 문화재청은 "일부가 반대한다고 해서 공사를 하지 않을 수 없다"며 현재 진행중인 공사를 중단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울산시 관계자는 "암각화가 물에 잠기는 문제는 우리도 고민하고 있다"며 학자들의 주장에 응수하기도 했다.

양쪽의 주장은 현재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팽팽히 맞서고 있다.

'관광자원 개발' vs '유적 훼손'

수천년의 침묵을 건너뛰어 1971년에 확인된 반구대 암각화는 높이 3m, 길이 10m의 수직 바위면에 새겨진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적 문화유산이다. 고래, 사슴 등 동물과 인물상, 사냥과 수렵 도구 등 다양한 형태가 새겨져 있는 반구대 암각화는 '한국의 대표적인 암각화'로 꼽힌다.

그러나 반구대 암각화는 발견되기 전인 1965년 지어진 사연댐 때문에 지난 40여 년 동안 1년에 약 8개월간은 물에 잠겨 있다.

2001년 울산시는 바로 이 반구대 암각화의 주변을 문화관광 자원으로 개발한다는 사업 설계안을 발표했다. 이 유적의 훼손을 염려한 한국미술사학회, 암각화학회 등 관련 학회와 문화단체, 그리고 울산 지역단체들의 개발 반대운동이 시작된 것도 그 무렵이다.

그 뒤 치열한 공방을 거쳐 2003년 문화관광부 차관의 중재로 "반구대 암각화 관련 개발 계획은 울산시가 학계 및 시민단체와 협의해 진행한다"는 합의가 나왔다. 그러나 울산시는 2004년 10월 단체들과의 사전 협의 없이 선사문화전시관 부지를 매입해 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2006년 학회와 울산시를 중재하던 문화재청장은 울산시가 건립 부지로 삼았던 곳에 그대로 설계를 변경해 전시관을 세우는 안을 제시했다. 학회와 시민단체 등은 부지가 적절하지 않다며 이에 반대했고 같은해 5월 문화재청장이 중재를 포기한 가운데 지난 2월 울산시는 전시관 공사에 착수했다.

"암각화는 위치 자체가 의미를 가지는 문화재"

학계와 시민단체들은 "전시관 건립을 무조건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장소가 문제"라고 말한다.

울산시가 선정한 전시관 부지는 암각화로부터 약 800m 가량 떨어져 있는 곳이다. 이 곳은 원래 음식점들이 들어섰던 곳이었지만 오수로 인해 물에 잠기는 암각화를 훼손한다며 철거시켰다.

울산시는 전시관의 오수 문제만 보완한다면 이 장소는 문화재보호법상 보호구역인 반경 500m 밖이기 때문에 법적인 하자가 없다는 입장이다. 또 전시관이 유적에서 가까워야 관람객들이 유적에 편하게 접근할 수 있다고도 밝히고 있다.
▲ 울산 태화강 강변 반구대 암각화 및 반구대 전시관 위치. 그림에서 오른쪽 노란 점선 안에 반구대 암각화가 있으며, 왼쪽에는 또다른 유적인 천전리 암각화가 있다. 아랫쪽 파란색 점선 부분이 울산시가 공사에 착공한 전시관 부지다.

그러나 학자들은 "이 장소는 암각화 장소를 지나는 대곡천 강변에서 몇 미터도 떨어지지 않았다"며 "계곡이 갖고 있는 선사시대의 환경을 크게 훼손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안동대 사학과 임세권 교수는 지난 9월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울산 반구대 문화유적보존 심포지움'에서 "암각화는 그것이 위치하는 환경에 의미가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주변환경과 함께 보존돼야 한다"며 "특히 최근 문화재 보존 경향은 문화재를 둘러싸고 있는 '경관의 보존'으로 옮아가는 추세"라고 주장했다.

임 교수는 "암각화를 새긴 사람들이 특정 장소를 선택한 것은 그들의 신앙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라며 "따라서 암각화는 그것이 포함된 경관의 지리적 특징뿐 아니라 그 지역 사람들이 그곳을 신성한 장소로 여기고 있다는 사실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보존해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암각화 주변은 '문화경관' 유적의 가치 크다"

사학자들은 암각화를 주변 경관과 함께 보존하는 일은 현재 울산시와 문화재청이 추진하고 있는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 등록을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지난 1992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인간이 생활을 통해 관계하는 인문적·자연적 요소의 총체인 경관'을 유산으로 간주하고 이를 '문화경관'(cultural landscape)이라는 유형으로 인정, 보호하는 장치를 마련했다. 유럽 지중해 일대의 포도밭, 큰 강 연안의 농경지 등이 문화경관의 형식으로 세계유산에 등재된 사례다.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 한국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는 서울대 환경대학원 황기원 원장은 "반구대 일대는 역사적 문화경관의 가치가 충분하다"며 "반구대 암각화 자체를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되 나머지 구역은 그 가치를 보완하는 유산들을 포용하고, 이 요소를 보호하기 위한 완충구역으로 설정하는 등 문화경관의 관점에서 접근하면 매우 유용한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 사학자는 "문화재청장은 심지어 전시관 부지를 빼놓고 유산 등록을 할 수 있다고도 말했다"며 울산시와 문화재청이 너무 안이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이러는 동안 암각화는 종말을 맞고 있다"

무엇보다도 사학자들은 "우리가 암각화의 원상복구를 위해 소모적 논쟁을 벌이는 동안 돈으로 계산할 수도 없고, 한번 없어지면 다시는 찾을 수 없는 국보인 암각화가 물 속과 물 밖을 오가면서 서서히 종말을 맞고 있다"고 입을 모아 주장한다. 울산시가 암각화를 '관광자원'으로 만들기 위해서라도 지금 주력해야 할 문제는 전시관 건립이 아니라 암각화가 물에 감기는 침잠 문제라는 것이다.

임세권 교수는 "침잠으로 인해 암각화는 발견 뒤 24년이 지나서야 국보로 지정됐고 일반 시민은 물론 학계에서조차 반구대 암각화가 어떤 성격을 갖는지 파악하기 어렵게 됐다"며 "반구대 유적의 연대만 해도 구석기 시대에 제작됐다는 견해에서 삼국시대 초기 제작설까지 다양하며 같은 그림에 대한 해석도 매우 상이한 견해들이 대립돼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런 상태에서 암각화 관련 전시관을 짓는다는 것은 어떤 특정한 학자의 학설을 소개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 침잠으로 인한 물이끼로 아랫부분이 훼손된 반구대 암각화(부분) ⓒ연합뉴스

"문화재청 입장은 '없다'고 보는 게 맞을 것"

이 같은 학계에 주장에 대해 울산시는 "이미 오랜기간 협의를 거쳐 온 사안"이라며 "많은 시민단체들이 전시관 장소에 찬성했고 일부 학회만 반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공사를 중단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문화재청 세계문화유산 등록업무 관계자 역시 14일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세계유산 등록과 전시관 건립의 상관관계에 대해 문화재청 입장은 '없다'고 보는 것이 맞다"며 "현 청장의 의견에 대해서는 그때 업무를 안 맡고 있었기 때문에 뭐라 말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울산시에 유네스코의 전문가 실사를 받도록 권고하고 있다"며 "국제전문가들이 실사를 한 이후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국내에서 일고 있는 논란만으로는 문화재청에서 판단을 내릴 수 없다는 것이다.

수자원공사 "댐 수위 낮추면 울산시민들은 무슨 물 쓰나?"

암각화의 침잠문제에 대해서도 울산시 관계자는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며 "우리는 문화재청에 여러가지 안건을 건의했는데 아직 답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훼손 정도가 심해져 가는 암각화를 보호하기 위한 임시 방편으로 울산시는 오는 4월 물이끼 제거작업을 할 계획이다.

2003년 울산시와 문화재청은 '댐 수위를 낮추는 방안', '터널을 뚫어 대곡천 유로를 변경시키는 방안', '차수벽을 쌓아 암각화를 댐으로부터 격리하는 방안' 등을 보존대책 방안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세가지 방안 다 현실적으로 어려워 관계당국 누구도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중 문화재 훼손정도가 가장 낮은 댐 수위 조절에 대해서는 울산시 용수공급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기 때문에 수자원공사 차원에서 반대하고 있다.

한국수자원공사 울산권관리단의 한 관계자는 <프레시안>과 통화에서 "문화재청은 댐을 해체하는 쪽을 원하는데 그렇게 되면 울산시민들의 용수공급 당장 지장을 주게 된다"며 "대체할 댐을 짓게 된다고 해도 최소 3000억 원 이상 들어가며 환경 파괴를 무시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그는 "문화재청은 문화재 보호가 핵심이겠지만 저희는 오히려 차수벽을 설치해도 보존이 가능하지 않냐는 입장"이라며 "현재 의견이 엇갈리고 있는 상태"라고 밝혔다.

"문화재 관광개발이 아닌 보존 목적으로 정책 수립돼야"

학자들은 근본적으로 갈등 해결을 위해서는 문화유산 관리 정책을 다시 수립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많은 지방자치단체들이 문화재 활용방안을 '관광객 유치'에 맞추고 있지만 이 결과 많은 유산들이 오히려 훼손의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관람객의 수를 최소한으로 제한하는 등 '관광 개발'이 아닌 '보전'을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한다.

임세권 교수는 "어느 나라건 유적에 있어 관광객에 대한 대처는 '어떻게 유적이 관광객으로부터 보호될 수 있는가'에 목적이 있다"며 "그래서 암각화 유적과 같은 훼손 뒤 복구가 힘든 유적은 '관광을 위한 개발'이 아닌 유적보호를 위한 관광객의 효과적인 관리에 초점을 둔다"고 밝혔다.

그는 "말로는 세계적으로 자랑하는 문화유산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나날이 자연적, 인위적으로 훼손돼 가는 모습을 눈으로 보면서도 보존 관리는 항상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며 "현재의 개발계획은 지난 2002년 월드컵을 겨냥해 순전히 관광을 위해 추진돼 온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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