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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파괴하는 공공성, 누가 지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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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정부가 파괴하는 공공성, 누가 지킬 것인가"

[인터뷰] 퇴임 앞둔 언론노조 신학림 위원장

지난 2월 27일 치뤄진 제4대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 선거결과를 놓고 언론계 내부의 해석이 분분하다.

당초 현 김종규 수석부위원장과 함께 출마한 전 수석부위원장 출신 KBS 현상윤 PD(기호 1번)가 우세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KBS 이준안 기자(기호 2번)가 당선된 것.

이에 대해 KBS 노조 집행부가 공개적으로 이준안 기자에 대한 지지 입장을 밝힌 점과 지역언론 표가 집중적으로 몰렸을 가능성 등 선거과정상 여러 요인들이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도 한다.

그러나 현 집행부의 노선을 이어받는 것으로 간주된 현상윤 PD와 달리 선거운동 과정에서 "언론노조의 노선은 그간 대중의 정서와 분리된 측면이 있었다"며 간접적인 비판을 해 온 이준안 기자의 당선은 현 집행부에 대한 비토가 아니냐는 견해가 유력하다.

지난 4년간 제2기와 제3기 언론노조 위원장을 역임한 신학림 위원장. 언론노동운동 제2세대의 대표격인 그는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신학림 위원장을 만나 지난 4년간 활동에 대한 소회와 선거 결과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언론운동과 노동운동, 두 토끼 모두 잡아야 했다"

▲ 지난 2월 27일 열린 언론노조 대의원회에서 지난 4년의 소회를 밝히는 신학림 위원장 ⓒ언론노보 이기범

<프레시안>:
이번 선거 결과를 두고 현 집행부가 평가를 받았다고들 한다.

신학림: 부인하지 않는다. 내 책임이 크다. 그러나 양 진영 선거운동 방법에 차이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프레시안>: 현 집행부의 노선에 대한 불만이 표출됐던 것은 아닐까?

신학림: 일반 제조업체 노조들의 목표는 임금과 복지가 우선이다. 그렇지만 언론노조는 조합원들의 임금, 근로조건, 복지뿐 아니라 언론의 공공성도 중요한 목표다.

즉 '언론노동조합'인 우리는 노동운동도 해야 하지만 언론운동도 해야 한다.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다. 이번 선거에서 한 후보는 우리가 어느 한 쪽에 치우친 것처럼 주장했다. 그러나 역량에 대한 비판은 수용할 수 있어도 노동, 근로조건, 해고문제에 대해 치열하게 싸우지 않았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노동과 언론이 두 축이고 언론노조는 그 두 가지를 다 해야 하는 숙명을 타고 났다. 두 가지 일의 중요도는 비교할 수 없는 문제다. 조합원 한 명이 해고당한 데에 대처하는 것과 지상파 방송의 무료보편적 서비스를 위해 싸우는 것, 이 둘은 서로 대체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거다. 다만 그것이 영향을 미치는 범위는 차이가 난다.

"조합원들이 각 사업장에 매몰돼 있다"

<프레시안>: 이번 선거에서 기호 1번 수석부위원장 후보에 나섰던 김종규 부위원장은 정견 발표할 때 개별사업장 투쟁에 좀더 총력을 기울이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개별사업장이 투쟁할 때 몇천 명 씩 몰려갔다면 좀 더 일찍 해결되지 않았을까라고도 했다.

신학림: 하지 않았던 게 아니라 못한 거다. 한미 FTA 저지를 위한 총파업 하자고 해도 2000명밖에 못 모이는데, 파업하지 않은 상태에서 개별 사업장 문제로 1000명이 모이겠나.

이런 현상은 역설적으로 각 사업장의 경영구조, 재무구조가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것을 보여준다. 집회 참석한다고 하면 다음 정리해고 대상 1위에 오른다. 언론노조 조합원들이 전부 자기 사업장에 매몰돼 주눅 들어 있다.

신문 시장은 특히 심각하다. 외환위기 전에는 전체 매출액이 구독료 수입 20%, 광고 수입 80%였는데 전체 매출액 규모가 떨어지는 가운데 그 중에서도 구독료 수입은 더 떨어져 전체 매출액의 10%도 안된다. 또 외환위기 전에는 구인, 구직 광고 등 작은 광고들이 많았다. 대기업 이미지 광고 하나보다 그런 광고들이 훨씬 안정적이었다. 그런데 그런 광고들은 이제 다 생활 정보지로 가버렸다.

이제 누가 광고주인가? 첫번째는 전자, 정보통신 분야, 두번째는 아파트와 상가 분양광고, 세번째가 백화점 바겐 세일 광고다. 3대 광고주 모두 재벌이다. 신문, 방송 할 것 없이 광고시장은 전부 재벌이 장악했다.

외환위기 전에는 신문 판매부수와 상관없이 광고 단가도 카르텔이 형성돼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 카르텔이 깨졌다. 즉 예전 광고주들은 모든 신문에 동일하게 광고를 줬다면 이제는 조선·중앙·동아밖에 주지 않는다. 조중동에서 서너 번 광고가 나갈 때 다른 신문들 고작 한두 번 나간다. 그러다보니 기자들이 광고를 따오고 분배하는 시스템이 공식화돼 있다. 그런 기자들에게 기사가 눈에 보이겠나. 기자정신이 사라져버리는 거다. 공공성의 위기다.

"언론의 공공성은 타협 대상이 될 수 없다"

<프레시안>: 공공성의 위기를 말했는데 위원장 활동을 시작했던 2003년 이후 한국의 언론상황이 극도로 악화되고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한미 FTA, 방통융합 등 언론이 가장 큰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신학림: 언론분야만 그런 것이 아니다. 한국사회의 위기를 한마디로 얘기하면, 모든 분야에서 공공성이 위협받고 있다는 점이다. 노무현 정부가 인기를 못 얻고 실패했다고 보는 이유는 여기서 드러난다. 노무현 정부 초기에는 그래도 '개혁'이라고 내걸었던 방향이 임기 2년이 지나면서 틀어졌고 결국 완전히 공공성을 포기했다.

언론시장 역시 재벌의 논리, 천민자본주의 등 잘못된 시장논리만 판치고 있다. 청와대는 심지어 <KBS 스페셜> 등 1~2개의 프로그램들이 한미 FTA를 비판한다고 해서 방송위를 통해 압력을 넣었다는 것이 드러났다. 방송을 통제의 대상으로 삼으려 하고 있다. 반면 공공성을 지키려고 하는 세력은 이제 숫적으로도 열세가 됐다. 언론 환경이 급격히 어려워지고 있다.

나는 경우에 따라서는 타협을 해야 하는 상황과 타협의 여지가 없는 상황으로 현안을 구분했다. 임금이나 단체협약 같은 경우는 싸우다가도 타협을 해야 한다. 그렇지만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없는 몇 가지가 있다.

첫째, 신문시장의 정상화다. 불법판촉을 뿌리뽑는 데 무슨 타협이 필요하겠나. 그런데 정부는 조중동 눈치 보면서 정상화한다는 시늉만 하고 있는 꼴이다.

둘째, 다공영-1민영 방송체제다. KBS, EBS, MBC 등 여러 개의 공영방송과 SBS와 9개의 민방으로 대표되는 하나의 민방으로 가자는 얘기다. 기업 지배구조가 사적 구조인지, 공적 구조인지에 따라 방송 프로그램에 미치는 영향력은 어마어마하다. 지금 한나라당 등에서는 세계적인 추세라며 신문과 방송 사업자들의 교차소유를 밀어붙이고 있다. 조중동이 신문시장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 상태에서 교차소유가 가능해진다면 한국의 민주주의 전체가 위협받는 셈이다.

셋째, 지상파 방송의 무료보편적인 서비스다. 가정이나 사무실에서 볼 때,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 볼 때, 휴대전화로 볼 때 모두 무료로 볼 수 있어야 한다.

넷째, 통신사업자의 무분별한 방송 진출 저지다. SKT 한 기업만 해도 2003년에 1조3000억에 달하는 단기 순이익을 냈다. KBS 전체 예산보다 많은 수치다. 이런 기업들이 지상파를 망치는 걸 두고 볼 수 없다.

모두 공공성에 관한 현안이다. 그런데 이 사안들이 한미 FTA를 체결해 지금과 같은 무방비 상태에서 방송시장이 개방되면 다 무너지게 된다.
"8년만에 졸업하는 기분…앞으로 개인 연구 계속할 것"

인터뷰를 마치면서 신학림 위원장은 4년간의 임기가 끝나는 지금 "홀가분하다"고 말했다. 지난 8년간 노동조합 전임으로 일해 왔던 그는 "8년만에 졸업하는 기분"이라고도 말했다. 1984년 한국일보에 입사한 뒤 신 위원장은 1993년과 1996년 두 번에 걸쳐 한국일보 노조위원장을 역임한 뒤 2003년 언론노조 2기 위원장에 당선됐다.

그는 위원장 기간 동안 아쉬웠던 일에 대해 묻자 "<스포츠조선>의 성희롱 사건 같은 경우 유능한 변호사에게 맡겼어야 되는데 고용여성평등위원회에 맡겼더니 조선일보 손을 들어주더라"며 "한국일보도 대규모 정리해고를 막아내지 못한 것이 아쉽고 미안하다"고 밝혔다.

앞으로의 활동 계획을 묻자 신 위원장은 "어느 조직에도 속하지 않고 개인적인 연구에 몰두할 생각"이라며 "구체적으로 주제를 밝힐 순 없지만, 언론과 관련된 한국사회의 문제에 대해 깊이 탐구해볼 작정"이라고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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