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낮 1시, 서울 광화문 미 대사관 근처에서는 30여 분간 기이한 '저글링 공연'이 펼쳐졌다. 흰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한 남자가 저글링을 하는 가운데 그의 양옆에 검은 옷을 입고 검은 리본으로 얼굴을 가린 10여 명의 청년들이 서 있었다. 시민들은 거리 한가운데서 벌어진 이 기이한 풍경을 힐끔힐끔 보며 지나갔다.
이들은 지난 27일 아프가니스탄에서 폭탄테러로 숨진 윤장호 병장의 죽음을 추모하는 평화활동가들이었다. 27세의 젊은 나이에 숨진 윤 병장을 기리는 의미에서 평화활동가들은 27분간 '피스몹 시위'를 벌였다. 피스몹이란 특정 장소에 짧은 시간 모여 행동을 벌이는 의미의 플래시 몹(Flash mob)에 평화를 뜻하는 피스(Peace)를 합성한 단어다.
"국방부의 '심심한 위로'에서는 진정성을 볼 수 없다"
"그는 미국이 벌이고 한국이 동참한 전쟁의 희생자입니다. 침묵으로 그의 죽음을 추모합니다."
이들은 특정 단체 소속이 아니라 개인적 차원에서 이번 시위를 조직하고 참가했다. 평화단체 간사, 대학원생, 책방 주인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이들은 27일 저녁 윤장호 병장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인터넷과 문자메시지를 통해 연락을 주고받았다.
이들의 공통된 의견은 윤 병장의 사망은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그리고 이를 도운 한국의 파병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이에 이들은 사건이 발생한 지 24시간 안에 비폭력 직접 행동에 나서는 '24시간 평화행동'을 벌이기로 합의했다.
이날 피스몹 시위에 참가한 이안지영 씨는 "오늘 우리는 윤장호 병장에 대한 추모와 함께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파견된 한국군의 철군, 그리고 레바논 파병 반대를 외치기 위해 모였다"고 밝혔다.
또 다른 참가자인 박강성주 씨는 "언론과 국방부가 윤장호 병장을 영웅이라고 하는 것은 또다른 윤장호 병장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진정으로 추모와 애도를 할 때인데, 당국에서 '심심한 위로를 표한다'고 한다거나 언론에서 그를 영웅시하는 것은 진정한 위로가 아니다"라며 "그 위로가 진정성을 가지려면 철군을 주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 '이라크평화네트워크'를 만들어 국내에서 평화운동을 벌이기도 했던 임영신 씨는 "포털에서는 테러범을 증오한다는 댓글이 올라오고 있다"며 "물론 그를 직접적으로 죽인 것은 아프간의 테러리스트지만 사건의 본질은 미국의 침략전쟁과 그에 동조한 한국정부의 파병 결정이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밝혔다.
그는 "결국 고 윤 병장의 죽음은 우리 자신들이 참여한 우리 정부의 결정이었다"며 "이처럼 사건을 평화의 눈으로 해석하고 그런 해석을 행동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들은 오는 3월 2일 광화문 건널목 등 시내에서 또다른 형태로 피스몹 시위를 벌일 예정이다. 이들은 "참가를 원하는 이들은 언제든지 함께 할 수 있다"며 '평화의 눈'을 공유하는 이들의 참여를 바란다고 밝혔다. 피스몹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개인 평화활동가들의 네트워크 홈페이지(www.peacemaker.org)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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