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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ㆍ의경 자살율, 육군보다 훨씬 높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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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전ㆍ의경 자살율, 육군보다 훨씬 높아"

인권위 "구타 및 가혹행위자, 형사입건해야"

"시위대 앞에 서서, 나도 모르게 소변을 본 적이 있다. 너무 무서워서다."

각종 시위 진압에 동원된 한 전투경찰이 토로한 경험담이다. 각종 총기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전방 군부대 내의 인권 문제는 여러 차례 공론화됐다. 하지만 정작 시민들이 가까이에서 접하는 전·의경들이 겪는 어려움은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인권위 "전ㆍ의경 구타 가해자, 형사입건해야"

국가인권위원회가 27일 전ㆍ의경 인권 상황과 근무여건 개선에 관한 권고안을 발표했다. 이날 권고안은 경찰청장과 기획예산처장관, 국방부장관에게 전달됐다.

16개월 간의 조사를 거쳐 나온 이번 권고안에는 주5일제 근무제 도입과 구타방지책 마련, 시설 및 생활문화개선, 영창제도 폐지 등의 내용이 담겼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전ㆍ의경의 과도한 근무 최소화 △복무 부적합 및 부적응자 관리 실효성 확보 △비인권적 내무생활문화 개선 △인권교육 강화 △실질적 의료권 보장 △내무반 시설 등 열악한 생활시설 적극 개선 △식사수준 질적 향상 및 교통비 현실화 △구타 및 가혹행위자 형사입건 등 법적책임 강화 △영창제도 폐지 등 징계제도의 합리적 개선 등이다.

또 △인권침해 구제 신청의 편의를 돕기 위한 컴퓨터 보급 확대 △인권위 등 외부기관에 대한 진정권 보장 △도서벽지의 전ㆍ의경을 위한 '원격 화상진료체계' 구축 △시위진압 중 사망하거나 부상하는 경우를 대비해 국가예산으로 보험료를 내는 민간상해보험제도 도입 △내무반 공간 1인당 2평 이상 확보 △전ㆍ의경 군용무료열차(TMO) 이용 등의 내용도 포함됐다.

이 가운데 '구타 및 가혹행위자 형사입건'을 권고한 것이 특히 주목된다. 이날 권고안을 발표한 최영애 인권위 상임위원은 "구타 및 가혹행위 근절을 위해서는 가해자를 원칙적으로 형사입건하고, 피해자ㆍ목격자ㆍ감독자의 신고를 의무화해야 할 뿐 아니라, 사건의 은폐를 예방하기 위해 감독자를 일률적으로 문책하지 말고 원인관계에 따라 조치하도록 관련규정을 보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영창제도 폐지'도 눈에 띈다. 이에 대해 인권위 관계자는 "법관의 결정 없이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구금하는 것은 신체의 자유권을 침해하며 형사 처벌과 중복돼 이중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주당 70∼80시간 근무하는 전ㆍ의경…육군보다 훨씬 높은 자살율

한편 이날 인권위 발표에 따르면 전ㆍ의경의 인권 상황은 매우 열악하다. 또 과중한 업무에 따른 피로와 스트레스도 심각하다.

서울 5개 기동대 소속 전ㆍ의경의 주당 평균 출동시간은 최고 89시간, 최저 47시간으로 조사됐다. 각종 진압훈련까지 감안하면 주당 평균 근무 시간이 70∼80시간에 달한다.

하루 평균 5시간도 못 자는 전ㆍ의경이 6.3%, 5∼7시간 자는 경우가 54.7%로 나타났다. 인권위는 만성과로로 인한 전ㆍ의경의 스트레스가 구타 및 가혹행위, 부상과 자살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출동 및 근무 중 부상자 수는 2002년 923명에서 2003년 1007명, 2004년 1048명, 2005년 1232명, 2006년 1∼6월 531명으로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또 정신과 치료자의 수도 2000년 143명, 2004년 187명, 2006년 190명으로 증가했다. 이런 수치는 부상이 꾸준히 줄고 있는 국군 사병과 달리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또 지난 25일 대구중부서에서 한 전경이 경찰서 4층 강당 창문을 열고 투신 자살하는 등 지난 5년간 평균 8.6명이 자살하고 5.6명이 자해를 했다. 특히 이런 자살 및 자해는 낮은 계급인 일ㆍ이경에게서 주로 발생했다.(전체의 86%)

이런 자살율은 육군 사병에 비해 크게 높은 것이다. 1만 명당 평균 자살자 수(최근 3년 간)를 조사한 결과, 육군은 1.17명이었으나 전ㆍ의경은 1.94명으로 훨씬 많았다.

이층 침상, 출동버스 뒤쪽이 구타 온상

인권위는 이처럼 높은 자살율과 빈번한 구타가 뗄 수 없는 관계라고 봤다. 시위 진압에 대해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는 젊은 전ㆍ의경들의 '군기를 잡기 위해' 구타가 종종 발생한다는 것. 그리고 선임자의 구타와 시위 진압의 부담 사이에서 큰 스트레스를 받는 전ㆍ의경들 가운데 자살 및 자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생긴다는 것이다.

특히 자주 구타가 발생하는 장소로는 내무반 이층 침상, 출동버스 뒤쪽 구석 등이 꼽혔다. 대부분 지휘관의 눈길이 잘 닿지 않는 곳이다. 특히 시민들이 지나다니는 도로에서는 때리지 않다가 출동버스에 탑승하면 구타를 가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무심코 지나치는 전ㆍ의경 출동버스가 종종 구타의 온상이 돼 온 셈이다.

하지만 구타 사고 발생시 형사 입건율은 4%에 불과했다. 자체 감찰조사와 징계로 사건을 마무리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인권위는 이런 자의적인 조사와 징계가 연이은 구타 사고의 한 원인이라고 파악했다. '구타 및 가혹행위자 형사입건'을 권고한 배경이기도 하다.

내무실 및 출동버스 안에서 발생하는 각종 가혹행위와 구타가 또 다른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도 드러났다. 피해자 중 상당수가 폭력을 휘두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는 것이다. 가혹행위 피해자의 53.9%가 "가해자를 폭행하고 싶다"는 생각을 품었으며, 12.1%는 "가해자를 죽이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 것으로 조사됐다. 또 11.2%는 "복무이탈을 하고 싶다"는 유혹에 노출됐다. 구타 문화를 근절하는 게 각종 폭행 및 복무 이탈 사고가 재생산되는 것을 막는 지름길인 셈이다.

전ㆍ의경의 열악한 인권 현실은 사생활이 보장되지 않는 내무실 환경과도 무관하지 않다. 전ㆍ의경 1인당 평균 내무실 사용면적은 0.73평에 불과하다. 이처럼 비좁은 공간에서는 후임자가 끊임없이 선임자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또 선임자의 횡포를 접수하기 위한 '소원수리' 역시 제대로 비밀 보장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오후에 열릴 집회 위해 오전 8시부터 배치된다"…효율적 인력 운용 절실

인권위는 이런 열악한 근무여건 외에도 전ㆍ의경의 과다배치 및 조기배치에 대해서도 문제제기했다. 김용국 인권위 사무관은 "오후에 예정된 집회를 위해 오전 8시부터 전ㆍ의경이 배치되거나, 소규모 집회에 대해서도 지나치게 많은 인원을 동원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비효율적인 인력 운용이 전ㆍ의경들에게 불필요한 피로와 스트레스를 안긴다는 것이다.

이런 지적에 대해서는 경찰도 공감했다. 이날 경찰청 관계자는 "전ㆍ의경의 만성피로와 스트레스가 사기저하와 인권침해 요인으로 작용할 뿐만 아니라 집회 안전관리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라며 집회시 전ㆍ의경과 시위대의 비율을 1대1 이하로 조정하도록 상설 부대를 효율적으로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예방 차원의 관행적 경력배치로 인한 '시간 때우기 식' 근무를 없애고 집회신고 단계부터 필요한 병력을 분석해 적정 인원만 배치하며 주1회 휴무를 반드시 보장하겠다"고 덧붙였다.

인권위 권고안이 나오기 하루 전인 26일, 경비업무를 담당하는 경찰 간부 215명이 모여 효율적인 병력운영과 전ㆍ의경 사기진작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이 자리에 모인 간부들은 '전ㆍ의경 인권상황 개선을 위한 종합제도개선 대책'을 수립하기 위한 현장 실사에 착수하기로 결정했다.

이밖에도 경찰청 관계자는 "'전ㆍ의경 주간 근무시간 총량제'를 도입해 매주 2차례 휴식을 보장하는 주5일제 근무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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