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봉 전 의원이 이 전 시장의 과거 선거법 위반 및 범인도피죄와 관련한 판결문, 관련기사 등 '자료'를 가지고 군불을 땔 때만 해도 파장은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러나 16일 오후 이 전 시장의 비서관 출신인 김유찬 씨가 "이 전 시장 측이 공판과정에서 허위진술을 교사하면서 1억2500만 원의 거액을 줬다"고 주장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는 분위기다.
이는 이 전 시장의 재판 과정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새로운 주장. 이로 인해 '이명박 의혹'은 김 씨와 이 전 시장 측 사이의 '진실 게임'으로 비화됐으며, 박근혜 전 대표 측의 '배후설'이 맞물려 확산되면서 한나라당 대선경쟁 국면에 적지 않은 소용돌이가 불가피해졌다.
'진위공방' 거세질 듯
우선 초점은 김 씨가 허위진술 대가로 이 전 시장 측으로부터 거액을 받았는지 여부. 김 씨는 이에 대한 물증을 남기지는 않았다고 했지만, 당시 돈을 전달한 사람들의 진술에 기초해 진위를 입증하겠다고 밝혔다.
이 전 시장 측도 바빠졌다. 이 전 시장의 선거캠프인 안국포럼은 김 씨의 기자회견 뒤 곧바로 "전형적인 김대업 수법으로 개탄스럽다"며 "위증의 대가로 돈을 줬다면 (선거법 위반 등의 재판에서 이 전 시장이) 유죄판결을 받았겠느냐"고 부인했다.
이 전 시장도 보고를 받고 "말도 안 된다"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씨에게 위장 진술 대가로 거액을 전달했다는 당사자들도 김 씨의 주장을 허위라고 반박했다.
이런 가운데 박근혜 캠프는 물론이고 손학규, 원희룡 등 다른 진영에서도 새로 제기된 주장에 대해 당이 진위를 밝힐 의무가 있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이 문제는 김 씨 등 관련 인사들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진실 공방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법정공방으로 비화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일단 이 전 시장의 위증교사죄는 공소시효가 5년이고 이 전 시장의 선거법 위반 재판은 그 이전에 모두 마무리 돼 공소시효 법리 상 수사대상이 되기 힘들다는 게 법조계의 관측.
그러나 이 전 시장 측이 김 씨를 명예훼손 등으로 고발할 경우 수사과정에서 위증교사 부분에 대한 내용을 건드릴 수밖에 없어 법적 결론을 맺을 가능성도 열려 있다.
박근혜-이명박 '강대강' 정면충돌 불가피
한편 김 씨 주장의 진위 여부는 불투명하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박근혜-이명박 두 사람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강이 놓인 게 아니냐는 관측은 일반적이다.
만약 김 씨의 주장이 사실로 드러나거나 진실공방이 장기화될 경우 이 전 시장에겐 도덕적 치명상이 될 가능성이 다분하기 때문. 특히 사소한 것이라도 검증은 해야 한다는 박 전 대표 측의 입장과 음모론으로 맞서는 이 전 시장 측의 정면충돌은 심각한 파열음을 내며 한나라당 전체를 집어삼킬 수도 있다.
이 전 시장 측은 이미 박근혜 캠프와의 커넥션 의혹을 강하게 제기하고 있다. 특히 김 씨가 지난 13일 자신의 사무실에서 정인봉 전 의원을 만났다고 밝힌 대목이 심상치 않다는 것. 그동안 이 전 시장 측은 박근혜 캠프의 법률특보를 맡아 온 정 전 의원의 자료 공개에 대해서도 '개인플레이'가 아닌 '조직적 배후설'을 주장해 왔다.
이에 앞서 방미 중인 박 전 대표가 과거 이 전 시장의 선거법 위반 내용과 관련해 "대통령 후보의 도덕 기준으로 볼 때 중요한 것인지, 하찮은 것인지는 국민들이 판단할 몫"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 전 시장 측은 이에 대해 "왜 하필 박 전 대표가 해외로 나가 있을 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도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이 전 시장 측은 일련의 사태를 조직적인 폭로 공세로 규정하고 설 연휴 이후부터 적극적으로 대응하기로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19일 귀국하는 박 전 대표의 향후 대응에 따라선 양측의 돌이킬 수 없는 전면전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경우에 따라선 이 사건을 도화선으로 양측이 갈라서는 방향으로 나아갈지 모른다는 우려도 한나라당에 팽배해 있다. 당 지도부나 경선관리기구가 이 문제를 적절히 매듭지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치도 매우 낮다.
김유찬은 누구? 한나라당은 물론 정치권 전체를 휘감을 만한 태풍의 한 가운데에는 논란의 당사자인 김유찬 씨가 있다. 김 씨는 지난 1995년 5월부터 이듬해 6월 중순까지 당시 신한국당 소속 의원이던 이 전 시장의 비서관을 지냈다. 김 씨와 이 전 시장 사이의 악연은 96년 15대 총선 직후인 9월 김 씨가 이 전 시장의 선거법 위반 혐의를 폭로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그는 선거기획 대행사에 제출한 상세한 지출항목 등을 근거로 이 전 시장이 총선 당시 6억 원 대의 불법 선거자금을 썼다고 주장했다. 그 이후 김 씨는 선거법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 전 시장 측으로부터 1만8000달러를 도피자금 조로 받아 홍콩을 경유해 캐나다로 떠났다. 나중에 이 전 시장은 선거법 위반과 범인 도피 혐의가 인정돼 벌금형을 받았다. 김 씨는 해외로 도피하기 전 자신의 폭로 사실이 허위였다는 '거짓 편지'를 쓰도록 강요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오랏줄에 묶여 수의를 입은 어제의 동료들을 보고 눈시울을 적시지 않을 수 없어 모든 것을 덮자는 생각에 이 전 시장에게 문제가 될 만한 진술을 모두 부인하는 허위진술을 했다"는 것. 그러나 김 씨는 자신이 새로 들고 나온 주장을 입증할만한 물증은 남기지 않았다고 했다. 김 씨는 현재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DMC)에 137층짜리 초고층 빌딩을 짓는 사업을 추진 중인 부동산 개발업체 '서울IBC' 대표이사 직을 맡고 있다. 이 사업은 이 전 시장이 서울시장에 재임 중이던 2003년부터 김 씨가 매달려 온 사업. 이와 관련해 김 씨의 16일 추가 폭로에는 10여 년 전에 맺은 악연과 함께 자신의 사업이 잘 진행되지 않은 점도 작용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 있다. 게다가 김 씨는 "조만간 정치에 입문할 수 있다"고 밝혔다. 앞서 김 씨는 지난 98년 지방선거에서 영등포구청장으로 출마하기도 했었다. 한편 김 씨는 2월 말이나 3월 초에 이 전 시장의 도덕성 문제를 담은 '이명박 리포트'라는 책을 출간할 예정이다. 그가 공개한 책의 목차에는 이 전 시장의 재산, 여자관계 등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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