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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제명돼서 '일해공원'이 철회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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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제명돼서 '일해공원'이 철회된다면…

[지방의회 돋보기]아이들에게 그곳 이름 물어보라

얼마 전 경남 합천군의회가 '일해공원'으로의 명칭변경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민주노동당 소속의 박현주 합천군의원(비례대표)을 제명하겠다고 나서서 파문이 일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군의 일방적인 명칭 변경도 모자라 의회가 이런 해괴한 일을 거들면서 '일해공원'에 대한 세상의 눈총은 더욱 차가워졌습니다.
  
  <프레시안>은 이번 주 '지방의회 돋보기'에 박 의원의 글을 소개합니다.그간 합천군의회에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박 의원의 설명을 따라가 봅니다.<편집자>

  
  나는 지난해 12월 말부터 일해공원 반대 1인 시위를 했다. 그로 인해 "의원의 품위를 손상 시키고 의회의 위상을 실추시켜 망신을 준 행위"라는 비난을 받았다. 그 때부터 "책임을 지게 하자"는 이야기도 솔솔 들렸다.
  
  급기야 1월 16일 군의회 정례간담회에선 "일해공원에 반대하는 두 사람만 방송을 타더라. 군 의회의 위상 문제다. 윤리위원회에 회부해야 한다. 의회 차원에서 벌 줄 사람이 있으면 주자"는 말이 나왔다. 방송을 탄 두 사람은 나와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새천년생명의 숲 지키기 합천군민운동본부'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윤재호 군의원이었다.
  
  1월 31일 본회의가 끝난 뒤 오후 1시 또 한번 임시 간담회가 열렸다. 이에 앞서 29일은 합천군이 군정 조정위원회를 통해 전두환 공원(일해공원)으로의 명칭 변경을 확정한 날이었다. 이 간담회는 의원의 징계를 논의하는 자리였다. "경고 정도가 아니라 제명을 논의하고자 한다"는 의장의 말로 간담회가 시작됐다.
  
  그리고는 29일 내가 발표한 기자회견문을 문제 삼기 시작했다. 마지막 구절쯤에 "'합천군의회의 만행을 규탄한다"는 표현이 거슬렸던 모양이다. "어떻게 의원이 군의회를 규탄하며 만행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느냐. 사과하라"는 요구였다.
  
  마침 윤재호 의원은 29일 기자회견장에 참석하지 못해 나만 사과 요구를 받았다. 거의 심문을 하는 듯한 의원들의 발언도 있었고, 큰 소리의 호통도 들었다. 나는 파르르 요동치는 감정을 참았다. '오늘 자리는 내가 도마에 오르는 자리이구나' 생각하며 일부러 호흡을 길게 하는 등 태연하려 애썼다. 속으로는 "사과를 할 수는 없지. 만행이라는 표현이 조금 지나쳤는지는 생각을 좀 해봐야겠지만 사과를 할 수는 없지…"라고 되뇌었다.
  
  그런데 불현듯 '제명'이라는 말이 귀에 꽂혔다. 순간 모든 감각이 정지된 듯 했다. 이미 그럴 수 있다는 얘기를 듣기는 했지만 실제로 동료의원들의 입을 통해 듣는 느낌은 달랐다. 하지만 이미 선약된 전화 인터뷰 관계로 나는 간담회 자리를 먼저 빠져 나와야 했다.
  
  인터뷰가 끝난 뒤 간담회에 배석했던 사무과 직원에게 어떻게 정리됐느냐고 물어봤더니 흐지부지 끝났다고 했다. 그런데 징계 절차는 밟는다고 하더냐고 물었더니 그건 그럴 것 같아 보인다고 했다.
  
  제명이라는 조치는 그냥 넘길 사안은 아니었다. 의정지원단과 논의를 했다. 구체적인 징계 절차에 들어간 것은 아니어서 대응 방법을 어떻게 할 것인가는 차후 사태의 추이를 보며 정하기로 했다.
  
  그러나 내 머릿속에는 여러 가지 생각이 오갔다. '제명…나쁠 것이 없지. 차라리 이 전쟁터를 벗어나고 의원 책임도 벗어 던지고 생업으로 돌아가 천연염색과 바느질을 하면서 좋아하는 사람과 만나 한가롭게 차나 마시며 조용히 살면 되겠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중앙 일간지에 보도가 나가고 민주노동당 중앙당에선 대변인 성명을 발표하면서 점점 마음이 결연해졌다. 내 말과 행동에 대한 책임은 내가 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말 하나 하나 꼬투리를 잡아오기에 말 한마디 한마디도 더욱 조심스럽게 했다.
  
  2월 6일 정례간담회에 촉각이 곤두섰다. 의회 일정이 없어서 징계 논의는 간담회 형식을 빌었다. 정례간담회를 마치자 의장은 직원들을 모두 내보내고 의원들만 남으라고 했다. 그러더니 한 포탈사이트에 게재된 신문 기사를 돌렸다. 기사 내용인즉 민주노동당 소속 군의원이 일해공원 반대 기자회견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제명조치를 당할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흐릿하게 복사된 종이를 본 순간 답답하면서도 오히려 차분해졌다. '또다시 이런 것을 준비해 놓고 나를 치려 하는구나. 오늘의 각본은 뭐지?' 분노나 비탄이 아니라 서글퍼졌다. 의원들도 한결 같이 "당신은 일해공원 반대의 자유가 있다면서 우리가 찬성하면 왜 만행이냐. 반대가 있으면 찬성도 있어야 하지 않는가? 이는 명백한 의회 모독이고, 인권 침해이다. 사과를 하지 않으면 징계 위원회를 열겠다"고 윽박질렀다.
  
  나는 또박또박 반박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찬성 행위는 만행이 맞다. 사과할 수 없다"고 했다. 그랬더니 "사과를 안 하면 징계위원회를 열 수밖에는 없다"고 압박의 강도를 높였다. 그러면서도 지난 번 간담회에서 자기들은 제명 논의를 꺼낸 적이 없다고 발뺌도 했다. 이런저런 설전이 오간 끝에 제명 결론은 차마 내리지 못하고 간담회가 마무리됐다.
  
  간담회를 마치자 전화통엔 불이 났다. 언론에선 징계 건이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어 왔다. 차분히 마음을 정리하고 의정지원단과 논의를 거친 후에 대응을 하는 것이 옳지 않겠나 싶어 그 즉시 언론을 상대로 특별한 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 뒤 일주일이 흘렀다. 아직까지 의회에선 징계에 관한 아무런 이야기가 없다. 내 문제가 세상에 알려진 게 부담스러웠을 수도 있겠지만, 공교롭게도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일해공원 명칭이 "부적절하다"고 밝힌 뒤부터 징계 이야기가 쏙 들어갔다.
  
  하지만 갑자기 유명인사가 된 나는 아직도 시달리고 있다. 이름도 밝히지 않은 채 걸려오는 협박성 전화는 예사다. 혼자 튀지 말라는 문자 메시지도 들어온다. 그러나 이젠 나도 차분해졌다. 전화기 너머로 나이 지긋한 어르신의 목소리가 들려오면 "제가 의회에 계속 있으니 방문하셔서 제 말을 들어봐 달라"고 당부도 드린다.
  
  이런 것은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다. 나에게 손가락질 하는 분들도 결국은 내가 설득시켜야 할 우리 군민 아닌가. 하지만 내 문제보다 중요한 게 있다. 군이 일방적으로 정한 일해공원 명칭을 철회시키는 것이다. 나는 여전히 국민의 정서에 맞는 새 이름을 공모하거나 원래의 이름을 그대로 쓰자고 요구하며 '일해공원 불복종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하나둘씩 우리 편이 늘어나는 것도 확실히 느낀다.
  
  군은 공원의 이름을 광주 학살자의 아호를 따 삭막하게 바꾸어 놓았으되 우리 군의 아이들은 여전히 원래 이름인 '새천년 생명의 숲 공원'을 줄여 '새숲'이라고 부른다. '새숲', 어감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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