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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시법, 사실상 '허가제'…위헌요소 넘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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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집시법, 사실상 '허가제'…위헌요소 넘쳐나"

집회자유연석회의 "소외된 자들의 마지막 수단"

"WTO와 한미FTA로 생사의 기로에 놓인 농민들이 어려운 처지를 알리려 집회 한 번 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오려 해도 경찰은 집 앞에서부터 막고, 고속도로 입구에서 농민들이 탄 버스 가로 막아 원천봉쇄를 한다. 그나마 봉쇄를 뚫고 서울에 와도 경찰버스로 집회장을 꽁꽁 싸매 지나가는 사람들은 무슨 집회를 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다 경찰과 몸 싸움이라도 벌어지면 새파랗게 어린 전의경들이 나이 60이 넘은 노인들을 무차별로 폭행한다. 농민이 2명이나 폭력진압에 사망했다. 대한민국은 집회 및 시위의 자유가 있는 나라인가?"(전국농민회 민동욱 대외국장)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집회로 인한 사회비용이 연간 12조 원'이라는 연구결과가 발표돼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전국민중연대, 민주노총 등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자유롭고 평화로운 집회시위 자유 보장을 위한 연석회의'(아래 연석회의)는 8일 오후 서울 영등포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현행 집시법이 안고 있는 문제점들이 본격적으로 도마 위에 올랐다. 현행 집시법은 위헌적 요소를 담고 있을 뿐 아니라 법 적용에도 경찰의 자의적 판단이 지나치게 개입돼 사실상 헌법적 권리인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박탈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 지난해 가을 열린 평택관련 집회. 이들은 대추리에서 집회를 열 계획이었지만 경찰의 원천봉쇄로 국도상에서 집회를 열 수밖에 없었다. ⓒ프레시안

"집시법 위헌적 조항 넘쳐난다"


오동석 아주대 법대 교수는 이날 토론회에서 "집시법은 용어만 헌법이 금지하는 '허가'를 사용하지 않았을 뿐 명실상부 허가제라 할 만한 위헌적인 조항들로 넘쳐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헌법 제21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돼 있고, 같은 조 제2항은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고 규정돼 있다. 그러나 경찰이 '금지 통보'라는 재량권을 남용해 사실상 집회가 '허가제'로 운영되고 있다는 것.

오 교수는 "신자유주의가 초래한 국민국가 재구조화의 결과로서 나타나는 헌법현상은 근·현대 헌법규범의 전도적 붕괴"라며 "국가는 정치적·사회적 영역에서는 억압적으로 간섭해 민중의 생존권과 자유권을 침탈하는 한편, 경제적·사회적 영역에서는 자본의 반인간적 이윤추구를 방임 또는 조장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집회·시위 자유의 숨통을 조여 가는 집시법은 그 선봉에 있다"고 강조했다.

"헌법적 권리인 집회, 경찰 마음대로 금지"

오 교수는 현행 집시법의 위헌적인 '허가적 요소'에 대해 △지나치게 엄격한 신고사항 △금지통고제도를 지적했다.
▲ 하중근 씨 사망사건과 관련해 상경집회를 열고 있는 포항건설노조원들. 박석운 민중연대 집행위원장은 "전용철, 홍덕표, 하중근 씨 사망사건과 관련해 지옥까지라도 쫓아가 경찰에게 책임을 묻겠다"고 다짐했다. ⓒ프레시안

현행 집시법은 집회 목적, 일시, 장소, 주최자는 물론 질서유지인의 주소·성명·직업·연락처를, 그 시행령은 시위의 대형, 차량·확성기·입간판 기타 주장을 표시한 시설물의 이용 여부와 그 수, 구호제창 여부, 진로, 약도, 차도·보도·교차로의 통행방법, 기타 시위의 방법과 관련되는 사항 등을 신고하도록 돼 있다. 오 교수는 "이런 신고사항의 과다성과 상세함은 그에 대한 금지사유와 비례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오 교수는 특히 "보완통고제도와 집회 금지 조치, 그리고 처벌조항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조항은 허가제를 공고화 한다"고 강조했다. 현행 집시법은 관할 경찰서장이 집회신고서의 기재사항이 미비하다는 이유로 그 보완을 통보하고, 보완되지 않을 경우 집회를 금지할 수 있게 했다. 또 '허위' 신고에 대해 6월 이하의 징역 또는 50만 원 이하의 벌금·구류 또는 과료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전국빈민연합 최인기 사무처장은 "현 집시법은 경찰에 '질서유지인'으로 집회 참가 예상 인원의 10%를 신고하도록 돼 있다"며 "100명이 모이는 집회면 10명만 신고하면 되지만 1000~1만 명이 모이는 집회는 100~1000명의 질서유지인을 선정해 주소와 직업, 연락처 등을 일일이 기재해야 하는데 이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경찰이 규정한 '불법집회'라고 의료보험도 안 해줘"

오 교수는 '금지통고제도'의 위헌성에 대해서도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는 '집회 또는 시위가 (…) 공공의 안녕질서에 직접적인 위험을 초래한 경우에는 (…) 금지통고를 할 수 있다'는 집시법 제8조 제1항에 대해서도 "위헌으로 봐야 한다"고 단언했다.

그는 "이 조항은 집회·시위 과정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사소한 충돌을 빌미로 경찰이 집회를 금지할 수 있게 해 집회 또는 시위에 대한 일괄적인 사전적 허가제로 운용될 수 있게 한다"며 "더욱이 '폭력'은 경찰력과 충돌과정에서 촉발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 집회와 시위는 진보단체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하지만 최근 집회·시위에 대한 보수언론의 공세가 강해지자 보수·극우단체들의 대규모 장외집회를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사진은 2005년 3.1절에 열린 '反北집회.' ⓒ프레시안

전국건설연맹 최명선 정책부장은 "연맹에서 집회신고를 하려고 해도 경찰은 '불법집회'를 연 전력이 있는 점, 건설연맹 산하 조직에서 '불법집회'를 연 전력이 있는 점, 건설연맹의 집회에 다른 '불법집회' 전력을 가진 단체가 참여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 집회장소를 '차도'가 아닌 '인도'로 신고했지만 인도도 '주요도로'에 해당한다는 점 등을 이유로 집회 금지 통고를 해 왔다"며 "이런 식이면 건설연맹은 앞으로 집회를 열 수 없는 게 아니냐"고 말했다.

최 부장은 "경찰이 일방적으로 금지를 통고한 뒤 집회의 내용이나 폭력성과는 상관없이 집회를 열었다는 이유만으로 '불법집회'로 규정한 뒤 강제 무력진압을 해 물리적 충돌을 일으키고 책임을 다시 집회 주최 단체에 전가하는 행태를 보면 집회의 자유에 대한 헌법 보장이 무색하다"고 비판했다.

최 부장은 또 "포항지역 건설노조 파업 당시 고 하중근 씨의 영정을 들고 행진하던 노조원들에게 물대포를 쏘고 방패로 찍어 실명을 하고 손가락이 뭉개진 조합원들의 병원 치료비로 의료보험공단 측이 처음엔 보험금을 지불했으나 '불법집회'라는 이유로 지급한 보험금을 돌려달라고 하고 있다"며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었던 노동자들은 어떻게 살아가야만 하냐"고 목청을 높였다.

▲ 서울 남대문 삼성 본관 앞은 회사 측의 철저한 사전 집회신고로 인해 집회 성격을 막론하고 삼성 본관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뉴스거리가 된다. 사진은 지난해 8월 X파일 사건과 관련해 삼성 본관 앞에서 열린 촛불집회. ⓒ프레시안

"1인 시위, 한국의 억압 상황 잘 보여줘"


또 '삼성 본관'을 둘러싼 집회신고 경쟁과 같이 집회 장소가 중첩될 경우 상황이나 양자의 절충에 따라 배분하지 않고 단순히 접수 순서에 따라 집회를 허용함으로써 정작 의사표현이 필요한 집회·시위를 가로막는 결과를 초래하는 점, 소음 정도를 제한하고 있는 점 등이 집시법의 위헌적 요소로 지적됐다.

오 교수는 "집시법의 적용을 피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활용되는 '1인 시위'는 집회·시위 자유의 억압상황을 잘 보여준다"며 "현행 집시법은 언론·출판으로부터 소외된 자들이 집합적 의사표현을 할 수 있는 수단을 가로막고 이들을 파편화시킴으로써 민주주의 말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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