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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석회의' 성공의 6가지 필요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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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석회의' 성공의 6가지 필요조건

[기고] 우리식 사회갈등 해결기제 구축의 계기 돼야

노무현 대통령이 12일 국무총리가 대독한 국회 시정연설에서 '사회적 갈등 해소와 사회적 통합, 주요 경제문제 해결'을 목표로 한 '국민대통합 연석회의'를 제안한 것은 우리의 사회경제적 갈등과 난제 해결방식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이는 얼마 전 분분했던 정치적 대연정 논란에 가려 정치적으로 해석하거나 가볍게 보아 넘길 것이 아니다. 국민대통합 연석회의 제안의 의미와 성공요건을 짚어보기로 하자.

***민주화된 시대의 사회적 갈등 해결 인프라가 필요하다**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에는 권력자와 엘리트 관료들이 사실상 주요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했다. 그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회적 갈등은 용납되지 않았다. 권력 엘리트들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기득권 세력의 이해는 정책결정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반영되었다. 사회적 세력 간에 이해관계가 대립되는 사회적 이슈와 제도에 대한 권력 엘리트들의 정책결정에서 많은 힘없는 서민들의 의사나 이해는 무시되기 일쑤였다. 여기에 저항하는 개인이나 사회세력은 심한 탄압을 받곤 했다.

1987년 이래 우리 사회가 점차 민주화되면서 각 사회세력, 특히 사회적 약자가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기 이해를 주장할 수 있게 된 다원적 민주주의의 틀이 갖추어져가고 있다. 과거와 같은 권력 엘리트들의 독단적인 정책결정과 밀어붙이기식 정책은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된 것이다.

그러나 모든 갈등을 조화롭게 해소할 수 있는 기제가 정착된 것도 아니다. 큰 힘을 가진 사회세력들은 여전히 물리력을 동원해서라도 자기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정부의 정책결정을 압박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소외된 사회적 약자들 역시 조직적으로 결집해 자기이익을 찾거나 개선하기 위해 거리로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공권력을 동원한 물리적 억제로는 더 이상 사회적 갈등을 완화하거나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다.

우리는 그동안 의약분업을 둘러싼 의사와 약사들의 충돌, 화장터 건설을 둘러싼 주민들의 반발, 새만금 간척사업과 관련된 갈등, 지역개발에 따른 환경단체와 건설업체 및 지방주민들 간의 갈등, 부안 방폐장 건설을 둘러싼 갈등, 쌀수입 개방에 대한 농민들의 저항, 철거민들의 철거반대 투쟁을 보아 왔다. 특히 뿌리깊은 노사 간의 불신 등 수많은 갈등, 그리고 최근에는 화물연대, 덤프, 레미콘, 건설플랜트 노동자, 비정규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들의 호소와 투쟁을 목격해 왔다.

더구나 IMF 경제위기 이후 경제적 자유화, 경쟁의 심화, 금융자본의 막대한 영향력 등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규제가 풀린 시장' 상황으로 인해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되어 왔다. 이제 대한민국이 과연 '같은 정체성을 가진 국민들로 이루어진 나라인가'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사회적 통합성과 응집력이 심각하게 약화되고 있다. 시장은 개인과 경제적 집단들의 이기주의를 더욱 조장하고 있다. 외형적인 경제성장과 민주주의의 신장 속에서 오히려 상당수 국민이 배제되고 살기가 어려워지는 모순이 시장의 실패로 인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엘리트 관료의 독단과 사회갈등의 비용 극복해야**

힘없는 사회적 약자들은 정책결정 과정에서 소외되어 물리적인 힘을 동원한 문제제기가 없으면 자신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강하게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권위주의적 국가의 독단적 정책결정이 물러난 자리에 '합리적으로 사회세력 간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개별 집단의 이익과 사회 전체의 이익이 타협되고 조화될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메커니즘'이 들어서야 하나, 이런 메커니즘은 아직 갖춰지지 않고 있다. 1998년 IMF 위기 속에서 시도된 '노사정위원회'도 노-사-정 사이의 갈등을 제도적으로 해결하는 기제로 안착되지 못했다.

참여정부가 들어서면서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고 사회적 통합을 강화하기 위해 '폭넓은 사회적 대화와 타협을 실현하는 기구'의 구성이 기대되었으나 정권 초기의 노사분규 관리 실패로 이 역시도 물건너가고 말았다. 이제 더 이상 사회갈등을 빚는 이슈에 대한 정책결정과 관련해 '엘리트 관료들의 독단'과 '사회적 갈등으로 인한 소모적 논란과 비용'을 그대로 방치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비록 늦기는 했으나 대통령이 국민대통합 연석회의를 제안함으로써 우리나라의 개인들과 사회가 자기이익 극대화를 위해 줄달음을 치는 동안 쌓여 온 사회적 양극화와 갈등을 극복하고 국가경제와 사회의 주요 과제들을 함께 풀어가기 위해 사회 각계의 지도자들이 머리를 맞댈 수 있는 공론의 장이 마련될 기회를 갖게 됐다.

세계 주요 선진국들도 경제사회적 위기 국면에서 노사 대타협 혹은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위기극복의 중요한 발판을 마련한 경험을 갖고 있다. 유명한 1938년 스웨덴의 짤쬬바덴협약, 1994년 덴마크의 유연안정성 타협, 1982년 네덜란드의 바세나르협약, 1980년대 아일랜드의 사회협약, 고율의 실업에 직면한 스페인의 1997년 사회협약, 이탈리아의 2003년 노사타협 등이 그러하다.

이들 나라에서도 첨예한 노사갈등, 사회세력 간 갈등 속에 노사단체, 정당 등이 서로의 존재와 이해관계의 차이를 인정하는 가운데 대타협이 이뤄졌고 그 타협책은 신뢰 속에 지켜져 왔다. 여기에서 주목되는 점은 나라를 대표하는 사용자, 노조, 기타 사회세력이나 정당 등이 국가에 요구하고 의존하기보다는 앞장서서 책임을 지고 사회적 대타협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성공적인 '국민대통합'의 여섯 가지 요건**

국민대통합 연석회의 제안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필요한 요건들이 있다.

첫째, 이번 제안을 한 정부가 정권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국민대통합 연석회의를 활용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다만, 대통령이 아닌 국무총리가 나선다는 점에서 볼 때 정권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이 기회가 이용될 수 있다는 우려나 오해가 크게 일어날 가능성이 적어 보이긴 한다.

둘째, 노사정 대표를 비롯한 사회 각 세력이 참여한 가운데 서로의 존재와 이해관계의 차이를 인정하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 갈등과 차이를 좁힐 수 있다는 확신을 우리 모두 가질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특히 국내 자본의 이해를 대표하는 삼성이나 LG그룹이 개별 그룹의 이해를 벗어나 사용자 대표로서 책임있게 국민대통합을 위한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고 타협에 나서야 한다. 대표적인 재벌이 빠진 상태에서 경영자총연합은 자본의 대표로서 책임있게 타협에 임하기 어렵다.

정부의 고위 관료들도 사회갈등적 이슈와 관련하여 정책결정의 독점적 권한으로 생각해 온 부분들을 과감하게 사회적 대화에 맡겨야 하고, 특히 고위 경제관료들은 그동안 노사정위원회에서 보여 온 '마지못해 응하는 태도'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셋째, 의제를 잘 설정해야 한다. 핵심적인 의제로는 비정규직 이슈를 포함한 사회적 양극화, 제조업 공동화, 고용안정과 사회안전망 강화, 사회보험 개선, 지식과 숙련 향상을 위한 교육과 훈련 등을 들 수 있다. 이런 주요 의제들에 대해 단순히 법이나 제도를 마련하는 차원을 넘어 사회적 타협이 가능한 종합 패키지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넷째, 노동계와 사회적 약자들도 좀더 책임있게 국민적 대타협을 위한 대화에 참여해야 할 것이다. '스스로 해야 할 몫까지도 정부에 요구하는 방식'이나, 그동안 대화와 타협를 통한 해결의 길이 막혔을 때 사용되던 '최대한의 이익을 추구하는 극단적인 투쟁'은 자제할 필요가 있다.

다섯째, 시민사회단체들이 공익적 입장에 서서 비판적인 중재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게 가능하다면 시민사회단체들은 사회세력 간 갈등이나 정부와의 갈등을 풀어나가는 데 촉매제 역할을 할 것이다.

여섯째, 연석회의의 구성은 우리 사회의 주요 계층들을 각각, 그리고 골고루 대표할 수 있는 사람들로 구성돼야 하고, 아울러 실질적인 합의의 도출이 가능하도록 구성돼야 한다.

***사회적 대화와 타협은 법과 제도를 넘는 사회적 자산**

주요 의제에 대해 사회적 대화와 타협을 통한 각 사회세력 간의 의견수렴과 동의는 단순한 법이나 제도가 이룰 수 없는 중요한 사회적 자산으로서 사회통합, 신뢰와 응집력 회복, 경제성장을 위한 밑거름이 될 수 있다. 이는 유럽 여러 나라에서 이미 사회적 타협이 일자리 증가와 실업률 감소, 경제성장률 회복, 파업 등 사회적 갈등의 대폭 감소 등 매우 긍정적인 성과를 낳았다는 점으로 입증되고 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우리 식의 사회적 갈등 해결기제가 구축된다면 국가 간 '제도경쟁(regime competition)'에서 우리가 이기는 데 필요한 경쟁력의 중요한 한 축을 확보하는 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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