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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혁당의 비극', 다시 일어나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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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혁당의 비극', 다시 일어나지 않으려면…

[기고]"사형제 폐지 법안, 더이상 미루지 말자"

지난 23일, 법원은 인혁당 재건위 사건 재심 선고공판에서 피고인들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1975년 사형선고 18시간만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던 소위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인혁당 재건위) 사건 사형수 고(故) 도예종 씨 등 8명에 대한 사법적 명예회복이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32년 전 내려진 사형 결정이 '합법의 외피를 두른 살인 행위'였다고 법원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공판이 진행되는 내내 긴장이 감돌던 법정은 일순 눈물바다가 됐다.

이날 법정을 지켜본 이들은 "진실은 결국 밝혀지게 돼 있다"는 익숙한 교훈을 다시 확인했다. 하지만 유가족의 눈물 앞에서는 할 말을 찾기 힘들었다. 뒤늦게 밝혀진 진실이 억울하게 희생된 이들을 다시 살려낼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판결의 오류가 드러나도 되돌이킬 수 없다는 점이 사형제도의 치명적인 맹점이다.

그래서 이번 판결을 계기로 '사형제 폐지'를 보다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국에서 가장 최근에 사형이 집행 된것은 1997년 12월이다. 십 년 가까이 사형이 집행되지 않아서 사실상 사형폐지국에 가까와져 있다. 하지만 '사형제 폐지'에 관한 법적인 차원에서의 논의는 답보 상태에 있다.

열린우리당 유인태 의원 등 여야 의원 154명은 2004년 12월 사형제를 폐지하는 대신 절대적 종신형으로 대체하는 내용의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고, 국회는 사상 처음으로 법사위 전체회의에 이 법안을 상정했다. 이듬해 국가인권위원회도 사형폐지 의견을 국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유 의원이 낸 법안은 여전히 국회에 계류중이다.

사형제 폐지 법안을 발의한 유 의원 역시 인혁당 재건위 사건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지난 23일 무죄가 확정된 8명에 대한 사형이 집행되기 하루 전인 1975년 4월 8일, 유 의원도 법원에서 사형을 선고 받았었다.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돼 있던 유 의원은 가까스로 사형을 면했고, 그 이후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지금의 위치에 도달했다. 사형수에서 여당 국회의원으로 이어진 유 의원의 삶은 사법정의(司法正義) 역시 시대에 따라 변화할 수 있는 것임을 보여주는 사례다. 그리고 그것은 특정 시기의 판단에 따라 한 인간을 돌이킬 수 없는 죽음으로 몰고가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서울대 비교문학 협동과정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박정준 씨도 이런 이유로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 중 하나다. 사형제 폐지운동을 전개해 온 국제엠네스티 회원이기도 한 박 씨가 이번 판결을 계기로 사형제 폐지에 관한 생각을 담은 글을 보내왔다. <편집자>

1995년 나이지리아, 1975년 한국에서 벌어진 사법살인

나이지리아 독재정권은 다국적기업 쉘(Shell)의 소수민족 학살에 맞서 싸운 환경운동가이자 희곡작가인 켄 사로 위와(Ken Saro-Wiwa)를 국제사회의 끈질긴 석방노력에도 불구하고 1995년 무참히 처형했다.

그리고 그보다 20년 전, 한국에서도 이와 유사한 사건이 벌어졌다. 1975년 인혁당 사건 피고인들이 당시 중앙정보부 및 경찰의 집요한 고문수사, 그리고 정권의 부당한 압력 앞에서 공정하지 못한 재판을 받고 처형당한 사건이 그것이다.

국제사면위원회(앰네스티)가 사형 제도를 반대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정권에 반대하는 자들을 "합법의 탈을 쓴 불법적 사법집행"으로 처단한다는 점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사형은 권위에 복종하지 않은 반대자들을 숙청하는 수단으로 줄기차게 악용돼 왔다.

잔악무도한 방법으로 백주에 처형당하는 반대자들의 최후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권력에 맹종하라는 메시지로 다가왔을 것이다. 이러한 처벌방법은 21세기를 맞이한 오늘날에도 합법적인 사형제도로 존속되고 있다.

중국, 미국, 이란에서 '합법적으로' 벌어지는 야만

몇 년 전 중국의 한 감옥에서 석방된 한 여성에 따르면, 중국 사법당국은 사형이 확정된 여성수인을 엉덩이 부근에 구멍을 뚫어놓은 나무침대에 온몸을 결박해놓은 뒤 사형을 집행할 때까지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고 알렸다. 심지어 사형수들은 대소변조차 누워서 본 뒤에 동료수감자들이 분비물을 치워주어야 한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중국은 오늘날 전 세계에서 사형집행을 가장 남발하는 국가다. 중국에서는 아내를 살해했다는 혐의로 사형당한 남성의 아내가 마을에 다시 나타났다거나, 사형수들의 장기를 동의 없이 국제 암시장에 팔아넘긴다는 등의 보도가 끊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인과응보'의 원리로 범죄에 대응하겠다는 중국 사법부의 태도는 추호도 바뀌지 않고 있다.

미국은 미성년자들까지 사형을 당할 수 있는 몇몇 나라들 가운데 하나다. 미성년자 사형집행을 찬성하는 쪽에서는, 이들이 충분히 자신의 행동에 책임질 수 있는 나이일 뿐더러, 단지 나이가 어리다고 죄를 감면해줄 경우 미성년자들에 의해 비일비재하게 자행되는 끔찍한 범죄를 근절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오늘날까지 미국에서 처형당한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불우한 가정환경과 부모의 학대 등을 경험했다고 알려져 있다. 설상가상으로 이들 가운데는 심각한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도 포함돼 있다. 이에 대해 미국 내 사형반대론자들은 미국사회가 사회적인 불평등과 소외가 양산해내는 범죄를, 개인을 죽임으로써 해결하려 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란에서는 재작년 발각 당시 미성년자들이었던 두 명의 동성애자들을 광장에서 교수형에 처했다. 이들을 사형집행한 표면적인 혐의는 절도였으나, 기실 이란에서는 동성애자들에게 각종 누명을 뒤집어씌우며 사형을 집행해왔다. 이 점 때문에 최근 스웨덴 정부는 박해받는 난민에 관한 규정에 몇몇 회교국가 출신 동성애자들을 포함했다.

또한, 이란정부는 몇 년 전 어린시절부터 매매혼으로 비참한 삶을 살던 한 정신지체장애인 여성이 혼외관계에서 아이를 임신하자 그녀를 돌로 때려죽이라는 야만적인 선고를 내렸다.

다행히 국제사회의 연대와 개입으로 그녀는 일시적으로 죽음을 면할 수 있었지만, 개인의 성적 지향을 인정하지 않는 비관용과 여성억압이 도처에 깔려 있는 이란 사회에서 이들 같은 피해자들은 비일비재하게 속출할 위험이 다분하다.

그런데 죄인을 제거하면 사회는 안전해질까?

사형을 찬성하는 측에서는, 사형이 ①강력한 법집행을 통해 범죄자들에게 겁을 줌으로써 범죄근절 효과를 가져올 수 있고, ②인면몰수의 죄를 지은 중범죄자들에게까지 국민이 낸 세금을 낭비할 가치가 없으며, ③피해자 및 유가족들의 슬픔과 한을 풀기 위해서라도 죄인들을 죽이는 게 당연한 인과응보이고, ④사형은 법에 의한 살인이 아니라, 버젓이 정의가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법의 신호라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논리에 일부 수긍이 가는 점도 부정할 수 없다. 신문지상을 장식한 몇몇 연쇄살인범의 경우, 가진 자에 대한 극도의 증오를 범죄의 대의명분으로 그럴듯하게 포장하지만, 그들이 무참히 살해한 이들은 대개 사회적 약자에 속하는 여성들이었다.

성을 파는 여성들이나 인습적 정조개념에서 이탈한 여성들을 주로 범죄의 표적으로 삼은 것은, 이들의 대의명분이 실제와 얼마나 천양지차인지 드러내 보여준다.

하지만 이런 살인범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온전해 보이는 이가 없다는 점은, 이들이 잔악무도한 연쇄살인범이기 이전에 환자이자 어느 부분에서는 사회적 약자라는 점을 뜻한다. 중죄인들을 지은 죄만큼 교수형을 통해 제거한다면, 우리는 더욱 안전한 사회를 이룩할 수 있을까.

사형제를 폐지한 국가들에서는 오히려 사형 폐지 이후 대형범죄 발생률이 소폭이나마 감소했다고 분석한다. 범죄자들이 느는 이유에 대해 근본적으로 처방하지 않은 채, 그들에게 엄격한 형벌을 가해서 범죄를 감소시키려는 시도는 법 준수 의지에 반항하게끔 만드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반면 중죄인들 또한 사회구성원의 하나로 편입시키도록 노력하며, 그들에게 참회할 기회와 건강한 사회복귀를 도와주는 것이 더욱 근본적인 해결방안이라는 것이다.

이런 사실처럼 사형제도가 범죄율을 감소시킨다는 증거는 아직 나오고 있지 않다. 사형제도를 끈질기게 반대하는 이들은 이밖에도, ①신이 아닌 인간이 과연 얼마나 공평하게 누군가의 죄를 심판할 수 있는지, ②만일 그릇된 오판으로 무고한 사람을 이미 처형했을 때 잘못을 돌이킬 수 있는지, ③인간의 천부인권과 존엄성을 중시하는 법의 의의를 사형제도가 정면으로 부인하는 것이 아닌지, ④사형수에게 소모되는 예산이 아까워서 서둘러 죽인다면 극명한 인권유린이 아닌지, ⑤사형제도가 여전히 소수자 및 정치적 반대자를 탄압하는 주된 수단으로 지구 곳곳에서 남용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등의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인권은 도덕적인 이들에게만 보장되는 특권이 아니다

한국은 1997년 12월 이후 사형집행을 하지 않음으로써 사실상 사형폐지국에 한 단계 진입한 상태다. 선진국 가운데는 미국과 일본, 호주만이 사형제도를 아직껏 유지하고 있다. 얼마 전 독재자로 악명 높았던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에 대한 사형이 집행됐을 당시 유럽연합은 이를 강력하게 규탄했다. 인권은 바람직한 삶을 사는 자에게만 제한적으로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는 믿음과, 후세인의 처형을 둘러싼 온갖 음모 의혹 때문일 것이다.

1996년 벨기에에서는 여러 소녀들을 납치한 뒤 성폭행을 연거푸 자행하다 절도죄로 수감되자 여죄를 숨기기 위해 소녀들을 굶겨 죽였던 마크 뒤투아 사건으로 벨기에뿐만 아니라 전 유럽이 깊은 충격에 빠졌다. 벨기에에서는 후안무치의 마크 뒤투아에 분노하며 사형을 재도입하자는 움직임이 달아올랐었다.

하지만 벨기에 시민사회는 결국 사형제도를 다시 역사 속에서 끄집어내 재생시키지 않았다. 충분히 폐지할 만한 제도였기에 없앴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한국에서는 사형제도 폐지를 의제화하거나 폐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여전히 사형제도가 법정에서 유효한 힘을 발휘하는 것은 한국사회의 인권 상황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상관성이 있다.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범죄의 속성을 심도 있게 고민하지 않은 채, 범죄인 개개의 잔인성만을 내세우며 그들을 강력하게 처벌하는 것으로 범죄를 줄이려는 안이한 시각이 팽배하기에 사형폐지 노력은 아직 결실을 맺지 못하고 있다.

한 사회의 인권지표를 평가하는 준거점은 가장 열악한 지위에 놓인 사람들이라는 말이 있다. 오늘날 한국에서 가장 열악한 지위에 있는 사형수들을 비롯한 수감자들을 염두에 두면 우리 사회의 인권 상황을 어떻게 평가할지 궁금하다.

인권은 도덕적인 이들, 상식적인 이들, 성실하게 일하는 이들에게만 보장돼야 하는 게 아니다. 인간이라면 누구에게가 보장돼야 하는 것이며, 따라서 부도덕한 이들, 상식과 동떨어진 판단과 행동을 하는 이들, 성실하게 일하지 않는 이들에게도 인권은 보장돼야 한다.

그들의 잘못에 대한 처벌, 혹은 책임 추궁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도덕적인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 사이에서 인권의 잣대가 불편부당하게 적용될 때, 한국 사회의 인권 지수는 조금 더 향상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각성을 통해서만 급격히 심화되고 있는 사회 양극화의 부작용도 완화할 수 있다.

인혁당 희생자에 대해 최근 법원이 내린 무죄 선고는 사형제의 치명적인 단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비가역성, 즉 한 번 일어난 무고한 희생을 되돌이킬 수 없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인혁당 희생자 유족의 눈물 앞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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