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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입에 재갈 물리는 협상은 폭력 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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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입에 재갈 물리는 협상은 폭력 협상"

범국본 "경찰은 20년 동안 무엇을 배웠나"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다."

15일 오전 서울 장충교회 앞에서 한미 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가 '한미 FTA 협상 중단 촉구 기자회견'을 시작하기까지 일련의 과정들을 지켜본 많은 이들의 공통된 반응이었다.

법적으로 금지 사유가 성립될 수 없는 기자회견을 막다가 그것이 여의치 않자 규모라도 최대한 축소하려는 경찰의 과잉대응 때문이었다. 서른 명 남짓한 인원에 피켓만 들고온 기자회견 참석자들은 사방에 깔린 경찰 병력을 보며 "기자회견에는 기자와 우리만 있으면 되는 것 아닌가"라며 기가 찬 표정을 지었다.

바로 전날인 14일은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촉발시켰던 고문치사사건의 주인공 고 박종철 씨의 사망 20주기가 되는 날이었다. 그의 추모식은 지금은 경찰청 인권보호센터로 변신한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진행됐다.

"대한민국 국민은 자신이 원하는 출입구로 나갈 권리가 있다"
▲ 지하철 3호선 동대입구역 출입구를 막고 있는 경찰들 ⓒ프레시안

한미 FTA 6차 협상이 신라호텔에서 시작된 이날, 범국본은 신라호텔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호텔에서 족히 1㎞는 떨어져보이는 동대입구 지하철역에서부터 경찰은 겹겹이 줄을 지어 인간벽을 쌓아 일반인들의 출입을 통제했다. 피켓을 들고 있던 범국본 관계자들의 출입은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다.

계획을 변경해 장충교회 앞에서 회견을 가지려던 범국본 관계자들은 이번에도 지하철역 출입구에서 경찰에 가로막혔다. 장충교회 방향 출구를 가로막은 경찰은 "이쪽 통로는 이용할 수 없다"며 돌아가라는 말만 반복했고 범국본 측은 "대한민국 국민은 자신이 원하는 출입구로 나갈 권리가 있다"며 항의했다.

10여 분의 몸싸움 끝에 출구가 열렸다. 간신히 출구를 빠져나온 이들 사이에서 "이게 경찰이 지키려는 평화냐"며 울분 섞인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기자회견 장소로 쓰려던 작은 공터에 경찰들이 빼곡히 주둔해 있었다. 경찰은 음성 장비가 갖춰져 있는 민주노총의 방송차를 철수시키지 않으면 기자회견을 진행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결국 주최 측과 경찰 간의 실랑이가 계속되는 가운데 한쪽에서는 너댓 명의 대학생들이 "기자회견 막지말라"는 구호를 외쳤다.

"기자회견의 길을 막는 정부는 대체 어떤 정부인가?"
▲ 범국본은 애초 계획과 달리 방송차량 없이 기자회견을 진행해야 했다. ⓒ프레시안

결국 방송차량을 철수시킨 후 예정시간보다 20분 가량이 지나서야 기자회견이 시작됐다. 한미 FTA에 반대하는 의견을 내려던 기자회견은 경찰의 과잉대응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으로 바뀌었다. 각 부문을 대표해서 마이크를 잡은 이들은 경찰에 대한 비난을 쏟아냈다.

민중연대 오종렬 의장은 "여기 계신 기자분들은 오늘 기자회견이 어떻게 가로막히고 짓밟히는지 똑똑히 보았을 것"이라며 "국민들의 길을 막으며 군홧발을 들이밀고 방송차량까지 막아가며 정부는 미국의 지배 자본을 위해 지금 저 밀실에서 협상을 진행 중이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의 최은민 부위원장은 "2006년 국가인권위원회는 포항의 건설노동자 하중근 씨가 사망한 원인에는 경찰의 과잉대응이 작용했다고 밝혔다"며 "오늘 경찰의 대응을 보면 이 같은 과잉대응이 민중의 삶을 어떻게 파탄낼 것인지 참으로 암담하다"고 밝혔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의 신학림 위원장은 "나라를 팔아먹기 위해 협상을 벌이는 대통령은 제정신이 아니라고 본다"며 "개개인이 헌법기관인 국회의원들까지 자유롭게 걸어다니지도 못하게 하는 나라는 제정신이 아닌 나라"라고 주장했다. 그는 "어제는 박종철 열사가 민주주의의 씨를 뿌린 날"이라며 "이대로 가면 20년 전과 같은 투쟁이 발생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10.26 사태를 소재로 다룬 영화 <그때 그 사람들>에 출연했던 배우 권병길 씨는 "국민의 기본권인 의사전달의 자유가 보장돼야 하는 이 시점에 기자회견의 길을 막는 정부는 대체 어떤 정부인지 정체를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 입에 재갈 물린 채 진행하는 협상 중단해야"

이어 범국본은 이처럼 경찰에 의해 반대 의견이 억압되는 상황에서 진행되는 협상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최근 한미 FTA 반대운동에 대한 탄압이 전방위적으로 강화되고 있는 점에 주목한다"며 "정부는 한미 FTA 반대운동에 참여했던 참가자들을 수십 명이나 구속하고, 또 반대 단체에 대한 정부 보조금 지급 중단을 지시한 데 이어, 정부당국은 장보고, 광개토왕을 들먹이며 수십억 혈세를 낭비해서 한미 FTA를 찬성하는 '눈먼' 광고를 마구 쏟아 부으면서도 농민들이 나락을 내어 십시일반 거둔 돈으로 애써 만든 한미 FTA 반대 광고를 사실상 금지시키는 만행을 자행했다"고 주장했다.

범국본의 한 관계자는 "범국본은 평화적 집회를 약속했는데도 경찰은 폭력적으로 기자회견을 막고 있다"며 "국민의 입에 폭력적으로 재갈을 물린 채 진행하는 협상은 그 자체로 폭력적 협상"이라고 주장했다.
▲ 경찰차와 전경에 의해 봉쇄된 신라호텔 입구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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