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한나라당 대세론'으로 요약되는 현재의 선거 양상이 과연 1년 가까운 기간 동안 그대로 유지될 수 있을 것인지는 아무도 자신하지 못한다. 그만큼 선거 국면의 향배를 둘러싼 정치권 안팎의 변수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에 <프레시안>은 2007년 대통령선거의 진로와 결과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미칠 변수 10개를 꼽아 독자들에게 하루에 하나씩 소개한다. 신년 벽두에 대통령선거의 흐름을 조망하면서 한국 사회의 바람직한 선택은 과연 무엇일지 곰곰 생각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편집자>
많은 사람들은 한나라당발(發) 정계개편을 2007년 대선의 최대 변수로 꼽는다. 이명박 전 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의 분열이다. 이들이 한 자리에 모여 '경선 승복'을 합창했음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을 짓누르고 있는 짙은 먹구름은 좀처럼 개일 줄 모른다.
두 사람은 지난 2~3년 간 각종 대선후보 여론조사에서 수위다툼을 벌여 왔다. 이명박-박근혜 간의 승부가 사실상의 결승전이나 다름없어 보이는 착시현상은 앞으로도 상당기간을 지배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기에 경선 승복이란 곧 두 사람이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 참여하고 뒷말이 나오지 않는 수준의 공정한 경쟁이 진행됐을 때를 가정한 결과론적 이야기일 뿐 지금 시점에선 어떠한 의미도 갖기 힘든 말이다.
정치권에서 심상치 않게 제기되는 '단일화 불가론'은 이같은 현실에서 출발한다. 청와대 문턱까지 간 것이나 다름없는 두 사람과 그들을 에워싼 세력들 가운데 한 쪽이 대선을 반년 앞두고 고꾸라져야 하는 숙명을 과연 '쿨하게'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게다가 잠복 변수인 이회창 전 총재가 정초 대권 불출마를 선언한 것이 박근혜 전 대표 쪽에 반사이익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범보수 진영의 이념지형 분화와 맞물려 박근혜-이회창 간의 '암묵적 연대'가 자리잡을 가능성을 높였다는 평가다.
누가 나와도 이길 것 같은 '한나라당 대세론'
균열의 씨앗은 무엇보다 여야를 막론하고 두 사람 말고는 사실상 이렇다 할 대선후보가 없다는 점이다. 거의 모든 여론조사에서 두 사람이 얻은 지지율을 합하면 60%가 넘는다.
김헌태 한국 사회여론연구소(KSOI) 소장은 "현재 한나라당의 가장 큰 문제는 누가 나와도 이길 것 같은 '한나라당 대세론'이 형성돼 있다는 점"이라며 "누가 후보가 되느냐는 문제와 상관없는 한나라당 우위론은 결국 내부분열을 촉발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특히 이명박 전 시장의 지지율은 최근 들어 40%를 넘나드는 초강세 국면이다. 지난달 13일 MBC와 코리아리서치의 조사에 따르면 두 사람과 고 전 총리를 포함한 '빅3'가 동시에 출마했을 경우에도 이 전 시장은 42.1%로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 전 시장이 한나라당이 아닌 다른 당 후보로 나온 경우에도 1위는 이 전 시장의 몫이었다.
그러나 '당심'은 상당히 다르다. 한나라당 대의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최근 여론조사에선 이 전 시장이 39.8%로 1위를 차지해 처음으로 박근혜 전 대표를 눌렀다. 하지만 격차는 오차범위 내였다.
김헌태 소장은 "일반인 대상 여론조사에서는 20% 이상, 거의 더블스코어의 차이가 나는데 당내 조사에선 오차범위 안쪽일 뿐"이라며 "당심과 민심의 괴리가 유지되고 있다는 뜻"이라고 분석했다.
게다가 이 전 시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늦게 대선행보에 나선 박 전 대표 측에선 이제부터 본격적인 '게임'을 준비하고 있다는 분위기다. 박근혜 캠프의 이정현 공보특보는 "아직까지 지지율에 연연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타나는 일시적 현상"이라며 "하지만 본격적으로 정책을 내놓고 캠페인에 들어가는 시점이 오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박 전 대표 측의 다른 관계자도 "이렇게 경선이 끝나지는 않을 것"이라며 "오히려 이렇게 가야 구도가 재미있어지지 않나.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들의 자신감은 다름 아닌 '당심'의 우위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명박 전 시장의 입장에서 보면 본선보다 예선이 더 힘든, 매우 수긍하기 힘든 상황인 셈이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발 '빅뱅'이 일어난다면 한나라당 경선이 시작되기 전에 이 전 시장의 어떤 결단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게다가 지금은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지만 금년 2월 이후 본격적으로 경선의 시기 및 방법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면 두 사람 간의 갈등이 증폭될 것은 필연에 가깝다.
박 전 대표 쪽도 안전하다고만 볼 수 없다. 홍성태 상지대 교수는 "박근혜 전 대표는 영남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여전히 보이고 있다"며 "수천, 수만 명의 사람들이 박근혜 전 대표를 바라보고 있는 상황에서 영남의 기득권을 과연 순순히 포기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보수정치의 분화…'명분'만 주어지면
따라서 털끝만한 계기로도 두 사람의 분열이 가공할만한 속도로 전개될 개연성이 높다. 이미 분열의 조건도 충분히 마련돼 있다. 특히 상당부분 진척된 한국사회 보수정치의 이념적 분화가 두 사람을 갈라놓을 것이라는 지적은 눈여겨볼만 하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는 수면 위에 뜬 '부표'에 불과하다.
자유주의연대 신지호 대표는 "내년 대선을 거치면서 뉴라이트 운동에 분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묘하게 뉴라이트 내에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에 대한 선호가 상당히 있는 반면, 구보수(올드라이트) 쪽은 확실하게 박근혜 전 대표를 선호한다"고 덧붙였다. 신 대표는 김진홍 목사 등이 주축이 된 '뉴라이트 전국연합' 등을 뉴라이트 범주에 묶지 않는다.
정치컨설팅 회사인 '민기획'의 박성민 대표는 "보수 내에도 근본적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가 존재한다. 한나라당이 보수성을 지나치게 강화할 경우 이에 동조하지 않는 세력, 예컨대 뉴라이트의 '자유주의연대' 등이 (보수)신당 창당에 나설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박 대표는 "그러한 충돌이 가시화됐을 때 박근혜, 이명박 두 주자가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곧 '뉴라이트'를 표방하는 세력들 간의 이념적 분화가 이명박-박근혜 두 주자의 분열로 수렴될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매우 이질적인 뉴라이트 세력 중 어느 한 쪽이 한나라당이 아닌 다른 보수정당을 출현시킬 경우 박근혜, 이명박 중 누구라도 이 세력에서 새로운 전망을 찾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분열의 뇌관, 昌
보수진영의 이념 분화라는 흐름에서는 보다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분열의 뇌관이 하나 더 존재한다. 최근 정치활동을 재개한 이회창 전 총재다.
이 전 총재는 1일 직접 대권에 도전하지는 않겠다는 뜻을 공개적인 자리에서 천명했다. 그러나 "좌파정권이 출현하지 않도록 소임을 다하겠다"고 정치 활동의 의지를 거듭 피력함에 따라 자기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킹 메이커'를 자처할 가능성은 매우 높아졌다.
이 전 총재가 당 밖에서 새로운 보수연합체를 구성하건 한나라당 내에서 세력을 형성하건, '보수의 정체성'을 무기로 이명박-박근혜를 저울질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이 전 총재의 대선 3수 포기 선언은 박근혜 전 대표에게 유리한 지형을 형성했다는 분석이 많다. 중도성향으로 분류되는 이명박 전 시장, 손학규 전 지사에 비해 박 전 대표가 가장 보수적인 면모를 보여 왔다는 이유에서다.
그렇지 않아도 '올드라이트'에 가까운 이 전 총재의 최근 행보는 박 전 대표 쪽에 더 가깝다고 보는 시각이 많았다. 대선 지형이 이념구도로 전개되기를 원하지 않는 이 전 시장보다 '애국주의'가 코드인 박 전 대표와 맞아떨어지는 면적이 크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만일 '박근혜-이회창' 연대가 형성된다면 이명박 전 시장으로선 이를 감수하면서까지 한나라당 경선에 참여하는 '도박'을 할 이유가 없어진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한나라당에는 아직도 '창심'이 살아 있다는 점이다. 그의 측근 출신 의원들뿐만 아니라 이 전 총재의 '메시지'에 호응하는 한나라당 대의원들이 존재한다. 이를 무기로 이 전 총재가 어느 한쪽에 힘을 싣는다면 다른 쪽의 반발이 불가피하다.
이같은 반발 및 분열의 가능성과 관련해, 김헌태 소장은 "돌발변수에 의해 당 지지도가 폭락하는 상황, 이회창 전 총재의 복귀 등 외부의 환경변화와 연동해 그런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며 "그 연장선상에서 이 전 시장, 손학규 전 지사, 뉴라이트 등 외부세력이 연대하는 '보수신당' 구도가 추진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요컨대 보수적 뉴라이트, 이회창 전 총재, 박근혜 전 대표가 한 축으로 묶이고, 비교적 개혁적 뉴라이트와 이명박 전 시장, 손학규 전 지사가 한 축으로 묶이는 균열이다. 특히 각종 외부적 돌출상황과 함께 불공정 경쟁이라는 항거의 '명분'이 부여되면 이 전 시장으로선 미련 없이 돌아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분열이 시작되면 누구도 못 막아"
한나라당에 두 사람의 분열을 막을 만한 조정자가 없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박성민 대표는 "(두 세력이) 갈라서지 않게끔 이해관계를 조성할 리더십이 한나라당 안에는 보이지 않는다"며 "분열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 한나라당의 희망사항이지만 정작 분열이 가시화된다면 그것을 막을 힘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나라당 박형준 의원은 "한나라당발 정계개편이 가장 경계된다"면서 "후보들 간의 경쟁이 격화된다든지, 다른 외부적 돌발변수가 주어지면 분열이 일어날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같은 평가들을 종합하면 '한나라당 대세론'이라는 구심력과 이를 벗어나려는 '반발과 분열'의 원심력은 현재 팽팽한 긴장 양상을 연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미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는 분열의 궤도에 올라탄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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