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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굼벵이' 민노당, 멀고 먼 대선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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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굼벵이' 민노당, 멀고 먼 대선길

[분석]'실력'도 '전략'도 '전투력'도 없이 '깃발'만…

지난 2개월은 민주노동당에겐 악몽이었다. 일심회 사건 파장이 컸다. 우여곡절 끝에 당 지도부의 유감표명이 나왔다. 하지만 그간 민노당이 대외적으로 입은 이미지 손상, 내부적으로 겪은 정파 갈등은 이루 헤아리기 힘든 것이었다. 북한 핵실험 문제도 있었다. 내부 논란만 거듭하는 사이 한반도 문제에 대한 발언권을 스스로 포기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런 악조건이 대선 레이스의 출발선에 선 민노당의 객관적 현실이다. 민노당의 전신인 '국민승리21'부터 따지면 세 번째 맞는 대선이지만 상황을 낙관할만한 근거는 거의 없다. 지난 2002년 대선 때 얻은 득표율 3.9% 달성조차 어렵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그런데도 민노당의 움직임은 굼뜨기만 하다.
  
  '실력'도 없고
  
  노회찬 의원은 최근 한 라디오 방송에서 "내년 대선에서 민노당은 최소한 500만 표 이상의 득표로 18대 총선에서 제1야당을 이루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지난 대선에서 얻은 100만 표의 다섯 배를 자신한 것이지만 '희망'과 '독려'의 의미를 넘어설만한 객관적 근거는 별로 없었다.
  
  민노당에게 내년 대선은 지난 두 차례의 대선과는 질적으로 다른 '실력'을 요구받고 있다. 진보정치연구소의 김윤철 연구기획실장은 "과거에는 문제제기 능력을 보여주는 것으로 충분히 민노당의 존재를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면, 국민들은 이제 민노당에게 문제해결 능력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에는 진보정당의 길을 만드는 선거였다면 내년 대선에는 진보정당 운동의 생사기로가 걸려 있다"며 "이번에 실패하면 매우 어려운 상황에 봉착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건호 정책전문위원도 "지난 대선과 총선이 진보운동의 이념에 대한 배려의 의미였다면 내년 대선과 2008년 총선에서는 미래비전을 제시하지 않으면 엄정한 평가를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원내진출 이후의 활동에 대해 썩 좋은 평가를 받는 것도 아니고, 양극화 등 한국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에서도 희망 있는 세력으로 부각되지 않은 상황에서 새로운 희망과 관련된 의제를 도출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며 이같이 말했다.
  
  민노당의 고민은 여기서 시작된다. 여권의 몰락으로 공중분해 된 진보개혁세력이 새로운 대안세력의 출현에 목말라 있음을 알면서도 이를 끌어안을 정치주체로서의 민노당은 정치적, 정책적으로 대단히 취약한 상태에 놓여있다는 것. 다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는 당위적 언급을 되풀이했지만, 구체적인 '무엇'에서 대부분 답이 막혔다.
  
  '시간'도 없고
  
  시간이 넉넉한 것도 아니다. 김 실장은 "내년 상반기 안에는 승부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최상의 시나리오는 '정책라인 중심의 대선체제 구축과 대선 후보들의 가시화(1~2월)→민주노총 선거 이후 사회연대전략과 관련한 성과물 제시(3~4월)→후보 선출(5월)'이다.
  
  그는 특히 '정규직 노동자의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한 양보'를 뜻하는 사회연대 전략을 거론하며 "사회비전과 관련해 복지 등 진보적 의제를 제시함과 동시에 사회복지세 도입과 부유층의 사회책임 강화 등을 주장할 수 있는 지렛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사회연대전략은 당 내부에서부터 반론에 직면해 있다. 노동자 책임을 강조하면 곧 보수진영의 논리에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선을 희석화하는 개량주의라는 극단적 비판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민노당이 대국민 설득력과 실현 가능성을 겸비한 새로운 진보적 의제를 제시해 내년 대선에서 가장 각광 받을 것으로 보이는 한나라당과 정책경쟁을 벌일 수 있을지 회의론이 팽배해 있다.
  
  '합의'도 없고
  
  당 내부의 전열 정비는 더욱 요원해 보인다. 지난 4.15 총선 때 선대본 기조실장을 맡았던 문명학 씨는 "과거에는 대선 후보가 선출돼 활동하는 과정 자체가 내부 조직을 활성화하는 과정이었는데 지금은 다들 제각각이다"고 진단했다.
  
  그는 특히 "지역의 근거가 사라졌다. 30~40대들이 지역위원회에 들어와 활동해야 하는데 지역 실정은 매우 경직된 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2004년 총선만 해도 떨어질 각오를 한 소위 '총알받이' 후보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주요한 후보들이 비례대표에 관심을 더 많이 가지다 보니 지역이 전혀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정파간 갈등도 위험 수위에 치달았다. 공공연하게 '분당' 얘기가 튀어 나오곤 한다. 문 씨는 "내년 대선, 2008년 초 지도부 선거, 이어지는 총선까지 가는 과정은 곧 당의 진로를 결정해 가는 과정이 될 것"이라며 "내부에선 이런 위중한 시기에 정파연합체적 구조로는 안 된다는 얘기가 많다"고 말했다.
  
  김윤철 실장도 "진보정당 운동의 중장기적 전망 속에서 새로운 결단을 해야 할 필요가 발생할 수도 있다"면서 "만약 이번에 그런 문제가 제기되면 대단히 집단적이고 조직화된 목소리로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특히 대선 후보 선출 과정에서 이런 문제가 발생하면 민노당은 대선 전망을 일찌감치 접을 수밖에 없다. 이런 점을 잘 알기에 거론되는 대선후보 진영에선 다들 "정파 구조를 뛰어 넘는 후보경선을 치러야 한다"고 합창한다.
  
  '전의'도 없고
  
  대선판의 플레이메이커가 돼야 할 잠재적 후보군도 몸 사리기 비판을 피해갈 수 없을 듯 하다. 대선 기획단을 중심으로 경선 룰을 정비하는 등 실무적 작업을 하고 있으나, 민노당의 대선 준비에 주목도가 낮은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대선후보의 움직임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심상정 의원이 비교적 적극적인 출마 의사를 확인했을 뿐, 소위 당내 '양강'이라고 불리는 권영길, 노회찬 의원 측은 뚜렷한 의사 표현이 없다. 문성현 대표도 "대선후보들이 하루빨리 본격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독려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공식출마 여부에 대해선 차일피일 결정을 미루고 있다.
  
  이들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얘기를 듣고 있다", "역할을 고민하고 있다"는 수준의 언급을 할 뿐 자신이 들고 나올 의제와 대선 전략이 무엇인지를 밝히기조차 꺼려 했다. 이들의 최근 행보에서도 차별화를 찾아내기 쉽지 않다.
  
  권영길 의원 측이 "노동의 문제를 넘어 한반도 평화의 문제, 미래비전과 관련해 고민을 하고 있다"고 했고, 당 민생특위를 맡은 노회찬 의원 측이 "부동산 문제, 난방문제 등 민생과 연관된 사업을 중심으로 지역을 순회하면서 지역 정치활동을 복원하겠다"고 밝힌 정도가 고작이다.
  
  이런 탓에 당 일각에선 소위 '양강'의 몸사리기를 곱지 않게 보는 시각이 있다. 그 중 하나가 정파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자주파 계열의 지원을 포기한 심 의원이 "대북문제나 민주노총과의 관계에서 당이 이제 분명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내부 정체성 문제를 치고 나온 것에 반해 권, 노 의원의 침묵은 여전히 정파의 이해관계에 미련을 두고 있음을 보여주는 반증이라는 비판은 그래서 제기된다.
  
  또한 권 의원의 출마 여부를 다른 주자들이 살피고 있다는 후문도 있다. 지난 두 차례 대선에 출마했던 '권영길 카드'로는 신선도가 떨어진다는 지적, 민노당의 창업주로서 이제 차세대 리더들에게 활로를 열어줘야 한다는 은근한 압박 등이 이같은 관측의 내용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권 의원 측은 "그런 이야기가 도는 걸 보니 선거 때가 되긴 된 모양"이라고 받아 넘겼다.
  
  진위 여부를 떠나 당 내에 이처럼 각종 루머성 이야기가 도는 것 자체가 주자들의 활력 부족에서 초래된 측면이 크다. 당 관계자는 "12월까지는 아무래도 원내 일정에 막혀 있다 보니 후보군의 움직임이 제약받은 측면이 있다"면서 "내년 1월부터는 가시적인 움직임이 잡힐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대선의 내용과 전망에서 후보들과 정책담당자들, 지역활동가들, 의견그룹들이 저마다 '동상이몽'을 거듭하는 민노당에 대해 해가 바뀐다고 여론이 갑자기 관심을 가져줄 리 만무해 보인다. 치열한 대권경쟁 열기를 뿜으며 멀찌감치 앞서 있는 한나라당은 물론이고 신장개업 논의에 여념 없는 범여권보다도 민노당의 대선 출발선은 한참 뒤쪽에 그어져 있는 셈이다. 총체적인 전투력 부재라는 비판을 면할 길이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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