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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잊은 경찰, 인권에 얼마나 자신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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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잊은 경찰, 인권에 얼마나 자신 있기에

[기자의 눈]인권위 권고 거부…'인권 경찰' 다짐은 어디에?

"'남영동'하면 떠오르는 것은?" 이런 질문에 대해 '대공분실'이라고 대답하면 삼십대 이상, '숙명여대 근처'라고 대답하면 이십대 이하라는 농담이 있다. 고(故) 박종철 씨 고문치사 사건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느냐의 여부에 따라 세대가 갈린다는 뜻이다.
  
  당시 박 씨는 학생운동 선배의 소재를 묻는 경찰의 질문에 줄곧 함구했고, 경찰은 대답을 얻기 위해 물고문을 가하다 결국 박 씨를 숨지게 했다. 1987년 1월 14일 일어난 일이었다. 언론조차 이상과 열정에 부푼 젊은이가 경찰의 고문에 의해 죽었다는 사실을 제대로 알릴 수 없었다.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기자회견 내용만 떠돌았다. 박 씨의 죽음에 대한 진상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그로부터 4달이 지나서였다. 그나마도 용기 있는 이들의 결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남영동 대공분실 자리에 들어선 경찰청 인권보호센터
  
  다음 달이면 박 씨가 숨진 때로부터 정확히 20년이 된다. 아이가 태어나 대학에 다닐 만큼의 세월이 흘렀으니 '남영동'에 대한 부정적인 기억이 희석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 사이 한국 사회도 많이 변했다. 어느 날 갑자기 경찰에 끌려가 쥐도 새도 모르게 목숨을 잃는 일은 상상하기 힘들게 됐다.
  
  박 씨가 고문 끝에 숨졌던 남영동 대공분실은 여전히 경찰이 사용하고 있다. 물론 20년 전과 용도는 크게 다르다. 서울경찰청의 인권보호센터가 들어선 것이다. 지난해 2월 허준영 당시 경찰청장이 내린 결정이었다. 인권에 대한 고려가 거의 전무했던 과거를 반성한다는 뜻으로 읽혔다. 언론의 호의적인 보도가 이어졌다.
  
  한때 경찰 내부에서는 교통의 요지인 남영동에 결혼식 등을 치를 수 있는 경찰회관을 세웠으면 하는 바람이 흘러나왔지만 그대로 묻혔다. 인권경찰로 거듭나려는 마당에 결혼식장 세우는 게 대수냐는 것이었다.
  
  그리고 2년에 채 못 미치는 시간이 지났다. 설립 당시 언론의 집중적인 주목을 받았던 경찰청 인권보호센터에 대한 보도는 접하기 그 동안 힘들었다. 물론 기사들 중에 '경찰청 인권보호센터'가 거명됐던 적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내용은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인한 농민 사망 사건에 항의하는 인권 활동가들이 경찰청 인권보호센터를 잠시 점거하고 농성을 했으나 경찰이 강제로 끌어냈다는 것, 혹은 평택 대추리 강제 철거를 다룬 영화를 그곳에서 상영하고자 했으나 경찰이 거부했다는 것 등이었다.
  
  인권보호센터가 인권 개선과 관련한 활동을 한다는 소식은 과문한 탓인지 도무지 접할 수 없었다. 과거와 달리 경찰이 시민의 인권을 워낙 잘 배려해서 인권보호센터가 할 일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일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인권보호센터를 세웠던 허준영 전 경찰청장부터 인권과 관련한 사안으로 물러났다. 지난해 11월 농민집회에서 숨진 고(故) 전용철, 홍덕표 씨 사건 때문이었다.
  
  인권위 권고안을 가볍게 무시한 경찰, 인권 문제에 떳떳한가
  
  과잉진압에 따른 인권 침해 문제는 원래 경찰청 인권보호센터의 몫이다. 경찰 내부에서 인권에 대해 성찰하고 문제제기하는 것이 설립 취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은 없었다. 결국 경찰 외부의 기관인 국가인권위원회가 나섰다. 전 씨와 홍 씨의 사망이 경찰의 과잉진압 때문이라는 내용의 권고안을 냈다. 대통령의 사과와 허준영 당시 경찰청장의 사임이 뒤따랐다.
  
  불과 일 년 전에 일어난 일이다. 하지만 경찰은 당시의 기억을 잊은 듯하다.
  
  인권위는 "6일로 예정된 한미FTA 반대집회의 금지 조치를 철회하라"는 내용의 긴급권고안을 5일 오후 이택순 경찰청장에게 전달했다. 인권위가 반(反)인권적 상황에 대해 취할 수 있는 긴급구제조치의 일환이었다. 인권위의 긴급구제조치는 이번이 일곱 번째다. 앞서의 여섯 가지 조치는 주로 출입국 관리 사무소를 향해 취해졌다. 외국인 이주 노동자의 강제 퇴거를 막기 위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이 중 다섯 가지 조치가 수용됐고, 나머지 한 가지 조치는 현재 관련 기관에서 검토중이다.
  
  그런데 인권위의 긴급구제조치가 발표된 지, 불과 서너 시간 만에 경찰은 인권위 권고안을 수용할 수 없다는 뜻을 밝혔다. 인권위의 긴급 구제조치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첫 사례인 셈이다.
  
  경찰이 인권위 권고안을 수용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한 보도자료의 내용은 아주 간결하다. 집회의 주최 측인 '한미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범국본)가 평화 시위에 대한 양해 각서를 체결하지 않았으므로 집회를 금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첫 번째 문장이다. 그리고 설령 양해 각서를 체결해도 여전히 집회를 금지하겠다는 것이 두 번째 문장이었고, 마지막 문장은 인권위 권고안으로 집회 금지를 철회한 전례가 없다는 것이다. 현 시점에서 범국본의 태도와 관계없이 6일 집회는 반드시 폭력집회로 번지리라는 게 경찰의 판단인 셈이다.
  
  어두운 기억 외면하는 경찰에게 '인권 경찰' 기대하는 것은 무리?
  
  그런데 '전례 없음'을 이유로 인권위 권고안을 거부한 경찰이 다른 '전례'들은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불과 일 년 전 당시 경찰청장이 집회 과잉 진압에 관한 인권위 권고안으로 물러났었다. 올해 7월 발생한 고 하중근 씨 사건에 대해서도 경찰의 과잉 진압이 원인이라는 지적을 받았었다.
  
  하지만 경찰은 이런 기억들은 까맣게 잊어버린 듯하다. 사실로 드러난 과잉진압에 대한 반성은 외면한 채 폭력 시위의 가능성만을 문제삼는 경찰의 태도가 이런 판단을 뒷받침한다.
  
  불과 일 년 전의 일도 기억하지 못 하는 경찰에게 20년 전의 고문 치사 사건에 대한 반성을 요구하는 것은 애당초 무리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남영동에 있는 경찰청 인권보호센터는 차라리 격무에 시달리는 젊은 경찰들을 위한 결혼식장으로 이용하는 게 좋을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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