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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우리를 땅에 묻고 탱크를 굴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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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우리를 땅에 묻고 탱크를 굴려라"

파주 오현리 주민들, "군사훈련장 확장 반대"

"우리는 그 땅을 떠날 수 없지 않습니까? 주민들이 이렇게 서울에 나와 투쟁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이 저에겐 너무 슬픕니다. 차라리 우리를 그 땅에 묻고 그 위에 탱크를 굴리십시오. 우리는 살고 싶습니다. 우리는 그 땅에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국방부 정문을 향해 외치는 윤병설 씨의 목소리는 절규에 가까웠다. 그는 경기도 파주 오현리의 주민들로 구성된 '파주 무건리 훈련장 백지화 대책위원회'의 위원장이었다.

국방부는 현재 파주 '무건리 훈련장'을 확장해 대규모 종합훈련장을 만드는 사업을 추진하는 가운데 훈련장 예정부지에 포함돼 있는 오현리의 150여 가구 주민들에게 이주를 요구하고 있다. 오현리 주민들은 국방부의 이 같은 일방적인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24일 서울 용산 국방부 앞에서 집회를 열고 '무건리 훈련장 확장사업 백지화'를 요구했다.

"주민들 의사 무시하고 부지 확장…평택과 똑같아"
▲ 24일 경기도 파주 오현리 주민들이 서울 국방부 앞에서 규탄집회를 벌였다. ⓒ프레시안

주민들은 무엇보다 "국방부가 주민들의 의사를 무시하며 훈련장 확장을 추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550만 평 규모의 '무건리 훈련장'은 지난 1982년 전두환 정권 시절에 지어졌다. 당시에도 무건리, 직천리 등지에 살고 있던 주민들은 훈련장 건설로 인해 제대로 된 대책도 없이 일방적으로 살던 땅을 떠나야 했다. 그들 중 상당수는 옆마을인 지금의 오현리로 옮겨 왔던 것.

국방부는 "무기가 발전돼 사거리(射距離)가 늘어났고 급속한 도시화로 훈련공간 다수가 없어졌다"며 무건리 훈련장을 확장하려 하자 주민들은 국방부가 또다시 주민들을 삶의 터전에서 쫓아내는 비인도적인 일을 반복하려 하고 있다며 비난하고 있다.

윤병설 위원장은 "우리는 누구보다 할 말이 많다. 우리는 지난 이십 년 넘게 훈련하는 국군들과 같이 살았다. 군인들이 목 마를 때 생수 떠주고, 배 고플 때 라면 끓여주고, 부대에 김치를 담가줬다. 그런데 이제 와서 우리가 살고 있는 터전을 내놓고 나가야 국방이 튼튼해진다고? 차라리 국방을 위해서 우리에게 총을 주며 싸우라고 하면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러나 농사 짓고 가축 기르던 땅을 송두리째 내놓으라는 말에는 절대 따를 수 없다"고 주장했다.

현재 국방부는 무건리 훈련장을 1100만 평 규모로 확장하기 위해 올해 230억 원을 예산으로 책정했으며 2007년에는 275억 원의 예산을 책정해놓은 상태다.

이에 대해 평화단체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은 "강원도 인제·통천에 3577만 평에 달하는 과학화 훈련장(KCTC)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확장하지 않더라도 군의 훈련계획에는 아무런 차질이 없다"며 "일방적인 토지 매입은 평택의 상황과 다를 바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날 집회에 참석한 한 주민은 "요즘에는 축산업 어디 가서 하려 해도 잘 허가도 안내줘. 지금 싸우는 주민들은 여기 아니면 갈 곳이 없기 때문에 그러는 거여. 우리가 이렇게 싸워야 될 줄 생각이나 했겠어"라고 말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생수 떠주고, 라면 끓여주며 같이 지냈는데 이제 와서 나가라고?"
▲ ⓒ프레시안

한편 현재 살고 있는 주민들이 군사 훈련으로 인해 겪고 있는 피해도 만만찮다.

1997년 국방부는 오현리에 대한 수용계획을 발표한 뒤 이 일대를 군사작전지역으로 설정했다. 국방부는 주민들의 집과 토지를 매수하면서 이미 계획했던 부지 중 70%가 확보돼 있다.

이로 인해 오현리 주민들은 자기 집 수리조차 국방부의 인허가 규제를 받아야 했으며 새벽 3~4시에도 진행되는 군사훈련으로 인한 소음 공해를 겪어야 했다.

축산업으로 생계를 잇고 있는 대부분의 마을 주민들은 가축을 늘려 축사를 확장하려 해도 규제가 있어 하지 못하고 있다며 "내일을 기약하지 못하는 지금의 삶도 막막하다"고 주장했다.

또 현재 살고 있는 주민들의 안전 보호 정책도 전무한 실정이다. 무건리 훈련장은 2002년 효순이, 미선이 사망사건으로도 알려져 있는 곳. 당시 사건 또한 훈련을 마친 미군의 궤도 차량이 이 마을 도로를 이용하다 발생한 비극이었다.

오현리 주민들은 인도를 건설하고 군전차 차량 이동을 위한 우회도로를 개설해 줄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지만 '군사작전지역'으로 설정돼 있는 이 곳에 국방부는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고 있다.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오현리 일대 도로 중 효순이, 미선이 사망사건이 발생했던 장소에만 인도가 설치돼 있다고 한다.

이날 연대발언에 나선 매향리 주민대책위원회의 전만규 위원장은 "우리는 20년 간의 투쟁을 통해 사격장을 폐쇄시켰다. 무건리 농민들이 대책위까지 만들어야 된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국가 안보란 무엇인가? 국민들이 농사를 잘 짓게 하는 것이 국가안보"라고 말했다. 전 위원장의 말에 여기저기서 "옳소!"라는 말과 함께 박수가 터져나왔다.

주민 대책위는 이날 국방부에 대해 △훈련장 확장 중단 △주민들이 재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각종 인허가 규제를 풀 것 △주민들의 안전을 위해 인도를 개설할 것 △군 전차 차량 이동을 위한 우회도로 개설 △지난 수 십 년간 일어난 훈련 중 발생한 피해를 보상할 것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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