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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신동 아줌마들, 미싱에 날개 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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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신동 아줌마들, 미싱에 날개 달다

여성 봉제노동자들의 이색 패션쇼

짧게는 20년, 길게는 40년 동안 일해온 봉제 노동자들인 창신동 아줌마들이 패션쇼 무대에 선다.

더 많이 만들어야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었기에 하루 15 ~16시간 좁고 숨막히는 작업실에서 쉴새없이 어떤 이들은 단추를 꿰맸고, 어떤 이들은 재단만 했고, 또 누군가는 바느질만 했다. 그들이 몇십 년 만에 전문가들에게 옷을 만드는 기술을 배웠다. 그리고 이제 그 옷을 사람들 앞에 선보인다.

고 전태일 열사의 동생 전순옥 박사가 설립한 '참여성노동복지터(참터)'가 12월 1일 서울 동대문 패션아트홀에서 '수다공방 패션쇼-창신동 아줌마, 미싱에 날개 달다'를 연다.

"봉제장인들의 기술력, 패션쇼에서 직접 확인하세요"
▲ '수다공방 패션쇼 2006- 창신동 아줌마, 미싱에 날개 달다'의 포스터. ⓒ 프레시안

패션쇼에 참가하는 여성 노동자들은 참터에서 지난 6월부터 운영하고 있는 '수다공방 기술교육센터'의 졸업생들이다. 이곳은 봉제 기술자들을 위해 참터에서 운영하는 재교육 센터다. 노동부 노사공동 훈련 시범프로그램이기도 한 수다공방은 11월 현재 3기까지 졸업생을 배출했다.

참터의 전순옥 대표는 "중국 등에 밀려 점점 더 어려워지는 봉제업의 대안을 찾아보자는 의미에서 수다공방을 발족했다"며 "국내 봉제업에 대한 위기의식이 상당히 크다"고 설명했다.

1960년대 이후 동대문 의류시장이 발달하면서 이곳에 물량을 공급해주는 창신동, 이화동, 원남동 등지의 가내 봉제공장 밀집지역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쉴 새가 없었다. 그러나 이제 이들 지역 공장들은 한달 중 절반은 일감이 없어 멈춰 있다. 세계적 수준의 봉제가공 기술자들은 있지만, 1990년대 후반부터 중국, 베트남 등지에서 저임금으로 제조해 들여오는 제품과의 경쟁은 못 당해냈기 때문이다. 이같은 현실로 인해 봉제 노동자들은 일거리가 줄어드는 동시에 노임도 떨어지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국내 봉제산업의 열악한 조건으로 인해 더이상 새로운 기술자들이 들어오지 않는 것도 문제다. 봉제 노동자들의 고령화는 기술력이 재생산되지 않고 약화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제 동대문 주변 봉제공장에서 생산된 옷들은 중국이나 동남아와 비교해 차별성 없는 저가 의류로 인식될 뿐이다.

패션쇼의 주최측인 참터는 "고숙련 봉제 노동자들이 재교육을 통해 현재 하청구조 속에서 장시간, 저임금으로 일하는 현실을 극복하는 것이 수다공방의 목적"이라며 "이번 패션쇼는 그들의 숙련된 기술력을 보여주는 동시에 독자적인 제품 생산 및 판매를 도모하는 자리"라고 설명했다.

전순옥 대표는 "지하 작업실에서 몇십년 간 작업만 하던 봉제 노동자들이 자신이 만든 옷을 입고 무대에 선다는 건 마치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오르는 모습과 비슷하지 않나"라며 이번 패션쇼의 제목인 '창신동 아줌마, 미싱에 날개 달다!'의 의미를 설명했다.
▲ 자신이 직접 만든 옷을 입고 패션쇼 리허설을 진행 중인 수다공방 졸업생들 ⓒ수다공방

"노임 최대한 낮추려는 관행 개선해야 소비자와 생산자 모두 산다"

이번 패션쇼에 서게 된 봉제 노동자들은 40여 명. 대부분 재단사, 미싱사 등으로 봉제 경력이 20~40년이나 되는 '봉제장인'들이다. 장시간 노동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일주일에 3~6시간 수다공방 수업에 참가해 왔다. 2달 간의 교육과정을 마친 1기 졸업생들이 수업의 연장을 원해 심화과정을 개설할 정도로 수다공방의 인기는 높다.

수다공방 1기 졸업생인 염선애(51) 씨는 "각자의 생활을 조금씩 비워 시간을 내야 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라며 "그러나 얻는 것이 더 많기 때문에 즐겁다. 우리 아들의 반응도 너무 좋다. 수다공방 수업에 빠질라치면 왜 안 가느냐며 성화였다"며 밝게 웃었다.

1984년부터 재단일을 했 왔다는 전홍수 씨는 "경력에 비해 대우나 여건이 안 맞아서 이 일을 포기하려 했다"며 "예전에는 자리 잡고 일을 하려 해도 아무도 기술을 안 가르쳐줬지만, 이제는 중국산 옷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수다공방에서 많은 기술을 배워서 매우 만족한다"고 밝혔다.

패션쇼 주최 측은 "현재 생산기술자들의 상황을 악화시키고 생산기반을 무너뜨리는 원인은 불공정하게 수익이 분배되는 의류시장의 관행에 있다"며 "이것은 노임을 최대한 낮춰 수익을 창출하겠다는 의류상품 제작자나 유통업자들의 의식에서 비롯된다"고 밝혔다.

이들은 "불공정한 시스템을 개선해 생산자에게 적절한 임금이 보장되고, 소비자는 품질 좋은 옷을 적당한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는 것이 결국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를 살리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아직도 소외된 봉제 노동자의 삶, 널리 알려지길"
▲ 리허설에 참가한 수다공방 졸업생들. ⓒ 수다공방

이번 패션쇼에는 '창신동 아줌마'들이 직접 '워킹'하는 무대 외에도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수다공방 및 봉제 여성노동자들의 삶을 조명하는 다큐멘터리 상영을 비롯해 여성학자 오한숙희와 함께하는 아줌마 토크쇼, 그리고 정태춘, 박은옥, 이은미, 전인권 등 가수들의 축하공연이 이어질 예정이다.

뿐만 아니라 수다공방의 뜻에 공감하는 사회각계 인사들이 출연하는 패션쇼도 함께 진행된다. 이상수 노동부 장관, 장하진 여성가족부 장관을 비롯해 민주노동당 심상정, 최순영 의원, 열린우리당 유승희, 원희룡 의원, 강금실 여성인권대사, 문국현 유한킴벌리 대표이사, 탤런트 권해효, 화가 강춘희, 이수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 덕성여대 지은희 총장, 아름다운 재단 윤정숙 상임이사 등 총 22명의 인사들이 '수다공방' 표 옷을 입고 무대에 선다.

패션쇼가 끝난 뒤에는 출연진과 관객이 함께 하는 '수다공방의 송년파티'도 준비돼 있다.

행사의 총감독을 맡은 박진창아 여성문화예술기획 사무처장은 "열악한 조건에서 소외된 채 일하는 봉제 노동자들을 사회에 알려내는 데 이번 패션쇼의 목적이 있다"며 "이들이 만든 옷이 사회적으로 많은 반응을 일으키길 바란다"고 밝혔다.

수다공방 측은 앞으로도 패션쇼를 이어갈 예정이라고 전했다. 아직 '수다공방' 상표를 단 상품을 본격적으로 출시하진 않았지만 내년 중으로 매장도 마련할 계획이다.

이번 행사에 대한 보다 자세한 문의는 수다공방 홈페이지(www.sudagongbang.org) 또는 사무실 전화(02-587-0590)를 통해 할 수 있다. 입장료는 1인당 5만 원(입석 1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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