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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한 적은 전쟁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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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한 적은 전쟁 그 자체다"

[화제의 책] <여기서 전쟁을 끝내라>

한 정부 관계자는 14일 이라크의 자이툰 부대를 철군시키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내비쳤다. 지난 미국의 중간선거 결과에 힘입은 시민단체들이 철군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바짝 높아졌다.

그러나 한국에서 이라크전에 대한 논의는 '국익'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부의 자이툰 철군 계획도 이라크전에 대한 입장 변화에서 나온 것이라고 보긴 어렵다. 이라크전의 참상이나 전쟁이 불러온 이라크 사회의 변화에 대해 무관심한 언론의 태도는 3년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이대로 철군이 진행된다면 이라크전은 곧 '우리와 상관없는 일'이 돼 잊혀질 듯 하다.

미국의 반전평화 여성단체 '코드핑크' 회원 및 전세계 여성 평화운동가들의 글을 엮은 <여기서 전쟁을 끝내라>(메데아 벤저민·조디 에번스 엮음, 박현주 옮김, 검둥소 펴냄)는 '전쟁으로서의 이라크전'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그들은 부시 정부와 언론을 거침없이 비판하기도 하며 이라크 참전군인과 그들 가족들의 고통에도 귀를 기울인다. 또 평화의 문화를 만들기 위해 엉뚱하고 기발한 운동을 책 곳곳에서 제안하고 있다.

1997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조디 윌리엄스, '그린벨트운동'의 창시자이며 2004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왕가리 마타이, '컬러퍼플'의 작가 앨리스 워커 등 평화운동을 펼치고 있는 전문가, 학자, 예술가, 활동가, 저널리스트 등 70여 명의 여성들이 필자로 참여했다. 오는 19일 한국을 방문해 평택을 방문하고 한미 FTA 반대 집회에 참석할 예정인 '반전 엄마' 신디 시핸(Cindy Sheehan)의 글도 함께 실려 있다.

"코드오렌지, 코드레드? 우린 코드핑크다!"
▲ <여기서 전쟁을 끝내라> ⓒ프레시안

"나는 꿈꾼다. '엄마, 전쟁이라는 게 뭐였어요?'라고 묻는 아이를 낳는 꿈을." (이브 메리엄·Eve Merriam)


이라크전이 발발하기 몇달 전인 2002년 11월, 100여 명의 여성들이 워싱턴 D.C.에 모였다. 메데아 벤저민, 조디 에번스, 스타 호크, 다이앤 윌슨 등 미국에서 평화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여성들이었다. 그들은 다음해인 2003년 3월 세계 여성의 날까지 백악관 앞에서 4개월 간 밤샘 농성을 했다. 마지막날인 3월 8일, 1만 명의 시민이 백악관을 분홍색으로 에워싸고 대규모 집회를 했다. 이것이 바로 현재 전 세계 5만 명의 지지자를 확보하고 있는 '코드핑크'(www.codepinkalert.org)의 시작이었다.

코드핑크는 '코드옐로우', '코드오렌지', '코드레드' 등 안보 위험수위에 따라 경보를 발령하는 부시의 '색깔 안보체계'에 반대해 분홍색 경계경보를 내린다는 의미다. 이들은 대통령의 연설이 있는 곳, 국회의사당, 바그다드의 마을 등에 가서 평화를 위한 농성을 하고 구호를 외친다. 또 국제 NGO들과 함께 전쟁 희생자들을 위한 모금활동을 전개하기도 한다.



"그들은 단지 전쟁터에서 상대편에 있었을 뿐"

책에는 미국인으로 처음으로 이라크에서 추가로 복무하기를 공개적으로 거부한 참전 퇴역 군인인 카밀루 메히아(Camilo Mejia)의 글도 실려 있다.
▲ 이라크 침공 직후 항의 시위를 벌이는 로스앤젤레스 여성들 ⓒ Jodie Evans

"내가 모든 두려움과 의혹들을 내려놓은 건 나만을 위한 게 아니었다. 이라크 국민들을 위한 것이었고, 심지어 내게 총을 쏘아댔던 사람들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그들은 단지 전쟁터에서 상대편에 있었을 뿐, 유일한 적은 전쟁 자체였다. 그리고 지뢰와 열화우라늄의 희생자들인 이라크 아이들을 위한 것이었다."


메히아는 탈영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아 오클라호마 씰 기지에서 1년간 복역한 뒤 2005년 2월 석방됐다. 그러나 양심적 병역 거부를 선언했던 그는 어찌 보면 행운아다. '군인가족스피크아웃(Military Families Speak Out)'의 설립자 낸시 레신(Nancy Lessin)은 이라크에서 돌아온 수많은 구인들이 심각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진단을 받고도 아무런 후속 조치 없이 살아가고 있는 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제프리는 살인자가 되고 살인마가 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중얼거렸다. 그의 목에는 두 사람의 인식표가 걸려 있었다.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자신의 손으로 목숨을 빼앗은 비무장 상태의 이라크 병사 두 사람의 것이었다. 이 젊은 해병대원은 매사추세츠 서부 부모님이 살고 있던 집 지하실로 내려가 목을 매 자살하고 말았다."


이라크전에서 아들을 잃었던 신디 시핸은 2004년 부시 대통령이 재선된 직후 그의 앞으로 한 통의 편지를 띄웠다.

"지난 대선 때 토론에 나온 당신은 '힘든 일'에 대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했습니다. 전쟁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알고 있다고 말하면서 텔레비전에서 전쟁을 보고 있고 매일 사상자 수를 보고받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조지! 진정으로 '힘든 일'이 어떤 것인지 알려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다 큰 장남이, 정직하고 용감한 아이가, 이전에도 지금도 아무런 근거 없는 전쟁에 죽으러 가는 걸 지켜보는 것이 '힘든 일'입니다."
▲ 평화재향군인회(Veterans of Peace)는 매주 일요일이면 캘리포니아 남부 해안에 1000개가 넘는 십자가를 세운다. 그리고 '알링턴 웨스트'라 불리는 임시 공동묘지에서, 세상을 떠난 미군 병사들을 기리는 의식을 진행한다. 사진은 같은 제목의 다큐멘터리 영화의 한 장면. ⓒ Alington West

"정확한 보도? 차라리 이라크 소녀의 이마에 표시되는 과녁을 보여줘라"
▲ 코드핑크는 '분홍색 경보'를 상징하는 분홍색 속옷을 그들의 상징으로 사용한다. ⓒFred Askew

또 다수의 필자들은 미국 정부가 벌이는 전쟁에 '동조'하는 미국 언론들이 단단하게 쌓고 있는 '전쟁의 토대'를 비판하고 있다.

미국 시민들이 만드는 방송 <데모크라시 나우!(Democracy Now!)>의 진행자 에이미 굿맨(Amy Goodman)은 이렇게 말한다.

"만약 미국에서 딱 일 주일간만 우리가 전쟁의 진면목을 보게 된다면, 만약 우리가 사람들의 잘려나간 팔다리들을, 폭발로 몸뚱이가 산산조각난 아이들을 보게 된다면, 전쟁은 뿌리 뽑히게 될 거라고 나는 확신한다. 우리가 미국 언론에서 보는 건 비디오 전쟁 게임이다. 땅 위의 목표물을 쏘아 쓰러뜨리는 회색의 흐릿한 사진들이다. 어린 이라크 소녀의 이마에 표시되는 과녁을 보여주는 게 오히려 정확할 것이다"

미디어 감시 단체의 프로그램 국장인 재닌 잭슨(Janine Jackson)은 적나라한 사례로 굿맨의 주장을 거든다.

"2002년 12얼 미국의 공습으로 아프간 마을 니아지칼라에서는 아이들을 포함해서 민간인 수십 명이 사망했다. 그때 해외 신문들이 뽑은 헤드라인은 '공습으로 100명 이상의 마을 주민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어 비난에 직면한 미국', '마을 주민 100명, 미국 공습으로 사망' 등이었다. 이에 반해 <뉴욕타임스>가 뽑은 제목은 '아프간 지도부, 미군의 공습을 조심스럽게 지지하다'였다.

일찍이 CNN 회장 월터 아이작슨은 언론들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발생하는 사상자들이나 곤란한 상황들에 너무 초점을 맞추는 것'은 '정도에 벗어나는 일'이 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이미 간부들에게 지시를 내린 바 있다."

유쾌하고도 용감한 그녀들의 제안, "평화를 외치자"

이 밖에도 이 책은 각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평화운동가들의 짧고 굵은 글들을 통해 이라크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등의 전쟁을 누가 일으켰는지, 누가 주도했는지, 그리고 이로 인해 누가 희생을 당했는지에 대해 낱낱히 고발하고 있다.
▲ 행진하고 있는 코드핑크 회원들 ⓒFred Askew

이라크전은 이미 많은 이들에게 상처를 안겼다. 그리고 전쟁은 뜻하지 않은 희생을 불러온다는 사실을 명확히 증명했다. 그렇다고 단순히 분노만 하고 있을텐가? '코드핑크'의 설립자 중 한 사람인 메데아 벤저민(Medea Binjamin)는 '다음 전쟁을 막기 위한 10가지 행동'을 제안한다.

1. 사회적 쟁점에 관해 알아나가자.

2. 믿을 수 있는 언론을 요구하자.

3. 알게된 정보를 친구, 이웃, 그리고 모든 이들과 소통하자.

4. 지도자들에게 책임질 것을 요구하자.

5. 미국이 '석유 중독'에서 벗어나게 하자.

6. 평화운동 단체를 만들자.

7. 당당하게 주장하는 병사들을 지원하자.

8. 시민적 권리들을 지켜내고 이민자들에 대한 반격에 대항하자.

9. 평화부 창설을 지원하자.

10. 아이들에게 평화를 가르치자.

분홍 속옷을 입고 거리에 나서 사람들에게 분홍 속옷을 선물했던 코드핑크. 그들은 이제 전쟁에 분노한 전 세계 모든 여성과 남성들에게 '엉뚱하고 기발하며 상식을 뛰어넘는, 결코 멈추지 않을 평화운동'을 함께 펼칠 것을 요구한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당신은 어느새 유쾌하고도 용감한 그들이 내민 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 시위를 벌이고 있는 코드핑크의 회원 ⓒFred Ask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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