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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 '돌아올 수 없는 강' 따라 흘러가나"

[한미FTA 뜯어보기 138] 이정우 전 청와대 정책실장, 심포지엄서 근본적 문제제기

경북대 교수로 돌아간 이정우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한미 FTA에 대해 발언하기 위해서다.

오는 11일 학술단체협의회 주최로 심포지엄이 열린다. 주제는 '한미 FTA, 세계화, 그리고 한국사회의 대안적 발전전략'. 이정우 전 실장(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이 중앙대에서 열리는 이날 심포지엄의 기조발제를 맡았다.

이 교수는 현 정부 정책 기조의 설계자 역할을 했다. 교수로 돌아간 뒤에도 그는 현 정부 정책을 변호하는 입장을 주로 취해 왔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부동산 정책에 대해 이 교수가 현 정부를 옹호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이런 그가 한미 FTA에 대해서만큼은 정부와 다른 목소리를 내 왔다.

미리 배포한 11일 토론회 발제문의 내용도 이 교수의 평소 입장과 다르지 않았다. 이 교수는 시장경제와 세계화를 존중하면서 한미 FTA 체결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태도를 취해 왔다. 현 정부 핵심에 있던 이 교수의 이런 입장은 성급한 한미 FTA 체결을 우려하는 목소리에 대해 '반(反)세계화' 논리라며 거부해 온 정부 관계자들의 태도와 대조를 이루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세계화', 어떻게 봐야 할까?"

정부는 한미 FTA 체결을 서두르는 이유에 대해 "'세계화' 흐름에 동참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한미 FTA에 찬성하는 이들이 반대자들을 비판하는 근거도 "'세계화' 흐름에 동참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세계화'를 어떻게 봐야 할까?"라는 질문에 부딪힌다. 이 교수의 발제문도 같은 질문으로 시작한다.

흔히 "상품, 노동, 자본시장에서 세계적 통합이 높아지는 현실"로 정의되는 세계화에 대해 이 교수는 긍정과 부정, 어느 한 쪽의 입장에서만 바라볼 수 없다고 말한다. 이 교수는 '세계화'를 둘러싼 여러 쟁점들 가운데 자신의 전공인 소득 분배 측면을 살폈다.

좌파 진영과 일부 시민단체는 흔히 세계화가 양극화를 부추겼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교수는 이런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1980년 이후 20여 년간 세계 경제의 불평등 현상은 완화돼 왔으며, 이는 1800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이 체감하는 것과 다르다. 왜 그럴까?

이 교수에 따르면, 미국, 일본 등의 국내 불평등이 심화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물론 한국도 포함된다. 기술 진보에 따른 계층 간 정보 격차, 공장의 해외 이전으로 인한 일자리 소멸, 노동조합 약화 등이 세계화와 맞물리면서 빚어진 현상이다. 한국의 경우에는 여기에 민주주의의 미완성으로 인한 인권억압 및 노동배제라는 이유가 보태진다고 이 교수는 설명했다.

"자료 투입해 충분히 고문하면 원하는 자백 얻을 수 있다"

이 교수가 세계화에 대해 취한 이런 조심스런 태도는 한미 FTA에 관한 대목으로 넘어오면서 달라진다. 비판의 날을 바짝 세웠다. 이 교수는 "국내에 이미 너무 많은 시장주의자들이 판에 박은 시장주의 논리로 경제를 오염시키고 있는 판에, 한미 FTA까지 맺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설상가상이 될 것"이라고 단언한다.

이 교수는 "현재 국내에서 한미 FTA를 찬성하는 측에서는 대단히 큰 경제적 효과가 있을 것으로 과대 선전하는 경향이 있다"며 정부가 한미 FTA의 타당성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종종 제시해 온 CGE(Computable General Equilibrium) 모델의 한계를 지적했다.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종종 회자되는 "자료를 투입해 충분히 고문하면 원하는 자백을 얻을 수 있다"는 농담처럼 CGE 모델로 시뮬레이션 한 결과는 연구자의 의도에 따라 달리 나오는 게 일반적이라는 것이다.

이어 이 교수는 한미 FTA가 낳을 수 있는 영향에 대해 각 산업 별로 조목조목 분석한다. 그리고 한미 FTA를 통해 한국이 얻을 수 있는 것은 불투명하지만 잃게 될 것은 명백하다고 지적한다.

한국 경제 체질에 영미형 시장주의 모델이 어울리나?

하지만 이 교수가 주목하는 것은 단지 개별 산업에서의 손익을 합산한 결과만이 아니다. 한미 FTA 체결을 "미국과의 심층 통합을 빠른 속도로 추구하는 것"이라고 규정하는 그가 정말 우려하는 것은 한국 경제 체제의 질적 변환이다. 이 교수는 "한미 FTA를 체결한다면 우리 경제의 체질이 영미형 시장주의로 바뀔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영미형 시장주의 모델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추진하는 한미 FTA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다. 이런 경고는 자연스레 "한국은 어떤 경제모델을 취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그에 따르면, 일단 영미형 시장주의 모델은 위험하다. NAFTA 체결 후 시장주의적 성격이 더욱 강화된 캐나다의 경우 실업보험 대상 노동자의 비율이 80%에서 35%로 급락했다. 시민의 삶의 질이 저하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지난 20여 년 동안 경제 성장률, 거시경제 안정성 등의 지표를 종합해서 검토해 봐도 영미형 시장주의 모델은 공공성이 강화된 북구형 모델에 못 미친다.

그뿐 아니다. 영미형 시장주의 모델은 주주 중심 자본주의(Stockholder capitalism)와 쌍을 이룬다. 그것은 매년 열리는 주주총회에서 기업 가치를 평가하여 실적이 나쁜 경영자를 도태시키는 방식이다. 이렇게 되면 경영자는 단기적 실적에만 급급한 나머지 장기적 관점의 투자에 신경 쓸 여유가 없다.

한국이 이제까지 취했던 방식은 이와 달랐다. 일본, 독일 등이 취하고 있는 관계형 자본주의(Stakeholder capitalism)에 가까웠다. 한국 경제가 오랫동안 세계 최고의 투자율을 자랑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장기적 관점에서 모험 투자를 가능하게 했던 관계형 자본주의 모델 때문이라는 것이 이 교수의 주장이다.

시장주의자도 한미FTA 반대할 수 있다…"경제체제는 한번 정하면 불가역, 충분히 검토해야"

발제문 곳곳에서 이 교수는 시장을 억누르는 관치 경제를 비판했다. 자신은 반(反)시장주의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처럼 진지하게 시장경제를 옹호하면서도 한미 FTA 체결로 도입될 영미형 시장주의 모델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우려했다.

이 교수의 이런 태도는 한미 FTA에 반대하는 주장을 무턱대고 '반(反)시장주의' 혹은 '반(反)세계화'로 몰아 붙이는 이들에게는 요령부득일 수 있다. '시장경제의 우월성', 그리고 '거스를 수 없는 세계화'라는 명분만 내세우며 한미 FTA의 영향에 대한 진지한 검토는 외면해 왔던 이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이 교수의 다음과 같은 질문은 그들을 향한 것이다.

"경제체제는 한번 정하고 나면 거의 불가역(不可逆, 되돌이킬 수 없음)의 성질이 있다. 그런데 과연 우리가 충분한 검토 없이 '돌아오지 않는 강'을 따라 내려가는 게 옳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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