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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은 모르는 '요즘 아이들'의 내면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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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어른들은 모르는 '요즘 아이들'의 내면 풍경

〈고래가 그랬어〉 창간 3년째…김규항, 정혜신을 만나다

어린 시절 곤충 관찰에 몰두하며 과학자를 꿈꾸던 소년이 훗날 세 아이의 아버지가 됐다. 그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면밀히 관찰했고,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했다. 그리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겼다. 이 기록을 놓고 그는 아이가 어떻게 세상을 인식하는지, 인간의 지적능력은 어떻게 형성되는지에 대해 탐구했다. 이렇게 나온 책이 〈지능의 탄생〉. 연체동물에 관한 논문으로 생물학 박사 학위를 받았던 그에게 이 책은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발달심리학의 거장 장 피아제의 이야기다.

기독교의 영향 속에서 자란 소년이 1980년대의 격동을 거치며 좌파가 됐다. A급도 아니고, C급도 아닌 'B급 좌파'. 스스로 자처한 표현이다. 지식인의 위선과 기득권층의 천박함을 통렬하게 꼬집는 글로 이름을 날리던 그가 언제부터인가 자신의 아이들에 대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제 그의 독자들에게 그의 딸 김단과 아들 김건은 익숙한 이름이 됐다. 그가 쓰는 김단과 김건의 이야기는 연구보고서도, 자식 자랑도 아니다.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자신을 성찰한 기록이다. 피아제의 경우처럼 아이들과 대화하며 글을 쓴 것이 삶의 전환점이 된 것일까. 3년 전 그가 갑자기 새로운 잡지를 들고 나타났다. 아이들에게 대화를 건네기 위해서란다. 아이들을 위한 만화 잡지 〈고래가 그랬어〉발행인 김규항의 이야기다.

〈고래가 그랬어〉가 최근 37호를 발행했다. 잡지사 경영의 첫 고비라는 '창간 후 3년'의 문턱을 무사히 넘었다는 뜻이다. 발행인의 면모 때문에 〈고래가 그랬어〉는 진보적 색채로 주목받았다. "전태일 전기를 연재하는 어린이 잡지가 얼마나 팔릴까"하는 질문이 자연스레 따랐다.

어린이 책은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읽도록 권하고 싶어하는 책이 제일 잘 팔린다. 지갑을 여는 것은 어른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어른들에게 사달라고 조르는 책은 그 다음 차례다. 하지만 창간 직후 〈고래가 그랬어〉는 이 두 경우에 모두 속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에 부딪혔다. 3년이 지난 지금, 김규항 발행인은 〈고래가 그랬어〉가 두 번째 부류에 속하는 책이라고 단언했다. 〈고래가 그랬어〉를 통한 다음 세대와의 대화 나누기에 '일단 성공'했다는 것이다.

정신과 전문의이자 칼럼리스트인 정혜신 씨와 함께 김규항을 만났다. 지면을 통해 많은 독자들을 만나왔지만 정작 정 씨는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즐기지 않는 성격이다. 그런데 초등학교 동창회 간사조차 맡아본 적 없다는 그가 아주 드물게 자청한 '감투'가 있다. '고래동무' 운영위원이 그것. '고래동무'는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전국의 어린이 도서관과 각 지역 공부방에 〈고래가 그랬어〉를 보내기 위한 모임이다.

정 씨는 승용차에 〈고래가 그랬어〉를 항상 서너 권씩 넣고 다닌다. 마음이 통할 것 같은 사람을 만나면 권하기 위해서다. 4일 오후 서울 망원동에 있는 〈고래가 그랬어〉편집실에서 만난 정혜신과 김규항에게 〈고래가 그랬어〉에 대해 흔히 갖는 통념에 대한 질문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전태일을 다루니까 계몽적이다?

프레시안 : 〈고래가 그랬어〉에 대해 너무 계몽적이라는 지적이 있다. 어른 세대가 이루지 못 한 진보적 염원을 다음 세대에 투영하다보니 그렇게 됐다는 것이다.
▲ 정혜신 박사. ⓒ프레시안

정혜신 : 절대로 동의할 수 없다. 진보와 보수로 나눠 그 중 하나의 이념을 계몽하려는 태도는 〈고래가 그랬어〉와 맞지 않는다. 〈고래가 그랬어〉를 조금만 읽어보면 이 책이 아이들을 훈육과 지도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이들이 이 책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계몽적인 책이라면 아이들이 좋아할 리 있겠나.

김규항 : 창간 직후에 전교조 관계자를 만났더니 걱정하더라. 이런 책이 과연 팔릴까 하고. 그런데 며칠 뒤 그 사람에게서 전화가 왔다. 집에 별 생각 없이 던져둔 〈고래가 그랬어〉를 아이들이 계속 끼고 살더라는 거다.

전태일을 다루니까 당연히 계몽적일 것이라 여기는 것은 잘못이다. 물론 〈고래가 그랬어〉를 통해 내가 아이들을 진보적으로 물들이려 한다고 보는 것도 잘못이다. 아이들이 얼마나 다양한 매체에 노출돼 있는가. 그런데 겨우 한 달에 한 권 나오는 잡지 하나로 아이들이 의식화될 수 있다고 여길 만큼 나는 어리석지 않다.

전태일을 다루고, 지하철 노동자와 환경에 대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계몽적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은 〈고래가 그랬어〉의 눈높이가 아이들에게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을 만들려고 노력해 왔다. 만약 재미와 계몽이 충돌한다면 당연히 재미 쪽에 양보할 것이다.

프레시안 : 어른들이 아이들 세계를 잘 모르지 않나.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책을 낸다는 게 말처럼 쉬울 것 같지 않다. 그게 어느 정도 성공했다면 어떤 비결이 있을 것 같다.

정혜신 : 단이(김규항의 딸)를 키우면서 느끼고 배운 게 아무래도 도움이 됐겠지. 나는 발달 심리학자 중 아직까지 장 피아제를 넘어선 사람이 없다고 본다. 그런데 피아제의 연구가 바로 자신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섬세한 안목과 통찰력을 갖고 '자기 자식들'이라는 개별적이고 특수한 대상과 대화하는 과정에서 보편적인 이론을 끌어낸 것이다. 김규항 씨가 지금 하고 있는 일도 비슷한 것이 아닐까.
▲ 김규항 발행인. ⓒ프레시안

김규항 : 이제까지 '좋은 어린이 책'이라 불린 것들은 대부분 '양식있는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사주고 싶어하는 책'이었다. 하지만 그런 책들은 정작 아이들이 잘 안 본다. 왜 그럴까? 아이들 세계는 단순하다. 논리적으로 길게 이야기할 게 별로 없다. 어른들은 이걸 잘 모른다. 그래서 어른들이 사주고 싶어하는 책과 아이들이 좋아하는 책이 다르다. 〈고래가 그랬어〉가 주목한 것은 이 대목이다.

아이들 중에도 팔레스타인 사태에 대해 이야기하고, 이스라엘에 대해 욕하는 애들이 있다. 부모가 진보적인 의식을 갖고 있는 경우다. 그런데 이런 아이들이 생활 속에서도 진보적일까? 대개는 그렇지 않다. 이런 이야기하는 아이들이 또래들과 어울리는 곳에서는 꼭 이스라엘처럼 군다. 하지만 어른들의 눈에는 이런 모습이 잘 안 들어온다. 말도 잘 하고, 똑똑한 모습에만 주목하니까. 아이들이 이렇게 자라는 것은 〈고래가 그랬어〉의 바람이 아니다.

위험수위에 달한 아이들의 공격성…어른들은 왜 모를까?

프레시안 : 〈고래가 그랬어〉와 관련한 일을 하면서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추다 보면 다른 세대와 구별되는 요즘 아이들의 특징도 눈에 띌 것 같다.

정혜신 : 그렇다. 내가 요즘 아이들에게서 주목하는 현상은 과거보다 두드러진 공격성이다. 주위의 소아 정신과 의사들에게서 아이들의 공격성이 위험 수위에 달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면 보통 "어느 시대나 아이들은 늘 그렇지"하는 반응이 돌아온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우리 사회의 세대 간 격차를 나타낸 지수가 OECD 평균보다 2~3배 정도 높게 나타났다. 기성세대, 즉 교사와 부모에 대한 아이들의 반발이 정상 수준을 넘었다. 문제는 이런 상황을 어른들이 인식하지 못 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어른들과의 대화를 거부하고 반발하면 "사춘기가 시작됐나 보다"하고 넘어간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소통 거부와 사춘기적 현상은 전혀 다른 것이다. 왜 이걸 구분 못 할까? 어른들이 "내가 얼마나 잘 해줬는데"하는 생각에 갇혀 있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자폐적 생각에 갇힌 어른들이 아이들과 제대로 소통하지 못 하고 있는 것이다.

김규항 : 요즘 아이들은 꼭 경기에 출전한 선수들 같다. 아이들은 선수, 어른들은 매니저. 그래서 다들 성적에만 관심이 있다. 그러니까 성적이 좋으면 다른 문제들에 대해서는 아주 관대해진다. 또 성적이 나쁘면 역시 그것만 눈에 들어와서 속상해한다. 이런 상황 때문에 빚어진 현상이 아닌가 싶다.

정말이지 이것은 끔찍할 정도로 비극적인 상황이다. 자신의 아이들과 소통할 수 없는데, 그래서 서로 존중하는 관계를 이루지 못 했는데 다른 성공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내 딸이나 아들이 훗날 나와 정치적 입장이나 이념이 다르다면 그것은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진솔한 소통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정말이지 절망스러울 것 같다.

아이들이 결혼할 때 전셋집을 마련해 주려고 애쓰는 부모들이 많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문제는 외면하고 있는 것 같다. 서로를 존중하지 않는 관계가 고착된 뒤, 자식에게 집을 마련해 주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아이들의 개별성을 무시하는 사회…노동을 부끄러워하는 아이들

프레시안 : 아이들이 어른들과 소통을 거부하는 데는 경쟁만을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가 남긴 내면의 상처도 한몫할 것 같다.
▲ 정혜신 박사. ⓒ프레시안

정혜신 : 심리학에서는 사람의 자아를 에고(ego)와 셀프(self)로 구별한다. 에고가 손상되면 보통 화를 낸다. 하지만 셀프가 손상되면 분노한다. 에고의 손상은 큰 후유증 없이 복원되지만 셀프의 손상은 그렇지 않다.

앞서 요즘 아이들의 공격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런데 그것도 셀프의 손상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 셀프의 손상은 언제 생겨나는가. 사람의 고유한 개별성이 무시당할 때다. 각자의 개별성을 철저하게 존중하고 섬세하게 배려하는 것. 그것이 최고의 진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개별성을 존중하기보다 그것을 기성의 틀로 재단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에게서 나타나는 공격성은 우리 사회의 이런 모습을 돌아보게 하는 위험 신호다.

김규항 : 〈고래가 그랬어〉 편집장의 아내가 초등학교 교사다. 얼마 전까지 부유층 자제들이 다니는 사립학교에서 근무하다 최근 서민 거주지에 있는 공립학교로 옮겼다. 그런데 그분이 학교를 옮긴 뒤에는 한동안 집에 와서 매일 울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가난한 아이들은 외모에서부터 차이가 있더라는 거다. 안타까운 것은 그것만이 아니라고 했다. 그 분을 정말 슬프게 했던 것은 가난한 학교의 아이들이 남의 가치관을 갖고 살더라는 사실이다. 가난을 부끄러워하고 노동을 천시하는 가치관 말이다.
▲ 김규항 발행인. ⓒ프레시안

하지만 아이들이 원래부터 그런 가치관을 갖고 있었겠는가? 그렇지 않다. 얼마 전에 아들과 집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때 우리나라에는 집을 여러 채 가진 사람들이 꽤 많다고 이야기했더니 아이가 깜짝 놀랐다. 자신이 살지도 않을 집을 왜 갖고 있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집을 여러 채 갖고 있으면서 그것으로 돈을 버는 사람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아들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 아이도 나이를 먹으면 자연스레 이해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어떤 사람들은 여러 채 갖고 있는 집이 우리에게는 없다는 사실에 대해 부끄러워하게 될 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마음의 상처를 받고 그것이 공격성으로 표출되고 다시 남에게 상처를 줄지 모른다.

아이들이 왜 이렇게 상처받아야 하는가. 노동에 대한 자부심을 가진 어른으로 자랄 수는 없는 것일까. 〈고래가 그랬어〉의 바람도 여기에 있다. 아이들이 자신을 긍정할 수 있는 가치관을 가진 어른으로 자랄 수 있도록 조그마한 힌트라도 주고 싶다는 것이다.

이날 대화는 이렇게 짧게 끝났다. 정혜신 씨는 요즘 기업체 경영자와 임원을 위한 심리 분석 및 상담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정 씨는 그들 대부분이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임계치를 훌쩍 넘어선 정신적 부담을 안고 지낸다"고 말했다. 외견상 성공한 어른들의 내면이 실상 위태롭기 그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어른들의 문제가 그대로 아이들에게서 반복되고 있는 것 아닐까. 그가 아이들이 겪는 내면의 상처와 거기서 비롯된 공격성, 그리고 아이들과 소통할 수 없는 어른들의 문제에 민감해진 것은 이런 경험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한편 같은 날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6학년 학생이 친구에게 흉기를 휘두른 사건이 터졌다. 현장에서 발견된 흉기는 학생들이 흔히 쓰는 문구용 커터 칼이 아닌 식칼. 그 아이는 어떻게 식칼을 들고 학교에 올 생각을 했을까. 그 아이의 평소 성격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조용…. 그냥 조용해요. 공부만 해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주위의 어른들은 왜 그 아이가 그런 행동을 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아이들의 공격성, 그들과 소통할 수 없는 어른들에 대해 개탄하던 이날의 대화 내용이 저녁 내내 귀에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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