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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의 살아있는 양심을 찾아

[특집] <대통령을 죽여라> 주연맡은 숀 펜 인물탐구

서울에 있는 예술영화전용관 필름포럼에서 단관개봉한 숀 펜 주연의 영화 <대통령을 죽여라>는 그 내용이 갖고 있는 정치적 폭발성, 사회적 의미 등으로 국내외에서 주목을 받았던 작품이다. 단 1개관에서 개봉되는데다 흥행성이 극히 미약한 작품이지만 우리사회와 우리사회를 둘러싼 국제정치의 환경을 여러 측면에서 암시,은유하고 있는 작품이다. 프레시안무비가 세명의 필자를 동원, 이 작품을 낱낱이 해부,소개하려는 건 그때문이다. - 편집자
미국이 유엔에서 이라크 무력제재안 통과를 한창 밀어부치고 있던 2002년 10월 18일, 워싱턴포스트지에 편지로만 이뤄진 이색적인 광고 한 개가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편지는 이렇게 시작됐다. "부시 대통령께. 당신이 추진하고 있는 이라크 공격계획과 테러와의 전쟁은 시민권을 파괴하는 것이며 선과 악에 대한 단순하기 짝이 없고 선동적인 견해를 보여줄 뿐입니다." 이날 아침 워싱턴포스트를 펼쳐든 독자들은 누군가가 최소 5만달러가 넘는 지면을 사서 대통령에게 이런 공개편지를 보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그리고, 편지 끝에 적힌 서명을 보고나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름은 숀 펜(46)이었다.
이라크를 취재중인 숀 펜 ⓒ프레시안무비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현역배우들 중 수전 서랜든, 팀 로빈스와 함께 가장 정치적인 인물로 꼽히고 있는 숀 펜의 반 부시, 반전 행보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편지를 보낸지 두달 뒤인 12월, 숀 펜은 이라크 바그다드를 방문했다. 미국이 언제 폭격을 퍼부을지 모르는 바그다드에서 그는 전세계를 향해 반전 메시지를 보냈다. 그의 대담한 행동은 평화주의자들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았지만 보수주의자들로부터는 '후세인 정권에 놀아난 철없는 짓'쯤으로 매도되기도 했다. 그는 당시 CNN 래리 킹 라이브에 출연해 이라크 방문을 통해 자신의 공적인 위치가 이라크전에 대한 토론의 활성화를 도모하도록 자신에게 '더 많은 책임감'을 부여하고 있음을 느꼈다고 말했다. 2005년 6월 10일, 숀 펜은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에 이어 또하나의 눈엣 가시로 여기고 있는 이란 테헤란을 방문했다. 관광객이 아니라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지의 특별 중동 특파원 자격으로 대통령 선거를 취재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마무드 아마디네자드라는 후보가 왜 이란 국민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으며, 이란은 이라크와 어떻게 다른지를 자신이 본 그대로 보도했다. 물론 그의 기사가 중동 및 이란의 복잡한 정세에 대한 심도있는 분석을 제시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보통 미국인들이 궁금해하는 것의 해답을 찾으려는 노력과 다른나라, 다른 문화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는 그의 자세는 독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최고의 악동에서 최고의 사회활동가로 숀 펜은 젊은 시절 마돈나와의 부침많았던 결혼생활과 이혼 때문에 타블로이드 신문과 가십 저널리즘의 단골손님인 '할리우드의 악동'이었다. 끈덕지게 따라붙는 사진기자와 주먹다짐을 하지 않나, 무례한 대중에게는 대놓고 욕설도 서슴지 않는 말썽꾸러기였다.
그랬던 그가 지금 할리우드뿐만 아니라 미국 문화계에서 최고의 정치비평가 또는 사회활동가로 존경받게 된 것은 결코 느닷없는 일이 아니다. 그가 정치와 사회현상에 관심을 갖게 된 데에는 영화감독인 아버지 리오 펜의 영향이 가장 크다. 80년대 중반까지 영화와 TV 분야에서 비교적 활발히 활동했던 리오 펜은 50년대 매카시 광풍 때 영화계 내의 공산주의자를 고발하라는 반미활동조사위원회의 요구를 거절해 한동안 블랙리스트에 올라 불이익을 당한 인물이었다. 숀 펜의 진보적인 정치 이념은 그의 연기생활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이에 대해서는 한마디로 단정지어서 말하기는 어려운 듯하다. 베트남 전쟁에 의해 파괴되는 인간성을 고발한 <전쟁의 사상자들>(89년작)이나 <데드맨 워킹>(95년작) <대통령을 죽여라(원제는 '리처드 닉슨의 암살')>(2004년작) 그리고 남부 부패정치를 소재로 한 최신작 <모두가 왕의 남자들>(2006작) 등의 작품들은 숀 펜의 정치,사회 문제에 대한 높은 관심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지지하는 특정 정치 노선이나 메시지를 영화 속에서 직접적으로 노출하거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영화를 이용한 적은 한번도 없다. 영화 속에서 그의 관심은 언제나 '사람'이었다. <배드 보이스>(1983년작)의 앞뒤 모르고 날뛰는 철부지이거나 <전쟁의 사상자들>의 극악한 살인광 , <칼리토>(93년작)의 타락한 변호사, <데드맨 워킹>의 강간살인범, <미스틱 리버>(2003년작)의 복수심에 불타는 아버지 등 숀 펜이 창조해낸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영화사에 남을 만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대통령을 죽여라 ⓒ프레시안무비
과연 그들은 악인이기만 한 것일까. 숀 펜이 그려내는 악인은 대부분 거대한 권력체계나 사회의 고정관념에 의해 상처입고 망가진 사람들이었다. 도대체 누가 그들을 악인이며 정신이상자라고 손가락질할 권리를 가졌는가. 숀 펜이 그려낸 악인들의 리얼한 모습이 보는 이들의 마음을 참을 수없이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은 그가 그만큼 캐릭터자체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부조리를 예민하게 인식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숀 펜은 감독으로서도 탁월한 능력을 나타내 <인디언 러너>(91년작) <크로싱 가드>(95년작) <플레지>(2002년작) 등으로 평단과 관객들로부터 격찬을 받기도 했다. 나이 마흔 고개를 넘어서면서 영원할 것같았던 숀 펜의 '배드 보이' 이미지도 어느새 조금씩 순화되고 있다. 순수한 아버지상을 연기한 <아이 엠 샘>(2001년작) 과 사려깊은 수사관으로 등장했던 <인터프리터>(2005년작)등이 바로 그런 영화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할말은 반드시 하고야마는 반골정신과 불덩어리처럼 이글거리는 에너지를 품은 배우이자 사회운동가로서 숀 펜의 행보는 사실 이제부터다. 바로 그것이 어떤 이는 열렬히 그를 사랑하고, 어떤 이들은 그를 참을 수없이 혐오하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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